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전의 발행글 [사슴벌레 잡으러가자는 남자, 알고보니] 라는 채집기에서 등장한 파주 봉서산의 사슴벌레 '푸쉬킨'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사실 지난 이야기를 쓰고 산란목 세팅과 고봉산 채집이야기를 이어서 써야했지만, 혼자서 산란세팅을 준비하느라 도저히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고봉산 채집이야기는 후레쉬 들고 사슴벌레원정대와 산을 오르기도 다리가 후덜덜 거린 까닭에 사진으로 남기질 못했다.
푸쉬킨 이야기를 갑자기 꺼낸 것은, 2009.07.08 퀴리부인(애사슴벌레 암컷, 고봉산 태생)과 신혼방(산란세팅)을 만들어 주었더니 솔로부대원이었던 둘은 큐피트의 화살을 맞았고, 사육통에서 참기름 냄새가 나더니 드디어! 오늘 푸쉬킨 2세(아직 알 상태)를 확인한 것이다.
바로 2세의 사진을 올리기보다는 고봉산 채집에서 잡았던 퀴리부인(애사슴벌레 암컷)의 소개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밤에 후레쉬와 채집통을 들고 원정길에 오른 까닭에 사진은 그 다음날 낮에 가서 다시 찍었다. 절대 호락호락한 탐험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이야기하며, 대박을 터트렸던 고봉산 채집기를 잠시 살펴보자.
채집시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참나무 수액이 있는 곳에는 벌이 항상 있기 마련이다. 그것도 그냥 귀여운 꼬꼬마 꿀벌이 아니라 파리채 없이는 절대 이기기 힘든 검지손가락만한 벌들이다. 그들이 고막을 진동시키는 엄청난 날개소리를 내며 다가온다면 선택은 하나. 일단, 도망가라. 어줍잖게 대응을 하다간 다음날 뉴스에 나오게 된다.
"경기도 일산의 한 야산에서 사슴벌레를 잡겠다며 나간 이십대 후반의 남성이 벌에 쏘여..."
이건 뭐, 한 여성이 산에서 딴 독버섯을 식용인줄 알고 맛있게 먹다가 쉬즈곤 했다는 얘기보다 슬픈 이야기다. 자나깨나 벌조심이다. (응?)
촉촉하게 젖은 산길이 신선해 보이는건 훼이크고, 현실은 질퍽질퍽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선글라스와 꽃무늬 티로 한껏 멋을 낸 중년의 남녀가 산에서 내려오는 길이었다. 초상권 문제로 그들의 얼굴을 찍지는 않았지만, 절대 산행과는 어울리지 않는 남자의 구두는 진흙투성이었고, 여자는 땀나게 왜 이런데 데려왔냐는 표정을 선글라스 뒤로 숨기고 있었다.
내가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순간 둘은 긴장하는 것 같았다. 꽤 나이가 있어 보이는 남자와 그보다 한참 어려보이는 여자! 나는 직감적으로 그들이 뭘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나처럼 사..사슴벌레를 찾고 있어...여자가 잡아달라고 조른게 분명해..승부다!'
시큼한 수액냄새가 진동을 하던 '대박'참나무, 검지손가락만한 벌도 두마리나!!
네셔널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들이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좀 흉내내자면, 사슴벌레를 잘 잡는 방법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좋은 빛을 찍는 겁니다. 좋은 대상물이 아니예요"
- 수액이 나오는 참나무를 찾는 겁니다. 사슴벌레를 찾는게 아니에요.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오세요"
- 해 지면 나가서 해 뜨면 돌아오세요
"한 발 더 다가가세요. 찍고 싶은 구도에서 더 다가가세요"
- 한 번 나무 구멍을 파 보세요. 구석에 숨어 있는 녀석도 찾아내세요.
"사람이 들어가야 사진이 재밌어집니다."
- 사슴벌레를 잡아야 채집이 재밌어집니다.
나무의 뒷통수를 잘 살펴야 한다. 사람 다니는 길 반대에 나무 구멍이 있는 경우가 많다.
혹시 지금 이 사진들을 보고 아침부터 사슴벌레 채집에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면 극구 말리고 싶다. 톱사슴벌레나 투구사슴벌레(걍사슴벌레)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낮에 활동하지 않는다. 앞의 녀석들도 그닥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므로 낮에 나갔다가는 그냥 산책만 하고 올 가능성이 크다.
낮에는 그저 수액이 흐르는 나무를 파악해 두었다가 저녁에 그 나무들만 확인해도 사슴벌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바나나+소주+식초 등을 혼합하여 나무 구멍에 발라두는 '바나나트랩' 방법도 있지만, 요즘 바나나 다이어트열풍으로 바나나값이 많이 올라 집에 있는 바나나로 곤충용 미끼를 만들었다간 어머니께 바나나 껍질로 맞을지도 모르니 생략한다. 다음기회에 바나나트랩법을 사용해 볼 생각이다.
수액이 흐르는 참나무 주변의 썩은 나무들. 저 안에 사슴벌레 애벌래가 살기도 한다.
이미 한차례 사슴벌레 채집을 하다가 이상한 의혹을 받아본 적 있는 난, 윗 사진의 썩은 나무들을 도끼로 갈라 유충을 꺼내는 일은 도무지 하기가 어렵다. 괜한 오해받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도끼를 들고 들어갔다가 나무꾼으로 오해받거나, 마주친 사람이 공포에 떨게 하고 싶지는 않다.
조만간 무슨 연구소의 명예 연구원증이라도 하나 받아야겠다. 민간인으로 사슴벌레를 채집하기란 이토록 힘들다. 잘 살고있는 자연의 곤충을 왜 잡냐며 전에 나를 잡아다가 자신의 집에서 기르겠다는 분이 댓글을 달아 주셨는데. 얼른 좀 연락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밥 챙겨 주신다면 작은 쪽방에 컴퓨터 하나 있으면 된다. 아니, 컴퓨터는 내꺼 가지고 들어갈 수도 있다.
저렇게 구멍이 난 나무 틈새에 숨어있는 경우가 있다. 수액까지 흐른다면 금상첨화!
푸쉬킨의 와이프(?) 퀴리부인을 만난 나무다. 사슴벌레는 갑자리 후레쉬를 비추거나 발로 나무를 차면 땅에 떨어져 죽은 척 하는 경우가 있는데, 퀴리부인을 줍고 있을 때 옆으로 떨어진 녀석이 사르트르(애사슴벌레 수컷)와 세르반테스(참넓적사슴벌레 수컷), 맹자엄마(애사슴벌레 암컷)다.
그 외에도 파주 체육공원에서 내 앞으로 걸어왔던 '다빈치(넓적사슴벌레 수컷 7cm)'와 길거리에서 운명처럼 만난 제시카(참넓적사슴벌레 암컷)가 있으며, 현재 사육환경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으며, 디킨스(넓사 수컷)를 따로 개별사육하는 까닭은 안타깝게도 애사슴벌레 한마리를 반토막 내는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아직 이름도 못 지어준 녀석이었는데, 자신의 전용 먹이통 으로 다가오자 반토막 내 버린 것으로 보인다. (사육통 구입을 미루며 합방을 시켜놓은 내 탓이다)
아마 오늘 선물받기로 한 장수풍뎅이 암,수가 도착할 예정인데 현재 메인으로 사육중인 네 녀석들 중 세 마리는 다시 고봉산으로 보낼 예정이다. 다빈치도 보내려고 했으나, 아스팔트 도로에서 나에게 다가왔던 녀석의 모습을 떠올리며 새로운 사육통을 하나 꾸며줄 생각이다. 장마가 끝나면 다빈치와 디킨스 두 녀석 모두 암컷을 구해 신혼집을 차려줘야 겠다.
아, 한가지 고백할 것이 있다.
사슴벌레의 수컷은 턱의 모양으로 대부분 확실하게 구분을 할 수 있지만, 암컷의 경우 등의 점열이나 발의 갈퀴모양 등으로 판단해야 하므로 어려움이 따른다. 그렇기에 산란세팅을 하고 암,수를 함께 넣었다고 해도 암컷이 낳은 알의 아버지가 그 아버지가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사슴벌레의 경우 짝짓기를 통해 수컷의 정액을 받은 암컷이 계속 그 정액을 보관하며 2주-한달 간 산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에 채집산인 경우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웃지 못할 사건이 생길 수 있으며, 애사슴벌레인 줄 알고 알부터 유충까지 키웠더니 나중엔 다른 사슴벌레로 우화하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뭐, 애들(?)이 커봐야 아는 거고, 오늘은 급한마음에 확인해 본 제 2 산란실, 푸쉬킨과 퀴리부인의 2세들을 공개하도록 하겠다. 아직 2주 밖에 지나지 않아 산란실을 건드리면 안되지만 너무 궁금해서 살짝 산란목을 뜯어 보았다.
윗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암컷이 알을 낳기 위해 산란목을 물어 뜯는 흔적이다.
사슴벌레 암컷은 저렇게 산란목을 물어 뜯은 뒤 그 속에 알을 낳고 안 보이게 감춘다. 그 작은 사슴벌레가 저만한 알을 낳는다니 좀 놀랍다. (사실 난 훨씬 작을 줄 알고 톱밥 사이사이를 찾아보기도 하고 둥글게 뜯긴 나무조각이 알인 줄 알고 조심스레 다루기도 했다.)
실제로는 처음 본 사슴벌레의 알이다. 애사슴벌레의 알이 맞길 기원한다.
하나 더 고백하자면, 습기 찬 산란실을 말리느라 뚜껑을 열어 놓은 사이 모두 탈출했던 전과(석호필?)가 있는 녀석들이라, 아이의 엄마나 아빠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 어제 뉴스에서처럼 간호사의 실수로 아이가 바뀐 것을 16년 만에 알아내는 그런 일이 사슴벌레들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젝일.
아무튼 처음으로 보는 사슴벌레의 알과 성공적인 산란세팅이 기쁘기는 했지만 앞으로 저 녀석들이 알에서 깨어나는 시점이면 사육통도 늘어날 것이고, 그러다보면, 어머니의 '너와 저 통들 다 갖다 버리겠다' 라는 말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생명의 신비를 지켜보는 일은 언제나 가슴 두근거리는 법. 시골에 사육창고를 짓고 최적의 사육법을 찾아내 일본의 그것처럼 한국의 대표적인 곤층을 만들고,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병이다. 사실 어제는 영지버섯 균사에서 사슴벌레 유충을 사육하면 영양흡수를 잘해 튼튼하고 큰 개채가 나온다는 말에 영지버섯을 키워볼 생각까지 했으니...OTL
사슴벌레를 직접 키우지 않는 분들이 보더라도 사슴벌레의 종류를 자연히 알게되고, 마트에서 사슴벌레를 보거나 주변에서 사슴벌레를 봤을 때, '오호~!'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 사육기 및 동거이야기는 성공이라 생각한다.
김치통 하나만한 사육통에서도 별다른 유지비 없이 잘 기를 수 있는 녀석이니, 알에서 깨어나 분양할 수 있는 정도가 된다면 희망하시는 분들께도 나눠드릴 생각이다. (응?) 지금 난 병아리를 키우는 초등학생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끼는 중이다.
▲ 손가락 버튼을 누르시면 암컷이 알을 더 낳을지도 모릅니다 (응?) 추천은 무료!
지난 이야기에 등장했던 애사슴벌레 푸쉬킨, 현장 직찍(응?) 사진이다.
사실 지난 이야기를 쓰고 산란목 세팅과 고봉산 채집이야기를 이어서 써야했지만, 혼자서 산란세팅을 준비하느라 도저히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고봉산 채집이야기는 후레쉬 들고 사슴벌레원정대와 산을 오르기도 다리가 후덜덜 거린 까닭에 사진으로 남기질 못했다.
푸쉬킨 이야기를 갑자기 꺼낸 것은, 2009.07.08 퀴리부인(애사슴벌레 암컷, 고봉산 태생)과 신혼방(산란세팅)을 만들어 주었더니 솔로부대원이었던 둘은 큐피트의 화살을 맞았고, 사육통에서 참기름 냄새가 나더니 드디어! 오늘 푸쉬킨 2세(아직 알 상태)를 확인한 것이다.
<여기서 잠깐!>
사슴벌레는 종류에 따라 그냥 밟고 다니던 톱밥에 알을 낳는 투구사슴벌레(걍사슴벌레), 톱사슴벌레, 그리고 산란목이 있어야 알을 낳는 까칠한 애사슴벌레와 왕사슴벌레,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마는 호쾌한 넓적사슴벌레 등으로 나뉜다.
자연에서는 썩은 나무나 뿌리, 부엽토 등에 산란을 하지만 집에서 사육할 때에는 버섯폐목을 이용한 산란목을 사용한다. 버섯폐목을 알맞은 크기로 잘라 물에 불리는데, 사람마다 다르지만 보통 3시간 불리고 3시간 말리는 방법을 많이 사용한다. 내 경우 하룻밤을 담궈놨더니 산란목이 스펀지처럼 되어버렸다.
그렇게 불린 산란목의 수피(나무껍질)를 다 벗겨내고 안에 붙은 오륀지 색 가루들을 다 긁어 내면 매끈한 기둥이 된다. 사육통 안에 5cm 가량 톱밥을 꾹꾹 눌러 채우고 산란목을 (눕혀서) 놓은 뒤 다시 톱밥을 채워 산란목 맨 윗부분이 살짝 보일때 까지 덮으면 된다. 많이 불리면 작업(?)이 편하지만, 왕사의 경우 딱딱한 산란목을 좋아하므로 많이 불릴 필요는 없다고 한다.
세팅된 사육통에 암,수를 함께 넣어주면 수컷이 T자 포지션... 음, 이 부분까지 설명하기엔 너무 기니 조만간 나의 첫 사슴벌레(7.3cm 넓적 사슴벌레 수컷) '찰스 디킨스'의 짝짓기를 할 때 사진과 함께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낫겠다.
위의 정보(?)는 복사하기와 붙여넣기로 쓴 것이 아니다. 왜 노멀로그 연재글의 업데이트가 늦어지는 지는 위의 글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사슴벌레는 종류에 따라 그냥 밟고 다니던 톱밥에 알을 낳는 투구사슴벌레(걍사슴벌레), 톱사슴벌레, 그리고 산란목이 있어야 알을 낳는 까칠한 애사슴벌레와 왕사슴벌레,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마는 호쾌한 넓적사슴벌레 등으로 나뉜다.
자연에서는 썩은 나무나 뿌리, 부엽토 등에 산란을 하지만 집에서 사육할 때에는 버섯폐목을 이용한 산란목을 사용한다. 버섯폐목을 알맞은 크기로 잘라 물에 불리는데, 사람마다 다르지만 보통 3시간 불리고 3시간 말리는 방법을 많이 사용한다. 내 경우 하룻밤을 담궈놨더니 산란목이 스펀지처럼 되어버렸다.
그렇게 불린 산란목의 수피(나무껍질)를 다 벗겨내고 안에 붙은 오륀지 색 가루들을 다 긁어 내면 매끈한 기둥이 된다. 사육통 안에 5cm 가량 톱밥을 꾹꾹 눌러 채우고 산란목을 (눕혀서) 놓은 뒤 다시 톱밥을 채워 산란목 맨 윗부분이 살짝 보일때 까지 덮으면 된다. 많이 불리면 작업(?)이 편하지만, 왕사의 경우 딱딱한 산란목을 좋아하므로 많이 불릴 필요는 없다고 한다.
세팅된 사육통에 암,수를 함께 넣어주면 수컷이 T자 포지션... 음, 이 부분까지 설명하기엔 너무 기니 조만간 나의 첫 사슴벌레(7.3cm 넓적 사슴벌레 수컷) '찰스 디킨스'의 짝짓기를 할 때 사진과 함께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낫겠다.
위의 정보(?)는 복사하기와 붙여넣기로 쓴 것이 아니다. 왜 노멀로그 연재글의 업데이트가 늦어지는 지는 위의 글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바로 2세의 사진을 올리기보다는 고봉산 채집에서 잡았던 퀴리부인(애사슴벌레 암컷)의 소개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밤에 후레쉬와 채집통을 들고 원정길에 오른 까닭에 사진은 그 다음날 낮에 가서 다시 찍었다. 절대 호락호락한 탐험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이야기하며, 대박을 터트렸던 고봉산 채집기를 잠시 살펴보자.
보기에는 초록 잎들로 풍성해 보이지만, 산모기와 벌, 뱀 등이 살고 있다.
채집시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참나무 수액이 있는 곳에는 벌이 항상 있기 마련이다. 그것도 그냥 귀여운 꼬꼬마 꿀벌이 아니라 파리채 없이는 절대 이기기 힘든 검지손가락만한 벌들이다. 그들이 고막을 진동시키는 엄청난 날개소리를 내며 다가온다면 선택은 하나. 일단, 도망가라. 어줍잖게 대응을 하다간 다음날 뉴스에 나오게 된다.
"경기도 일산의 한 야산에서 사슴벌레를 잡겠다며 나간 이십대 후반의 남성이 벌에 쏘여..."
이건 뭐, 한 여성이 산에서 딴 독버섯을 식용인줄 알고 맛있게 먹다가 쉬즈곤 했다는 얘기보다 슬픈 이야기다. 자나깨나 벌조심이다. (응?)
촉촉하게 젖은 산길이 신선해 보이는건 훼이크고, 현실은 질퍽질퍽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선글라스와 꽃무늬 티로 한껏 멋을 낸 중년의 남녀가 산에서 내려오는 길이었다. 초상권 문제로 그들의 얼굴을 찍지는 않았지만, 절대 산행과는 어울리지 않는 남자의 구두는 진흙투성이었고, 여자는 땀나게 왜 이런데 데려왔냐는 표정을 선글라스 뒤로 숨기고 있었다.
내가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순간 둘은 긴장하는 것 같았다. 꽤 나이가 있어 보이는 남자와 그보다 한참 어려보이는 여자! 나는 직감적으로 그들이 뭘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나처럼 사..사슴벌레를 찾고 있어...여자가 잡아달라고 조른게 분명해..승부다!'
시큼한 수액냄새가 진동을 하던 '대박'참나무, 검지손가락만한 벌도 두마리나!!
네셔널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들이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좀 흉내내자면, 사슴벌레를 잘 잡는 방법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좋은 빛을 찍는 겁니다. 좋은 대상물이 아니예요"
- 수액이 나오는 참나무를 찾는 겁니다. 사슴벌레를 찾는게 아니에요.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오세요"
- 해 지면 나가서 해 뜨면 돌아오세요
"한 발 더 다가가세요. 찍고 싶은 구도에서 더 다가가세요"
- 한 번 나무 구멍을 파 보세요. 구석에 숨어 있는 녀석도 찾아내세요.
"사람이 들어가야 사진이 재밌어집니다."
- 사슴벌레를 잡아야 채집이 재밌어집니다.
나무의 뒷통수를 잘 살펴야 한다. 사람 다니는 길 반대에 나무 구멍이 있는 경우가 많다.
혹시 지금 이 사진들을 보고 아침부터 사슴벌레 채집에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면 극구 말리고 싶다. 톱사슴벌레나 투구사슴벌레(걍사슴벌레)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낮에 활동하지 않는다. 앞의 녀석들도 그닥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므로 낮에 나갔다가는 그냥 산책만 하고 올 가능성이 크다.
낮에는 그저 수액이 흐르는 나무를 파악해 두었다가 저녁에 그 나무들만 확인해도 사슴벌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바나나+소주+식초 등을 혼합하여 나무 구멍에 발라두는 '바나나트랩' 방법도 있지만, 요즘 바나나 다이어트열풍으로 바나나값이 많이 올라 집에 있는 바나나로 곤충용 미끼를 만들었다간 어머니께 바나나 껍질로 맞을지도 모르니 생략한다. 다음기회에 바나나트랩법을 사용해 볼 생각이다.
수액이 흐르는 참나무 주변의 썩은 나무들. 저 안에 사슴벌레 애벌래가 살기도 한다.
이미 한차례 사슴벌레 채집을 하다가 이상한 의혹을 받아본 적 있는 난, 윗 사진의 썩은 나무들을 도끼로 갈라 유충을 꺼내는 일은 도무지 하기가 어렵다. 괜한 오해받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도끼를 들고 들어갔다가 나무꾼으로 오해받거나, 마주친 사람이 공포에 떨게 하고 싶지는 않다.
행인 - "뭐 하시는 거에요?"
무한 - "사슴벌레 잡아요"
행인 - "사슴...뭐요?"
무한 - "그 왜, 집게 달린 벌레요" (이렇게 말해야 알아듣는다)
행인 - "아... 근데, 그걸 왜 잡아요?"
무한 - "배고파서요. 먹을라구요"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 그냥 간다)
행인 - "......"
무한 - "사슴벌레 잡아요"
행인 - "사슴...뭐요?"
무한 - "그 왜, 집게 달린 벌레요" (이렇게 말해야 알아듣는다)
행인 - "아... 근데, 그걸 왜 잡아요?"
무한 - "배고파서요. 먹을라구요"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 그냥 간다)
행인 - "......"
조만간 무슨 연구소의 명예 연구원증이라도 하나 받아야겠다. 민간인으로 사슴벌레를 채집하기란 이토록 힘들다. 잘 살고있는 자연의 곤충을 왜 잡냐며 전에 나를 잡아다가 자신의 집에서 기르겠다는 분이 댓글을 달아 주셨는데. 얼른 좀 연락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밥 챙겨 주신다면 작은 쪽방에 컴퓨터 하나 있으면 된다. 아니, 컴퓨터는 내꺼 가지고 들어갈 수도 있다.
저렇게 구멍이 난 나무 틈새에 숨어있는 경우가 있다. 수액까지 흐른다면 금상첨화!
푸쉬킨의 와이프(?) 퀴리부인을 만난 나무다. 사슴벌레는 갑자리 후레쉬를 비추거나 발로 나무를 차면 땅에 떨어져 죽은 척 하는 경우가 있는데, 퀴리부인을 줍고 있을 때 옆으로 떨어진 녀석이 사르트르(애사슴벌레 수컷)와 세르반테스(참넓적사슴벌레 수컷), 맹자엄마(애사슴벌레 암컷)다.
그 외에도 파주 체육공원에서 내 앞으로 걸어왔던 '다빈치(넓적사슴벌레 수컷 7cm)'와 길거리에서 운명처럼 만난 제시카(참넓적사슴벌레 암컷)가 있으며, 현재 사육환경은,
메인 - 넓사 수컷 1, 참넓 수컷 2, 애사 수컷 1
개별사육실 - 찰스 디킨스 (넓적사슴벌레 수컷)
산란실 1 - 카프카 + 맹자엄마 (애사슴벌레 암,수)
산란실 2 - 푸쉬킨 + 퀴리부인 (애사슴벌레 암,수)
산란실 3 - 세르반테스 + 제시카 (참넓적사슴벌레 암,수)
개별사육실 - 찰스 디킨스 (넓적사슴벌레 수컷)
산란실 1 - 카프카 + 맹자엄마 (애사슴벌레 암,수)
산란실 2 - 푸쉬킨 + 퀴리부인 (애사슴벌레 암,수)
산란실 3 - 세르반테스 + 제시카 (참넓적사슴벌레 암,수)
이렇게 구성되어 있으며, 디킨스(넓사 수컷)를 따로 개별사육하는 까닭은 안타깝게도 애사슴벌레 한마리를 반토막 내는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아직 이름도 못 지어준 녀석이었는데, 자신의 전용 먹이통 으로 다가오자 반토막 내 버린 것으로 보인다. (사육통 구입을 미루며 합방을 시켜놓은 내 탓이다)
아마 오늘 선물받기로 한 장수풍뎅이 암,수가 도착할 예정인데 현재 메인으로 사육중인 네 녀석들 중 세 마리는 다시 고봉산으로 보낼 예정이다. 다빈치도 보내려고 했으나, 아스팔트 도로에서 나에게 다가왔던 녀석의 모습을 떠올리며 새로운 사육통을 하나 꾸며줄 생각이다. 장마가 끝나면 다빈치와 디킨스 두 녀석 모두 암컷을 구해 신혼집을 차려줘야 겠다.
아, 한가지 고백할 것이 있다.
사슴벌레의 수컷은 턱의 모양으로 대부분 확실하게 구분을 할 수 있지만, 암컷의 경우 등의 점열이나 발의 갈퀴모양 등으로 판단해야 하므로 어려움이 따른다. 그렇기에 산란세팅을 하고 암,수를 함께 넣었다고 해도 암컷이 낳은 알의 아버지가 그 아버지가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사슴벌레의 경우 짝짓기를 통해 수컷의 정액을 받은 암컷이 계속 그 정액을 보관하며 2주-한달 간 산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에 채집산인 경우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웃지 못할 사건이 생길 수 있으며, 애사슴벌레인 줄 알고 알부터 유충까지 키웠더니 나중엔 다른 사슴벌레로 우화하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뭐, 애들(?)이 커봐야 아는 거고, 오늘은 급한마음에 확인해 본 제 2 산란실, 푸쉬킨과 퀴리부인의 2세들을 공개하도록 하겠다. 아직 2주 밖에 지나지 않아 산란실을 건드리면 안되지만 너무 궁금해서 살짝 산란목을 뜯어 보았다.
윗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암컷이 알을 낳기 위해 산란목을 물어 뜯는 흔적이다.
사슴벌레 암컷은 저렇게 산란목을 물어 뜯은 뒤 그 속에 알을 낳고 안 보이게 감춘다. 그 작은 사슴벌레가 저만한 알을 낳는다니 좀 놀랍다. (사실 난 훨씬 작을 줄 알고 톱밥 사이사이를 찾아보기도 하고 둥글게 뜯긴 나무조각이 알인 줄 알고 조심스레 다루기도 했다.)
실제로는 처음 본 사슴벌레의 알이다. 애사슴벌레의 알이 맞길 기원한다.
하나 더 고백하자면, 습기 찬 산란실을 말리느라 뚜껑을 열어 놓은 사이 모두 탈출했던 전과(석호필?)가 있는 녀석들이라, 아이의 엄마나 아빠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 어제 뉴스에서처럼 간호사의 실수로 아이가 바뀐 것을 16년 만에 알아내는 그런 일이 사슴벌레들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젝일.
아무튼 처음으로 보는 사슴벌레의 알과 성공적인 산란세팅이 기쁘기는 했지만 앞으로 저 녀석들이 알에서 깨어나는 시점이면 사육통도 늘어날 것이고, 그러다보면, 어머니의 '너와 저 통들 다 갖다 버리겠다' 라는 말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생명의 신비를 지켜보는 일은 언제나 가슴 두근거리는 법. 시골에 사육창고를 짓고 최적의 사육법을 찾아내 일본의 그것처럼 한국의 대표적인 곤층을 만들고,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병이다. 사실 어제는 영지버섯 균사에서 사슴벌레 유충을 사육하면 영양흡수를 잘해 튼튼하고 큰 개채가 나온다는 말에 영지버섯을 키워볼 생각까지 했으니...OTL
사슴벌레를 직접 키우지 않는 분들이 보더라도 사슴벌레의 종류를 자연히 알게되고, 마트에서 사슴벌레를 보거나 주변에서 사슴벌레를 봤을 때, '오호~!'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 사육기 및 동거이야기는 성공이라 생각한다.
김치통 하나만한 사육통에서도 별다른 유지비 없이 잘 기를 수 있는 녀석이니, 알에서 깨어나 분양할 수 있는 정도가 된다면 희망하시는 분들께도 나눠드릴 생각이다. (응?) 지금 난 병아리를 키우는 초등학생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끼는 중이다.
▲ 손가락 버튼을 누르시면 암컷이 알을 더 낳을지도 모릅니다 (응?) 추천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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