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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글모음/두번본영화들

샤인, 부모가 될 사람이라면 봐야 할 영화.

by 무한 2011. 11. 13.
몇 주 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연을 하나 읽었다. 제목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오늘 여동생 정신교육을 시켰습니다."였나, 그랬을 거다. 여하튼 내가 '여동생''정신교육'이란 키워드에 끌려 그 글을 클릭한 것은 확실하다. 

편모 가정. 오빠는 대학교 이 학년. 여동생은 고등학교 삼 학년. 여동생은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 학업은 포기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사고를 치고 다니는 상황. 오빠의 '정신교육'이 있기 몇 주 전부턴, 여동생이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글을 작성한 '오빠'는, 어머니는 당장 생계를 꾸려나가기 급급해서, 자긴 자기대로 학비를 마련하느라 바빠 여동생과 제대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 '정신교육'을 위해 그가 처음부터 폭력을 계획한 건 아니었다. 그도 처음엔 여동생과 대화를 하려 노력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시도를 여동생은 비웃었다. "참견하지 마."라거나 "내 인생 내가 알아서 살아."라며 완강하게 대화를 거부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좀 흥분해 목소리가 커졌을 때, 여동생은 욕을 하며 현관문을 닫고 나갔다.

한참을 기다려도 들어오지 않는 여동생을 그가 찾아 나섰다. 그는 동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옆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여동생을 발견했다. 여동생과 담배. 감정을 증폭시키기 좋은 코드다. 여동생은 그가 다가가는 걸 보고도 담배를 끄지 않았다. 무시. 역시 아드레날린을 용솟음치게 만드는 훌륭한 코드다.

그는, 여동생이 생명의 위협을 느껴 무릎 꿇고 빌 때까지 때렸다고 한다. 피와 콧물과 눈물과 침으로 범벅이 된 여동생. 그는 무릎 꿇고 비는 여동생을 일으켜, 근처 해장국 집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그 글은 "입 안과 입술이 다 터져서 해장국을 못 먹고 있는 여동생을 보며 가슴 아팠다."는 내용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폭력을 쓴 건 분명 제가 잘못한 겁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생이 막장으로 가기 전에 바로 잡을 방법은, 이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잘 한 거다, 잘못한 거다로 나뉘는 댓글들에, 사연을 적은 '오빠'가 한 대꾸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1. 선장이 미쳤다면 배는 어디로 갈까? 선원들은?


타이타닉호의 침몰에 대해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대서양 횡단 최속 기록을 가지기 위해 과속을 하다 빙산에 부딪쳤다는 그럴듯한 이야기부터, 배에 실린 '미라 관' 때문에 저주를 받아 침몰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류의 이야기까지. 그 중에는 교훈을 주기 위해 지어진 것처럼 보이는 '선장 교만설'도 있다. 선원들이 빙산을 발견하고 선장에게 보고했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선장은

"겨우 빙산 따위가 이 타이타닉 호를 어쩔 수 있을 것 같나?
신이 온다 해도 이 배를 어쩔 순 없을 걸세."



라고 답했고, 결국 타이타닉 호는 빙산과 부딪쳐 침몰했다는 얘기다. 가장은 한 가정의 선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가장이 착각을 하거나 실수를 하는 중이라면 가정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그 가정의 선원이라고 할 수 있는 가족들은 또 어떻게 될까?

영화 <샤인>에서 데이빗(주인공)의 아버지는 어린 데이빗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난 네 아빠로서 뭐가 최선인 줄 안다."


영화 속 데이빗의 아버지 어떤 사람인가. 그는 "항상 이겨야 돼. 이겨야지."라거나 "약자는 벌레 취급을 받지."따위의 말을 하며 데이빗을 억압하고 통제한다. 또, 그는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며 데이빗의 유학길을 막기도 하고, 데이빗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최고'라 생각하는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도록 강요한다.

그는 정말 '최선'을 알고 있을까? 최선을 아는 게 아니라, 그저 최선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 최선이라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것일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에 대해선, 영화 <샤인>이 105분 동안 말해주고 있다.


2. '최선'에 관하여


난 간디(애완견, 애프리푸들)라는 이름의 푸들을 키우고 있다. 간디는 겁이 참 많은데, 난 그 이유가 '타고난 것'도 있지만, 초기에 간디에게 한 잘못된 내 훈육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간디를 처음 집에 데려왔을 때, 난 강아지를 키우는 것에 대해 별 지식이 없었다. 때문에 난 거의 모든 교육을 "안돼"라는 명령어와 둘둘 만 신문지 몽둥이를 사용해 시켰다. 명령 없이 밥을 먹으려 할 때면 신문지로 바닥을 내리치며 "안돼!"라고 소리쳤고, 간디가 배변패드가 아닌 곳에 볼일을 보면 그곳까지 데려가 "안돼!"라며 주의를 주었다.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교육으로 간디는 먹으라고 할 때 까지는 절대 먹지 않고, 볼일을 봤다가 혼난 곳에서는 다시 볼일을 보지 않았다(거실에서 볼일을 봐 혼냈더니, 안방에 가서 볼일을 보는 등의 일은 있었지만).

그때 난, 간디를 교육시키기엔 명령과 몽둥이가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최선의 방법'으로도 고쳐지지 않는 몇 가지 문제들이 있었고, 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부를 하게 되었다. 공부라고 해서 거창한 건 아니고, 오래 전 TV에서 봤던 '애견훈련'에 관한 프로그램을 다시 찾아보고, 강아지에 관련된 책을 읽는 정도였다.

많은 애견 전문가들이 명령과 몽둥이로 인한 교육의 부작용을 말했다. 그들은 윽박지르거나 몽둥이를 휘두르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들이 있다고 했다. 이를 테면, 주인도 몰라보고 사납게 구는 강아지는, 서열을 확인시켜 얌전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거였다. 그들은 그런 강아지에게 몽둥이를 휘두르고 소리 지르는 일은, 강아지의 공격성을 자극하는 행위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행위 대신 그들은 목줄 훈련과 가슴 압박법으로 강아지에게 서열을 알려주라고 했다. 한 TV프로그램에선 실제로 그 방법을 적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난폭한 강아지 한 마리를 며칠간 앞서 말한 방법으로 교육하자, 녀석은 주인 옆에 와서 애교를 부리는 강아지로 변했다.

내가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방법들이 많았던 것이다. 강아지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에 벌인 감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들. 그건 아이에 대해 무지한 부모들도 똑같이 벌이고 있다. 그들은 아이를 감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들로 훈육한다. 그러다 그게 효과를 보이지 않으면, 훈육 대상에 대해 "저 녀석은 잘못 되었다."거나 "저 녀석은 골칫거리야."라고 말하며 책임을 전가한다.

"미안. 난 골칫거리야."


<샤인>의 주인공 데이빗이, 어른이 되어서도 입에 달고 있던 말이다.


3. 감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이 만드는 '원칙'
 

군대에 가서 경험한 신기한 것들 중 하나는, 갈굼이 대물림 된다는 거였다. 언제나 그런 건 아니지만, 대개의 경우 계급이 낮을 때 갈굼을 많이 당한 사람이, 높은 계급이 되어 아랫 계급을 많이 갈궜다. 난 그 모습을 보며, 그들이 당한 감정적이고 폭력적인 행위들이 그들 안에 어떤 원칙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원칙을 남에게도 똑같이 적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힘든 시집살이를 경험한 사람이, 훗날 시어머니가 되어선 자신의 며느리를 모질게 대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성품의 착하고 나쁘고를 떠나, 갈굼으로 인해 마음속에 어떤 원칙이 세워지면 그 원칙대로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대물림도 문제지만, 스스로 그러한 원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영화 <샤인>에서 아버지와 떨어져 살게 된 데이빗은,

"다시 연습해야 돼요. 그죠?"
"생동감 있게, 살아있는 연주를. 그게 중요해요. 그죠?"



라는 이야기를 하며 스스로를 다그쳤다. 더 이상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 속에 자리 잡은 '원칙' 때문에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힌 것이다. 그 원칙들로 인해 오늘도 스스로를 사냥하듯 쫓고 있는, 가여운 사냥꾼들은 얼마나 많은가!


데이빗은 말한다. 

"우린, 순간에 맞는 이유를 찾아야 돼."


종합감기약 같은 대사다. 아이의 '결과'만 놓고 다그치는 부모에겐 아이의 '원인'을 찾는 게 먼저라는 의미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부모에게 시달림을 당하며 자란 사람에겐 부모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 때 그 사건의 이유'를 찾으라는 의미가 될 수 있다. 부모도 자식을 키우는 것에는 초보였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생각해 보라는 의미 말이다. 또, 갈굼으로 인해 마음속에 원칙이 세워진 사람들에겐 그 원칙을 내려두고 새로운 순간에 맞는 새로운 이유를 찾으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부모가 될 사람 중, 감기를 아이에게 옮기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꼭 복용해야 할 종합감기약이다.

(Shine, 1996)



▲ 근데 정말,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인가, 하는 프로를 볼 땐 "아오, 저걸 그냥!"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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