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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가볍게 만나려던 남자에게 반한 여자, 문제는?

by 무한 2011. 11. 14.
가볍게 만나려던 남자에게 반한 여자, 문제는?
문제를 하나 풀어보자. 그대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별'에 대한 글을 하나 올렸다. 그 글은 며칠 전 헤어진 남자친구를 원망하는 글이다. 그런데 그 글 밑에 댓글이 하나 달렸다. "제가 힘이 되어드리고 싶군요. 연락 주세요. 010-..." 이 댓글을 본 그대는 그에게 연락을 하겠는가?

머리에 총을 맞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연락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총 맞은 사람이, 있었다. "총 맞은 것처럼~ 정신이 너무 없어~♬"라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최양. 이별을 한 직후엔 개수작에 대한 면역력이 약해진다. 때문에 멀쩡할 땐 코웃음 칠 수 있는 수작에도, 이별 후 심신이 약해진 상태에선 덜컥, 걸려들고 마는 것이다.


1.일회용과 과감함의 관계


'사귀는 것도 아닌데 뭐. 문자로 넋두리나 하며 지내야지.'


이런 생각으로 최양은 상대와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한다. 어차피 만날 사람도 아니라 생각했기에, 그녀는 과감해지기까지 한다. 자신의 전남친 얘기를 하며 상대의 과거를 묻고, 심지어 상대에게 과거 연인과의 진도까지 묻는다.

책임질 일이 없는 '일회용'제품을 사용할 땐 누구나 과감해지기 마련이다. 맨손으론 절대 하지 않을 일들을, 비닐장갑을 꼈을 땐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익명으로 저지르는 대부분의 일들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이유도 이와 같다. 

최양에게 상대는 인스턴트식품이었다. 필요할 때 꺼내서, 살짝 가열한 뒤, 먹고 싶은 만큼 먹고, 나머진 버리면 되는 관계. 재료를 준비하고, 손질하고, 요리하고,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는 등의 귀찮은 과정을 다 생략할 수 있으니 편했다. 외로울 때 휴대폰 버튼 몇 개만 누르면, 상대가 그 응답에 대꾸하며 금방 외로움을 쫓아주지 않는가. 상대 역시 그런 관계에 만족하는 듯 보였다.

편리함은 사람을 길들인다. 그 편리함 외에 다른 것은 시도할 엄두를 못 낼 정도로 나약하게 만든다. 최양도 그 편리함에 길들여졌다. 그래서 '투명친구'인 그를, 현실에서 만나기로 한다. 그 결심엔 호기심도 한 몫 했을 거라 생각한다. 이브가 호기심 때문에 선악과를 베어 물고, 판도라가 호기심 때문에 상자를 열었던 것처럼 말이다.


2.이해하기 어려운 최양의 행동들


최양이 상처를 받을 지도 모르지만, 이 부분은 분명히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둘의 관계를 엉망이 되도록 만든 최양의 행동들. 그 중 대표적인 세 가지만 예로 들어 살펴보자.

ⓐ시간이 늦어서, 자고 내려간다고 말한 것.


현실에서 가진 둘의 첫 만남. 그 만남에서 최양은 상대가 자신에게 실망했다는 것을 느낀다. 둘의 첫 만남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한다. 얼른 벗어 버리고 싶은 젖은 양말 같은 첫 만남.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밥을 다 먹고 헤어지려 할 때, 집이 먼 최양이 "시간이 너무 늦어서,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내려가려고. 오빤 들어가."라고 말하자 남자의 태도가 변한 것이다.

황새가 아이를 물어다 주는 게 아니라는 걸 아는 대원들은, 이러한 변화가 무얼 의미하는지 알 거라 생각한다. 최양의 이야기와 비슷한 많은 사연에서처럼, 최양의 사연에서도 역시 '팔베개 타령''프리허그 타령'이 등장한다. 다행히 최양이 완강히 거부한 까닭에 황새는(응?) 찾아오지 않았다. 자고 내려가겠다는 최양의 말은, 상대가 '동성친구'라면 전혀 이상할 것 없다. 하지만 상대는 시커먼 이성 아닌가. 게다가 둘은 현재 솔로부대원이고, 서로 과거 연애상대들과의 '진도'에 대한 얘기도 한 적 있다. 이 상황에서 "자고 내려가겠다."는 말은 상대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까?  

ⓑ놀러오면 하룻밤 같이 있어 주겠다고 한 것.


첫 만남이 있은 지 며칠 후, 상대는 최양의 동네에 놀러오겠다고 말한다. 그냥 놀러 오는 게 아니고, 여행 겸 놀러오는 거라 하룻밤 자고 갈 거라고 한다. 그러면서 최양에게 말한다. "나 내려가면 같이 있어 줄 거지? 곤란하면 안 그래도 돼. 넌 그냥 집에 가서 자고, 난 밖에서 밤 새지 뭐."요 녀석 봐라? 밑장을 빼네? 하지만 최양은 이 밑장빼기에 너무나 쉽게 걸려든다. 이상한 짓(응?) 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하면, 하룻밤 함께 있어 주겠다고 한 것이다.

이번엔 황새가 찾아와 거의 내려 앉기 직전까지 갔다가, 최양의 완강한 거부로 다시 날아갔다. 상대는 황새를 부르기 위해 모텔 TV의 이상한 채널을 트는 등 별 짓을 다했지만 황새를 부르는 데는 실패했다. 생각해 보자. 둘은 문자를 주고 받는, 어찌보면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이다. 그런데 하룻밤을 같이 보내자는 남자와, 알았다고 말하는 여자가 있다면, 연애가 아닌 황새가 찾아오는 건 필연적인 일 아닐까? 무슨 조건을 세우든, 하룻밤을 같이 보내겠다고 승낙한 여자를 남자가 어떻게 생각하는 지 정말 모르는가?

ⓒ지금까지도, 만날 때면 연인처럼 지내는 것.


첫 만남에서 같이 밤을 보냈고, 두 번째 만남에서도 같이 밤을 보냈다. 문자로 수다를 떨던 두 사람은, 현실에선 만나기만 하면 연인들이 하는 행동을 별 거리낌 없이 한다. 그렇게 몇 달을, 둘은 만나면 모텔에 가는 것이 당연한 사이로 지냈다. 물론, 최양이 늘 완강히 거부했으므로 황새가 내려 앉진 않았다. 

"이상한 짓은 하지 않는다."라거나 "남들이 생각하는 엔조이 같은 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하기 전에, 둘의 관계 자체가 얼마나 이상하지 생각해 보길 권한다. 최양은 "그 남자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이상한 관계를 만든걸까요?"라고 묻고 있지만, 그 상황이 가능하도록 허락한 것은 최양이다. 오늘도 그 사람이 전화를 해 모텔에 가자고 하면, 최양은 또 허락할 것 아닌가. 이게 맞는 답인지 틀린 답인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무작정 동그라미만 치고 있으니 엉망이 될 수밖에.


3. 그 사람 외롭다는데, 지금이 기회 아닐까요?


지금은 두 사람이 예전만큼 연락을 하지 않는다. 최양은 둘의 관계를 연애로 묶기 위해, 상대에게 "날 좋아하는 거냐?"고 묻기도 했다. 그 물음에 상대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애매한 관계 때문에 둘은 싸우기도 했다. 화가 난 최양이 감정을 실어 퍼부었고, 상대는 "그럼, 연락을 끊자."고 말했다.

그렇게 연락이 끊긴상황을 최양은 견디지 못했다. 며칠이 지나 다시 상대에게 연락을 했고, 상대는 그런 최양의 연락을 받아주었다. 그러다 다시 또 뜸해지고, 뜸해지면 싸우고, 싸우면 또 연락이 끊기고, 연락이 끊기면 최양이 또 못견뎌 연락하고, 뭐 그런 사이클이 계속 반복되었다. 그 와중에 최양이 내게 사연을 보낸 것이다. 최양은 이렇게 물었다.

"크게 싸운 이후에 꽤 오랜기간 연락을 안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얼마 전 연락을 했는데, 그가 외롭다고 하더군요.
지금이 기회 아닐까요? 이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는 솔루션 같은 거 없나요?"



그가 "제가 힘이 되어드리고 싶군요. 연락 주세요. 010-..."라는 댓글을 남겼을 때에도 그는 외로웠다. 최양과 문자를 주고받을 때에도 외로웠고, 처음 만났을 때에도 외로웠고, 최양의 동네에 와서 하룻밤 자고 갈 때에도 외로웠고, 둘이 매번 모텔에 가 있을 때에도 외로웠다. 그의 외로움이 새삼스런 게 아니란 얘기다. 그가 최양과 만날 때 외로움을 잠시 해소할 수 있었을 뿐이지, 외롭지 않았다면 그는 최양에게 연락을 하지도,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최양은 이미 너무 많이 그의 오답에 동그라미를 쳐 주었다. 첫 만남에서 자고 간다고 말하는 여자, 놀러 오면 하룻밤 같이 있어주겠다는 여자, 만날 때면 아무렇지 않게 함께 모텔에 가는 여자. 외로움을 해소하기 좋은 상대지만, 연애하고 싶은 상대는 아니다. 난 그나마 그가 그에게 반한 최양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치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라 생각한다. 하이에나를 만났다면, 그저 황새를 잡기 위해 "그래, 그럼 우리 사귀자."라고 말하거나, "네가 항상 거부하니까, 널 좋아하는 마음이 안 생긴다."며 밑장을 뺐을 수도 있다.


'사귀는 것도 아닌데 뭐. 문자로 넋두리나 하며 지내야지.'


라며 가볍게 만나려던 최초의 생각이, 결국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그 여정 중 몇 번이나 잘못된 길로 들어섰고 말이다. 되돌아 나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길이 끊긴 곳에서 '저기까지 조금만 더 가면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라며 무리하게 나아가려 하단, 전복될 수도 있다.

만남 어플이나 채팅, 클럽 등에서 만난 사람과 '가벼운 만남'을 가지려는 대원들이 볼 수 있도록 여기에 표지판을 세운다. '가볍게'라는 생각이 결국 현실을 낳을 것이고, 그 현실은 부정할 수 없는 자신의 아이가 될 것이다. 대충 푼 문제는 딱 그 정도의 점수가 나오는 법이다. 성적표를 받아 들고 후회할 땐, 이미 늦는 거란 걸 잊지 말자.



 "다른 남자들처럼 조급하지 않아요."라니, 대체 그동안 어떤 남자들을 만나 온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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