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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과여행/강아지와고양이

공원에 애완견을 데리고 나오는 아줌마, 세력분석

by 무한 2011. 2. 24.
부분미용의 실패로 간디(애완견, 애프리푸들)의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것이 나도 안타깝다. 그깟 털 좀 이상하게 깎인 게 뭐가 문제냐고 간디를 설득하려 해 봤지만 간디는,

"나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 그냥 혼자 있을 수 있게 해줘."

라며 대인기피증과 우울증 초기 증상을 보였다. 간디는 이불 위에 올라가 한참을 멍하니 엎드려 있다가, 슬픔을 이기려는 듯 밥그릇 쪽으로 다가가 사료를 우걱우걱 먹는다. 그렇게 먹고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는지 화장실 앞에 있는 양말을 물어 몇 번 흔들고는 다시 이불 위에 올라가 앞발에 턱을 받치곤 엎드린다.

이런 간디를 위로하기 위해 우리 가족은, 하루에 한 시간은 꼭 간디를 공원에 데리고 나가 놀 수 있게 만들자는 계획을 세웠다. 산책을 하며 다른 강아지들을 만나는 것이 간디의 사회성 증진에도 도움을 줄 것이고, 일부러라도 그렇게 시간을 내 걷는 것이 사람에게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자, 그렇게 간디와 산책을 다니며 파악하게 된 '중산 근린공원'의 애완견 및 견주 세력도를 이번 시간에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이 글에 나오는 사람들이 활동하는 시간은 오전 11시 부터 오후 4시 이며, 오늘이라도 공원을 찾는다면 그대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출발해 보자. 


1. 실질적인 중심축, '일진 애완견'과 아줌마들.

지난 글 [공원을 차지한 일진 애완견들과 아줌마들]에 나온 그 그룹이다. 초코푸들 두 마리를 투톱으로 내세운 아주머니가 '리더'역할을 맡고 있으며, 그 바로 아래에 '슈나우저'를 키우는 아줌마와 '치와와'를 키우는 아줌마가 있다. '치와와'를 키우는 아줌마가 순대 간이나 생소한 간식들을 가지고 나와 자신의 세력을 넓히려 하지만, '슈나우저'의 체격이 그 그룹의 강아지들 중 가장 크기 때문에 두 아줌마 사이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고 있다.

초코푸들 두 마리를 투톱으로 내세우고 있는 아주머니가 리더를 담당하고 있는 까닭은, 그간 가장 많은 강아지를 키웠으며 현재 그 그룹의 강아지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12년차의 강아지를 데리고 있기 때문이다. 리더 아줌마는 수의사의 따귀를 올려붙일 수 있을 정도로 강아지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강아지의 이빨을 보고 나이를 맞추는 개인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25g은 몇 그람인가?"라는 고민을 할 정도로 '정확함'의 측면에선 좀 약한 모습을 보인다.

이 그룹의 강아지들은 다른 강아지가 공원에 나타나면 서로 똥꼬냄새를 맡겠다며 앞 다투어 달려간다. 강아지들이 달려갈 때면 아주머니들은 늘,

"안 물어요. 안 물어."
"안 물어. 그냥 와도 돼. 인사 하는 거야."


라는 멘트를 외친다. 아, 아저씨도 한 분 계신데 슈나우저를 기르는 아주머니의 남편이다. 별로 말씀도 없으시고 강아지와 산책하는 것을 그리 즐기시는 것 같진 않다. 모임에 합류할 때 웃으며 인사하는 것과, 집에 돌아갈 때 웃으며 인사하는 것이 전부다. 나머지 시간은 공원 한 구석으로 가 '에쎄' 담배만 피우며 보내신다. '슈나우저'를 기르는 아주머니가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자꾸 데리고 나오시는 듯 보인다.


2. 비주류의 원톱, 뒷담화 아줌마.


위에서 이야기 한 세력에 외롭게 홀로 맞서고 있는 아줌마다. 이 아주머니는 네 명의 아줌마를 합쳐 놓은 것 만큼 이야기하기를 즐긴다. 한 시간만 얘기를 나눠도 그간 이 아주머니가 키워왔던 강아지들의 이름, 성별, 역사, 에피소드 등 다양한 지식을 축적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 아주머니는 다른 견주들에 대해 이야기 하기를 즐긴다. 특히 이 아주머니의 개가 자신들의 개를 물었다며 치료비로 200만원을 요구한 신혼부부에 대해 말하길 좋아한다.

"봐봐. 우리 개가 물 것 같아? 물게 생겼어? 차암나. 내가 안 보고 있을 때 물었다는데, 그것들 정말. 물었어도 그 개가 먼저 시비를 걸었겠지. 우리 개는 절대 먼저 다른 개한테 해코지 안 해. 그러더니 수술하고 뭐 하고 하는데 이백 오십 든다는 거야. 뭔 돈이 그렇게 드냐고. 물어보니까 수슬 끝나고 그 개 마사지도 해주고 뭐 해주고 한다는데, 차암나. 수술만 하면 됐지 무슨 마사지를 해. 내가 딱 그랬어. 이백으로 하자고. 나도 개를 키우는 입장이지만 그건 이해 못하겠다고. 그리고 딱 그 날 내가 이백 현찰로 갔다 줬어. 아니, 근데 개 키우면 사람들이 다 돈이 많은 줄 알어. 돈이 없어도 개가 너무 좋아서 키우는 사람들이 있는 건데..."

자기 강아지는 정말 순하고 절대 물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강아지는 공원 내에서 '무는 개'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간디와는 잘 논다. 간디와 그 강아지가 잘 놀고 있다가 다른 개가 나타나자 으르렁 거리며 이빨을 드러낸 적이 있다. 그러자 아줌마는,

"아, 맞다. 농협가야지.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라며 강아지를 안고 성급히 공원을 빠져나갔다.


3. 욕쟁이 할머니와 순찰 할아버지.

강아지를 키우는 분들은 아니시지만, 공원의 '애완견 세력도'를 설명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이 '욕쟁이 할머니''순찰 할아버지'다.

욕쟁이 할머니의 경우,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주변에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다 들릴 정도로 크게,

"미친 x"


이라고 욕을 하신다. 그 얘기를 들은 70% 가량은 그냥 불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지나가지만 30% 정도는 "할머니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라며 다가와 따진다. 그렇게 누군가가 따지기 시작하면 할머니는 묵비권을 행사하며 다른 곳을 쳐다보신다. 상대가 왜 화를 내는 지엔 관심이 없고, 그저 화를 낸다는 것 자체를 즐기시는 듯 보인다.

신기한 것은, 강아지가 옷을 입고 있지 않거나 견주가 남자일 경우에는 절대 욕을 하지 않으신다는 거다. 아, 그리고 개가 대형종일 경우에도 욕을 하지 않으신다. 

순찰 할아버지는 스스로 '공원 관리인'을 자처하신다. 강아지에 대한 일 말고도 잔디밭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쫓는 일이나 쓰레기를 그냥 두고 가는 사람들을 혼내는 일 등을 담담하고 계신다. 강아지와 관련해 할아버지가 중점적으로 단속하시는 것은 '배변'과 관련된 부분이다.

공원에서 배변을 하는 강아지가 있으면, 할아버지는 빛의 속도로 그 강아지에게 다가간다. 그리곤 주변에 있는 주인을 불러 어서 치우라고 재촉하신다. 할아버지에겐 절대 타협이 없는 관계로, 약간이라도 공원 바닥에 변이 묻어 있을 경우 그 것을 다 치울 때 까지 자리를 뜨지 않으신다. 언젠가 어느 부부가 데리고 나온 '몰티즈'가 묽은 변을 봤는데, 보도블록 사이로 좀 스며든 것까지 다 치우라고 해서 그 부부가 할아버지에게 항의를 한 적이 있다.

"저어기 화장실 있으니까 거기서 휴지 갖다가 다 치워."
"네. 네. 치울게요. 치우겠습니다. 근데 할아버지 어디서 나오셨어요?"
"나? 나... 집에서 나왔지."


난 이 때 처음 할아버지가 '정식 공원 관리인'이 아닌 걸 알게 되었다.


4. 레트리버 아가씨들과 진돗개 소녀

중산공원에 출몰하는 레트리버, 녀석 주인은 20대 중반의 두 아가씨다. 그러니까, 그녀들은 외국 영화를 보며 "제이시~ 제이시 어디 있니? 이리와~"정도의 장면을 보고 레트리버를 기르기로 마음먹은 듯 보인다. 그 큰 레트리버와 산책을 하고, 공원에서 원반 따위를 던지며 노는 모습을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그녀들의 힘으로는 대형종인 레트리버를 제어할 수 없고, 그녀들이 기대했던 것들과 달리 레트리버는 원반 따위에 관심이 없었다.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다른 강아지의 똥꼬냄새를 맡으려는 레트리버에 질질 끌려가는 일 뿐이었다.

레트리버가 몰티즈나 시츄 등에 비하면 엄청난 크기를 가진 녀석인지라, 자신의 강아지를 한 입에 삼킬 수 있을 듯 보이는 그 레트리버가 다가오면 모두들 경계한다. 일부 견주는 큰 개에 호감을 보이며 자신의 개와 같이 놀게 하기도 하지만, 레트리버가 치는 장난에 자신의 개가 세 바퀴 반을 구른 후 부터는 자리를 피해 다른 곳으로 가 버린다.

"야, 얘 어떡해. 너도 같이 좀 잡아봐."

라고 소리치며 아직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는 두 여자를 본다면, 그녀들이 틀림없다.

이와 같은 모습으로 곧 변하리라 예상되는 것이 '진돗개 소녀'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듯 보이는 그녀는 3개월 된 진돗개를 키우는데, 두툼한 발과 졸린 듯한 눈이 너무 매력적이라 기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요즘 공원에서 가장 간디와 많이 노는 것이 바로 이 3개월 된 진돗개다.

공원의 다른 강아지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까닭에 움직이길 귀찮아하며 양지바른 곳에서 일광욕만 하는데, 녀석은 아직 꼬꼬마라 그런지 활발하고 다른 강아지와 노는 것을 즐긴다. 닉네임이 '우다다다'인 간디는 8개월 차. 둘이 만나면 뭔가 그리 재미있는지 뛰고, 구르고, 쫓고, 쫓기며 논다.

하지만 3개월 밖에 안 된 녀석은 하루가 다르게 힘이 세지고 있다. 이제 간디와 놀며 몸싸움을 하면 간디가 나가떨어질 정도며, 하얀 솜사탕처럼 뭉글뭉글 귀여운 외모는 점점 진돗개 특유의 예리하고 탄탄한 몸매로 변하고 있다. 집에서 키우기 곤란해지면 시골에 있는 할머니 댁에 맡길 거라고 한다.


이 외에도 '주인을 계속 몸으로 들이 받는 코카스파니엘'과 삼일 정도 모습을 보이곤 사라진 '비글', 그리고 언제나 무도회 복장을 하곤 '데디베어컷 한 푸들'을 데리고 나오는 아줌마 등이 있지만 중산공원에서의 세력도에는 그닥 영향을 끼치지 않기에 적지 않았다.

외부세력 중 가장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강아지들은, '애견훈련소'에서 야외훈련을 시키러 데리고 나온 강아지들이다. 몇 명의 남자들이 승합차에 강아지들을 실어 와서는 공원의 외진 곳에 데려가 훈련을 시킨다. 물론, 이 '애견훈련소'의 승합차가 보이면 제일 바빠지는 것은 위에서 소개한 '순찰 할아버지'다.

간디는 이번 주말에 '삭발'을 할 예정이다. 빗질을 극도로 싫어하는 까닭에 간단하게 밖에 빗어주질 못하는데, 전에 부분미용한 곳을 제외하곤 털들이 길어 뭉치기 시작했다. 푸들은 털갈이를 하지 않아 집안 곳곳에 털이 빠지는 일은 없지만, 계속 길어지면 아무리 관리를 해줘도 '넝마주이'의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삭발'을 하고 나면 당분간은 집에서 보내야 할 텐데, 그간 중산공원의 세력도는 어떻게 변할 지 궁금하다. 그 이야기가 기다려지시는 분들은 아래의 추천버튼을 거침없이 눌러 주시길 바라며! 목표를 다시 한 번 떠올리고 정비하는 목요일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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