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매뉴얼(연재중)/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6)

아재가 되어가는 삼십대 남자를 위한 연애 조언

무한 2017. 6. 27. 14:54

‘아재화(아저씨화)’가 활발히 진행 중이라거나 이미 진행된 대원들의 경우, 내게 사연을 보내는 제목부터가 다르다.

 

“제 사연 좀 봐주십사….”

“또 이렇게 되었네요. 허허.”

“요즘 만나는 처자의 마음이 궁금합니다.”

 

난 저런 식의 화법이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 사용되는 ‘산악회체’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나. 삼십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는 나보다 나이가 더 어림에도 불구하고, 마치 선천적 아재인듯 작성한 저런 사연을 읽다 보면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말투만 저런 게 아니라, 연애에 임하는 태도마저도 진짜 아재 같아서 말이다.

 

신기하게도, 그런 대원들의 경우 연애에서도 비슷비슷한 문제를 겪는 걸 볼 수 있다. 순하긴 하지만 투박하다든가, 열정이 말소된 나무늘보처럼 되어간다든가, 연애를 밥 잘 쏴서 연하 회원들이 좋아하는 동호회 활동처럼 하려 한다든가, 입 아프게 대화하는 건 다 생략하고 그냥 좀 이제 알아서 잘 되길 바란다든가 하는 문제다. 이런 문제들과 해결책, 오늘 함께 알아보자.

 

 

1.편한 연애, 쉬운 연애 같은 건 없다.

 

이성을 소개 받아 밥 사주고, 드라이브 시켜주고, 어디 가고 싶은 곳 있냐고 물어 데려가 주는 걸로 모든 게 다 해결되는 거라면, 나도 매뉴얼 쓸 일 없으니 참 편하고 좋겠다. 하지만 연애에서 저런 것들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된 후 함께 하면 좋은 것들이지, 그냥 처음부터 마냥 저런다고 썸에서 연애로, 연애에서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은 분명 아니다.

 

잘 몰라서 그러는 대원들도 있겠지만, 아재가 되어가는 꽤 많은 삼십대 남성대원들 중엔 이제 좀 편하게, 쉽게 연애를 하고자

 

-최소한의 감정으로만, 나머지는 경제적 호의로 채우려

 

하기 때문에 저런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일요일에 한 번 교회를 나가는 정도로 구원을 약속받으려 하듯, 그 정도로 만나 썸도 타고, 연애도 하고, 결혼까지도 좀 순조롭게 이어지길 바란다고 할까.

 

이제 나이도 좀 들고 했으니 뭔가를 간절히 바라는 게 너무 애들스러운 모습인 것 같기도 하고, 자꾸 더 말을 걸고 상대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이 점잖지 못하다는 생각에 그러는 것일 수 있는데, 그게 그래버리면 그냥 딱 그 정도의 관계만 만들어질 수 있다. 얼굴 붉힐 일 없고 실망하거나 서운할 일도 없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면 설레거나 기대되는 일도 없다는 단점이 있는 밍밍한 관계로 말이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당연히 다를 수 있는 까닭에 어떤 절대적인 기준을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난 최소한 ‘이번 주말에 같이 나들이가기로 한 상황’일 때의 마음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말에 같이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면 준비할 것과 가서 할 것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는가. 좀 전에 대화를 마쳤어도 나들이에 대한 뭔가가 문득 떠오르면 또 다시 말을 걸어 대화할 것이고 말이다.

 

그 정도로 마음이 쓰이는 관계, 그 정도로 집중하게 되는 관계가 되어야 뭐가 되어도 되는 거지, ‘인연이 닿았으니, 좀 잘해주면 잘 되겠지 뭐. 아니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정도의 마음으로는 데워지기만 할 뿐 끓을 수 없다는 걸 잊지 말자.

 

 

2.눈이 높아져서 그런 게 아닐 수 있다.

 

나이가 들며 점점 사람 보는 눈이 생긴다는 것에는 나도 동의한다. 그건 그간의 경험들로 인해 이젠 누굴 겪어보기도 전에 상대의 몇 가지만 보고도 그 사람에 대해 ‘이러이러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해지는 건데, 거기엔

 

-그런 예측이 완전히 빗나갈 수 있다는 문제

-대개 상대의 단점을 근거로 상대의 이미지를 만든다는 문제

-그 사람에게 그런 면만 있는 게 아니라는 문제

-문제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제

-반대 입장에서 보면, 이쪽은 더할 수도 있다는 문제

 

등도 함께 존재한다.

 

몇몇 대원들은 이걸 두고 ‘내 눈이 높아졌다’고 자체평가 하던데, 그런 대원들이 최종적으로 구애하는 이성을 가만히 보면 대개 서너 살 연하의 사교성 좋고 활발한 여자동생이다. 이쪽에서 카톡 보내면 상대가 즉각즉각 대답해주고, 또 모임 있는데 오빠도 올 거냐고 먼저 물어봐주고, 오빠 같이 좋은 사람이 왜 여친이 없을까 하는 이야기도 해주고, 연애상담 좀 해달라고 하면 이야기도 들어주고 짧게나마 조언도 해주니

 

‘이런 여자라면 결혼해도 좋지 않을까. 내조도 잘 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으로 ‘그녀와 잘될 수 있는 방법’을 내게 묻는다.

 

그런데 참 슬프게도, 그런 상대들은 이쪽을 ‘밥 잘 사주고 술도 잘 쏘는 아는 오빠’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알아두면 도움이 되면 됐지 손해를 볼 일 없으니 인맥으로 엮어둔 관계이지, 진지하게 연인으로 발전할 생각이 있는 관계는 아니란 얘기다. 오히려 상대가 이쪽을 이성으로 보지 않으며 ‘사귀게 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더욱 후하게 보일 수 있는 호의와 이해 같은 걸, 이쪽은 ‘내 높아진 눈에 꼭 맞는 모습’으로 오해하는 상황이 많다.

 

기대하는 게 없는 관계면 서운할 것도 없고, 더 가까워질 것 아니면 큰 피해를 주는 게 아닌 이상 상대의 단점에 대해서도 왈가왈부할 일 없다. 진지하게 만나보려던 어떤 여자사람이 ‘아는 여자동생’이 보이는 모습과 달리 서운함을 표현하거나 불만을 이야기 했던 건, ‘기대하는 게 있고, 더 가까워지고 싶었기 때문’일 수 있다는 얘기를 난 해주고 싶다. 이쪽은 ‘내 눈이 높아졌다’며 그녀의 그런 행동에 대해서는 ‘결격사유’로 판단한 채 마냥 호의적인 ‘아는 여자동생’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지만, 거기엔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속사정이 있기 때문일 수 있으니, 이 부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3.빠른 포기는 습관화될 수 있다.

 

아재가 되면 복근이 약해지는지, 상대가 답장만 한 번 늦게 보내도 반쯤 포기해버리는 사례가 많다. 그간의 경험들로 인해

 

-상대의 ‘이런 태도’는 그냥 ‘이런 마음’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

 

이라고 생각한 후 로그아웃 하는 건데, 내가 지난 주 매뉴얼에서 이야기 한

 

“상대는 이쪽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아직 서로의 발가락도 본 적 없는 사이기에, 상대에게 이쪽은 그저 ‘남자1’ 정도의 의미밖에 될 수 없음을 기억하자.”

 

라는 말처럼 아직 상대가 이쪽에 대해 신뢰, 의리, 우정, 애정 등을 갖기는 관계가 너무 빈약하다는 걸 잊지 말자.

 

이쪽에서 말만 꺼내도 상대가 리액션 해주고 거절 없이 따라와 주며 얼른 애정이 듬뿍 느껴지는 말과 행동들까지 하면야 쉽고 편하겠지만, 그런 사람은 그냥 매번 그러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으며, 덜컥 사랑한다는 말부터 하는 사람은 이쪽이라는 ‘한 사람’이 아닌 ‘자신이 만든 이쪽의 이미지’에 대한 구애를 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때문에 이후 현실화되어 가는 과정에 실망과 갈등은 필연적으로 감당해야 할 것이고 말이다.

 

그래도 그나마 저 정도 된다면 그건 나은 편이고, 몇몇 대원들의 경우 그냥 혼자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만 돌려보고는 ‘어차피 안 될 것 같음’이란 결론을 내린 뒤 포기하는 까닭에 내가 담배를 끊기가 어렵다. 카톡을 보내봤는데 성실한 답장이 오지 않는 걸 보니 만나자고 해봐야 거절당할 것 같아 거기서 포기한다든가, 어제 만나고 들어가며 약간의 갈등이 있었는데 그걸 보니 100% 완전하고 행복만 가득한 관계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포기하는 일들을 벌이기도 한다.

 

뭐 그건 그렇게 포기하고 다음에 잘한다면 문제없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빠른 포기가 아예 습관화되어버리기에 문제다. 그 마음은 점점 ‘되면 한다’는 생각을 부르게 되고, 나중엔 새로운 이성을 만나도 마음은 1/10만 할애한 채 낚싯대 끝의 찌 바라보듯 상대의 반응만을 관찰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느라 겨우 저 ‘남자1’의 모습만, 후하게 쳐줘봐야 ‘매너는 좋은 남자1’의 모습 정도만 보여주지 못하고 말이다.

 

전에 한 번 소개한 적 있는 ‘중고나라에서 세 번 사기 당한 지인’의 경우, 그 경험으로 인해 중고나라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잠재적 사기꾼일 거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택배거래를 하자는 판매자에겐 ‘그럼 물건 먼저 받고 후입금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지인이야 사기를 당한 경험이 있으니 그러는 것이지만 반대 입장에서 보자면 물건 받고 입금하겠다는 사람을 무슨 수로 믿을 수 있겠는가. 잘못되면 마음 아플까봐 마음은 손톱만큼만 할애하며 오로지 상대가 어떻게 하느냐만 지켜보고 있으면, 택배거래가 늘 불발되는 내 지인의 일이 연애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걸 기억해두자.

 

 

끝으로 하나 더 적어두고 싶은 말은,

 

-연애가 귀찮기만 한 일이라 그런 게 아니다. 모든 관계는 책임과 의무와 희생과 양보를 필요로 한다. 심지어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는 일에도 그러한 것들을 필요하다. 내 몸만 생각하자면 그건 참 귀찮고 피곤한 일들일 수 있지만, 서로를 위해 애썼던 그런 순간들이 축적되어 서로에게 ‘단 하나의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라고 할 수 있겠다. ‘상대가 날 그런 존재로 생각한다면 나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은 욕심에 지나지 않으니,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만나보길 권한다. 매번 앞 몇 페이지만 읽다가 책 덮는다면 그 책의 매력은 영영 모를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다 나중에 ‘독서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며 선을 긋는 것으로 합리화 하게 될 수 있고 말이다. 내 인연이고 내 연애고 내 사람이란 생각을 가지고 좀 다 바짝 다가앉아 보자.

 

카카오스토리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매일 오라면서 왜 이제야 글 올리는 거죠? 나 사실 나쁜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