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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과여행/사슴벌레는남자의로망

사슴벌레와의 동거 시작, 첫 만남

by 무한 2009. 6. 28.
사슴벌레에 관한 내 관심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6학년에 형이 있던 친구가 필통에 담아 왔던 사슴벌레를 보는 순간, 난 총 맞은 것 처럼 정신이 없었다. 그동안 바이블 처럼 가지고 있던 공룡책들을 모두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락그룹 페니실린도 이런 노래를 하지 않았던가.

까맣게 빛나는 사슴벌레
투구풍뎅이보다 너무 멋져
암컷이라도 강하단다
투구풍뎅이 암컷은 풍뎅이를 닮았어

- 페니실린 <남자의 로망> 중 일부 발췌

그렇게 처음 설레임을 느낀 이후로는 내 채집생활에 많은 부분이 '사슴벌레 채집'으로 채워졌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곤충카페가 있거나 마트등에서 사육용품을 파는 것이 아니었기에 주먹구구식의 '형들이 얘기해준' 노하우대로 기르는 수 밖에 없었다. 당시의 노하우란 이런 것이었다.

● 숲속처럼 느낄 수 있게 연필깎고 나온 연필톱밥을 필통에 수북히 깔아줄 것

-> 이를 위해 새 연필을 계속 깎아 심을 부러뜨려가며 톱밥을 준비했다.

● 최고의 먹이인 설탕물을 줄 것

-> 설탕물을 주고 오래 방치하면 굳어있는 녀석들도 있었다.

● 큰건(넓적사슴벌레) 천 오백원, 작은건(주로 암컷들) 삼백원까지...

-> 나름 규모가 큰 시장이었다. 12시 넘어서까지 돌아다닐 수 있는 형들은 부자가 되었다.

마을버스 요금이 150원 하던 시기의 이야기니, 지금 마트에서 만 오천원에 판매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사슴벌레의 가치'는 놀랍도록 비슷하다. 다만 '쇠스랑' 이라고 불리던 톱사슴벌레는 당시에도 삼천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곤 했다.

돈이 없는 친구들은 그냥 노멀한 형태의 '애사슴벌레' 정도를 사서 필통속에서 기르기도 했는데, 여름방학때 필통을 책상속에 넣어놨다가 개학하고 학교에 와서 필통을 열어보면 사슴벌레가 죽어있기 마련이었다. 나 역시도 육백원 주고 샀던 넓적사슴벌레를 필통속에 넣어두고, 그 필통을 책상 서랍에 넣어 놨다가 깜빡잊은 적이 있다. (그 녀석은 지금쯤 천국에서 행복하겠지. Rest in peace!)

각설하고, 사실 난 군대를 제대하고 어항세팅을 멋지게 해서 버들붕어의 2세를 보는 계획을 잡고 있었다. 그러다가 물생활에 탄력이 붙으면 우격다짐으로 3자 짜리 어항을 구입한 뒤, 가물치를 키우는 커다란 꿈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물생활을 시작하면 어항과 나를 갔다 버리겠다는 어머니의 엄포 덕분에 (항상 시작은 내가 하고 몇 주 후 관리는 어머니께서 하시는 관계로 내가 키우던 녀석들은 사실 어머니와 더 가깝다) 소년의 꿈은 그렇게 물거품이 되었던 것이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점을 찾기 시작했다. 사슴벌레를 키운다는 말을 또 꺼냈다간, 전에 샀다가 고스란히 버렸던 놀이목, 산란목, 톱밥, 사육세트 등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고, 일본에선 8센티가 넘는 왕사슴벌레가 1억이 넘는 돈에 팔린 것도 모른채 어머니께서는 그저 '큰 바퀴벌레' 같다고 말씀하실 것이 분명했다.

치열한 두뇌게임이 시작되었다.

단식투쟁은 해봐야 내 손해고, 물생활과 사슴벌레 사육을 적절히 활용한 '살을 주고 뼈를 치는' 작전이 시행되었다. 결국 '물생활 -> 송사리만 -> 수초만 -> 전기세가 안드는 사슴벌레' 이런 방식의 심리전으로 사슴벌레 사육이 허락되었다. 자반어항은 이미 있으니, 발효톱밥과 기타 사육도구만 마련하면 되는 것이다. 아, 그리고 사슴 벌레도.


2009년의 첫 사슴벌레

마음만 먹고 있던 사슴벌레 사육에 불을 당긴 것은, 회사로 날아온 '애사슴벌레' 였다. 무슨 회사길래 사슴벌레가 다 날아오냐고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회사에 대한 설명은 [회사밥을 먹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는 예전 발행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회사 샤워실(이라고 해봐야 조립식 건물 한 귀퉁이에 물 나오는 곳)에 날아든 이 녀석들 디자인실 팀장 누나가 발견해서 내게 가져다 주었다. 다리 하나가 잘린 녀석이었지만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녀석이었다. 나는 녀석의 이름을 '프란츠 카프카' 라고 지었다.

카프카는 곤충답게 역시 내 말귀를 전혀 알아 듣지 못했지만, 참외의 속을 조금 긁어서 주면 얌전히 먹는 기특함을 보여주었다. 다만, 카프카는 '애사슴벌레'인 까닭에 내가 기르고 싶었던 부류가 아니었다. 첫 날은 기쁜 마음에 집에도 데려오고 다음날 옆자리에 태워 같이 출근 하기도 했지만, 고백하자면, 상자에 넣어 둔 뒤 모르고 주말에 가져오질 않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월요일에 출근하면 이미 하늘나라로 간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카프카, 조금만 버텨줘..."


하지만 주말을 무작정 기다림만으로 보낼 수 없는 나는 친구들을 호출했고, 무슨 사슴벌레냐며 더운데 생맥주나 한 잔 마시자는 친구들에게 '너희 집에 불을 지르겠다'는 협박으로 친구들을 모았다. 그리하여 6월의 어느 주말, 한 여름밤의 꿈 같은 첫 채집은 시작되는데...

다음이야기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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