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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2)

부담스러운 남자에게 꼭 알려줘야 할 것

by 무한 2010. 6. 25.
노멀로그 독자인 숙희씨(31세, 번역프리랜서)는 얼마 전 소개팅을 했다. 상대의 첫인상은 좋았다. 그간 소개팅에 나온 남자들은 숙희씨 자신의 나이를 다시 돌아볼 시간을 마련해 주는 '아버님'같은 분들이었는데, 이 남자는 '아저씨'정도로 보였다. 주문을 받으러 온 종업원이 고기를 어떻게 익혀드리냐고 물을 때 "최선을 다해주세요."라는 개그를 한 것도 센스있게 느껴졌다. 

숙희씨가 살짝 실망한 건, 식사 후 그 남자가 계산을 마치고 받은 카드 명세표를 반으로 접더니, 앞니에 박힌 고기를 빼내는 모습을 봤을 때였다. 남자는 그걸 손으로 동글동글 말더니 휙, 길가로 퉁겨냈다. 뭐, 숙희씨도 면봉으로 자기 배꼽을 파서 냄새 맡는 일을 할 때가 있으니 그러려니 했다.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생각하려 애썼던 것이다. 

그러나 숙희씨는, 커피숍에 가서 그 남자의 유년기 이야기 1시간, 짝사랑했던 어느 여자 얘기 1시간 반, 아는 친구얘기 30분, 이렇게 3시간동안 살아온 얘기 및 훈화말씀을 들은 뒤, 인연의 끈을 놓기로 했다. 남자의 얘기를 듣는 동안 받은 질문이라고는, "제 얘기가 재미 없어요?"가 전부였다. 숙희씨는 그 남자와 헤어져 집에 온 뒤, 예의상 저장해 둔 그 사람의 핸드폰 번호를 지웠다. 그러나 그 날부터 그 남자의 이모티콘 문자가 수도 없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  zZZ
 [(_ _)]  이뿌게
==U===U== 잘자구
♡:::::♡
ㅇlㅃㅓ져요숙희씨

이런 문자를 받으며 숙희씨는 소름이 돋았지만, 소개 해 준 막내이모를 생각해서 답장을 보내줬다. 그러나, 자신의 이모티콘에 숙희씨가 반응하자 그 남자는 말까지 놓아가며 마치 남편이 된 것처럼 굴기 시작했다. 친구와 술을 마시면 전화를 해서 언제 들어갈 거냐고 묻고, 자기가 데려다 준다며 찾아오기도 했다.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예사고, 새벽에 전화를 해서 보고 싶다는 둥의 이야기를 꺼냈다. 숙희씨는 거절의 뜻을 몇 번 내비췄지만 그 남자는 'NO'를 'YES'로 해석했다. 결국, 그 남자가 형사처벌 받아도 이상할 것 없을 정도로 과한 들이댐을 보였을 때, 숙희씨는 "당신에게 정말 관심 없고, 만나고 싶지도 않고, 연락하고 싶지도 않다는 데 왜 이러냐."라는 말을 했고, 그 남자는 이런 문자를 보냈다.

♣너에게상처를주
었다면 미안~이거
네아픈마음에
포근히부쳐줄게♥
☞(::::□::::)☜


이쯤에서 이야기를 마무리 지은 채 글을 올리면 이런 댓글이 달릴 것이다.

"남자 레알 돋네요. 이입해서 보다가 제가 소름끼쳤음.."
"작년에 소개팅 한 남자가 딱 저랬죠.. 제 친구한테까지 전화하고.."
"무한바보"
"잘 봤습니다. 근데 저 나이면 소개팅이 아니라 선 아닌가요?"
"이상한 남자 얘기해서 여자편만 드는 건가요? 남자편도 들어주세요."
"아 진짜 남자들 소개팅에서 자기자랑 좀 안했으면 좋겠어요."
"[비밀댓글]저.. 뜬금없지만.. 탈모방지 샴푸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앜ㅋㅋㅋ 나도 내머리 깎아야 되는뎈ㅋㅋㅋ"
"'응?' <- 이것 좀 안쓰면 안 되요? 초딩 같아요."


달을 가리키는데 내 겨드랑이털을 보는 사람들이 있어서 깜짝깜짝 놀라지만(응?), 아무튼, 저런 상황이라면 대부분의 노멀로그 배심원 여러분은 남자쪽에 '유죄'를 선고할 것이다. 뭐, 사연의 남자분이 그동안 매뉴얼을 통해 남자대원들에게 하지 말라고 한 부분들을 죄다 해가며 '비호감종합선물세트'를 숙희씨에게 넘긴 것은 맞다. 그렇다면, 저런 남자는 무조건 피하고, 소름 끼칠 일 없이 싹부터 잘라야 할까?


1. 그 남자는 왜 그럴까?


물어 볼 것도 없이, 솔로부대 고위 간부라서 그렇다. 저런 헛발질을 해 놓고도 스스로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른다. 그러니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 "여자는 돈 많은 남자만 좋아한다."라거나 "내가 장동건처럼 생겼다면 그러지 않았겠지."같은 얘기만 한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나이는 계속 공짜로 먹어가는 데, 누가 알려준 적이 없으니 다른 사람을 만나도 똑같은 헛발질만 반복 하는 것이다. 사람만 바뀐 채 계속 같은 결과가 나와도 "이런 여자들 말고, 진짜 괜찮은 여자를 만나고 싶다."따위의 말만 늘어 놓는다. 그리곤 친분이 있는 사람이 생기면, "주변에 괜찮은 사람 없어요?"라며 '뉴페이스'를 찾는다. 친구들은 결혼해서 큰 애가 벌써 학교 들어간다고 하니, 인터넷 어느 커뮤니티에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글을 남기고 말이다.

내 주변에도 곧 불혹을 바라보시는 '솔로부대 고위 간부급' 대원이 한 분 있다. 착실히 일을 하며 재산도 많이 모아 두었고, 사회에 대한 지식도 많아 누가 무슨 일을 당했다고 하면 적절한 솔루션을 내 주신다. 대인관계도 좋아서 주변 사람들이 서로 이어주겠다고 난리다. 그런데 딱 하나, 여자를 만나면 상상도 못한 모습으로 바뀌는 단점이 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하며 판단력을 상실한다.

그 분이 피아노 교사인 상대 여자 분과 소개팅을 한 다음 날, 나를 만난 적이 있다. 맥주에 치킨을 먹으며 같이 얘기를 나누는데, 핸드폰을 보며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방금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이 안 온다는 거였다. 뭐라고 보냈는 지 궁금해서 보여달라고 했더니 좀 전에 보낸문자를 보여줬다.

우리어제봤는데진
숙씨가또보고싶네
요지금뭐해요? 우
리언제볼까요? 내
일어때요?


현실에서의 연애는 오랜 기간 '만나는 사람 없음'으로 놓고, 늘 빠르고 쉬운 '채팅연애'만 해 온 부작용 이었다. 현실에서 벌인 헛발질들이 그를 사이버세계로 찾아 들어가게 했고, 거기선 하룻 밤만 같이 채팅을 해도 다음 날 "보고 싶어요."라는 문자가 이상할 게 없으니, '채팅형인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현실에서 소개팅 한 다음 날 저런 문자를 보내면, 이쪽에 완전히 빠졌거나 연애결핍을 앓고 있는 상대가 아닌 이상 당연히 부담부터 느끼게 된다.

정말 괜찮은 사람인데,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몰라 굴러온 복들을 패널티킥 하고 있는 거다. 저런 상황인 지 모르고 그 분의 결혼한 친구들은 "여자는 선물에 약해."라거나 "근사한 곳에 데려가봐." 또는 "술 먹여." 같은 얘기만 하니, 그냥 두면 환갑잔치를 할 때 까지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2. 전력질주 하지 않게 가르쳐 주자


연애라는 오래달리기에 '만남'이라는 신호만 울리면 정신줄 놓고 전력질주하는 것을 막자는 거다. 어떤 말이 여자에게 실례가 되는 말인지, 그 행동은 왜 하면 안 되는 지 가르쳐 주자. 누굴 가르치고 말 것 없이 '다 알고 괜찮은' 남자와 연애만 하고 싶겠지만, 오래 달리기 하는 법을 몰라 전력질주 하는 쪽이 '방법'만 알려주면 지치지 않고 달릴 수도 있으니 알려주자.

꼭 부담되는 남자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서로 살아온 방식이 다르기에 좋아하는 마음 가지고 있으면서도 엇갈리는 사람들이나, 남자친구가 혹은 여자친구가 답답하다며 사연을 보내오는 사람들, 아주 기본적인 부분을 상대가 모르더라도 "이 사람은 이것도 몰라요."라며 가슴치지 말고, 차근차근 알려주자.

매뉴얼을 통해 연애의 '오래달리기 하는 방법'을 발행하고 있지만, 사람은 자기 모습을 보기 어려운 법이다. 자기 얘길 하고 있는데도 "헛발질 하는 거 봐 ㅋㅋㅋ" 이런 이야기나 하며 '뭘 입으면 될까'라거나 '어딜 데려가면 될까' 같은 것만 찾는다. 그리곤 남들이 고백에 성공했다는 스킬을 찾으며 그걸 따라하려 애만 쓸 뿐이다. 위에서 말한 불혹에 가까운 그 분도 여자들에게 선물한 명품 백만 여섯 개다. 일등 참치가 되려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어장에 들어가 힘차게 헤엄치고 있다는 얘기다. 친구가 "여자는 선물에 약해."라고 하니 그걸 '무림비급'으로 알곤 따라하다 주화입마에 든 것 아닌가.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매뉴얼 발행을 많이 망설였다. 위에서 말한 것들을 가르쳐 줘서 알면 좋겠지만 직접 그 행동 때문에 아파본 적 없는 사람은 아무리 말해줘도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청소년기에 "공부가 인생의 전부인가요? 난 자유로운 영혼이에요." 라며 공부를 거부하곤, 사회생활을 할 나이가 되면 "아... 공부 좀 할 걸...." 이라고 뒤늦게 느끼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매뉴얼에 등장한 불혹에 가까운 그 분의 경우, 나중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지. 뭐 다 따져 가면서 하냐." 라며 오래달리기 하는 방법을 '잔소리'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여전히 솔로부대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매뉴얼을 발행하는 이유는, 상대의 지금 모습만 가지고 괜찮은 사람, 별로인 사람 이렇게 단정짓진 말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이나 나나 누군가에게 말하기도 부끄러운 크고 아름다운 헛발질을 한 경험이 한 두번씩은 있는 것 아닌가. "잘 키운 바보온달 열 왕자 안 부럽다." 이런 얘기가 아니라, 코드가 빠진 줄도 모르고 "이번에 사온 스피커도 소리가 안나요. 이번 스피커도 고장인가 봐요." 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애꿎은 스피커를 손으로 치지만 말고 코드부터 꽂으라는 걸 가르쳐 주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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