본문 바로가기
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2)

돈과 직장이 결혼에 미치는 영향은?

by 무한 2010. 3. 23.
"황홀할 줄 알았던 결혼이, 저에게는 너무 현실이 되어 버렸어요."

한 커플부대원이 보내온 사연에 나온 문장이다. 자신에게만 찾아온 불행처럼 이야기 하셨지만, 결혼은 누구에게나 다 현실이다. 그냥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를 생각했겠지만, "그림 같은 집"부터가 현실이란 얘기다.

어제 각종 포털 메인을 장식한 [한 푼 안써도 내 집 마련에 12년 걸려]라는 기사를 봤으리라 생각한다. 생활비를 제외하고 월 84만원씩 모으면, 33평 아파트를 마련하는데 서울에서 평균 56년 6개월, 강남권에서는 89년 8개월 걸린다는 기사 말이다. 핼리 혜성이 다시 지구를 찾는 2061년 여름쯤이면 서울에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다는 희망적 내용이니, 너무 슬퍼하거나 노여워 하지 않아도 좋다. 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늘어날테니, 강남도 가능하고 말이다.

갓 면허를 따 "내 차를 사야지."라고 들떠있는 경우, 자동차를 사서 기름만 넣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처럼, 솔로부대원들이나 결혼과는 아직 거리가 있는 커플부대원의 경우,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데 돈이나 직장이 왜 문제가 되나요?"라고 할 지 모르겠다. 이 물음에 명확하게 답하긴 힘들고, 내게 발송된 사연들에선 두 집안의 '차이'가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는 것만 적어두겠다. 사랑으로도 극복하지 못한 차이, 그게 뭔지 함께 살펴보자. 


1. 실망과 부담사이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댓글로 누가 잘 했고 누가 잘 못 했고를 가리기보다 '나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했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는 것이다. 이미 무너질대로 무너져 버린 사람을 앞에 두고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사연을 보자.

오빠와 만난지는 2년이 조금 안되요. 저나 오빠나..
둘 다 전문직이고.. 같이 해외여행 다닐 정도로 풍요롭게 생활했죠..
5월에 결혼식 날짜를 잡고.. 이런 저런 준비들도 다 했어요..
혼수나 뭐 그러거.. 오빠도 신경을 써주길 바랬는데..
그냥 알아서 하면 따르겠다는 식이었고.. 별다른 대화는 안했죠..
결혼에 들어가는 돈들도.. 별 말 없이.. 그렇게 진행되었어요..
근데.. 저희집에 큰 문제가 생겼어요..
동생이... 사업한다고 이상한 짓을 해서... 집이 넘어갔어요..
결혼식을 앞두고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서..
충격받으신 부모님께도 결혼에 대한 얘기 잘 안꺼내려고 하고..
오빠에게도 집 사정 말하지 않고.. 힘들게 힘들게 결혼식 준비를 하긴 했는데..
결국 힘이 부쳐서.. 오빠한테 말을 하게 되더군요...
우리집에 이러이러한 일이 생겼다... 그래서 결혼식 준비를..
우리집에서 다 하기는 힘들 것 같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했더니.. 일단 알았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날 밤 오빠한테 메일이 왔어요..
왜 진작 말하지 않고 숨겼냐고.. 저에 대한 신뢰가 없어졌데요..
전 정말 너무나 겁이나서.. 미안하다고.. 걱정 끼치게 안 하려고 그런 거라고..
어떻게든 혼자 다 마련해 보려고 했는데.. 그게 안 된거라고.. 그랬죠..
하지만.. 오빠는 그래도 자기의 오해가 풀리지 않았고..
결혼하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고 하더군요...
이 때는 그냥.. 제가 말하지 않아서.. 오빠가 화 난 줄 알았죠...
그렇게 여러 날이 흐르고... 만나진 않고 메일만 주고받고...
결국 헤어지자고 하더군요... 결혼도 없던 일로 하자고...
집이 어떻게 된 건 아무 상관이 없지만..
자신에게 말하지도 않고 숨긴 것이.. 그 이유라네요..
전 정말... 죽어버리고 싶어요...


어느 집안이든 사업한다고 일을 벌인 사람은 꼭 사고를 친다, 는 건 훼이크고, 읽으며 화장실에서 아침미션을 상쾌하게 끝내지 못한 기분이 든다. 뭔가 남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란 얘기다. 우선, 김창식씨(38세, 무직)를 대입해서 남자쪽의 감정을 알아보자.

결혼식을 앞두고 여자의 집안이 '아웃 오브 풍요'가 되었다는 사실에 김창식씨는 1차적인 충격을 받는다. 우리끼리니까 좀 쉬운 말로 하자면, 분명 두 그루터기가 있어야 하는데 한 쪽이 뽑혀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과 같다는 거다. '속물근성'이 고개를 든다면, '내가 먹여 살려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거잖아?' 라고 까지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2차로 '신뢰의 붕괴'라는 측면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부부가 된다면 모든 일은 함께 상의하고 함께 처리하며 자신이 모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뒤늦게야 이야기 하는 상대를 보며 '나중에 무슨 일을 할 지 알 수 없잖아.'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런 남자가 왜 결혼준비는 모두 위임했냐는 질문을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에겐 관대하고 남에게는 빡빡하게 군다'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자. 내가 하면 공약이고, 남이 하면 포퓰리즘이라 말하는 일, 못 들어본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와 거의 유사한 사연중에, 상대 남자가 연예인이었던 사연도 있었다. 두 사람은 위의 상황을 지나 거의 '첨삭'수준으로 서로의 메일을 분해, 분석하며 '이유가 뭐냐'의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는데 그거 다 쓸데없는 짓이라는데 내 국민은행 통장을 걸 수 있다. 모든 상황을 종합해 현실적인 답변을 하자면, 여자분의 집이 '원상복구'되기 전 까지는 둘의 관계도 '원상복구'되기 힘들다, 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과거 메일을 발굴작업하듯 메일함에서 꺼내 빨간 글씨로 첨삭하는 일도 이제 멈추길 바란다. 첨부해주신 메일 다 읽어봤는데, 모든 이유가 다 적혀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대답은 늘 같다.

"이제 더이상 너를 신뢰할 수 없어."

슬픈 문장이 우리에게 안녕이라 말하고 있지 않은가. "차라리 이렇게 된 게 다행이네. 이제라도 마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으니까."라거나 "너랑은 두번 다시 안 볼거지만 이번 일의 잘못이 너라는 건 알아둬."이런 이야기도 하지 말자. 안 그래도 많이 아프니, 상처내진 말잔 얘기다.


2. 너는 모르지 너만 모르지


이 사연 주신 분, 아직 그 방이 남아있으면 내가 좀 들어가서 살면 안되는가? 농담이고, 사연을 들어보자.

제가 지금 얼마나 황당한 일을 겪고 있는지 모르실겁니다.
청첩장 다 돌리고, 이것 저것 다 준비한 상태입니다..
근데 그녀가 갑자기 결혼을 못하겠다네요.. 미치겠어요..
집안으로만 봐도, 저희집 어디가서 꿀릴 것 없는 집입니다.
그녀.. 어머니와 둘이 임대주택에 살고 있습니다.
전 정말 이런 거 다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도 저에게 고맙다고 말해준 적 있고요.
집안의 반대가 있었다면 오히려 저희 집이었죠..
그래도 제가 부모님 설득해서 하게 된 결혼입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결혼준비에 관한 모든 것들도 저희집에서 부담하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건.. 1년간 같이 살다가..
나중에 나가라는 거 였습니다. 식구가 될 거니까 같이 살자는 말씀이셨죠.
시집살이 한다고 오해하실 수 있지만 그런 거 아닙니다.
제작년에 결혼한 형과 형수도 현재 집에서 같이 살고 있습니다.
방이 다섯개 있는 집인데, 청소 같은 것도 아줌마가 와서 하고요..
요리나 그런 것도 아줌마가 다 합니다. 절대 고생할 일 없고요.
아, 또 하나.. 결혼하게 되면 직장을 계속 안 다녀도 되니
집에서 살림하는 것이 좋겠다고 아버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돈 보다는 가정교육이 먼저니까요. 태교도 그렇구요.
생활비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전 정말 다 이해하고 받아들였는데.. 그녀는 이거 하나 못 해주는 걸까요..
사랑하는 사이라면.. 그리고 부부라면 맞춰갈 수 있는 거라 생각하는데..
이렇다 할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결혼 못하겠다고...
아직 저도 부모님께 말씀드리진 않았습니다만..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 지도 모르겠고.. 미치겠네요..
어떻게 해야 그녀가 다시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요? 제발요...


그러니까 이 사연을 요약하자면, "우리집은 잘 사는데 그녀는 꿀리는 집안에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고,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식도 다 준비해줬더니 왜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지, 일년 정도 시아버지, 시어머니, 아주버님, 형님, 남편 이렇게 오손도손 살면 되는데 그것도 이해 못해주는지?" 인가? 넓은 아량에 그저 감탄이 나올 뿐이다.

"전 정말 다 이해하고 받아들였는데.. 그녀는 이거 하나 못 해주는 걸까요."

미안하지만, 내가 저 사연에서 '이해'라고 느낀 부분은 한 가지도 없다. 어느 부분을 이해했다는 건가? 그녀의 집안형편 때문에 남자 쪽에서 결혼식에 들어가는 비용을 모두 지불한 것? 그건 이해한 것이 아니라 상황이 그렇다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아니면, 어머니와 임대주택에 살고 있는 그녀를 신부로 맞이해 준 것? 그걸 '이해'했다고 말한다면, '사랑'을 한 것이 아니라 '비지니스'를 한 게 된다. 그렇지 않은가? 내 경우, 사람 많은 버스를 싫어하는 까닭에 빈 좌석이 있는 버스가 올 때까지 몇 시간이고 기다렸다가 버스를 탄다.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책 보거나 음악 들으며 기다린다. 이런 나에게 '아, 그렇구나.' 하며 같이 기다렸다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게 '이해'다.

사연을 읽으며, 남자분의 캐릭터를 그려봤다. 혹시, "괜찮아. 내가 다 알아서 할게."라고 자주 이야기 하지 않는가? 그리곤 통보하듯 결과만 간략히 설명해 주는 것으로 끝나는 대화가 많지 않은가? 시댁에 들어가서 사는 일에 대해 설명해 주신 부분을 보면, 그 일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 하는 느낌이 든다. '이거 하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남자분이야 자신의 집이고 자신의 부모님이고 형, 형수니까 아무렇지 않겠지만, 여자분의 입장에선 그게 아닐 수 있다. 당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직장 상사가 "자네 일 년만 우리집에 들어와서 함께 지내지?"라고 말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위의 글에 '집안의 반대'가 있었다는 내용도 있는 걸로 봐서 '이거 하나'라고 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더군다나 결혼하면 직장을 그만두고 살림을 하는 것, 꿈도 없고 별로 되고 싶은 것도 없다면, 생활비도 준다는데 얼씨구나 할 일이지만, 그녀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중이라면? 결혼으로 인해 자신의 꿈은 모두 접고 '주부'가 되어야 한다면, 과연 행복할까? 

사연의 분위기가 상대를 한 수 아래로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연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봉사활동 수기를 보는 듯 하다. 뿐만아니라, 그녀의 마음이 왜 돌아섰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기 보다는 부모님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는지, 그녀의 마음을 어떻게 해야 돌릴 수 있을지를 묻는 것이 그닥 좋은 모양은 아닌 것 같다. 답변을 원하신다면 이렇게 대답해 드리겠다.

"결혼을 하기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니까 결혼한다는 것을 그녀에게 보여주세요."

라고 말이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사연들이 있으나, 의자가 고장난 관계로 여기까지만 적겠다. 식탁의자는 역시 밥 먹을 때에만 앉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장시간 앉아 있으니 고통스럽다. 새롭게 도착하는 커플부대원들의 사연을 더해 다음기회에 또 이야기 할 시간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아, 그리고

"이번엔 정말 괜찮은 사람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결혼 얘기 오가면서 알고보니 이 사람 6천만원이나 빚이 있더군요.
그게 미안한지 다 갚고 나서 결혼을 하고 싶다고 얘기하던데,
결혼을 미루는 게 좋을까요?
어차피 자기 월급으로 갚아 나간다고 했으니
결혼을 지금 하나 나중에 하나 제 돈이 들어가는 건 아니잖아요.
주식해서 날렸다는데, 주식하는 남자 피하는게 좋은가요?"


이런 사연을 보내주신 분, '결혼'하고 '인터넷 쇼핑'하고 잠시 헷갈리신 모양인데, 결혼 해 보고 체험기 올리다가 단순변심으로 반품할 거 아니라면, 결혼할 수 밖에 없는 상대를 만나시길 권한다. 자신의 반 평생을 걸고 하는 일이다. 사연만 보자면, 결혼 해 보고 결혼후기 별점 줘 가며 올릴 기세다.

연애가 서로 손을 반반씩 내밀어 맞잡는 일이라면, 결혼은 손을 맞잡고 걷는 일이다. 한 쪽이 일방적으로 빨라도 안되고, 난 더 걸을 수 있지만 상대가 지쳤다면 잠시 멈춰 쉴 줄도 알아야 한다. 대화가 아닌 통보나 강요는 의사전달을 가로막고 희생만을 요구할 뿐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잠시 상대가 주저 앉았다면, 얼른 일어나라고 닥달하거나 윽박지를 것이 아니라 조용히 상대의 옆에 앉아보자. 그리고 손을 꼭 쥐며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럴 수 있기에 둘을 '연인'이라 부르는 것 아니겠는가.




▲ 허먼 밀러 의자가 좋다길래 하나 사려고 들어갔다가 깜놀.






<연관글>

이런 남자, 헤어져야 할까 이해해야 할까?
고백하기 알맞은 타이밍을 알아내는 방법
고백했다 퇴짜맞았을 때 알아두어야 할 것들
헤어진 남친, 그는 당신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고민되는 이성과의 대화, 술술 풀어가는 방법


<추천글>

회사밥을 먹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같이 지내실분, 이라는 구인광고에 낚이다
내 차를 털어간 꼬꼬마에게 보내는 글
공원에서 돈 뺏긴 동생을 위한 형의 복수
컴팩트 디카를 산 사람들이 DSLR로 가는 이유


카카오뷰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과 연관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과 연관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