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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업하느라 "카페활동 열심히 할게요~ 등업부탁드려요~" 이따위 마음에도 없는 가입인사를 써 놓고 기다린지 삼일, 드디어 나는 사슴벌레카페의 '알' 등급에서 '유충' 등급이 될 수 있었다. '채집후기'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다.

채집후기에 올라온 수 많은 정보들을 훑으며 집에서 가까운 곳에 사슴벌레 서식지를 찾는 중이었다.

"저 파주 사는데, 사슴벌레 많은 곳 알아요"


포르쉐를 몰며 툼레이더 같은 깜장 난닝구를 입고 우중충한 날씨에 썬글라스를 낀 채, 이태원 삼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는 어느 이태리 여성을 봤을 때 보다 더 가슴이 뛰는 글이었다.

파주 봉서산에 사슴벌레 엄청 많아요.
근처 여우고개만 가도 잡는게 아니라 주워요.
너무 많이 주워와서 걱정이에요.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아드레날린의 분비가 가속화 되는 것을 느꼈다. 검색창에 '파주 봉서산'을 넣고 검색을 했더니 뉴스자료가 있었다.

"파주 봉서산 60년만에 시민의 품으로"

그동안 군사지역이라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되었던 곳이, 작년부터 일반인들도 들어갈 수 있게 바뀌었다는 소식이었다. 60년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야생, 그 안에 가득있을 사슴벌레!

그 글을 올린 분은, 왕사슴벌레(가명)님이었다. 작성자의 다른글 보기로 그가 올린 정보가 정말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를 살펴봤다. 유충사육과 균사사육, 채집과 산란 등등 글마다 사슴벌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엿보였고 '채집같이가요' 라는 카테고리에는 그가 올린 '6월 30일에 봉서산으로 채집가실 분~' 이라는 글이 있었다. 난 바로 댓글을 달았다.

안녕하세요. 전 일산에 살고 있고요, 왕사슴벌레님이 올리신 글 읽고,
30일날 저도 같이 사슴벌레 채집에 가고 싶어서요.
제가 직장에 다녀서 퇴근하고 준비해서 파주까지 가면 9시쯤 될텐데 괜찮으신지요?
제 연락처는 0106543**** 입니다. 댓글 보시면 연락 주세요.


그리곤 다음날, 연락이 왔다.

그러면 봉서산 입구에 SM마트가 있으니까 거기로 오세요.
9시까지 오세요. 제 연락처는 0104648****입니다.


상당히 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형식적인 인사따위는 생략한 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버리는 강한 적극성과 간결하면서도 자제된 말투의 사용이 인상적이었다. 그 후 30일이 되기 전까지 문자로 몇마디의 대화를 더 나눴다. 역시나 왕사슴벌레님(이후 '왕사')은 심플한 언어를 사용했다.

왕사 - "오실때 후레시"

무한 - "아, 네. 또 뭐 필요한거 있나요?"

왕사 - "없음"

무한 - "근데 이 시간에(오후4시) 문자보내시는 걸 보면.. 학생이세요?"

왕사 - "네"

무한 - "아.. 그렇구나.. 군대는 갔다 오셨나요?"

왕사 - "아뇨"

무한 - "몇학년 이세요?"

왕사 - "4학년"

무한 - "그렇군요. 암튼 자세한건 만나서 얘기하죠 뭐." 

어쩌면 짧은 말투가 대답하기 곤란해서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하곤 더 말을 걸지 않았다. 그리곤 드디어 30일, 왕사님에게 아침부터 문자를 보냈다.

무한 - "드디어 오늘이군요! 완전 설레입니다."

그런데 오전 내내 왕사님의 답장이 없었다. 강의가 많은 날인가 싶어 더 연락을 안했지만, 점심시간이 지나도 왕사님의 연락이 없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무한 - "오늘 우리 봉서산 가는거 맞죠?"

답장이 오질 않았다. 직감적으로 뭔가 틀어졌다는 걸 알았다. 혼자서라도 찾아 가야하는 건지, 아니면 다음으로 약속을 미뤄야 하는 건지 고민하고 있을때 드디어 왕사님의 연락이 왔다.

왕사 - "죄송. 오늘 못감"

막 사가지고 나온 아이스크림을 땅바닥에 떨어뜨렸을 때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루 종일 연락이 없더니, 퇴근시간이 가까워서야 연락을 주고, 거기다가 못간다니... 난 전화를 걸었다.

무한 - "여보세요?"

왕사 - "누구세요?"

아직 변성기가 오지 않은 어린애의 목소리 같은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무한 - "아.. 그...음.....왕사슴벌레님 좀 바꿔주세요"

왕사 - "전데요"

(응?)

무한 - "아.. 음.. 오늘 무슨 일 있으세요?"

왕사 - "엄마가 가지 말래요"

이 부분에서 나는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한 - "아..그렇군요. 근데 왕사님 실례지만 대학생 맞으세요?"

왕사 - "아뇨"

무한 - "......"

왕사 - "파주초등학교 다니는데요"

무한 - "......파..파주 초등학교 사학년이요?"

왕사 - "네."

여기까지 대화를 하고 이후 대화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잘 생각이 안난다. 그 분(?)이 일부러 낚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난 아무런 생각도 없이 빈 바늘을 물어버린 것이었다. 단답형의 대답, 그리고 핸드폰이 있다는 것에 초등학생이란 생각은 못 했던 것 같다. 근데, 그렇다면 사슴벌레에 대한 그 해박한 지식은 뭐였을까. 해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무.단.펌.

같은 제목으로 검색을 해보니, 이미 타 곤충판매 사이트등에서 배껴온 내용이었다. 파주 봉서산에 사슴벌레가 많다는 것 역시 허풍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뉴스제목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60년만에 민간인에게 개방.60년만에 민간인에게 개방.60년만에 민간인에게 개방.'

나는 급하게 '사슴벌레 원정대'를 조직했고, 우리는 부푼 가슴으로 파주 봉서산을 향했다. 마트에 들러 랜턴 배터리를 사며 직원에게 묻자 그는 대답했다.

"뭐하러 봉서산까지 가요. 여기 널린게 사슴벌렌데"

'여기 널린게 사슴벌렌데..여기 널린게 사슴벌렌데..여기 널린게 사슴벌렌데..'

왕사님의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파주를 떠돈지 세시간,


봉서산 근처에서 잡은 애사슴벌레 (이름은 '푸쉬킨')



윗 사진의 애사슴벌레를 잡을 수 있었다. 사슴벌레의 이름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라는 시를 쓴 작가 '알렉산드로 푸쉬킨'의 이름을 따서 '푸쉬킨'으로 지었다.

그 후로도 총 네시간을 파주에 머물렀으나 다른 사슴벌레를 찾을 수는 없었다. 종종 길바닥에서 로드킬 된 사슴벌레를 보고 인근 산을 다 뒤졌지만 산에 목줄도 안 되어 있는 야생의 개들이 계속 짖는 바람에 더는 작업(?)을 할 수 없었다.



로드킬당한 사슴벌레 (넓사 암컷으로 추정)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교하에 들러 딱 나무 하나만 보고 집에 가야지, 했는데 그 안에 애사슴벌레가 또 한마리 있었다. 이미 시간은 흘러 7월 1일 새벽이었고, 녀석의 이름은 '줄리어스 시저' 라고 지어주었다.

서른 가까운 나이에 이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마음속에서 계속 '강원도~ 톱사슴벌레~' 라는 소리가 들려 아마 조만간 강원도로 떠날 것 같다. 

그럼,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만난 넓적사슴벌레 '찰스 디킨스'와 녀석들의 집 공개는 다음편에 계속 하기로 하고, 주변에서 사슴벌레 암컷을 보시거나, 톱사슴벌레나 걍사슴벌레 등을 발견하시면 바로 연락주시길 부탁드린다. 



▲ 사슴벌레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손가락을, 재미없으면 손등을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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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캣2009.07.03 04:4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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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멋있으세요~^^

겨울목2009.07.03 08:2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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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는 짓인지...꼭잡아서 기르려고하는 이유가뭐냐..
그냥 자연에서 살다죽게 내버려둬.
내가 너잡아서 우리에 가둬놓고 기르면 재미나겠냐?

무한™2009.07.03 09:3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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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챙겨주고, 잘 곳과 씻을 것, 그리고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 하나만 준비해주신다면
내일이라도 겨울목님 집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MDZ.2009.07.03 09:0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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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의 반전이 있는 드라마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간결한 도시남자의 말투 ㅋㅋㅋ

그런데 요즘은 초등학생도 핸드폰이 있나보네요;;

대단한데..

pighouse2009.07.03 14:1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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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에게 밤 9시는 무리겠쬬...^^;

실제로 사슴벌레가 많았으니
낚은건 아닌거 같네요ㅋㅋㅋ

개죵2009.07.03 16:0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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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벌레라..

정말 흥미롭네요

인터넷에서 가끔씩 사슴벌레 키우는 얘기를 흘려 읽긴 했지만

이미 매니아들이라 공감이 가질 않았는데 초입을 같이 시작하다보니

저두 키워보고 싶어집니다.

벌레도 동물처럼 아프기도하고 그럴땐 치료를 받아야 할지 궁금해집니다.

사육기 앞으로 계속 올려주세요^^

똘개2009.07.05 20:1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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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으로 9박10일 농활을 다녀왔는데 톱사슴벌레가 꽤있더군요ㅋㅋ60미리 넘는 숫놈도 둘이나 봤구요~ 신생충인것같으니 지금 잡기도 꽤 좋은 시즌같습니다~~

fayefaye2009.07.05 23:0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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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애사슴벌레 넘 귀엽네요^-^
쟤는 다 커도 애기인거다...ㅎㅎㅎ

라라윈2009.07.07 03:3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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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초등학교 4학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한님 낚이셨군요...ㅋㅋㅋㅋㅋ

저는 사슴벌레 보면 살짝 무섭던데...
사슴벌레를 찾으러 전국을 누비시는 모습을 보니..
대단하시다는 생각만 듭니다... +_+

아자뵹2009.07.08 16:4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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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블로그를 바탕화면에 바로가기 해놔서

자주 봅니당..

제가 재촉하는것은 아니지만,,,

글이 안올라와서용 ㅎㅎ

많이 기대하고 있어용

다른사람의 다른 삶 ㅎㅎ

기다립니다,,

2009.07.15 11:4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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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사슴벌레를 잡아왔다. 슬픈이야기네요. 모든 만물이 자기가 있을곳이 있죠. 산에서 잡아와 작은 통안에 넣어놓으실거죠. 인간이 이토록 이기적이죠.
님을 잡아와 방안에 넣어 놓고 밥만 주면서 님을 가끔 들여다 보면 좋으시겠어요? 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유로왔던 사슴벌레의 슬픈이야기네요.
그자리에 그냥 놔두면 안되는건가요?

기타2009.07.18 12:4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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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적으로 연애메뉴얼보다 더 재밌습니다 댓글까지도 재밌는 이유는
사슴벌레에서 파생되는 독창성과 자연미 때문이 아닐지..ㅎㅎㅎ

EYQREKKL2009.07.28 22:1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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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4학년까지 읽고 한번 풉하고 뿜고 ㅋㅋ 댓글 쓰는데, 초딩이었을거같다는 ㅋㅋㅋ
-------------------------------------
짐작이 맞더라는 ㅋㅋ

멋진하루2009.08.11 13:0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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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고생하셨네요~
얼마전에 언니네집에 갔을때 사슴벌레가 있었는데..
전..왜 이런걸 집에 뒀냐며..소리를 질렀던 ㅋ
근데 금방 죽어버렸어요...
사슴벌레가 이렇게 귀한줄 알았다면 그때 열심히 볼걸..하고 후회되네요

무한님~ 글 재밌어요~~~

야반채집2009.08.11 15:0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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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42년전 동네친구들과 누가 많이키우나 경쟁이 붙어서
밤에 참나무진이 많은나무를 찾아 산을 오르던 기억이.....
밤에 참나무진이 많은곳을 손으로 훑으면 비닐봉다리 한가득 정도는
거뜬히 잡을수 있어요.
물론 돌아올땐 산이 무서워지죠... 그땐 냅다 뜁니다.
하지만 잡으러 올라갈땐 기대에 부풀어 무서움도 몰라요
전 혼자 잡으러 다닌적이 몇번 있어서 그기분 생생하네요
잘키우셔요...
근데 글 잘쓰신다....

임준호2009.08.31 01:5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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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너무 잘쓰시네요.^^

재밌게 잘보고 갑니다.

성격이 참 재밌으신 거 같아서
같은 사슴벌레 키우는 사람으로써 만나보고 싶네요.ㅋㅋ

허사로다2009.09.18 15:3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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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잘 키우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ㅋ

그래도 아직까 시골에선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녀석이네요 ㅡㅡㅋ

어릴댄 [후레쉬]들고 밤에 자주 잡으러 다니던 기억이 납니다!!

바퀴철학2010.01.27 10:4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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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풍이/사슴벌레 카페나 동호회 같은 곳에는 나이 어린 회원들이 엄청 많죠.
아직 예의를 모르는(없는?) 애들도 많고...
말투가 저렇다면 나이가 어리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그나저나 로드킬당한 사슴벌레들...불쌍해요.
차 좀 조심해서 끌고 다니지...일부러 밟는 사람들은 없겠죠?

2010.05.04 18:1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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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서리 산2번지에 있는 고등학교 다녔는데
이런곳(응?)에서 우연히 만나니 반갑네요

사슴벌레가 파주에 많은거지
봉서산에 특별히 더 많지는 않을걸요
고딩 3년동안 한번도 안나왔거든요ㅋㅋㅋㅋㅋㅋㅋ

daham2010.12.22 22:5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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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봉서산이 아니고 고봉산이 많죠... 톱사슴 애사슴 넓적사슴..

그리고 잡으러 다니실때 그냥 훑으셨나봐요.. 부엽토를 뒤져야죠..

참나무밑 부옆토속에 잘 있는데... 밤에 갈필요도 없어요

시기도 잘 맞춰야하는데 7-8월달이 가장 좋아요

걍사슴벌레2011.04.11 17:5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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걍사있는 분~~~ 제발저주세요(수컷)전화 하세요~~~764-0241 꽁짜로 주세요ㅋㅋ 저는 사슴벌레에 ㅁㅊ사람이에요 걍사슴벌레 꼭!!!!! 주세요~~~
왕사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걍사를 잡기에 가장좋을때는 6~8쯤이 좋아요
그럼 이만 안녕히게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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