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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천오백자연애상담

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남친, 결혼해도 될까요?

by 무한 2017. 3. 17.

그렇게 묻는다면 나도, H양에게 결혼을 별로 권하고 싶진 않다. 결혼해서 벌어질 수 있는 ‘좋지 않은 일’들에 대한 불안 때문에

 

‘결혼했다가 이혼 못하고 그냥저냥 억지로 살게 되는 것 아닐까.’

 

싶다면, 현재 남친이 아닌 다른 남자와의 결혼도 권하고 싶진 않다. 꽃길만을 걸어도 오래 걷다보면 발이 아플 수 있는 거고, 또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어지는 게 사람인데, 상대와 결혼해도 결점을 느낄 일 없을 것 같냐고 물으면 그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을 해주긴 곤란한 것 아니겠는가. 상대에게 친구가 많으면 가정에 소홀한 채 밖으로 돌아서 짜증날 수 있고, 친구가 없으면 집에만 박혀서 어디 나가지도 않는다며 답답함을 느낄 수 있는데 말이다.

 

 

난 우선 다른 건 다 접어두고, H양에게

 

“상대가 곧 세상에서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앞이 캄캄하며 막막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십니까?”

 

라는 질문을 해보고 싶다. 뭐, 꼭 이렇게 친밀한 교감과 애틋함이 없어도 결혼해서 살면 또 살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H양처럼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데 결혼해도 될까?’라며 망설이는 상황에 저런 교감과 애틋함도 없는 관계라면, 상대와의 결혼이 H양의 인생을 망치게 만든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건 시간문제다.

 

H양은 해외에 나가서 일하려고 했던 꿈을 남친 때문에 접었다며 그것에 대해 종종 ‘내가 왜 얘 때문에!’라며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고 했는데, 그래서 난 더 염려가 된다. H양은 자꾸 상대나 상대와의 연애를 도려낸 상황과 현 상황을 비교하며 불만을 갖거나, 상대와 결혼까지 생각한다면서도 ‘상대와 결혼하지 않았을 때 얻는 이점, 또는 결혼하지 않을 경우 받지 않아도 되는 상처’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태도는 H양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 불안의 요소가 있다면 나는 절대 결혼하지 않을 거다.

- 만약 결혼한다면, 내 결혼은 완벽해야 한다.

- 완벽할 수 없다면 결혼하지 말아야 하고, 해도 아이는 낳지 말아야 한다.

 

라는 생각들로 인해 나타나는 것 같다. 더불어 H양은

 

- 결혼은 어차피, 다 상대에게 속아서 하는 거다.

 

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는데, 이쯤 되면 H양은 결혼에 대한 결벽을 가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러면서 H양은 ‘결혼할 남자’에 대해

 

- 나와 같은 종교를 가지고 있을 것, 술 안 마실 것, 담배 안 피울 것.

 

이라는 기준을 정해두었는데, 이것 중 현남친이

 

- 같은 종교긴 하지만 독실하진 않음, 술 마심, 담배는 안 피우는 줄 알았는데 피우고 있었고 결혼해서 끊는다고 함.

 

인 상황이라며 내게 사연을 보내온 것이다.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데 결혼을 하자니 리스크가 너무 클 것 같으며, 남친의 이런 단점(H양의 표현이다)을 H양이 다 이해해주면서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부아가 치민다면서 말이다.

 

 

독수리였는지 까마귀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두 살이 되기 전 독수리에게 죽을 거라는 예언을 받은 왕자>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길 바란다. 왕과 왕비는 그 예언을 피하려 왕자를 궤짝 속에 넣어 보호하며 길렀다. 궁전 근처로 새 한 마리도 못 다가오게 하며 왕자를 철저하게 지켜낸 그들은, 하룻밤만 더 자면 이제 왕자가 두 살이 되니 예언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위험이 다 사라졌다고 생각한 그들이 궤짝에 있던 왕자를 꺼내려할 때, 왕자는 왕비가 급하게 풀다가 떨어진 자물쇠를 머리에 맞아 죽고 말았다. 자물쇠에는 독수리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위의 이야기가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여하튼 H양이 철저하게 확인하고 완벽하게 계획했다 해도, 그게 상상도 못했던 일로 한순간에 엎질러질 수 있는 게 인생이라는 걸 기억했으면 한다. 그리고 술, 담배 안 하고 채식을 하며 세계 최초로 구체적인 동물보호법을 만들었다고 알려진 사람의 이름이 아돌프 히틀러이기도 하다. 그러니 H양이 정해둔 기준이라는 게, 결코 상대의 인성을 증명하거나 상대와의 미래에 대한 보장까지를 해주는 건 아니라는 점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또, 지금이야 H양 혼자 남친에게 계속 불만을 말하고 지적하는 일이 가능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남친에게는 그 피로가 축적될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해뒀으면 한다. 저 위에서 말했듯 H양은 ‘내가 왜 얘 때문에!’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고 했는데, 남친 역시 자신이 포기하거나 양보하는 일이 거듭되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될 수 있다. 남친 입장에서 보자면,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 대해 계속 불만만을 말하는 사람과 함께해야 할 이유를 점점 잃어갈 수 있으니 말이다.

 

H양은 자신이 세워둔 세 가지 기준에서 벗어난다는 걸 제외하면 남친이 다른 모든 부분에서 훌륭하며 배려와 헌신마저도 합격점이라는 뉘앙스로 말했는데, 세상에는 그의 그런 장점과 매력을 보며 사랑할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남친이 90점이라면 H양의 남친에게 모자란 10점에만 꽂혀 있는 것일 수 있으니, 정말 그런 이유로 인해 결혼 안 할 거니까 이쯤에서 정리하는 게 맞는 걸지, 그리고 그에겐 H양이란 사람이 과연 몇 점 정도 되는 여친일지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H양의 지인들은

 

“뭐 그런 걸 가지고 헤어질 생각씩이나 해?”

 

라고 했다고 하는데, 내 생각도 그들과 비슷하다고 조심스레 말해본다. 연애나 결혼이 무슨 낙장불입인 것도 아니고 결혼했다고 해서 H양이 정물이 된 채 모든 조율의 가능성이 사라져버리는 것도 아닌데 무얼 그리 걱정하는가. 조율이 필요 없이 평생 변하지 않을 사람을 찾는 건 어리석은 일이니, 조율의 방법을 배워가는 일에 더 힘쓰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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