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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2)

먼저 다가와 놓곤 연락 없는 남자, 왜 그럴까? 1부

by 무한 2010. 10. 7.
그러니까,

정말 예쁘세요.
이렇게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그럼 우리 또 언제 만날까요?
전 어때요?
집까지 데려다 드리고 싶어요.
불편하시면 지하철 타시는 것까지만 확인할게요.
저녁에 전화해도 되죠?



이렇게 당장이라도 청혼할 기세로 들이대던 상대가, 다음날이 되자 잠수함을 타고 저 멀리 나가버린 까닭에 "무한님, 제가 무슨 실수 한 걸까요?"라거나 "먼저 다가와 놓곤 왜 연락을 안 할까요?"라고 묻는 대원들이 많다.

그 대원들을 위해 오늘은 '먼저 다가와 놓곤 연락없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한다. 단, 위의 상황이 즉석만남이나 헌팅, 채팅을 통해 발생한 경우는 이번 매뉴얼에서 제외하도록 하자. 직거래보다 택배거래의 '사기 발생률'이 높은 것처럼, 다른 경우에 비해 즉석만남, 헌팅, 채팅 등은 단순히 욕구의 충족이나 해소의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다.

"전 정말 상황이 달라요. 그냥 부킹 가서 몇 마디 한 게 아니고, 진짜 서로 비슷한 점이 많아서 그 사람도 인연인 것 같다고 말했고, 제가 집에 간다고 했을 때도 그 사람이 쫓아 나와서는 택시까지 태워 보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흔한 부킹의 경우와는 다르게 생각해 주세요. 아무튼, 왜 연락이 없을까요?"


택배거래를 하다 사기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는가?

"와, 난 진짜 믿었는데, 이색히 진짜 이럴 줄 몰랐네요. 혹시나 해서 반만 입금하고 물건 받으면 나머지 반 입금해 주겠다고 했더니, 급하게 돈 쓸 곳이 있어서 파는 거고 믿음 없는 거래 안 한다고, 사겠다는 사람 많으니 못 미더우면 다른 사람하고 거래 하라고, 그렇게 이야기해서 선입금 한 건데, 집에 와서 박스를 뜯어보니까 벽돌이 들어있네요. 벽돌을 40만원 주고 샀네요. 아, 잠깐 눈물 좀 닦고요."


다들 그 사람은 정말 다르다고 얘기하지만, 부킹의 기본은 공감대 형성, 칭찬, 적절한 리액션 아닌가. 키가 작으면 아담하다고 말하고, 키가 크면 모델 해도 될 것 같다고 말하고, 손이 통통하면 귀엽다고 말한단 얘기다. 어느 바보가 "손이 꼭 돼지 족발 같네? 장충동 살아?"라는 이야기를 하겠는가. 족발 지못미.

족발은 족발이고, '먼저 다가와 놓곤 연락 없는 남자'에 대한 심층탐구, 시작해 보자.


1. 실망할 거리를 기막히게 찾아내는, 소심남


혹시 상대가 잠수를 타기 전, 화장실에서 볼일을 다 마치지 않았는데 바지를 올리는 듯한 뉘앙스의 문자를 보낸 적 없는가? 예를 들면, "응. 그래. 푹 쉬고 주말 잘 보내.^^"라는 문자를 금요일 저녁에 보내지 않았냐는 얘기다.

만약 상대가 소심남이라면, 저 멘트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곧 주말인데도 만나자는 얘기를 하지 않는 걸 보니, 넌 나에게 마음이 없나 보구나. 내가 또 만나자고 하면 너에게 너무 내 마음을 들키는 것 같으니 쿨하게 주말 잘 지내란 얘길 해줘야겠지. 너도 나에게 주말 잘 보내라고 얘기하지만, 난 집에서 사타구니 긁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는 걸. 너에게 내가 필요하다면 좋을 텐데. 토요일에 약속이 있으면 일요일에 보잔 얘길 하거나, 일요일에 약속이 있으면 토요일에 보잔 얘길 할 텐데 넌 내가 주말에 뭘 하는지 묻지도 않는구나. 그냥 "주말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내는데? 나 알려줘."라고만 보내도 지금 너에게 날아갈 텐데...'


200%로 확대해석하자면 대략 위의 마음상태란 얘기다. 쉽게 말해, 자신의 마음을 담은 러브레터를 쓴 뒤 다시 읽어보며 틀린 글자나 어색한 곳이 없나 확인하고, 이상 없음을 확인한 후 편지봉투에 넣어 우표를 붙인 뒤 우체국 정문까지 가지고 갔다가 그냥 돌아 나오는 것이다. 우편물 보낼 곳에 놓고 오기만 하면 되는데, 러브레터를 받은 상대가 좋지 않은 반응을 보일까봐 겁이 나기도 하고, 혼자 이렇게 애태우는 것 보다는 상대도 같이 반응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며,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비련의 주인공역할이라는 이상한 의무감을 갖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여기서 멈추고 다시 정상궤도로 진입하면 다행일 텐데, 소심남은 동굴에서 고개를 내민 뒤 다시 한 번 확인하고자 하는 물음을 던진다.

소심남 - 오늘 만날 수 있을까?
궁금녀 - 오늘은 나 선약 있는데, 미리 좀 말해주지.
소심남 - 그거 취소하고 나랑 영화보면 안돼?
궁금녀 - 미안. 중요한 약속이라... 주말이든 평일이든 미리 약속하고 만나자.
소심남 - 응... 알았어.. 내가 다시 연락할게...



이런 대화 후 동굴로 들어간 소심남은 '난 우선순위에 끼지 못하는구나...'라거나 '나에게 마음이 있었다면 약속을 취소하고 나왔겠지...'따위의 생각으로 실망할 거리들을 주워든다. 그리곤 자신에게 '난 상처받았어.'라는 최면을 걸고, 상대를 손닿지 않는 밤하늘의 별처럼 생각하기 시작한다.

혼자 예상하고 혼자 결과를 낸 뒤 혼자 실망하며 접어야지, 잊어야지, 포기해야지 라며 동굴로 들어가는 소심남에게는 힌트를 좀 더 주길 권한다. 맞추나 못 맞추나 뒷짐지고 지켜볼게 아니라, 자존심 잠시 접고 상대가 잘 풀 수 있도록 일단 도와주자.


2. 사귀기 전 둘 사이의 긴장감만 즐기는, 스릴남


회사에 비유하자면, 입사를 위해 제출한 서류가 통과되고 면접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내 최종 합격통보가 내려오자. "그 회사를 다니고 싶은 건 아니고, 내가 그 회사에 취직할 수 있나가 궁금했던 거임."이라는 얘길 하는 경우다. 
 
어처구니없고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솔로부대원 커플부대원 할 것 없이 이 '스릴남'에게 당한 대원들의 수가 전국에 있는 약국 숫자보다 많다. 달리표현하자면 '어장관리'라고도 할 수 있는 이 행위는, 통장에 잔고가 얼마 없을 때에는 간절하게 사고 싶어 했던 물건에, 월급이 들어오자 눈길조차 안 주게 되는 현상과 비슷하다.

지난 달 까지 커플부대원이었던 허숙희양(29세, 회사원)은 남자친구와 갈등이 생길 때 마다 알고 지내던 남자사람 김창식씨(31세, 자영업)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 과정에서 김창식씨는 허숙희양에게 해주는 조언마다 사심을 듬뿍 담아 구애의 뉘앙스를 풍겼다.

"왜 그런 문제로 널 힘들게 하는지 난 이해가 안 되네. 내가 네 옆에 있었다면 절대 그런 문제로 다투진 않을 텐데..."
"남자친구는 풀렸고? 넌 괜찮아? 내가 우리 숙희 힘들게 하지 말라고 한 번 혼내줄까?"
"보고 싶은 영화 있어? 보고 싶은 영화 생기면 말해. 나랑 같이 보자는 건 아니고, 내가 공짜로 영화 볼 수 있는 쿠폰이 좀 있거든. 두 장 예매해 줄게 남자친구랑 같이 봐. 난 어차피 혼자가야해서 영화 볼 일이 없거든."



호빵 찌는 냄새가 솔솔 나지 않는가? 커플부대원인 숙희양의 애정전선에 문제가 생겨 찬바람이 불어왔고, 그 틈새를 노린 창식씨가 호빵처럼 파고들었다. 이런 호빵. 아무튼, 언젠가 그가 널 맘 아프게 해 혼자 울고 있는 널 봤어, 정도의 느낌으로 창식씨는 계속 두드렸고, 숙희양은 열렸다. 아 진짜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숙희양의 남자친구는 숙희양의 갑작스러운 이별통보에 미니홈피 배경음악을 <꺼져줄게 잘 살아>로 바꿨고, 숙희양은 창식씨의 정식 프로포즈를 기다리며 콧노래를 불렀다. 숙희양은 그간 창식씨가 보여준 따뜻함과 배려, 그리고 자신을 생각해주던 것들을 이제 아무 죄책감 없이 편하게 누릴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계속 기쁘기만 했을까?

창식씨는 숙희양이 "나 헤어졌어.(라고 쓰고 '얼른 나 잡아, 이 좌식아.'라고 읽는다)"라는 이야기를 한 순간, 노란 잠수함을 타고 떠나버렸다. 숙희양은 '뭥미?'라며 계속 창식씨에게 연락을 했지만, 창식씨의 핸드폰은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음성사서함으로 넘긴다는 말만 반복했다. 메신저로 쪽지를 보내고, 메일을 보냈지만 아무런 답이 없었다.

숙희양 - 무한님, 도대체 왜 제 연락을 안 받을까요? 지금 제 상황은 어떻게 된거죠?
무한 - 낚인겁니다.
숙희양 - 네?
무한 - 혹시 창식씨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수도 있으니, 일주일 정도 기다려 보시고, 그래도 연락이 없으면 바다로 돌아가세요.
숙희양 - 바다요?
무한 - 전 구몬이 밀려서 이만.



며칠 지나 창식씨에게서 메일이 한 통 왔다. 자기는 좋은 사람이 아니니 자길 좋아하면 안 된다는 얘기와 사귀면 잘 해주지 못 할 것 같다는 얘기, 그리고 진심으로 남자친구와 잘 되도록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었다는 얘기가 담겨있었다. 좋은 떡밥이다. 한국에 이 상황을 요약해주는 속담이 있는 것 같던데 "남 주긴 싫고 찔러나 본다."였나,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감 뭐 어쩌구도 나왔던 속담 같다. 

스탠퍼드 공고 출신의 더글라스 진(30세, 한국이름 진덕규)씨가 이와 관련된 보인의 고백을 사연으로 보낸 적이 있다. 점점 길어지는 그녀와의 전화통화, 보고 싶은 마음에 잠시 나와 달라고 하면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집 근처 놀이터로 나오는 그녀가 사랑스러웠지만, 불분명하게 지내는 사이 말고 확실한 관계를 원한다는 그녀의 말에 갑자기 모든 열정이 식으며 정이 뚝, 떨어지고 그녀가 하찮게 느껴졌다는 사연이었다.

위에 나온 숙희양의 이야기에서 숙희양이 커플부대원이었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솔로부대원에게도 비슷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이러한 상황을 겪고 있는 대원들이 있다면 "확실한 대답을 들어야겠어요."라거나 "그 감정들 거짓이 아니었다니까요."라는 이야기를 하기보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온 기분으로 자신의 생활에 집중하길 권한다. 복수나 추궁을 하지 않아도 주말은 또 오니 말이다. 상대를 지나간 주말이라 생각하며 툭툭 털어내자.


앞으로 더 이어질 이 매뉴얼은 '사람유형'이라기보다는 '상황유형'에 대한 이야기다. 편의상 무슨남 무슨남 하는 식의 소제목을 달았지만, 담는 컵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우유처럼, 사람도 상황에 따라 어제의 초식남이 오늘의 마초가 될 수 있으므로 '유형'에 관한 이야기로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다.

연락 없는 남자로 인해 핸드폰을 만지작 거려본 경험이 있는 대원들normalog@naver.com 으로 사연을 보내주시기 바라며, 보내주신 사연 중 몇몇 사연은 철저한 각색을 거쳐 다음 매뉴얼이나 다다음 매뉴얼로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하겠다.

자, 그럼 블링블링한 후라이데이를 하루 앞둔 오늘, 반쯤 감고 있던 눈 뜨고, 방심에 맡겨둔 표정에 슬슬 미소를 불러오길 바라며,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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