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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천오백자연애상담

저를 밀어내지도 않고 당기지도 않는 남자, 어쩌죠?

by 무한 2017. 3. 9.

이렇게 가정해보자. 난 솔로부대원이며, <한국의 야생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언젠가 그 모임에서 어느 여성회원에게 ‘나도 운정신도시에 사는데 갈 때 좀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래서 그녀를 가람마을에 내려주고, 나는 한빛마을로 돌아온 적 있다.

 

이후 그녀와 난 서로 카톡을 교환했고, 대략 한 주에 두세 번 정도 짧은 안부인사를 나누고 있다. 물론 그녀가 먼저 연락을 해오는 것이며, 난 그녀가 “혹시 너구리 서식지 아세요?”라고 물어보면 새암공원 뒷길 너구리 핫스팟을 짚어주는 정도로 대답을 해준다. 그러다 그녀가 모임에서 마이쭈도 주고 귤도 주고 커피도 주고 해서, 내가 밥 한번 사겠다고 해 등갈비를 사고 그녀가 커피를 산 적 있다.

 

그냥 딱 이 정도의 관계인데, 이 와중에 저 여성회원이

 

“그 남자는 저를 밀어내지도 않고 당기지도 않아요. 왜 그런 거죠?”

 

라고 묻는다면, 그건 내 잘못일까, 아니면 아직 서로 별로 친하지도 않고 오히려 등갈비까지 한 번 얻어먹은 적 있음에도 불구하고 뭔갈 더 기대만 하고 있는 그녀 잘못일까?

 

 

 

Y양의 사연을 다른 '아는 사이'인 관계에 대입해 보면 위와 같은 모습이 된다. Y양은 상대와의 관계에 대해

 

“둘이 같이 밥 먹기로 한 날, 저는 꾸미고 갔는데 그 분은 야근을 하셔서인지 매우 편안한 차림으로 오셨더라고요.”

“저는 이 상황에서 관계가 좀 발전했으면 하는데, 그냥 아는 동생이 밥을 먹자고 하니까 먹는 기분입니다.”

“나이차이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 사람이 너무 바빠서일까요. 제가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눈치 챘을 것 같은데, 왜 밀어내지도 않고 당기지도 않는 건지 궁금합니다.”

 

라고 했는데, 현재 둘의 관계는 ‘같은 모임의 아는 오빠동생 사이’인 게 맞다. 두 사람이 나눈 카톡대화만 봐도, 보통의 ‘친한 오빠동생 사이’일 때 나누는 대화보다 훨씬 얕고 멀며, 16일에 한 마디 나누고 27일에 다시 한 마디 나누는 관계는 누가 봐도 ‘아는 사이’인 거지 ‘썸’이 아니다.

 

 

아무래도 Y양이 모태솔로인 까닭에, Y양으로선 이 정도로 선톡 해가며 말을 걸었으면 자신은 최선을 다한 거라 생각하는 것 같다. 뭐라고 말해줘야 할까. 이 정도는 내가 동네에서 오가다 말을 트게 된 어느 교회 전도사님과 가끔 얼굴 볼 때마다 주고받는 안부인사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면, Y양이 너무 충격을 받을까?

 

Y양 – 오빠 이번 주 모임에 오세요?

상대 – 난 못 갈 듯싶어 ㅠㅠ

Y양 – 아아 ㅠㅠ 네! 추운데 힘내세요 ㅎㅎ

상대 – ㅎㅎ 그래~ 파이팅! ㅎㅎ

 

Y양이 혼자 그에게 어느 정도 호감을 품고 있으며 이런 적이 처음인지 아닌지 같은 건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게 아니고, 그것보다 Y양 스스로 어색하고 낯설어하며 그를 대하는 걸 먼저 좀 어떻게 해야 한단 얘기를 해주고 싶다. Y양은 저렇게 대화를 하고 난 뒤에도

 

- 상대가 대화를 얼른 마무리 지으려는 느낌을 받았다.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물론 그게 Y양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그가 막 “너는 와? 이번 주에 봤어야 하는데 아쉽네.”같은 이야기를 더 할 수 있는데 안 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상대 입장에서는 “추운데 힘내세요.”라는 끝인사를 들었으니 그냥 자연스레 끝인사로 화답해 준 것일 수 있잖은가. Y양은 이걸 전혀 눈치 채지 못했는지

 

“제가 궁금한 점을 핑계로 선톡을 하고 그 분에게 답이 오면 일단 감사인사를 하는데 그러면 보통 ‘오늘도 파이팅’하라는 등으로 먼저 카톡을 마무리합니다.”

 

라며 내게 하소연을 했는데, Y양이 말하는 그 ‘감사인사’라는 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맺음말’이다. 그러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질문을 이어서 하거나, 지금처럼 결론을 짓지 말고 “요즘 다시 좀 춥죠?” 정도로 이어나가는 방법들을 생각해 보길 바란다.

 

 

Y양은 내게

 

“제가 먼저 약속을 만들어야 하는 걸까요? 그래야 한다면 그러겠지만, 남자분이 거절을 못하는 타입이라 제가 약속 잡으려는 걸 거절하지 못하는 걸 수 있다는 생각이….”

 

라는 이야기도 했는데, 이전에 밥 얻어먹었으니 이번에 Y양이 연어초밥 무한리필 쏘겠다고 하면 된다. 아니면 영화 무료관람권이 생겼는데 보러 가자고 해도 되고, 동네에 방탈출카페인가가 생겼는데 혼자 가는 곳이 아닌 듯하여 못 가고 있다는 얘기를 슬쩍 흘려도 된다. 이도저도 어려우면 폰에 아무 어플이나 깔아 놓고는 이거 어떻게 지우는지 아냐고 물어봐도 되고, 그의 인생에 평생 잊지 못할 여자로 기억되려면 뜬금없이 “오빠 혹시 발냄새 나요?”라고 물어봐도 된다.(발냄새 질문을 할 경우 심쿵의 효과로 잊지 못할 여자가 되는 것에는 성공하겠지만 연락이 끊길 수 있다는 부작용이 있다는 걸 밝혀둔다.)

 

더불어 Y양은 오늘날 이 시점에 ‘돌직구’를 날릴 생각을 하는 것 같던데, 남성대원들을 대상으로 한 매뉴얼에서 지겹도록 말했지만, 아직 중앙선도 넘지 않은 상황이니 거기서 슛은 날리지 말았으면 한다. 드리블을 해서 골문 앞까지 가야 골이 들어갈 확률이 높은 거지, 드리블 어렵다고 반대 진영에서 뻥뻥 차며 기도만 하고 있으면 곤란하다. Y양이 지금보다 3.7배 정도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해도, 그게 보통을 기준으로 했을 땐 결코 과한 게 아니니, 걱정은 일단 뭘 좀 저지르고 난 뒤에 하자.

 

그리고 대화 역시, 서로에 대해 뭘 좀 알아야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니, Y양의 일상에 대해서도 상대가 물어봐 주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살짝살짝 풀어놔 보길 바란다. 내가 날씨 얘기를 하랬다고 정직하고 고지식하게 날씨 얘기만 하지 말고,

 

“며칠 사이에 갑자기 추워졌어요. 주말에 시험 보러 가는데 그땐 날이 좀 풀릴는지 ㅠㅠ”

 

정도로 섞어서 말하면 된다. 그럼 무슨 시험인지에 대해 대화를 더 나눌 수 있고, 운이 좋으면 주말 이후 시험 잘 봤냐며 상대가 또 말을 걸 수 있다. 이런 게 쌓이다 보면 대화가 저절로 풍성해지는 법이니, 조급해하지 말고 차곡차곡 포석을 놓아 보길 바란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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