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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과여행/물고기가좋다

플로리다 허머(애완가재) 집에서 키우기

by 무한 2011. 1. 13.
어항을 하나 더 마련했다. 그리고 알루미늄 프로파일을 주문해 30큐브 어항이 4개 들어가는 축양장(이라기보다는 어항받침)도 만들었다.

"헉, 그렇게 해도 집에서 뭐라고 하는 사람 없나요?"


라고 묻는 분들이 있다면,

"어머니나 아내가 모르게 일단 저지르는 것이 키포인트 입니다."

라는 답변을 드리겠다. 혹시 간디(애완견)를 우리 집에 데리고 온 날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가? 어머니께서 잠드신 저녁 열두 시, 난 슬그머니 옷을 챙겨 입고 나가 친구네 맡겨 둔 강아지를 데리고 집에 들어왔다. 간디가 우다다닥 거리는 바람에 어머니께서 깨,

"어머, 어머, 저게 뭐야?"

라고 도둑이라도 든 듯 소리치셨지만, 난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는 미란다 원칙을 속으로 암송하며,

"그러니까, 일이,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어머니께서는 간디를 도로 데려다 주지 않으면 당장 나와 간디를 갖다 버리겠다고 하셨지만, 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란 걸 열두 살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이번에도 언제나처럼,

"어머, 어머, 이 어항은 또 뭐야?"

라고 묻는 어머니께,

"그러니까, 일이,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라고 얘길 했고, 난 여전히 즐거운 나의 집에 잘 생존해 있다. 유정란을 부화시켜 병아리로 만들겠다며 24시간 전구를 켜 둔 까닭에 누진세가 붙어 전월 전기요금의 두 배 가까운 액수가 나왔을 땐 정말 쫓겨날 뻔 했지만, 다행히 며칠 후 상금을 좀 받을 일이 있었기에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여기까진 그냥 웃자고 한 소리고, 내 유아적 호기심마저도 든든하게 지원해주는 어머니와 여자친구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리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비어있는 축양장 아래 칸에 새로운 어항을 좀.(응?) 각설하고, 새로 맞이한 플로리다 허머(애완가재)를 지금 바로 만나보자.



▲ '플로리다 허머', '플로리다 블루', '일렉트릭 블루' 등으로 불리는 녀석.

그간 블로그를 통해 소개한 '오렌지 클라키''화이트 클라키'의 학명은 [Procambarus clarkii] 이고, 이번에 새로 소개하는 플로리다 허머[Procambarus Alleni]라는 학명을 가지고 있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플로리다 허머는 학명 뒤에 색상을 붙여, '프로캄바루스 알레니 블루' 또는 '알레니 블루'라고 칭하는 것이 혼동을 피할 수 있는 호칭이라 할 수 있겠다. 허나, 상처에 붙이는 일회용 밴드를 대부분 '대일밴드'라 칭하는 것처럼, 이 '알레니 블루'를 이르는 말로 '플로리다 허머' '플로리다 블루'라는 호칭이 통용되고 있다.

"우와, 파란 새우도 있네요?"

라는 댓글이 달릴까봐 무서우니 호칭 얘기는 더 깊이 들어가지 말고 이쯤에서 접어두자. 언젠가 타 커뮤니티에서 "무한인가 그 사람, 집에서 바퀴벌레 같은 것도 키우던데? 이상한 사람 아냐?" 라는 댓글을 본 이후, 타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 너무 자세히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그녀에겐, "바퀴벌레가 아니라 사슴벌레입니다." 정도의 이야기만 전해주고 싶다.



▲ 실제 크기를 보여주기 위해 컴퓨터 키보드의 Y자 키를 뜯어 어항에 넣어봤다.


치가재(새끼 가재)의 크기가 컴퓨터 키보드에 인쇄된 Y자 크기와 비슷하다는 걸 못 믿는 분이 계시길래, Y자 키를 뜯어서 넣었다. 나란 남자, 이런 남자.



▲ 바닥재로 흑사를 깔았더니, 가재와 바닥재의 구분이 쉽지 않다.

취향이야 늘 변하는 거겠지만, 물생활을 처음 시작하던 꼬꼬마 시절엔 위 사진의 바닥재인 '흑사'에 대해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당시 민물고기 도감이나 물고기 관련 사진들의 바닥재가 대부분 흑사나 자갈 이었는데, 통일성도 없고 모양도 다 제각각이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금빛 모래인 '금사'나 아이보리색의 작은 '산호사'가 어항에는 제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흑사에 마음이 가기 시작하더니, 결국 새 어항의 바닥재를 흑사로 세팅했다. 예전엔 '흑사'를 할머니들이 끼는 커다란 옥반지 보듯 '저게 뭐야!'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흑사'를 보며 못 생기고 제각각인 대로 또 정겨움을 느낀다. 오 내 어깨야.



▲ 화산석 틈새에 숨어 고개만 내밀고 있는 녀석.


치가재 다섯 마리를 분양을 받아온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데, 아직도 한 녀석의 모습이 안 보인다. 어항 밖으로 탈출해 간디(애완견)의 단백질 보충원이 되었는지, 아니면 어딘가에서 탈피 한 뒤 갑각이 굳을 때 까지 은신하고 있는 건지 확인할 길이 없다.



▲ 비트(먹이, 사진의 빨간색 물체)를 먹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는 녀석


치가재의 먹이로는 최고로 꼽히는 비트(사료)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별 반응이 없다. 후다닥 달려 나와 비트를 사이에 두고 숨 막히는 신경전을 벌여야 할 녀석들이 눈치만 슬슬 보다가 다시 숨기 마련이다. 그래서 녀석들을 유인할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 "우왁, 소고기돡!"이라며 쏜살같이 달려 나온 녀석들.(소고기 뒤에 한 마리가 더 있다.)

역시, 소고기에 대한 가재들의 반응은 뜨겁다.



▲ 아예 소고기에 올라타 식사를 즐기고 있는 한 녀석.

저렇게 소고기 위에 올라타서는 몸을 활처럼 굽혀 소고기를 문 뒤, 다시 반대로 몸을 펴는 힘으로 먹이를 뜯어 먹는 것으로 파악된다. 확실한 정보는 아니고 그냥 열심히 관찰한 결과, 집게발로 쥐고 먹을 수 없는 먹이에 대해서는 앞서 말한 행동을 계속 반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오렌지 클라키 어항에서 발견된 플로리다 허머 치가재

이 녀석이 왜 오렌지 클라키 어항에 들어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오렌지 클라키들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데 웬 부유물 같은 것이 떠다니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으아니, 저건! 플로리다 허머 치가재잖아!'

플로리다 허머 치가재 어항의 수위가 높아 오렌지 클라키 어항으로 물을 몇 컵 덜어낸 일이 있었는데, 아마 그 때 물을 옮겨 담던 컵에 무임승차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여과기 입수부를 타고 올라와 22cm정도 되는 어항 뚜껑 위를 걸어간 뒤, 1.2cm 정도 되는 어항 사이를 뛰어 넘어, 옆 어항의 여과기 출수부를 찾아가 몸을 던졌다는 얘긴데,

아무튼 몸집이 네 배 이상 큰 오렌지 클라키들 다섯 마리들과 3일간 동거 하며 잡아 먹히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 만으로도 이 녀석에게 '석호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



▲ 다른 녀석들과 달리 '푸른빛'이 아닌 '보라빛'을 띄는 한 녀석.


아직 치가재인 까닭에 '발색'에 대해 이야기 하긴 좀 그렇지만, 아무튼 다른 녀석들과 달리 유난히 보라빛이 강한 한 녀석이다. 그래서 이 녀석의 이름을 '향기'라고 지어줬다. 보라빛 향기.



▲ 어항 내에서 가장 왕성하게 돌아다니는 한 녀석.

자, 이것으로 플로리다 허머 치가재의 첫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고,



▲ 두둥! 오렌지 클라키가 탈피를 했다. 위 사진은 녀석이 벗어놓은 탈피각.

이틀 전, 오렌지 클라키들이 탈피를 시작했다. 한 녀석이 누워서 못 일어나고 버둥거리길래,

'어? 가재도 사슴벌레처럼 뒤집어지면 못 일어나고 죽는 건가? 설마?'

라는 생각을 하며 젓가락이라도 넣어 일으켜 주려 하는데, '(거짓말 조금 보태서)투두둑'하는 소리와 함께 누워 있던 녀석이 탈피각을 벗으며 몸을 꺼내고 있었다.

'앗, 사진을 찍어야지!.'

라며 사진기를 챙기고 조명을 켰는데, 녀석은 이미 그 짧은 시간에 탈피를 마치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몸을 돌 위에 착, 달라붙인 채 눈치를 보고 있는 녀석을 놔두곤 벗어놓은 탈피각 사진을 찍었다. 역시, 탈피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도 다음 오렌지 클라키 소식을 전하며 하기로 하고,



▲ 지난 글 마지막에 등장했던 화이트 클라키 암컷 '백설'이.


백설이는 현재 커플부대원이 되어 수컷과 짝짓기를 시도하고 있다. 체장이 8cm인 백설이에 비해 상대 수컷은 5.5c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연하가재(응?)'인 까닭에 둘의 관계는 백설이가 리드하고 있다.

"누나 믿지?"

라며 저 코코넛 안으로 수컷을 데리고 들어가지만, 수컷은 "왜 이래요? 무섭게."라며 자꾸 밖으러 나와 버린다. 뭐, 우리가 지켜보고 있지 않을 때에는 수컷이 먼저 "누나, 뭐해요? 자요?"라며 들이댔을 수도 있으니 조만간 백설이의 포란 소식을 전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 어항 앞에서 발라드를 부르자 백설이가 집게발을 흔들며 호응해 주고 있다.

'클라키'류는 다른 가재에 비해 까칠한 관계로 '쌍잡기(둘이 커플임을 인식시키는 것)'의 개념이 없다고 한다. 같은 은신처에 들어가 있더라도 그건 우연히 같은 곳에서 쉬는 것일뿐, 계속해서 싸움을 한다고 하는데, 백설이는 얌전하다.

누나라서(응?) 그런지 몰라도, 수컷의 반항심과 공격성을 넓디 넓은 모성애로 끌어안는 듯 보인다. 같은 은신처에 들어가 있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고, 둘 다 부절(서로의 공격에 의해 잘려진 집게발이나 더듬이 등) 없이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뭐, 이렇게 글을 올렸지만 다음 소식을 전할 땐,

"배..백설이가 지금 수컷을 두동강 내 씹어 먹고 있어요.."

라는 이야기를 하게 될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 화이트 클라키 백설이의 '알러뷰~♥' 샷.


아, 이렇게만 써 놓으면 백설이도 내가 키우는 줄 알 것 같은데, 백설이와 연하남편(응?)은 모두 공쥬님(여자친구)이 키우고 있다. 며칠 전 공쥬님 어항을 청소하며 백설이 커플의 신혼집도 하나 더 만들어 주고, 슬러지도 모두 제거했다. 지금은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물이끼도 모두 없어졌으며 구조도 좀 바뀐 상태다. 이 이야기 역시 '화이트 클라키 이야기'에서 더 자세히 이어서 하기로 하고,

일반적으로 가재의 수명은, 자연환경이 아닌 수조에서 키웠을 경우 2년을 넘기기가 힘든 것으로 알고 있다. 가재이야기에서 지금까지 등장한 녀석들은 모두 2013년이 되면 못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단 얘기다. 2013년이 되면 이 글을 읽는 그대와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그때 웃을 수 있게, 오늘 하루도 차곡차곡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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