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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연애, 안 해본 것도 아닌데 왜 어려울까?

by 무한 2011. 4. 15.
새로운 남자친구를 사귄 지인이 그랬다.

"전 연애를 안 해본 것도 아닌데, 왜 연애를 할 때마다 이렇게 어려울까요?"

그래서 이런 대답을 해 줬다.

"그간 해 온 건 연애라기보다는, 너 좋다는 사람과 만난 것에 불과하잖아.
상대가 너에게 빠져 있을 땐 네가 뭘 하든 상대가 맞추게 되어 있지.
그러다 상대의 마음이 풍화작용을 겪어, 너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가 가루로 변했을 때,
그 땐 늘 네가 매달리다가 끝났잖아.
그렇게 이별하곤 마음이 아프다며 위로해 줄 새로운 남자를 만나고,
너에게 빠진 새로운 남자는 다시 너에게 맞추려 노력하고,
시간이 지나면 넌 또 매달리고,
연애라기보다는 그냥 만남의 연속이었지."


연애를, 수학문제집 푸는 것에 비유하자면 1단원 '집합'만 계속 보고 있었던 것이다. '직선의 방정식'까지는 아니더라도 '복소수'까지는 한 번 들여다봤어야 하는데, 1단원 '집합'만 수차례 보고 나서는, 왜 이렇게 연애가 어렵냐고 묻는 거다.

결혼 적령기에 만나 호르몬의 도움을 받다 보면, 결혼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호르몬이 "그간 즐거웠네. 이제 난 갈 때가 되어서 이만."이라며 손을 흔들고 떠나면, 도장 찍네 마네하며 "정말 이런 남잔 줄 모르고"라든가 "이런 여잔 줄 알았으면 절대..."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닌가.

나에겐 신혼부부들도 사연을 보내는데, 그 사연에는 함께 살고 있는 '세상에서 제일 이상한 남자''최악인 여자'가 등장한다. 평생 함께 하자며 결혼까지 약속한 두 사람에게 배신감과 증오만 남다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대에겐 절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길 기원하며, 그런 일을 막기 위해서 알아야 할 것들 지금 바로 살펴보자.


1. 다 풀고 채점하자

나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를 가진 다른 사람이 나타났을 때, 연애는 얼마나 쉬운가. 반대로, 내가 상대에게 환상이나 기대를 가지고 있는데 상대가 외로움에 몸서리치고 있을 시기일 때에도 연애는 쉽다. 버림받은 것 같은 기분으로 찌뿌듯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길거리에서 이성이 말을 걸어온다고 해보자. 우연한 계기로 만난 그 사람은 당신에게 관심을 표현한다. 그리고 당신은 그 관심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연애는 시작된다. 그렇게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커피를 마시고, 길거리를 걷고, 여행을 가고 뭐 남들 다 한다는 것들을 하나 둘 같이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 그건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준비하는 것보다 쉽다. 그러나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어 하는 사람의 특성상, 마음에서 외로움을 몰아내고 난 후엔 그간 눈에 띄지 않았거나 접어놓았던 문제들이 하나 둘 앞에 놓이게 된다. 예를 들어

상대의 생활환경을 보니 함께 살면 고생할 것이 뻔히 보인다든가, 술과 친구를 좋아하는 상대 때문에 계속해서 갈등이 생긴다든가, 상대 마음에 예전에 사귀던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다든가, 따위의 큰 문제부터 손이 정 떨어지게 생겼다거나, 비듬이 많아서 같이 밥 먹을 때 마다 토할 것 같다거나, 하는 작은 문제들까지 놓여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런 근거들을 기준으로 답을 예측하려 하고, 누군가에게라도 조언을 받아 판단하려 한다. 상대, 그리고 상대와 하고 있는 연애에 대해 채점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상황에선 이미 마음에 냉정하고 잔혹한 심사위원이 들어있기에, 제 점수는요, 라며 이별을 고하는 경우가 많다. 이별 후엔 다시 외로워진다. 그러다 누군가 또 그 외로움과 맞서 싸우겠다며 지원을 하고, 둘은 다시 풍화작용을 겪기 전까지 남부럽지 않은 연애를 한다. 그리고

그 후엔 또 채점이다. 이제 1단원 '집합'만 풀고 있다는 게 무슨 얘긴지 알겠는가? 이번엔 정말 제대로 연애를 하겠다는 굳은 마음으로 문제집을 펴지만, 몇 장 풀고 나서는 채점한 뒤 '이렇게 많이 틀리다니. 뒤로 갈수록 더 어려울 텐데, 이 문제집은 너무 어렵다.'며 던져 버리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흐르고, 가수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모두 농담으로 받아들일 나이가 되면,

"전 연애를 안 해본 것도 아닌데, 왜 연애를 할 때마다 이렇게 어려울까요?"

라는 얘기를 하게 된다. 앞으로는 다 풀고 채점하자. 연애 초반은 누구나 별 노력을 하지 않아도 호르몬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다. 중요한 건, 호르몬이 바이바이 한 뒤부터 하나씩 찾아오는 '진짜문제'들이다. 잘 맞고, 잘 통하고, 천생연분인 사람을 만나면 그런 문제들이 없을 거라는 생각부터 버리자. 위기는 둘의 단단한 기반을 만드는 주재료니 말이다.


2. "이게 나야."라는 말은 집어 치우자

연애를 하며 이제 좀 편하고 익숙해졌다고, 상대를 막대하거나 내 편한대로 하려는 습성부터 버리자. 그래, 그간 당신이 상대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가면을 몇 개 준비했다는 걸 알고 있다. 누구나 그런 가면을 준비한다. 마치 중요한 전화통화를 할 때 당신이 낼 수 있는 최상의 목소리와 한 없이 자상하고 호의적인 태도를 준비하는 것처럼 말이다.

난 당신이 그 모습이 가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늘 얘기하지만, 난 우리 마음이 딱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고 여러 개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성격'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당신이 주로 사용하는 손'을 보고 "쟤는 오른손잡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이다. 살다보니 여러 환경들에 의해 그 손을 사용하게 되었고, 그 손을 사용하는 것이 익숙해서 계속 그 손을 사용하고 있단 얘기다.

혹시, 아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람과 만나서 긴 대화를 하다보면 그간 자신이 상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던 것이 '오해'였으며, 그 사람도 나 못지않게 여리고 상처받기 쉬운 사람이라는 걸 느낀 경험이 없는가? 없다면 사람들과 대화를 좀 하며 살길 권하고, 아무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의 부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자. 그리고 연애를 시작하게 되면, 최대한 상대와 '공감'할 수 있도록 자신의 마음 중 가장 잘 들어맞는 부분을 꺼내 상대를 대하는 것 아닌가.

그걸 그냥 '가짜'라거나 '연극'이라고 생각하지 말자는 거다. 그것도 당신의 모습이다. 그간 사용해 왔던 익숙한 마음이 '나 자신'일 거라는 건 그냥 그걸 오래 사용했기 때문에 그런 거다. 남들도 그 모습만을 봐 왔기에 당신을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거고 말이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당신이 변해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의 과정을 걸을 땐 절대,

"나 원래 이래."
"이게 나야."


따위의 이야기를 하지 않길 권한다. 그건 그냥 컴퓨터 키보드로 영타를 연습하다가 "아, 왜 이렇게 타자가 안 늘어! 역시 영타는 나하고 안 맞아."라며 포기해 버리는 것과 같은 일이다. 임계점만 넘으면 자유롭게 영타를 구사할 수 있는데, 그걸 못 견디고 포기하고 만다. 그리고 그 포기로 인해 영영 영타는 키보드 자판을 보며 하나하나 눌러야 하는 것처럼, 연애에서도 변화를 포기할 경우 늘 같은 문제로 인해 침몰하게 된다.

내 경우, 남자들끼리 있을 때 쓰던 비속어를 지금은 거의 쓰지 않게 되었는데, 이걸 예로 들어서 설명하면 지자랑 하는 것 같아서 재수 없으니까, 여기까지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 보자.


3. 당신이나 상대, 둘 다 어설프다

당신만큼이나 상대도 어설프고, 또, 상대만큼이나 당신도 어설프다. 근데 이러한 사실을 잊고 상대를 '무결점'으로 생각하거나, 반대로 자신이 완벽하다는 착각을 하면, 두 사람이 헤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사연을 보내는 대원들 중에는 '무결점인 사람'을 이상형으로 꼽는 대원들이 있는데, 그대가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나도 꼭 한 번 그 사람과 만나보고 싶으니 찾으면 연락 좀 주길 바란다. 내 상상 속에서는 나도 여러 번 만난 적 있지만, 실제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혹시 과거엔 그런 사람이 살지 않았나 열심히 역사를 뒤져 봤는데, 빅뱅 이후 현재까지 아직 그런 사람에 대한 기록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 누구를 만나더라도, 그가 코 질질 흘리고 기저귀를 찼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길 바란다. 그리고 그 꼬꼬마 때의 모습은 눈감는 날까지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당신이 상대를 '무결점'이라고 생각하니 연애가 자꾸 어려워지는 거다. 당신의 예상이나 기대와 다른 상대의 모습을 발견하면, 그 발견이 즉시 실망으로 환원되는 것 아닌가. 그건 마치 천 원짜리를 백 원짜리로 바꾸고, 백 원짜리를 다시 천 원짜리로 바꾸는 것을  계속 하는 것과 같은데, 어찌 돈이 불어나겠는가?

숨막힐 정도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남자라고 해도 꼬꼬마의 마음이 그의 안에 들어 있고,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철저한 여자라고 해도 꼬꼬마의 마음의 그녀의 안에 들어있다. 그러니 상대를 신격화해 종교로 모시는 일은 이제 그만 두도록 하자. 예배드리듯 상대를 계속 만나면 '애인'이 아닌 '신도'가 되고 마는 것 아닌가.

반대로, 자신이 완벽하다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 대원들 때문에 가끔 화가 나기도 한다. 대부분 오랜 연애를 하다가 "상대가 저에 비해서 학력이나 물질적인 부분이 많이 부족한데, 계속 사귀는 게 맞는 건지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더 괜찮은 사람이 있을 것 같아요."라거나 "그 사람의 성격이 좀 이상한데, 그 부분을 제가 커버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헤어지는 게 맞겠죠?"라는 이야기들 말이다.

당신만 참고 있는 게 아니다. 상대도 당신을 속물적인 시각에서 분석할 줄 알고, 당신의 모난 부분을 누구보다 빨리 캐치할 줄 안다. 당신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 옆에 있는 것이다. 이건 손익을 따지는 비지니스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당신 옆에 있는 것이다. 당신의 가시를 껴안아 상처가 나더라도 당신 옆에 있는 것이다. 그게 믿음이고, 그게 연애고, 그게 사랑이다. 당신이 살면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당신을 칭찬하고, 당신과 가까워지고자 했는가? 당신과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은 전부 당신을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는가?

멀리서 찾지 말고, 당신의 부모님께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아들이나 딸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가? 그게 아니라면 '무결점'이나 '완벽'을 쫓지 말고, 내 허물부터 보자. 그 허물마저 사랑하고 있는 상대를, 이제 당신이 좀 배부르다고 해서, 그렇게 짓밟고 다른 곳을 향하진 말잔 얘기다.


이런 블링블링한 후라이데이에 유쾌하게 만은 볼 수 없는, 좀 우중충한 매뉴얼을 발행하게 된 것을 참 미안하게 생각한다. 이런 날엔 그냥 "여의도에 왔는데, 지갑을 잃어 버렸어요. 혹시 좀 와 줄 수 있어요?"라며 벚꽃놀이 데이트 하는 방법이나 알려주면 좋을 텐데, 듣기만 해도 울렁거리는 '집합''복소수'얘기나 하다니.

그러나 몇 년째 옆의 사람만 바뀐 채 벚꽃길을 걸어봐야 종아리 근육만 단단해지는 것 아닌가. 육상선수였다고 말해도 믿을 정도로 단단해진 종아리 대신, 평생 함께 벚꽃놀이를 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 바라는 마음에서 이 매뉴얼을 적었다. 그럼, 고민으로 울상을 짓고 있던 대원들의 얼굴이, 벚꽃처럼 환하게 펴지길 기원하며 이번 매뉴얼은 여기서 마친다. 블링블링한 후라이데이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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