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밀잠자리의 우화 응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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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밀잠자리의 우화 응원기
파브르가 오래 전 세상을 떴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그와 동시대를 살고 있다면, 안곡습지공원(우리 동네에 있는 습지공원)으로 초대해,

무한 - 곤충의 몸을 3등분 하면?
파브르 - 머리, 가슴, 배!
무한 - 틀렸음. 곤충의 몸을 3등분 하면, 곤충이 죽음ㅋㅋㅋㅋ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을 텐데. 아, 그리고

무한 - 님 이름이 '장 앙리 파브르'아님?
파브르 - 맞음.
무한 - 그럼 장씨임? 나도 장씬데. 어디 장씨? 난 안동 장씨.



이런 대화도 나눌 수 있을 거고 말이다. 자, 허튼소리는 이쯤 하고,




지난 8월 2일에 난, '왕잠자리, 큰밀잠자리, 밀잠자리, 두점박이좀잠자리' 수채(유충)를 채집했다. 사진에 보이는 녀석은 그 중 '큰밀잠자리 수채'다.

큰밀잠자리라 하면, 잠자리의 세계에서 '이사'정도의 직급을 가진 잠자리다. 물론, 밀잠자리 위로 '회장'이라 할 수 있는 '왕잠자리'와 '사장'이라 할 수 있는 '장수잠자리' 등이 있긴 하다. 하지만 '주임'이나 '대리'라 할 수 있는 '된장잠자리'나 '고추잠자리'에 비하면 분명 높은 직급이다. (밀잠자리는 실제로 '된장잠자리'나 '고추잠자리'를 잡아먹기도 한다.)

더군다나 큰밀잠자리의 성충은 특유의 '예민함' 때문에, 필드에서 채집하기가 어렵다. 다른 잠자리들이 눈앞에서 손가락을 빙빙 돌려도 '응? 뭐지?'라며 정신줄을 놓고 있는 것과 달리, 녀석은 작은 소리만 나도 일단 자리를 뜨는 경우가 많다.

성충은 그렇게 예민하지만, 수채는 그렇지 않았다. 뜰채 질을 몇 번 하니 쉽게 잡혔다. 너무 쉽게 잡히기도 했고, 손톱만한 크기를 가진 녀석이라 사실 처음엔 '큰밀잠자리'의 수채일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고추잠자리나 된장잠자리의 수채이겠거니 했는데, 잠자리 전문가 분들에게 동정을 부탁하니 '큰밀잠자리 수채'라고 했다.

큰밀잠자리 수채라니! 로또에 당첨된 마음으로, 녀석을 '단독사육통'으로 옮겼다. 그렇게 특별 사육에 들어간 지 삼일 째 되던 날 새벽,




잘 크고 있나 한 번 볼까, 라는 생각으로 사육통을 살피는데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탈출한 건 아닌지 사육통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역시 보이지 않았다.

'다신, 너 같은 수채 만날 수 없을 거야. 행복했던 기억만 가져가렴...'

이라며 애써 이별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응?'

사육통 중앙, 녀석들의 우화를 위해 만들어 놓은 '루바망 피라미드'에 뭔가가 매달려 있었다.

'우...우화하고 있잖아!'

너무 기쁜 나머지, 자고 있던 간디(애완견)를 깨웠다. 간디는 내가 가리키고 있는 잠자리는 쳐다보지도 않고, 다가와 내 발만 두 번 핥으며 "발 씻고 얼른 자라."라는 메시지만 남긴 채 다시 안방으로 가 버렸다.




아직 수채에서 몸을 다 빼지 못한 저 녀석은, 복근운동을 하는 것처럼 거꾸로 매달린 채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몸을 거의 다 뺀 상황. 사진을 찍느라 플래시를 터트릴 때 마다 녀석은 움찔, 거리며,

"야, 눈부시잖아!"

라는 항의를 해 댔다.




녀석은 수채에서 완전히 몸을 빼내며, 웃-차, 하는 느낌으로 수채에 매달렸다.

'어? 그런데 머리 뒤에 저 초록색 혹 같은 건 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사슴벌레나 장수풍뎅이의 우화시에도  저렇게 낯선 모양이 나타나면 '우화부전'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 '불길한 예감 프로세서'가 오작동 한 것이길 바라며 녀석의 우화 모습을 계속 지켜봤다.




위의 사진과 바로 앞에 있는 사진을 비교해 보면, 배(꼬리)를 펴기 위해 힘을 한껏 줘 구부린 모습과 어느 정도 날개가 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시간이 좀 더 지나자 배(꼬리)는 완전히 펴졌고, 날개도 아까보다 더 펴졌다. 녀석의 머리 뒤에 달린 초록색 물체가 뭔지 유심히 들여다보니, '혹'이 아니라 '물방울'같았다. 그래서 면봉을 녀석의 머리 뒤로 살짝 갖다 대 보았다.




좋았어! 예상대로 머리 뒤에 있던 물체는 '물방울'이었다. 위의 사진은 면봉으로 그 물방울을 닦아 낸 후의 모습이다.

초록 물방울 문제는 해결 되었지만, 수채가 루바망에 완전히 고정되지 못하고 다리 하나로 달랑달랑 매달려 있는 것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저렇게 버티다 수채의 다리가 루바망을 놓치면, 아래 사육통에 있는 물로 떨어져 버리는 상황. 수채를 좀 움직여 다른 팔도 고정시켜줄까 하다가 그냥 두었다. 괜히 건드렸다가 나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다시 찾아왔기 때문이다.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앞서 등장했던 사진들과 비교해 보면 몸에 있는 무늬들이 진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저렇게 한참을 매달려 있던 녀석은,

촤락!

하는 소리를 내며,




날개를 양 옆으로 폈다.

'날개가 아직 덜 마른 것 같은데, 왜 날개를 폈지?'

다시 불길한 예감이 찾아왔다. 웹에서 다른 잠자리들의 우화 사진을 찾아봤지만 저런 모양으로 날개를 편 잠자리를 하나도 없었다.




아닐 거야, 아니겠지,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한참을 기다렸지만, 녀석의 날개는 저 상태에서 더 펴지지 않았다.

'괜찮아. 수고했어. 괜찮아.'

나에게도 녀석의 날개처럼 '정상적으로 펴지지 못한' 마음이 있다. 그래서 '보통의', '평범한', '정상적인' 이란 의미의 'normal'을 추구하며, 블로그의 이름도 '노멀로그'라고 지었다.

'괜찮아. 수고했어. 괜찮아.'

그래서 한참을 더, 응원했던 것 같다.




날개를 움직일 수 없다는 걸 스스로도 아는지, 녀석은 계속 수채에 매달려 있었다. 그렇게 매달려 있다 수채가 루바망에서 떨어지면 녀석도 함께 물속으로 떨어질 수 있기에, 안전한 반대편으로 옮겨 주었다.

수고했어, 큰밀잠자리.




녀석이 벗고 나온 수채의 탈피각이다. 때 묻은 저 탈피각을 벗고 나오며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았을 텐데, 힘차게 날개 짓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녀석은 오늘 새벽 삶의 끈을 놓았다.

내 탓인 것 같다. 우화부전의 가장 큰 원인은 '스트레스'라 알고 있는데, 우화 할 때 내가 사육통을 건드린 것이나 사진을 찍느라 터트린 플래시가 녀석에게 '스트레스'가 되었던 것 같다. 녀석이 우화하는 모습을 내가 발견하지 않았다면 건드릴 일도 없었을 것이고, 사진을 찍는다며 요란을 떨 일도 없었을 것 같은데, 녀석의 '우화부전'이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인 것 같아 미안하다.


어익후, 이거 쓰다 보니 일기장에 적어야 하는 참회록을 '잠자리 이야기'에 옮기고 있었던 것 같다. 그저 여린마음동호회 회원들에게 "마음에 우화부전이 있는 저도 잘 살고 있습니다. 힘내자구요!"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는 얘기로 서둘러 글을 마무리 해야겠다.

수고했어, 나도.


[알림]

노멀로그에 올라오는 사진들은 사정 상 작게 올리고 있습니다. 큰 사진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노멀로그 갤러리(http://normalog.blog.me/)를 방문하시길 권합니다. 노멀로그 갤러리엔 노멀로그에 올라오지 않은 사진들도 올라온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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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르2011.08.05 14:5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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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됐네요.. 잠자리.

회복을 바랍니다

렌희2011.08.05 16:0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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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타깝네요..ㅠㅠ
멋지게 날았다면 분명 여럿의 마음을 기쁘게 했을 텐데..

무한님 힘내세요.
무한님 탓이 아닙니다..ㅠㅠ

랭고2011.08.05 17:2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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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효.. 다~..잠자리 팔자려니 하세요.. 그나마 무한님의 작품속에 살아남아 영생의 길위에 안식할 수 있을겁니다..아멘(응?)..^^*

여름이다2011.08.05 17:4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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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일이 있어서
오후내내 울다가
겨우겨우 가라앉혔는데

여기 들어와서 글 읽고 또 움.

울고있는데
위로받은 기분입니다.

고맙습니다.

Quicksand2011.08.05 19:0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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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해피엔딩이 아니었네요ㅠ_ㅠ
너무 안타깝네요.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날갯짓을 해 봤으면 좋았을텐데요..

영풍2011.08.05 21: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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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무한님 문득 예전 어머니와 박사님 글보고 편찮으셨던 어머님은 요즘 어떠신가요 쾌차하셨기를

엄마미소2011.08.05 21:0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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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네요..

'노멀로그니까 보고 있지만, 성충이 아닌 한- 아니, 다 큰 잠자리더라도 역시 곤충이라서 너무 가까이서 보면 징그러워ㅠㅠ'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

어느새 위 사진과 아래 사진을 비교해보며
'저 보글보글 포슬포슬한 날개는 뭐지?! 으악!
하지만 제대로 생명의 신비다.. 저게 다 어디에 숨어있다가 나오는 거야!@0@'
몰입해서 보고 있었는데,

결말은 우화부전 안녕.. 이군요.
관점이 조금씩 변하고는 있었어도 여전히 '그래도 좀 징그러워'였는데도,
순식간에 콧등이 시큰해졌습니다ㅠㅠ

새벽부터 맘고생하셨네요, 무한님.
'잠자리, 너는 고민 없지?' 라고 말 걸고 싶은 녀석은
사는 것만도.. 껍질 벗는 것만도 목숨을 건 모험을 해야 하는구나, 새삼스러워요.
큰밀잠자리, 좋은 곳에 갈 거에요:)
쪼글쪼글해서 노멀한 무한님도 다시 화알짝 웃어보세요^-^

....2011.08.05 21:2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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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저도 어릴 때 파브르 곤충기 완전 좋아했는데!

2011.08.05 21:3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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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말았군요. 스크롤을 내리면서 완전한(?) 큰밀잠자리의 모습을 볼 수 있는건가 기대했는데 안타깝네요..ㅠㅠ

Amanda2011.08.06 01:1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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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마음이 아프네요
무한님도 속상하셨겠어요. 토닥토닥...

ab2011.08.06 15:4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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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을 무서워하는 저지만 이번엔 정말 흥미롭게 봤어요 이런 진행과정은 본적이 없는데, 비록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지만 감격스러운 장면을 남겼네요. 맘아파 마세요 무한님 !

mink09032011.08.06 21:2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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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네요. 고충의 명복을 빕니다~

*본문중에 [웃-차, 하는 느낌으로 수채에 매달렸다] 이부분 표현이 참 좋고 와닿네요*

집토끼2011.08.08 14:0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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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요 무한님 ㅠ.ㅠ.ㅠ.ㅠ
큰밀잠자리가
우화부전으로 보통의 잠자리들과는 다른 삶을 보내게됐지만
무한님 마음 속에서는 무한하게 날고 또 날거에요

날아라 큰밀잠자리 ! 웃차!

종이구름2011.08.09 01:3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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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ㅠ 큰밀잠자리 너무 안타깝네요.
처음에 사진봤을땐
'으, 생각보단 좀 징그럽군. 그렇지만 신비한 곤충의 세계!'
이러면서 보고있었는데..

'정상적으로 펴지못한 날개'라는 부분이 와닿네요.
저도 그런 부분들이 알게 모르게 있어서 발견하면 펴고 펴고 있어요.ㅎㅎ

m2011.08.15 13:5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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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울리는 좋은글 감사합니다.
데미안 서문의 글귀가 생각나네요.'우리는 저마다 자연으로부터의 또 하나의 시도이다' 각자의 의민 신만이 알고계시겠지요

ㅠㅠ2011.09.01 04:2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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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눈물났어요 어릴때 아무것도 모르고 잠자리 잡아서 날개 떼고 했던게 너무 죄책감 들었었는데 이 글 읽으니까 감정이 확 올라오네요 그동안 나때문에 그리고 다른 나같은 행동을 한 사람들 때문에 허무하게 죽어간 잠자리들 ㅜㅜ 사람으로 다시태어나라...

소영2011.10.01 08:4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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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우화하여 지금은 어딘가에서 잘 날고 있습니다"

라는 말을 기대했는데 안타까워요...

무한님 신기한 체험 하셨군요
우화부전은 슬프지만 사진으로 이렇게 보니 감동적이예요
직접 보신 무한님은 얼마나 신기하셨을까

7살 때쯤 아파트 앞 쓰레기통에 아슬아슬 매달려
탈피하는 곤충을 본 적이 있어요
바둥바둥 거리며 나오려고 애를 쓰던 그 곤충
손에 땀을 쥐고 맘속으로 열심히 응원을 했어요
너무 오래 걸리길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아쉽게 옮겼던 기억이 나네요
다음날 그 자리로 뛰어가 보니 탈피각만 덩그러니 -
분명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신기하고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 ^

2011.10.08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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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댓글입니다

몽상가2012.02.15 03:3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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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수고했어! 으악 이거 뭐야! 하며 곤충 발사진이 보일 때만 해도 획하고 내렸는데 글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응원하고 있었어요… 근데 하늘나라로 간 거니? 왜! ㅠ 너로 인해서 나도... 장 형도 한 가지 확실하게 안 것 같구나. 장형 공개적으로 쓴 반성문을 보며 그 용기에 감탄한다. 안녕, 노랑 잠자리야. 다시 보니 너 은근 귀엽다, 예쁘고. 좋은 곳에 태어나 훨훨 날아라!

곤충관심 있는ㅅ2012.08.16 19:3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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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줄의 혹은 아마도 혈액 주머니일것입니다.
파리목곤충과매미목곤충에게 나타나던데 날개와 다리 쪽에혈액을 공급해 날개가 펴지게 합니다.파리와 매미와같이 원시적인 곤충인 잠자리또한 아마같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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