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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천오백자연애상담

왜 제 남친들은 더 잘해줄 자신 없다며 다 떠나갈까요?

by 무한 2017. 4. 10.

누군가가 K양에게 잘해주는 것은 K양에게 호감과 애정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그런 친절과 호의를 받은 후 비슷한 방식으로 베풀어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예컨대 상대가 이어폰을 하나 구입하며 K양 몫으로 이어폰으로 하나 더 구입해서 선물하면, 그건 훗날 K양도 비슷한 상황일 때 상대의 것 역시 챙겨주길 바라기 때문이지, 상대가 그냥 ‘선물해야 할 운명을 타고난 사람, 그런 걸 기쁨으로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은 아니다.

 

쉽게 말해,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 한단 얘기다. 상대가 수치상으로 과거엔 100을 주다가 현재 90으로 줄었다고 상대 옆구리를 찔러대기 시작할 게 아니라, K양도 주는 걸 늘려 50정도만 주던 걸 70이상은 줘야한다. 그게 아니라면 그건 그저 주종관계일 뿐이며 상대로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자신만 충성하고 헌신하며 노오오오력을 해야 하는 상황에 필연적으로 지치게 된다.

 

 

 

K양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는 상대에게 마음을 열었기에 상대에게 의지하기 시작했으며, 제 생활 역시 상대에게 맞춰서 지냈는데요?”

 

그건 K양이 상대에게 뭔가를 ‘준 것’이 아니라, 상대 등에 ‘업힌 것’에 더 가깝다. 상대를 믿고 의지하기 시작했으니 그가 더욱 충성하고 헌신해야 한다는 건, 회사로 따지면 사장이 직원에게

 

“난 이제 자네를 신뢰하며 회사의 중요한 일들도 자네에게 맡길 수 있게 됐네. 그러니 더욱 정진하며 쉬는 날 없이 회사를 위해 충성해주게.”

 

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인정을 하면 칭찬과 함께 월급인상이나 보너스를 선물로 줘야지, 일만 더 시키며 시험에 들게 해선 안 되는 것 아니겠는가.

 

 

K양이 무슨 의미로 저런 이야기를 한 건지는 나도 안다. K양은 그만큼 상대에게 마음을 거의 활짝 다 열었으니 그가 더욱 확신을 주며 K양을 불안하지 않게 해주길 바랐을 텐데, 상대 입장에서 보자면 K양의 그런 태도는 고문일 수 있다. 연애 중 상대가 한 걸 보자.

 

- 가족들과 고향 내려가는 것으로 K양이 서운해 하자 밥 사주고 데려자 주고 내려가기.

- 약속 시간에 늦게 될 경우 K양이 틱틱대면 여러 가지 제안하며 맞춰주기.

- 야근 후 마감한 식당 전전하다 연 곳 찾아 밥 먹기.

- 차가 막혀 왕복 5시간 운전한 후에도 K양 만나러 가기.

- 몸이 안 좋아 계속 기침하면서도 K양 삐친 것 풀어주려 통화하기.

- K양이 삐친 것 같으면 집에 찾아와 화 풀어주고 가기.

- 친구와의 만남, 야근, 회식 등의 상황에 인증샷 사진 찍어 안심시키기.

- 데이트 비용 9할 부담하기.

 

저 정도면 정말 잘하려고 엄청 노력한 거다. K양의 지인 중 절반은 K양이 잘못했다는 평가를 했지만 나머지 절반 정도는

 

“그 남자가 널 좋아했던 마음이 딱 거기까지였네.”

 

라고 했다고 말했는데, 결과만을 두고 ‘마음이 딱 거기까지’라고 하는 조언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면 K양의 연애엔 아무 변화가 없을 것이다. 이건 K양이 ‘잘하려고 노력하는 상대’에게 ‘내 마음을 열었으니 더 잘할 것’을 기대하고 요구해서 끝나버린 게 관계라고 보는 게 맞다.

 

 

정말 아주 냉정하게 말해보자. K양이 ‘마음을 열었다’는 것은 어떤 형태로 드러났는가? K양 입장에선 신뢰가 생기고, 편해지고, 경계심이 사라지는 등의 여러 가지 변화를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자면

 

- 시시콜콜 K양의 모든 이야기를 다 털어 놓는 것.

 

으로 드러났을 뿐이다. 거기엔 ‘상대’에 대한 이야기도 없고, ‘우리’에 대한 이야기도 없다. 그냥 K양이 느끼는 순간순간의 감정변화와 일상에 대한 토로가 있었을 뿐이다.

 

 

K양은 내가 남자친구라면 어떤 마음이었을 것 같은지를 말해달라고 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난

 

- 하면 할수록 의무가 늘어나며, 디테일한 부분들에서까지 서운함과 불만이 쌓여가는 느낌.

 

을 받았을 것 같다. 내가 5시간 운전하고 돌아왔다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도 생각해 주질 않으며 그저 그것에 삐쳐서는

 

영화 볼까 -> 아니. 영화는 나중에 날 밝을 때 봐.

밥 먹을까 -> 입맛 없어.

 

라는 반응을 보일 뿐이라면 ‘내가 왜 대체 이 연애를 하고 있는 것인가? 차라리 그만두면 편하고 자유로우며 더욱 홀가분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만나도 내 차 몰고 나가서 내 돈으로 K양이 보고 싶다고 하는 영화 보고 K양이 먹고 싶다고 하는 것 먹은 후 집에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와야 하는데, 이거야 뭐 내가 더 좋아하니 그럴 수 있다손 치더라도 이러다가 다음 날 또 뭔가 하나에 삐치면

 

“일주일 생각해 보고 만나서 얘기하자. 일주일동안 연락하지 마.”

 

라는 이야기를 들을 뿐인 관계라면

 

‘안 해. 때려 치워. 안 하고 말지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왜 나만 노오오오력을 해야 해. 쟤는 한 게 뭐야. 하는 건 또 뭐고.’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것 같다.

 

K양이 그간 연애했던 상대들로부터

 

“그렇게 나만 바라보지 말아라. 그리고 난 여기서 더 잘해줄 자신이 없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건, K양이 두 사람이 연애에 고립된 채 오직 둘이서만 속 깊은 교류를 하는 관계를 ‘이상적인 연애’로 생각했기 때문이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K양이 생각하는 그런 연애상을 모녀관계에 적용시켜보자. 그러면 엄마가 혼자 마트에 가거나 길에서 지인을 만나 한 시간 넘게 대화를 하는 것 등이 전부 ‘나에 대한 무관심, 남과의 필요 이상의 교류’로 느껴지고 마는 것 아닐까? 엄마가 내 일상의 대소사를 물어볼 수도 있는 시간에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서운함과 불만의 솟구쳐 올라올 수 있는 것이고 말이다.

 

K양은 상대가 ‘발을 뺀 것’같다며 가끔 화가 난다고 했는데,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남자 입장에서 상대를 보면, 그렇게까지 충성하고 헌신했으면서 여친으로부터

 

“나 오빠 정말 좋아.”

 

라는 말 한 마디 못 들어본 채 독감 걸린 상황에서 갈굼당하다 비명처럼 이별통보를 하고 만 불쌍한 사람이다. 그러니 상대를 너무 미워하거나 ‘상대가 쉽게 생각해서 이별을 말한 것’이라고 애써 분노할 거리를 찾지 말고, 그냥 참 상대도 고생 많았다 생각하며 이미 헤어지고 만 지금이라도 한번쯤 ‘상대에게 그 연애는, 나란 사람은 어땠을까’를 생각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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