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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가 경기도 일산에서 게토(ghetto)라는 것은 똥꼬에 털이 나기 시작하던 열 일곱살 때 쯤 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건조대에 널어놓은 옷을 훔쳐가는 일이야 다른 동네에서도 비일비재 할 것이고 군대에서도 남의 이름이 적힌 빤스를 나도 가져와본 적 있으니 그렇다 손 치더라도 도대체 교복은 뭐하러 훔쳐가는지, 그거 가져가서 뭐하려고? 학교다니려고?

자전거를 묶어놓고 은행에 다녀오면 앞바퀴만 남아 있는 이 아름다운 동네. 이사갈 집에 도배와 장판 다 해놓고 새집증후군 없앤다고 며칠 환기 시킬겸 비워놨더니 그새를 못참고 베란다로 기어들어가 지네들 집처럼 술먹고 담배피던 소년 소녀들. '경찰서 갈래, 이삿짐 나를래?'라는 말에 묵묵히 책상과 가재도구들을 옮기던 그 아름다운 소년 소녀들.

어젯밤 내 차를 털어간 그대를 난 꼬꼬마라고 생각한다. 뒷자석에 버젓이 구글 수표가 놓여있었지만 그게 뭔지 모르는지 수표는 놔두고 그대는 나의 소중한 디스 일곱 갑을 가져갔다. 게다가 mp3가 가득담긴 usb를 가져갔다. 그 mp3를 내가 어떻게 모았는지 아는가? 무료회원 가입하고 몇 곡 다운받을 수 있는 사이트에 가입했다가 연장되면 요금 나가는지 모르고 계속 놔둬서 모기처럼 결재되던 그 usb란 말이다.

그대가 선바이저를 내려 내 통장을 찾아냈을때, 그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공이 여러개인 그 숫자에 '아싸 월척!' 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미안하다.

그 통장이 아직 정리를 안해서 그렇다. 아마 거기에 7천원 정도 들어있을텐데 만원 뽑으려면 그대가 3천원을 입금해야 할 것이다. 맨 앞장에 연필로 적어 놓은 네자리 숫자. 사실, 그건 내가 이런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군가 내 통장을 가져가 돈을 인출하려는 시도를 할때 골탕먹으라고 적어 놓은 아무 상관 없는 숫자다. '도설비(도둑을 설레이게하는 비밀번호)' 정도로 이해했으면 한다.

덕분에 난 통장과 현금카드도 새로 만들고 고춧가루가 앞니에 껴 있는 은행직원과 (왜 그리 빼주고 싶던지...) 환율이 어쩌고 금이 어쩌고 하며 구글수표를 추심전매입하는데 성공했다. 기업은행에서만 해준다, 주거래은행만 된다 뭐 말들이 많아서 그저 집에서 읽기만 했는데, 그대 덕분에 은행까지 들리고 추심전 매입도 성공한 것이다.

회사에 도착해서 사장님께 말씀드렸더니, 역시나 쿨한 사장님께서는

"차에다 똥 안 싸놓은 걸 다행으로 여겨라"

라는 진리의 말씀을 들려주셨다.

그대의 생활고도 이해가 간다. 오죽하면 내 차를 털었겠는가. 뭔가 있을 것 같은 앞좌석 나무상자를 열었을 때, 내가 운전하다가 주전부리 하려고 넣어 놓은 아몬드와 호두를 발견했을 때 실망했을 그대의 표정이 눈 앞에 선하다. 그것 뿐이겠는가. 조수석 서랍을 열었을 때, 예전 사랑니 어택 덕분에 마련한 진통제와 쌍화탕을 보며 그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이색히 정체가 뭐야..'

뒷자석 발판에 있는 뼈다귀들과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런닝구를 보며 의문은 더욱 증폭되었을 것이다. 뼈다귀는 회사 개 주려고 모아놓은 거고, 런닝구는 안에 입고 갔다가 요새 날씨가 더워서 벗어 놓은 거다. 주변에 피가 떨어져 있어서 더욱 놀랐겠지만, 얼마전에 소 생간 싸게 판다길래 사다먹다 흘린거니 안심해도 좋다.

근데, 아무리 차가 엉망이어도 그렇지 담배를 훔쳐갈 것 같으면 보루째로 가져가지 알맹이만 빼가고 포장되어 있는 종이는 왜 버리고 갔는가. CSI의 그리썸 반장이 왔다면 그대는 벌써 잡혀서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빌고 있겠지만, 이깟 좀도둑질에 CSI가 출동해 줄 리도 없고, 경찰서 가서 USB와 담배 일곱갑을 도난당했다고 신고하기도 뻘줌해서 이번엔 그냥 넘어간다.

밥은 먹고 다니냐?

신한은행카드는 내가 정지 시켰고, 7천원 남아있는 국민은행카드는 아직 쓸 수 있으니 어디가서 순대국이랑 더운밥 먹으면서 왜 그랬을지 반성하길 바란다. 다음번에 또 내 차를 털지도 모르니 USB는 새로 구입해서 찬송가만 잔뜩 채워 놓으마. 그거 들으면서 회개해라.

그리고, 우리 한 번 만나자.

요즘 형이, 힘이 남아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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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J2010.05.05 22:0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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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도둑은 저희 아빠 차 백미러를 떼어가 버렸다는...;;;;

안녕하세요!!
처음 들리는데 정말 글 잘쓰시는것같아요!!@@@@
앞으로 많이 들릴게요~!

cynical witch2010.05.10 00:3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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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라인을 비롯 계기판과 에어콘 라인까지 몽땅 털어간 그녀석은 꼬꼬마가 아니겠찌....아...;;;

내차 보조석 앞주머니엔.. 진통제 한다발과 까스활명수..블랙커피스틱..

뒷자리엔 내 심심풀이 비상간식 양갱..김.. 라면한봉지..등..

보조석 발판엔 운전하며 던진 쓰레기 나빌레라..

또한번 깜짝 ... 아.. 나 여기와서 귀신에 홀리고 가는것 가꼬나..;;

뽀글뽀글이2010.05.20 11:5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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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이글 읽고 넘 웃겨서.. 댓글 남깁니다
진짜 ㅋㅋㅋㅋㅋ 아 완젼 사무실에서 끅끅대며 웃었네여^^
...진짜 어떻게보면 기분나쁘고 넘어갈 일인데
그냥 귀여운꼬꼬마를 용서하며...ㅋㅋㅋㅋ 재치있는 언어로 글을 써놓으셨네여 넘 재밌게 읽었어용

vvhen2010.05.20 18:4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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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남자의 친절한 관심 구별하는.. 글을 보러왔다가 이 글 보고 푸하하 웃고 갑니다^^ㅋㅋ

웨스2010.05.25 23:1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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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너무 센스있으시네요~
오늘 기분 꿀꿀했는데..님 블로그 보구 신나게 웃다 갑니다.
자주올꺼에요~^^

상미군2010.06.25 14:2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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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빵 터지면서 읽었네요~~
전에도 우리집 좀도둑이 들어서 아부지가 아끼시던 1990년도에
150만원주고 풀세트 구입하셔서 오빠에게 메는것 조차 허락하지 않으시던
그 카메라... 하나 훔쳐가고 가져가려면 다 가져가지.. 렌즈통이며 다리등은
왜 놓고 가서 다신 카메라를 안사시게 만들었는지..
제 저금통도 두고 엄마 귀금속도 두고;; 하... 티비위에 15,000원만 가져갔을뿐이라죠 ㅋㅋㅋ 도둑들도 소심해요

테오브로마2010.07.24 15:0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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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재미있어요~ㅋㅋㅋㅋ

자주 방문할게요~ㅋㅋ

재미있는글 많이 올려주세요~ㅋ

ㅎㅎ2010.12.31 01:2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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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아빠 차도 누가 털었는데... 아빠 차 뒤에 진짜 돈되는 기계 부품.. 팔면 100.200하는거는 다 두고 하이패스 쓰기전 통행료 내려고 모아둔 동전만 가져갔다능...;;

꼬마도깨비2011.01.05 14:5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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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들렀는데
차분한 진솔함에 반해 계속 스크롤을 내리게 만드네요!
꼬꼬마녀석들 이야기,,,정말 재미나요 ㅋㅋ
도설비,,,저도 하나 키워봐야겠어요 ㅋ

2011.01.0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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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댓글입니다

부천개소2011.01.06 21:5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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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생들이 내물건 가져간거만 해도...
자전거3대, 만화책, 저금통, 강아지 등등
너무 많이 가지고 있어도 참 골치아파요~

꼭 그 분이랑 다시 만나셨으면 좋겠네요.

새미~2011.01.14 19:3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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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ㅋㅋㅋㅋㅋㅋ 피 ㅋㅋㅋㅋㅋㅋㅋㅋ

새미~2011.01.14 19:3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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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ㅋㅋㅋㅋㅋㅋ 피 ㅋㅋㅋㅋㅋㅋㅋㅋ

JayZ2011.11.20 07:5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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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님, 글보다가 빵터져서 페이스북에 퍼갑니다 >.<;;
혹시 결례가되었다면 삭제할게요.

개죽통2012.01.25 17:4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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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잡히면 숨통을 끊어 놓으세요 무한님

dasaru2012.06.20 20:4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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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좋은 경험도 재미있는 일화로 바꾸시는 재주가 있으시네요 ㅎㅎ
몇 년전 글이라 답글 써도 별로 소용없을 것 같아 차례로 읽기만 하다가
재밌는 글 읽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의미로 한 번 댓글 남깁니다.
긍정적이고 유쾌한 사고방식을 저도 본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음 글도 잘 읽겠습니다!

쥬룐2013.03.21 09:5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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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남아돈다 ㅋㅋㅋㅋㅋㅋㅋ
뼈있는 한마디네요 ㅋㅋ

qlalfqlalf2013.05.09 1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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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전 셔틀버스안이지만ㅠㅠ무한님 글을 지각도 잊게해줄만큼 재밌네요ㅋㅋㅋㅋ

2014.06.18 11: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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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ㅋㅋㅋㅋ

시드니남자2016.09.26 20:2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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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찬송가에서 무릎을 딱 쳤습니다!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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