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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사진(smoke photography) 찍으며 놀기

by 무한 2013. 6. 8.

연기 사진(smoke photography)찍으며 놀기
군대에 있을 때 우연한 계기로 대대 사진병이 되었다. 주특기를 받은 건 아니고, 부대 내 행사가 있을 때면 열외되어 행사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녔다. 당시 대대장님(학교로 치면 교장선생님)께서 자신의 대대장생활을 사진으로 많이 남기시려 한 까닭에, 인물 및 행사 사진을 질리도록 찍을 수 있었다.

마침 그 즈음 DSLR열풍도 불었던 까닭에, DSLR을 구입하는 장교들이 늘어났다. 부대 홈페이지 작업을 하고 있었던 나는 몇 달을 간부 숙소에서 지냈는데, 그때 장교들에게 사진을 알려준단 핑계로 '부대 내 출사'를 다녔다. 나무도 찍고, 꽃도 찍고, 군인도 찍고, 구름도 찍고, 그랬다.

부대에서 사진잡지인 <포토넷>을 정기구독 하기도 했고, 휴가를 나와서는 로버트 카파 사진전을 보러 갔으며, 말년 휴가 땐 <사진가를 위한 포토샵>의 저자인 김주원 작가님을 만나러 가기도 했다. 제대 후에는 '스튜디오에서 일을 하며 사진을 배울까?'하는 생각도 진지하게 한 적 있다. 그렇게 배워나가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입사해 작가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는 '동적인 인간'에게 어울리는 직업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직업에 필요한 건 엉덩이가 아니라 발이었다. 역마살이 낀 사람에게 유리하단 얘기다. 나처럼 지박령이 씐 듯 자리에서 꼼짝 않고 있는 '정적인 인간'에겐 그 직업이 '고문'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난 오늘 하루 24시간 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라고 하면 읽을 수 있지만, 5시간 정도 산을 오르라고 하면 울어 버릴 것이다.(반대로 내 지인 A군의 경우, 24시간 산을 타라고 하면 타겠지만 5시간 앉아서 책을 보라고 하면 몸을 비틀어 버릴 것이다.)

여하튼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 보니, 사진도 '내가 움직이며 찍는 것' 보다는 '피사체가 움직이며 찍는 것'이 몸에 맞는다. 좋은 경관을 찾아다녀야 하는 풍경사진보다는, 최소한의 동작과 많은 인내심이 필요한 접사사진이 더 끌린다.

그렇게 찍을 수 있는 사진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게 연기(smoke)사진 아닐까? 모니터에 검은 티셔츠 하나 걸어 배경으로 만들어 두고, 재떨이에 향이나 모기향 등을 피우며 찍을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사진이다. 그래서 '80일간 일주일에 한 테마씩 사진 찍어 올리기'의 첫 번째 주제로, 연기 사진을 선택했다.




▲ 작품명 <어머, 저건 사야해!>



지인에게 위의 사진을 보여줬더니 "그런데 가슴 부위에 뭔가 볼록 튀어나와 있는 거 아닌가? 흐흐흐."라고 했다. 지인에게 음란마귀가 잔뜩 씌인 것 같다.




▲ 작품명 <지켜보고 있다.>


한 편의 피카소 그림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들며,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테네'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사진이다. 피카소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고교시절 미술선생님 성이 '고씨'였다. 충청도 남자셨는데, 여유가 넘쳐흐르는 미술 비평으로 '고카소'라는 별명을 갖고 계셨다. 이게 그냥 들으면 안 웃기고, 그 선생님을 한 번 만나보고 나면 '고카소'라는 단어가 떠오를 때마다 빵 터진다. 고카소 선생님의 유행어로는 "기여?"가 있다.




▲ 작품명 <해하가(垓下歌)>


사면초가에 놓인 항우의 혼란과 당황, 분노와 자포자기의 심정이 보이는 듯한 사진이다. 항우가 사랑하는 연인을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 것 같은 심정에 우희를 두고 "우미인아, 우미인아, 너를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라고 탄식하는 모습. 초패왕 항우의 우희를 향한 사랑은 <패왕별희>로 전해지는데, 그 애달픈 이야기는 이천 년이 지난 현대 사람들의 코끝도 찡하게 만든다.




▲ 작품명 <가오나시(カオナシ)>


가오나시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귀신이다. 폐쇄적인 성격으로 사랑을 줄 수도, 받을 줄도 모르는 존재라고 한다. 귀신계의 '히키코모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가오나시가 날 찾아왔고, 난 그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 작품명 <바람기억>


위의 사진 좌측은, 나얼이 그리는 그림과 닮아 있다. 흑인 여성을 좌측 후면에서 바라본 모습. 그래서 처음엔 제목을 '나이지리아 얼짱(줄임말-나얼)'이라고 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나얼의 <바람기억>을 듣다 보면 후렴부 "그 바-아↗래→진↘"이란 부분에서 소리가 정수리를 뚫고 나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사진에서 그 느낌이 들기에 제목을 <바람기억>으로 정했다.




▲ 작품명 <Electric Maria>


사진을 찍고 나서, 루앙 대성당에 있는 마리아상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말하면 자꾸 "무한님도 프랑스 다녀오셨나요? 저도 작년에 다녀왔는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위에서 말했듯 난 정적인 인간에 속한다. 루앙 대성당은 구글어스를 통해 다녀왔다. 바게트빵에 버터 발라 먹으며 스트리트뷰 보다보면, 그곳이 바로 빠리. 봉쥬르?




▲ 작품명 <임신 하셨어요?>


직장생활을 할 때, 사내부부인 과장님 커플이 '부부 블로그'를 시작하셨다. 아이들 사진 올리고, 회사에서 키우는 강아지 사진 올리는 평범한 블로그였다. 그러다 어느 날 과장님이 아내 사진을 올리며, 장난으로 "아내는 둘째 임신 중."이라는 제목을 적었다. 쇼룸 테이블에서 긴장이 풀린 채 앉아 있는-그래서 배가 볼록 나와 있는- 부인을 찍어 올린 것이다. 블로그 이웃들은 앞다투어 "축하 합니다~", "배 모양이 남자 아이 같네요." 등의 댓글을 달았다. 그 날 이후 지금까지 그 블로그에는 새 글이 올라오지 않고 있다.




▲ 작품명 <초록 드레스의 여인>


퐁파두르가 초록드레스를 입고 찍은 사진을 보면 황홀하다. 퐁파두르의 본명은 '장 앙뚜아네트 푸아송'이다. 난 안동 장씨인데, 그녀는 어디 장씨일까. 이제 나도 나이가 있으니 이런 당혹스러운 개그는 그만 두어야겠다. 퐁파두르가 볼테르와 편지를 나누는 사이였다는 점, 평생을 궁중 사람들의 비방과 악평에 시달렸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그녀가 남긴 "나의 삶은 끊임없는 투쟁의 연속이다."라는 말은, 그녀가 여린마음동회원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녀에게 장미 한 송이 건네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것으로 내 80일 프로젝트 '한 주에 한 테마씩 사진 올리기'의 첫 포스팅은 성공적으로 시행한 것 같다. 이번 계획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12개의 포스팅이 올라올 것이고, 실패한다면 중간에 끊기게 될 것이다. 80일 프로젝트와 관련된 이 포스팅을 올리는 건, 시간이 지나며 점점 약해질 수 있는 의지를 서로 북돋기 위함이다. 그대가 계획한 80일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나도 한 주에 한 편씩의 글로 '신호'를 보낼 예정이니, 2013년 8월 23일까지 서로를 응원하며 꾸준히 걸어가 보자.




▲ 여러분의 '신호'는 추천버튼 클릭과 댓글로 보여주시면 됩니다. 추천과 댓글은 무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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