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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천오백자연애상담

양보하고 배려하다 그게 당연한 게 되어버린 연애

by 무한 2017. 3. 21.

양보와 배려는 분명 미덕이긴 하지만, 그게 지나칠 경우 상대에게 ‘진짜 그런 사람’으로 보이게 될 수 있다. 아보카도 먹어봤냐며 사준다는데 속으로 ‘아, 저거 너무 비싼데….’하며 계속 안 먹겠다고 하면 평생 먹을 기회가 없어질 수 있고, 이쪽에선 선물을 해주는데 상대는 선물을 안 해주는 걸 매번 이해하고 넘어가면 그게 당연한 것처럼 굳어질 수 있다.

 

 


 

J양의 사연을 읽으며 내가 가장 답답했던 건, 너무 많은 부분에서 J양이 먼저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려 든다는 점이다.

 

- 남친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 남친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 남친이 사실은 곤란한데 아닌 척 하는 것 아닐까?

- 남친이 난감해지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을 어쩌다 한 번씩 해가며 점검하는 건 훌륭한 일이지만, 거의 언제나 모든 부분에서 저래버리면 그건 연애라기보다는 남친을 위한 J양의 자원봉사가 될 수 있다. 그냥 그 정도만 해도 무리 없이 연애가 이어지니 남친은 더 열심을 낼 필요를 못 느낄 수 있고 말이다.

 

 

난 이 시간 이후로 J양이, 여행도 가고 싶어 하고, 한 끼에 기십만 원 하는 음식도 먹어 보고 싶어 하며, 휴양지 리조트에서 망고주스를 마시며 여유로움도 느껴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오로지 저런 것들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언젠가는 저런 순간도 한 번씩 경험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전혀 문제될 게 없다. J양이 무슨 소고기 알러지가 있어서 입에서 살살 녹는 예쁜 마블링의 소고기를 못 먹는 것도 아닌데, 늘 미리 기대를 내려놓고 알아서 포기한 채 무한리필 냉동 수입 삼겹살만 먹어야 하는 건 아니잖은가. 칠레산.

 

연애도,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그까이꺼 열심히 해도 잘 안 되면 때려치웠다가 다음에 다른 사람과 다시 하거나 그러면 되는 거지, 상대 눈치 보고 다 맞춰가며 점점 이해하고 배려해야 할 것만 늘어나는데 계속 잡고 있을 필욘 없다. S양이 매번 남친을 배려한다며 남친 쪽으로 갔더니, 그는 그게 당연한 줄 알곤 다리 다쳐서 잘 걷지도 못하는 S양에게 내려오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게 이해와 배려와 헌신을 해도 상대가 고마움을 모른다면 그때부터는 물 넘치는 것 막으려 수도꼭지 잠그듯 좀 줄여가야지, 그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서운하게 생각하면서도 또 깁스한 채 남친 만나러 가면 J양은 ‘그래도 되는 여자’가 될 수 있다.

 

 

J양은

 

“이전 남친과의 연애를 봐도, 발렌타인데이에 제가 정성껏 선물해줘도, 그 사람은 화이트데이에 막대사탕 하나 안 사줬거든요. 피시방에서 컵라면 먹으며 데이트하고, 그 데이트 비용도 제가 내고…. 지금 생각해도 그땐 왜 그렇게 참고 희생해가며 사귀었는지 모르겠네요.”

 

라고 말했는데, 여기서 보기엔 지금의 연애도 그 연애와 완전히 다르진 않다. 난 J양의 사연을 읽으며

 

- 정말 그런 일들이 또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J양이 미리 남친에게 안 그래도 된다고 말하거나 필요 없다고 말하며, 그렇게 ‘배려와 양보’의 이름으로 선수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그건 J양에게서 일부러 기대와 희망을 낮추는 듯한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또, J양은 자신이 그렇게 ‘양보와 희생’을 하는 대가로 ‘남친의 관심과 애정’이 자신을 향하기를 바라는 것 같은데, 그게 그런 식으로 등가교환이 되는 게 아니다. 만약 그런 거라면 내가 이런 매뉴얼을 쓰는 대신

 

“남친의 집까지 삼보일배 하며 가세요. 십자인대가 나가면 사랑이 깊어집니다.”

“데이트 비용을 전부 부담하세요. 예쁨 받는 지름길입니다.”

“대리운전 기사에게 관심을 빼앗기실 겁니까? 남친이 술 마셨다고 하면 대리 말고 날 불러달라며 즉시 달려가세요.”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겠는가.

 

 

남친을 위해 뭔가를 하지 않으면 남친이 결국 J양을 싫어하게 될 생각, 남친이 바라는 것이 아닌 J양이 바라는 것을 주장하면 남친이 J양을 미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뭐 그런 불안을 내려두고 좀 편하게 만났으면 한다. 그렇게 만나다 부딪히는 부분에 대해선 조율도 하고, 또 실망스럽거나 상처가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대화도 해가며 교정해야 한다. 그게 안 된다면 J양이란 한 사람은 상대에게 ‘이러이러한 특징이 있는 여자친구’가 아닌 ‘다 받아주는 자원봉사자’가 될 뿐이니, 난 이런 걸 원하고 이런 걸 좋아한다고 분명하게 밝히길 권한다.

 

J양이 내게 물은 건 ‘서운하게 하는 남친에게 서운해 하지 않는 방법’, ‘무심해지는 남친에게 집착하지 않는 방법’, ‘존중 받는 연애를 하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왜 그런 ‘방법’들 대신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의아할 수 있는데, 위에서 말한 것들이 바로 문제를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차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면 차량을 점검해야지, 실내 방음을 더 할 생각만 해선 안 되는 것 아니겠는가. 지레 겁먹곤 눈치 보며 내가 설 곳은 손바닥만큼만 놔둔 채 목숨만 이어가는 연애 말고, 좀 기쁘고 즐겁고 재미있고 주말이 기다려지는 연애 하자. 둘이 함께 행복하자고 하는 연애인데, J양만 너무 필요이상으로 애쓰진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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