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적으로 변한 남친, 왜 그렇게 변한 걸까?

2015/03/06 07:17 by 무한™  

작년에 난 동네 공원에 걸어둘 새 모이통을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외국 사이트의 새 모이통 디자인을 참고한 뒤, 가구를 만드는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내가 지인에게 첫 번째로 실망한 건, 그가 내게 "그런 걸 만들어서 뭐하려고 그래?"라는 이야기를 한 부분이었다. 난 오래 전 그가 자동차 오디오 튜닝을 하겠다며 우리 집 앞 공터에서 내 공구를 빌려 작업할 때에도 흥미를 보이며 도왔다. 그 외에 여기다 전부 적기 어려운 크고 작은 일들이 있는데, 난 그를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에 그가 '쓸데없는 짓'을 같이 하자고 하든 아니면 '허튼소리'를 하든 가볍게 여기거나 흘려 듣지 않았다.

 

두 번째로 실망한 건, 내가 구입하려는 나무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어, 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시간 나면 알아봐 줄게."라며 대충 말을 끊고 성의 없이 응답한 부분이었다. 그가 꼬꼬마 시절 자기소개서나 리포트 쓰기가 어려워 내게 부탁했을 때, 그리고 그의 연애가 종말을 맞이할 때면 저녁이든 새벽이든 가리지 않고 만나서 얘기 좀 하자고 할 때, 내가 내 일까지 접어두고 그를 대했던 것과는 다른 태도였다.

 

세 번째로 실망한 건, 그 후 내가 한 번 더 그에게 이야기를 꺼냈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새 모이통'에 대해서는 그에게서 아무 이야기도 없는 부분이다. 뭐, 아쉬운 사람이 우물 파야하는 것이겠지만, 내가 상대를 생각하듯 당연히 상대도 그렇게 나를 생각할 거라 의심 없이 믿었던 신뢰가 무너져 좀 씁쓸했다. 그 후 그가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내며 포토샵으로 가구만 좀 배경에서 분리시켜 줄 수 있냐고 부탁한 적 있는데, 난 처음으로 바쁘다며 거절하곤 그 기능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어느 웹페이지 링크만 주었다.

 

지인에 대한 불평이나 뒷담화를 하고자 이런 이야기를 꺼낸 건 아니다. 사연의 주인공에게 해줘야 할 중요한 말이 있는데, 그 말을 하기 위해 내 사례를 잠시 소개한 거라고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출발해 보자.

 

 

1. 어디까지가 '그의 모습'일까?

 

내가 서두의 저 이야기를 꺼낸 건, 사연의 주인공인 K양에게

 

-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

- 그것까지도 전부 그의 모습이다.

 

라는 이야기를 해주기 위해서였다. K양의 남친은 현재 K양에게 "꺼져.", "X(犬)소리 좀 하지 마."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K양은 저걸 '본래 그의 모습과는 다른 부분'으로 생각하고 있다. 내가 매뉴얼을 통해 그간

 

"원래부터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라는 이야기를 지겹도록 해왔지만, 대부분의 커플부대대원들은 본인의 연애에 저 말을 적용하지 못 한다. 자신에게 사랑한다 속삭이고 자신을 위해 헌신하던 사람이 어떻게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냐고 생각하며 말이다. 때문에 그들은 '이건 잠깐 뭐가 잘못되어 일시적으로 이런 거지, 상대가 나쁜 사람인 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낼 뿐이다.

 

그럼 나도 할 말이 없다. 위와 같은 상황을 겪다가도 둘이 관성에 이끌려 갈등을 대충 봉합한 뒤 만나

 

"무한님이 틀리셨네요. 우리 둘, 다시 잘 만나고 있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례도 종종 있는데, 그런 말을 들어도 난 뒤통수가 가렵지 않다. 그렇게 '1기'나 '2기'에서 고비를 넘겼더라도 몇 년 더 지난 뒤 결국 '말기'를 극복하지 못한 채 헤어져 엄마도 모르는 알콜중독에 걸린 대원들의 사례를, 꺼내놓을까 말까 고민하며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이다. 스킨십에 후진 없듯, 막말과 무례에도 후진이 없기 때문이다.

 

"남자친구가 재취업에 성공하면 다시 상황이 좋아질 수 있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난 그 가능성이 K양이 두 번 연속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보다 낮다고 생각한다. K양은 상대가

 

"지금 내 머릿속엔 생활과 미래에 대한 생각 밖에 없다.

내 미래를 보고(미래의 보상을 생각해) 고생하든가,

아니면 떠나든가 네가 선택해라."

 

라는 이야기를 하니, '미래의 보상'을 생각하며 고생하는 쪽을 택한 건데, 지금 인생의 걸림돌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봐야 그 자리에서 빼내질 운명밖에 남지 않은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두 사람이 대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는,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보자.

 

 

2. 둘의 연애경영 실패.

 

인터넷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가 본 방송 캡쳐화면으로 기억한다. 프로그램 제목은 기억하지 못 하는데, '삼포세대'와 관련된 주제의 방송이었던 것 같다. 그 화면 중에는 서른이 된 누군가가 또래와 이야기를 하다가

 

"난 어렸을 때 진짜 내가 서른이 되면,

결혼해서 아파트에 살며 차 몰고 다니고 있을 줄 알았어."

 

라는 말을 하는 부분이 있었다. 자신이 서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계약직으로 일하며 학자금 대출을 갚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는 의미로 한 말이었던 것 같다.

 

난 사회초년생인 K양의 남친이, 바로 저런 현실을 피부로 느끼며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학자금 대출을 받아 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 비용 등으로 연애를 할 때에는 몰랐던 것이다. 학교에서도 여러 활동을 하던 인재였으니 본인은 학교 졸업하면 당연히 중상위권 기업에 입사를 할 줄 알았던 것 같다. 물론 입사를 한다고 행복한 미래가 곧바로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 아무래도 좀 어렸던 까닭에 어린 생각으로 쉽게 여겼던 것 같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 보니 그게 아니었던 거다. 학교를 나오는 순간 자신은 '채무자'가 되어 있었고, 본인의 예상대로라면 당연히 합격했어야 하는 기업에서 서류심사만 붙고 면접에서 떨어졌다. 이건 학교에서 낮은 성적을 받았다고 씁쓸해 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당장 취업이 안 되니 돈은 없고, 알바비에서 생활비와 대출금을 빼고 나니 몇 만 원짜리 폰 요금제를 유지하는 것조차 벅차진다. 연애를 하며 데이트 비용을 아끼고 뭐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 입에 풀칠하기조차 힘들어 지는 것이다. 이 생활이 그의 신경을 얼마나 바짝 말라비틀어지게 만들었을지는, 그가 K양에게 한

 

"너를 만나지 않는 날, 난 생활비가 모자라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웠다."

 

라는 말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누가 그러라고 시킨 건 아니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이 가엾고 순진한 꼬꼬마는 오히려 자신이 앞장서서 스스로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자신은 삼각김밥을 먹어가면서도 K양을 만났을 땐 계산은 당연히 남자가 해야 하는 거라고 큰소리치고, 식당에 둘이 가서 메뉴도 세 개씩 시켜 마음껏 먹어가며 즐기는 데이트를 했던 것이다. 그건 멋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해 결국 파멸로 가게 되는 길인데, K양이 남친은 그 길에서 가속페달을 밟았던 것이다.

 

이후 K양의 남친이 잠깐 취직했다가 그만두기도 했는데,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 넘어가자. 여하튼 대학이라는 울타리가 어느 정도 보호해주고 있던 상황에서 벗어나고 난 뒤, K양의 남친은 자신의 생활과 연애 모두를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K양에게 반해 모아 놓은 돈 써가며 열심히 헌신하는 연애를 한 근 2년의 결과가, 끼니 걱정해야 하는 빈털터리 취준생이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왜 전과 같지 않냐는 뉘앙스로 불평만 해 대는 K양을 보니, 이 연애엔 답이 없으며 K양이 인생의 걸림돌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없는 와중에도 허리띠 졸라가며 모아놓았던 돈도 K양과의 연애를 시작한 뒤 다 녹아 사라져 버렸으니까.

 

위의 시기를 기점으로 해서 그의 K양에 대한 마음과 애정이 서서히 사라졌던 것 같다. K양은 그가 "친구나 연인 보다는 가족이 우선이다."라는 이야기를 한 걸 두고 가족애가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던데, 그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가 저런 힘겨운 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 K양은 '너에게 서운한 점들'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이야기 했을 뿐이지만, 그의 가족들은 그를 토닥여 주었을 테니까.

 

더불어 그가 자신의 힘든 상황을 털어 놓았을 때, K양이 

 

"그럼 지금은 내가 돈을 더 버는 입장이니 내가 더 많이 쓸게.

미안하면 나중에 더 잘해주면 돼."

 

라고 이야기 한 것에 대해 정이 뚝 떨어져 버렸을 수도 있다. K양도 '남자친구를 진심으로 생각해 한 저 말'을 한 이후 남친이 급속도로 변했다고 하는데,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입장에선 저 말을 듣는 순간 '나에 대한 얘의 마음은 조건부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이건 말로 설명하기 좀 어려운 미묘한 부분인데, 왜 누군가에게 저런 말을 들었을 때 '이 사람이 날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는 반면, '이 사람이 날 이해하는 척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잖은가. K양의 저 말을 포함한 전후행적을 봤을 땐 아무래도 후자 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3. 경영 실패 후에도 계속된 만남.

 

잔인하다. 그래도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인데,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잔인하다. K양의 남자친구는 K양을, 자신의 사회생활 도입부를 망친 사람으로 설정해 둔 듯 보인다. 때문에 거기에 대한 '복수'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는 위의 상황에서 이어진 200일의 만남동안 K양을 정서적으로 고문했다.

 

우선, K양 남자친구가 깔아 놓은 전제는

 

"난 아무 것도 해줄 게 없다. 나랑 계속 만나면 고생한다.

고생하지 마라. 난 분명 고생하지 말라고 말했다.

내가 이렇게 말했는데도 네가 고생해도 좋다고 대답한다면,

뭐, 그래, 어디 한 번 해 봐라."

 

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연애는 200일간 K양 혼자 이끌어 왔다. 남자친구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대로 K양은 움직였으며, 경제적으로도 K양이 전부 부담하기로 한 까닭에 만나면 K양이 돈을 썼다. 이걸 두고 예전에 사귀던 모습에서 그 역할만 둘이 바뀐 거 아니냐고 할 독자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는데, 남친에겐 K양에 대한 아무 애정과 관심도 없다는 것에서 큰 차이가 있다.

 

"나 공부하니까(공부하는 중이니까) 그만 말 걸어."

"오지 마. 괜히 사람 화나게 하지 말고 집에 가라."

"X소리 하지 말고 그냥 가."

"꺼져."

"며칠간 연락하지 마."

"언제라도 나 만나는 거 힘들면 말해."

 

어느 날은 K양은 남자친구 집에 갔다가 나오며 조금이라도 바래다주면 안 되겠냐고 말한 적이 있는데, 남친에게 돌아온 대답은

 

"이래서 내가 너랑 헤어지려는 거다.

난 네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내게 바라는 게 있다면, 헤어지자."

 

였다. 남친의 입에서 나오는 저런 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강도가 점점 심해졌고, 막말과 욕설의 단계를 거쳐 K양을 '피해망상 환자'취급하기도 했다. 나아가 그는 K양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것을 지적하며, 자신에겐 쉽게 받아들이고 오케이 해 줄 연하가 맞는 것 같다는 말도 했고 말이다.

 

"무한님은 제가 왜 이런 만남을 제가 유지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힘드실 수 있지만,

남자친구가 저런 말을 많이 해서 저를 힘들게 하는 반면,

또 사랑한다는 표현도 많이 합니다.

싸움이 없는 순간엔 절대로 헤어질 수 없는 천생연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게 저를 사랑해줘요."

 

다들 그렇게 말하곤 한다. 병문안을 한 번도 안 오는 남친을 둔 어느 여성대원도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꽤 심각한 일로 입원했던 건데, 그녀의 남친에겐 친구들과 만날 시간은 있어도 그녀의 병문안을 올 시간은 없었다. 그녀가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1층 로비에 내려가 남친에게 전화를 하기도 했는데, 남친은 거기까지 갈 택시비가 없다는 괴상한 말들만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그러면서 짜증나게 할 거면 앞으로 전화하지 말라고 했고 말이다.

 

그녀의 그 남친도, 평소 그녀가 그의 집에 찾아가면 잘 해줬다고 한다. 현재 자신의 능력이 안 되는 까닭에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하다는 말로 그녀를 감동시키기도 했고, 찾아갈 때마다 애정의 변화 없음을 증명하려는 듯 열심히 스킨십을 해 그녀는 그게 '그의 원래 모습'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그 외의 모든 순간엔 그가 그녀를 동네 개만도 못 하게 대했지만 말이다.

 

 

뭐라고 마무리를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K양은

 

"다른 거 바라는 거 없습니다.

그냥 제가 어느 정도라도 존중받는 연애를 하고 싶어요.

서로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는 그런 연애…."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사연 속 K양의 남친은

 

"무슨 또 새해 소원을 같이 빌어.

X(犬)소리 하지 말고. 그냥 가."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정도면 이미 둘의 연애가 납골당에 들어갔다는 건데, 살릴 수 있는 가망이 있냐고 묻는 K양에게 난 뭐라고 말해주면 좋을까. K양의 남자친구에게선 책임감과 존중은커녕, 애정과 관심마저 말소된 듯 보이는데….

 

지금이라도 상대에 대해 알게 된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자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내게는 결혼한 커플부대원들의 사연도 많이 오는데, 그 중에는 남편이 사생활에 대한 노터치를 요구하며 한 달에 딱 80만원만 주며 이 돈으로 못 살 것 같으면 이혼하자고 말하는 사례도 있다. 그는 아내에게 돈이 부족하면 나가서 돈 벌어 생활비로 쓰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아내가 울며 하소연을 하면 또 시작이라고 구박하며, 재미삼아 아내 부모님을 욕하며 아내를 자극하기도 했다. 대체 그녀는 왜 그런 남자와 결혼한 거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도 연애할 때에는 꽃다발 선물하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어 넘겨주는 로맨티스트였다.

 

끝으로, K양의 질문을 다시 한 번 보자.

 

"남자친구가 재취업에 성공하면 다시 상황이 좋아질 수 있을까요?"

 

현재 K양이 모든 걸 감당하며 혼자 노력해 연애를 이끌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K양이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여유로우며 절실한 고민들을 할 일 없다고 생각하는지 비꼬는 말들까지 하기도 한다. 이런 그가 재취업에 성공하면 다시 전처럼 K양에게 꽃다발을 안기고, 반지를 선물하는 연애 초기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될까? 작은 것 하나라도 내게 바랄 거면 즉시 헤어지자고 하는 그가, 재취업에 성공하면 다시 K양에게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쏟기 시작할까? K양의 사연과 흡사한 어떤 사연에서, 결국 남자가

 

"그래. 너 고생 많이 했다. 내가 너 가방 하나 사주고 끝낸다. 됐지?"

 

라는 이야기를 했던 부분이 떠올라 입 안이 쓰다.

 

+ 내일은 [남자들이 경악하는 삼십대 여자의 행동 BEST5]가 발행됩니다. 불금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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