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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과여행/물고기가좋다

화이트 클라키의 탈피와 오렌지 클라키의 죽음

by 무한 2011. 11. 18.
가재는 탈피를 통해 성장한다. 헌 갑각을 벗고 나면, 이전보다 크고 깨끗한 새 갑각을 얻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죽는 가재들도 꽤 많다. 헌 갑각을 벗는 과정 중 어딘가가 헌 갑각에 걸려 벗어내질 못하면 가재는 죽는다. 가재들과 대화를 나눌 수 없는 까닭에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벗으면 되는 거 아냐? 왜 헌 갑각에 끼인 채로 죽는 거야?"라고 물어보진 못했다.

개인적으론 '아가미'와 관련된 문제일 거라 생각한다. 탈피를 다 마친 가재들 중에는 종종 아가미가 돌출되어 문제가 생기는 녀석들이 있는데, 그런 녀석들도 아가미가 너무 많이 돌출되었을 경우 죽고 만다. 때문에 헌 갑각을 벗지 못하는 녀석들도, 헌 갑각에서 아가미를 완전히 빼내지 못해 호흡이 곤란해 진 것이 아닌가 싶다.




미자(화이트 클라키)가 벗어 놓은 탈피각

처음 가재의 탈피를 목격하는 사람은 놀란다. 가재가 벗어놓은 탈피각이 '또 하나의 가재'같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들이 탈피 후 남기는 것은 '껍데기'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가 뱀이 벗은 허물이 '허물'임을 쉽게 알 수 있듯 말이다. 하지만 가재가 남기는 탈피각은 그 형태가 그대로 남아있기에, 얼핏 보면 가재가 쓰러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두들 보고 있나?" 탈피 성공 후 삿대질을 하고 있는 미자(화이트 클라키)

탈피를 갓 마친 가재는 말랑말랑하다. 게다가 아직 집게발이나 다리 등을 자연스레 움직일 수 없기에, 자연 상태에서는 적들에게 먹히거나 상처를 입기 쉽다. 어항 속에 사는 녀석들도, 탈피를 한 직후엔 다른 가재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가재뿐만 아니라 공격적인 생물이라면, 탈피 직후의 가재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 자신의 탈피각을 다 먹어 치우곤 만세를 부르고 있는 미자(화이트 클라키).
 
탈피를 마친 가재는 새 갑각이 딱딱해 질 때까지 안전한 곳에서 기다린다. 가재를 키우는 사람들은 이런 행위를 '몸을 말린다'고 표현하는데, 물 밖으로 나와 몸을 말리는 건 아니다. 실제로 '몸을 말린다'는 표현을 오해해 가재를 물 밖으로 꺼내 말려 죽인(응?) 사육자의 사례가 있기에 적어 둔다.




▲ 짝짓기를 위해 합사시킨 오로라(오렌지 클라키)와 미자(화이트 클라키)

오로라(오렌지 클라키, 암컷)가 어항에 혼자 있는 것이 안타까워 미자(화이트 클라키, 수컷)를 넣어 줬다. 미자의 족보를 좀 설명하자면, 미자는 백설이(화이트 클라키, 암컷)와 대일이(화이트 클라키, 수컷)의 아들(응?)이다. 공쥬(사람, 여자친구)님이 키우는 백설이가 새끼를 낳았을 때, 공쥬님과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치가재들을 분양해 주었다.

홍박사(사람, 친구)도 그 때 분양을 받아갔는데, 그 녀석들 중 살아 남은 것이 미자(화이트 클라키, 수컷)와 미숙이(화이트클라키, 암컷)다. 그 둘은 어른(응?)이 되었고, 미숙이는 포란(임신)을 했다. 가재는 '짝'에 대한 개념이 희박한 까닭에, 미자는 자신과 짝짓기를 할 미숙이를 '적'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서 참사가 벌어지기 전에, 홍박사에게서 미자를 데려 온 것이다. 마침 오로라도 혼자 있으니, 남자친구로 '미자'를 넣어 주면 될 거라 생각했다. 




오로라(오렌지 클라키)를 뜯어 먹고 있는 미자(화이트 클라키).

난 짝짓기를 하는 줄 알았다. 오로라가 누워 있고, 그런 오로라 위로 미자가 올라가 있었다. 그건 가재들의 전형적인 짝짓기 모습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짝짓기 자세를 하고 있는 둘의 부근에 '오렌지 클라키 발'들이 떨어져 있었다. 오렌지 클라키라면 어항에 오로라 밖에 없는데,

설마?

짝짓기가 아니었다. 미자오로라를 잡아먹고 있는 거였다. 다리를 하나씩 똑, 똑, 끊어 놓곤 연한 가슴 쪽 살부터 뜯어 먹고 있었다. 그렇게. 오로라는. 스튁스 강으로 헤엄쳐 갔다.



오로라의 어릴 적 모습. 5남매 중 오로라만 살아남았는데. 그런데.

꼴뚜기를 좋아하고, 오이를 잘 먹으며, 멸치를 사랑하던 오로라는 떠났다. 난 그저 오로라가 외로운 것 같아서 남자친구를 소개시켜 준 것 뿐인데. 오로라에게 미안하다. 미자(화이트 클라키, 수컷)가 가재를 즐겨 먹는 타입이라는 걸 미처 몰랐던 내 실수다.




▲ 내 속도 모르고, 내 맘도 모르고 열심히 먹고 있는 미자(화이트 클라키).

진짜 뜯어 먹다니. 미자는 저 일로 인해 재판을 받게 되었다. 줄새우가 재판관으로 참석한 가운데 재판이 이루어졌다. 미자가 진술했다.

"전 당시에 취중이었습니다. 제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기억도 안 나요."

줄새우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미자는 반발하며 외쳤다.

"전 미국 가재에요. 국적이 미국이라고요. 그 점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줄새우는 무죄를 선고했다. 아, 이게 꼭 어떤 사건을 비유한 건 아니고, 그냥, 그랬다는 거다.




오로라(오렌지 클라키)의 생전 마지막 모습.


잘가.

많은 이별을 경험하고 나니, 마지막엔 가장 단순한 인사말 하나만 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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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가재 삶으면 빨갛게 되는 건가요?" 이건 또 뭐야. 추천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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