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산부인과 간 그녀에게 벌어진 일들

2010/06/23 08:58 by 무한™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1998년 3월의 어느 날 밤이었다. 임신 9개월에 접어든 지도 벌써 보름이나 된 숙희씨(가명, 경기도 파주시)는 홀로 집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전광판과 관련된 일을 하는 남편은 늘 지방출장이 잦았기에, 결혼 1주년도 지나지 않은 숙희씨의 부부는 주말에나 마음놓고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여자들이 결혼한 후 집에서 많이 하게 되는 것은 요리나 청소 등이 있겠지만, 그와 더불어 많이 하게 되는 것은 상대에 대한 '포기'다. 숙희씨도 처음엔 남편에게 자주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에 대해 외롭다고 투정을 부려보고, 무섭다고 애원도 해 봤지만 이제 막 사회생활 하며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를 배워가는 남편이 해결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결국 '포기하면 편해'라는 진리를 깨닫곤 숙희씨도 자신이 그었던 기대치를 지우고 뒤로 몇 보 더 물러 선을 다시 그은 것이다.  

'아윽..'

진통이 왔다. 덜컥 겁이 난 숙희씨는 다급히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 오빠, 하... 나 배 아파. 흡...

일이 끝나고 관계자들과 술을 마시고 있던 남편도 당황했다. "그래?" 라며 다급하게 생각을 쥐어짜던 남편은 초보남편다운 해결책을 꺼냈다.

- 일단 화장실에 가서 똥 싸봐.

난 이 부분을 전해들으며 '병원으로 가라든가, 주변에 연락하라든가, 만사 제치고 달려와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지만, 숙희씨는 남편의 저 말을 듣고는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한다.

- 알았어.. 흡...

화장실에 앉아 볼일을 보기 시작한 숙희씨는 평소 변비에 시달리던 것과 달리 순조롭고 만족할만한(응?)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리곤 거짓말처럼 통증이 싹 가셨다고 한다. 일을 마친 숙희씨는 남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 오빠 나 괜찮아졌어.  

- 그래? 다행이다. 무리하지 말고 쉬어. 나 내일 일찍 올라갈게.

통화를 마치고 다시 TV에 집중하던 숙희씨에게, 드라마가 끝날 때 쯤 통증이 또 찾아왔다. 남편에게 전화를 할까 하다가 좀 전에 화장실에 다녀와 괜찮아 진 것을 생각하곤 다시 화장실로 향했다. 놀랍게도 마치 데자뷰를 경험하든 아까와 비슷한 모양, 형태, 분량의 볼일을 봤고 통증이 사라졌다.

왜 뿌듯함을 느꼈는 지 모르겠지만, 숙희씨는 이 이야기를 전하며 보람찬 일을 마친 사람의 표정을 짓곤 당시의 기분을 '뿌듯했다'고 표현했다. 아무튼 변비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만족감 때문인지 숙희씨는 웃으며 잠이 들었다고 한다.

'아악...'

새벽 세 시, 통증이 다시 찾아왔다. 참을 수 없는 통증 때문에 깬 숙희씨는 이번에도 화장실로 향했다. 놀랍게도 그동안 쌓였던 숙변이 모두 나오는 지 또 볼일을 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달랐다. 볼 일은 봤지만 통증이 계속되는 것이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곧 애를 낳을 것 같다는 본능적인 느낌이 들었고, 더 전화 거는 일을 포기한 채 지갑만 들고 집 밖으로 나왔다. 얼마나 급했던 지 양말 신을 틈이 없어 슬리퍼만 신고 택시를 잡기 시작했다. 당장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던 것이다.

10분, 20분, 30분, 아무리 기다려도 택시는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차라도 얻어타려 했지만 차가 모두 사라진 듯 도로엔 찬바람만 불었고, 숙희씨는 기다리다 지쳐 걷기 시작했다. 숙희씨의 말에 따르면, 당시 4Km 정도는 걸은 것 같다고 한다. 슬리퍼를 신고 걷다 보니 발가락이 얼 것 같았고,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듯 했다. 택시 정류장 부근 편의점에 도착했을 때, 아이가 나올 것 같은 고통보다 춥고 배고프고 다리가 아픈 고통이 더 컸다.

너무 추웠기에 숙희씨는 통증이고 병원이고, 일단 몸부터 녹이려고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엄마 품처럼 숙희씨를 감싸는 편의점의 온기에 숙희씨는 편의점 알바를 껴안고 울 뻔 했다. 얼었던 몸이 녹자 가장 먼저 배고픔이 찾아왔다. 볼 일을 세 번이나 본 데다 엄청난 거리를 걸어온 까닭에 손이 떨릴 정도로 배고팠다. 같은 편의점에 있던 택시기사 몇 분이 전자렌지 근처에 서서 '미니족발'을 먹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숙희씨는 미니족발을 두 개나 샀고, 계산을 마친 뒤 전자렌지에 막 데우려고 하는 순간,

'아아악-'

잊고 있던 통증이었다. 이번엔 서 있기 힘들 정도로 강했다. 택시기사와 편의점 알바가 놀라서 달려왔고, 다급히 숙희씨를 택시에 태워 병원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도 숙희씨의 손에는 미니족발이 들려있었다.
 
병원에 도착해 간호사 손에 이끌려 갈 때에도 숙희씨는 미니족발을 놓지 않았다. 분만을 위해 간호사가 숙희씨가 들고 있는 미니족발을 뺏으려 할 때에도 숙희씨는 미니족발을 꽉 쥐고 놓지 않았다. 간호사 둘이 달려들었다.

"산모님, 놓으세요. 지금 들어가셔야 돼요."

어쩔 수 없이 숙희씨는 미니족발을 놓았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딸을 낳았다.

아침이 되자 남편이 병원에 도착했다. 병실 문을 연 남편을 본 숙희씨는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곤 숙희씨를 꼭 안아주는 남편에게 말했다.

- 오빠...

- 응?

- 나 족발..

- 뭐?

- 나 미니족발 먹고 싶어.

의아해 하는 남편에게 숙희씨는 미니족발이 먹고 싶다는 말만 계속 했을 뿐, 병원까지 오며 일어났던 일을 말하진 않았다. 잠시 후 남편이 사가지고 온 미니족발을 먹으며 숙희씨는 한참동안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병원에는 분만하기 직전까지 미니족발을 놓지 않았고, 분만 후 미역국을 먹기도 전에 울며 미니족발을 먹은 산모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남게 되었다.

스티커 모으기가 취미이며, 달리기 하는 게임의 캐쉬충전 해 주는 것을 제일 좋아하는 꼬마. 곧 중학생이 되는 그 꼬마는 우리집에 종종 놀러오는데, 학교 운동회를 하면 늘 계주 대표로 나갈 정도로 잘 달리고 피자나 치킨보다 족발을 더 좋아한다. 뱃속에서 다 듣고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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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새나라의어른이

    16강 진출과 함께 유쾌하고 슬픈(?)

    전설의 레전드(?) 숙희씨의 출산기 잘 봤습니다 ㅋㅋ

    (친구중에 숙희가 있어서 볼때마다 '헉'합니다 ㅋㅋ)

  3. 선플~
    --------
    미니족발에서 빵터짐~
    ㅋㅋㅋ

  4. 1244

    ㅋㅋㅋ
    숙희씨 너무 멋있다~ ㅋㅋㅋ

  5. 울컥했네요

    글 읽으면서 눈물이 줄줄 흘렀습니다
    미니족발을 손에서 놓지않고 출산후 남편에게 족발을 말하는 숙희씨의
    심정을 남자들은 모를겁니다.
    정말 불쌍하네요
    혼자 그 고생하며 애 낳으러가는것도 서러울 일인데..

    남편분 숙희씨에게 참 잘하셔야 합니다
    또 숙희씨도 그런 성격이니까 그런 생활을 견디고 사실수 있는거라
    생각도 드네요
    저라면 절대 못합니다
    제 남편도 월드컵 시즌 야구시즌이면 얼굴보기 힘들어집니다만
    참 포기도 안돼고 죽겠더라구요
    전 미리 애 날땐 옆에 있어야한다고 말했고 다행히 애들이
    남편 한가할때 나와줘서 같이 다녔지만 혼자 간다 생각하면
    정말 치떨리게 싫을거같네요
    오지도 않고 똥싸라는 말 하는 신랑에게 화를 냈을텐데..
    참 대단하신 숙희씹니다 자녀들 잘 키우겠네요

  6. 신현국



    -----------------------------
    제가 그토록 먹고 싶어 하는,
    저만의 미니족발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만 하는 시간이 와버렸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7. 꽃보다세일

    대한민국 16강진출 화이팅~~!! ^^ 토요일 경기가 마지막일 듯 하지만~~ㅋ

  8. NABI

    진통을 느끼는 와중에 미니족발의 유혹이 더컸네요..ㅎㅎ
    아기를 낳으러 들어가는 와중에도 족발을 놓지 않았다던
    그 집념~~!!! 낳는중에도 계속 생각나지 않았을까요??
    어여 낳고 빨리 족발 먹어야지...뭐 이런거???ㅎㅎ
    무한님 글보고 족발 먹고 싶어졌어요..

  9. 지우아빠

    재밋게봤어요~우리 딸 태어났을때가 생각나는군요~
    대한민국화이팅~!!

  10. agathachristie

    일하다가 글 읽고는 오전부터 쌓였던 스트레스가 풀렸어요. 감사합니다^^

  11. soo

    ㅇ ㅏ........눈물납니다. 미니족발..ㅠ.ㅠ 흑흑...

  12. 외계인누나

    미니족발+_+

  13. 금성에서온여자

    뚱'S의 Go칼로리가 생각나요.
    미니족발 맛있다 맛있다~ ㅋ

  14. 이거 재밌당.. 근데 좀 안습..

  15. 아마그럴껄

    아... 조카분이신가요...?

    그럼 혹시 범상치 않은 대답을 한 남편분이

    무한님의 형?


    암튼 산모님과 아이가 모두 무사해서 다행이네요... ㅠ_ㅠ

  16. 하하하

    아 너무 웃기고 순수하신분들같아욬ㅋㅋㅋㅋㅋㅋ 계속 웃다가 마지막에 울며 미니족발 드셨단 부분이 왜 짠하게 다가오며 코끝이 찡해지나 모르겠네요 아직 시집도 안간 처년데 말이죠 ㅎㅎ

  17. 네이버

    완젼 대박 ㅋㅋㅋㅋㅋ
    웃겨요 ㅋㅋㅋㅋㅋ

  18. Clammer

    ㅋㅋ 아닛 즐겨보는 부분은 연애부분인데 자주 보는 곳에선 눈팅만 했으면서 일상이야기에 댓글남기네요 ㅋㅋㅋㅋ
    딸 낳기전 이야기까지 너무 불쌍해서 왠지 벅차올랐는데 끝까지 보고
    웃었어요 ㅎ

  19. 숙희

    전엔 멸치닮았다 그러시더니....ㅠ.ㅠ
    왜 맨날 제가 나오는거죠? ㅋ

    무한님,,,혹시..절 아시나요? ㅎㅎ

  20. betty

    전 에필로그가 화장실 변기에 낳는 건 줄 알았어요.
    극적인 반전 ...ㅎㅎㅎ

  21. Tnr

    ㅋㅋㅋㅋ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16강 진출하고 너무 좋아서 술을 과하게 마셨습니다.
    머리가 아프네요 ㅎㅎㅎ

  22. 거북이 등짝

    저도 자꾸 화장실로 가길레 애를 화장실에서 낳는줄 알고 똥줄 탔어요ㅋㅋ
    진짜 서러웠을거 같은데.. 혼자서 사킬로를...
    저희 엄마도 혼자서 낳으셨거든요
    아빠가 회사에 가있어서 일찍 끝내고 왔는데 다 낳고 왔다구 하더라구요ㅋㅋ
    같이 옆에 않있어준건 나중에 두고두고 생각날듯해요
    저희 엄마도 자주 얘기하시거든요ㅎㅎ
    애낳는 고통이 제일 크다는데..ㅜㅜ
    배고프고 힘없어서 어떻게 낳으셨을려나..손까지 떠셨는데
    근데 화장실가란다고 마음에 평화가 오셨다는 숙희씨가 참 웃기고 귀여우시네요ㅋㅋ
    족발이 얼마나 먹고 싶으셨으면 그렇게 꼭 손에 쥐고 계시고 울기까지 하셨을까ㅜㅜㅜㅜ

  23. 폴로로

    오랜만에 업데이트네요~ :)
    표현이 넘 ㅋㅋ 웃기다고 해야하나;
    당시 상황이 전달되는거 같아요 ㅋㅋㅋㅋ
    감정이입해서 봤다는, ㅋㅋㅋㅋㅋ

  24. 마눌아 미안

    저도 12년전 주말부부때 아들을 마눌혼자서 병원가서 낳아는대
    지금도 가끔 그이야기하면 쥐구멍으로 들어갑니다..
    애 낳는것도 힘든대 그걸 혼자서 ..ㅠㅠ
    남자들이여 각성하라..

  25. 처음처럼

    아내는 참 외롭고 힘든싸움을 하셨군요
    이래저래 ㅋㅋ
    역시 엄마는 강한가봅니다!!

  26. 레몬향기

    전 이 얘기가 왜 이렇게 슬프죠?
    바쁜 남자..무심한 남자..
    너무 싫어요...^^;

  27. 뭔가 슬프네요,,

    근데 미니족발 맛있나,,?

  28. 미니족발을 향한 사랑은 대를 이어 지속되는군요... ㅎㅎㅎㅎㅎ
    전 대변으로 마지막에 빵터질줄 알았는데 미니족발의 반전이 있군요...! ㅎㅎㅎ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29. 채리

    입가에 계속 웃음이..^^

  30. 비밀댓글입니다

  31. 미니족발...

    푸하핫.........

    미니족발............ㅋㅋㅋ

    긍정적인 어머니시네요...... 미니족발......ㅋㅋ

  32. 빛과소금

    푸헐 ㅋㅋㅋ

    한편의 소설을 보는듯한 ㅋ

  33. ㅋㅋ

    월드컵이다 뭐다
    바빴는데 노멀로그는 계속되고 있었군요ㅋ
    미니족발,,,
    먹고 시파요~ㅋ

  34. 꽃보다세일

    축구도 끝나고.. 이제 무슨 낙으로 살아야할지...
    내일 출근해야 하는 이 무거운 마음.. 흠.....

  35. 젤리한접시

    아~배꼽이야 실컷 웃었습니다

    참 힘들고 외로웠을 숙희씨의 출산여정이 님으로 하여금

    유쾌하게 다시 태어난것 같군요

    오늘은 저녁엔 편의점이나 갔다와야 겠어요.

  36. 토인

    최고에요 끄흐으으윽 ㅠㅠㅠ 그래도 그 당시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정말 대단해요~~~~

  37. 안녕하세요~ 맨날 눈팅만 하다가 글이 너무 좋아서 남겨요~
    항상 그렇지만 잘 읽고 갑니다...
    이거 트랙백 할게요 ^^

  38. 티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진짜 이거 보고 배꼽잡았어요!! 참, 숙희씨 아들/딸 은 이담에 복받을꺼에요 ㅎㅎ

  39. 보고 배꼽잡았어요!! 참, 숙희씨 아들/딸 은 이담에 복받을꺼에요 ㅎㅎ

  40. 보고 배꼽잡았어요!! 참, 숙희씨 아들/딸 은 이담에 복받을꺼에요 ㅎㅎ

  41. 서로로 인해 하루하루가 행복한 그런사람 없을까요?

  42. 최고에요 끄흐으으윽 ㅠㅠㅠ 그래도 그 당시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정말 대단해요~~~~

  43. 아내는 참 외롭고 힘든싸움을 하셨군요

  44. 오리둥둥

    움...전 이거 굉장히 마음아프다고 생각했는데
    다른분들..재밌는얘기였던건가요ㅠㅠ?
    저혼자 개그를 다큐로 받아들인건가요ㅠㅠ?

  45. 유용한 지식을 공유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것은 아주 좋은 기사입니다.

  46. 저는 유대인 음식만 먹습니다.

  47. 대변으로 마지막에 빵터질줄 알았는데 미니족발의 반전이 있군요...! ㅎㅎㅎ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48. 회사에 가있어서 일찍 끝내고 왔는데 다 낳고 왔다구 하더라구요 같이 옆에 않있어준건 나중에 두고두고 생각날듯해요

  49. 고 배꼽잡았어요!! 참, 숙희씨 아들/딸 은 이담에 복받을꺼에요

  50. 해병대에 있는 현빈을 이렇게라도 만나보면 조금 위안이 될 것 같죠?ㅎㅎ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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