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보기  댓글쓰기
1968년 3월 8일 입대, 군번 '51053545' 노무현
강원도 원주 1군 사령부 부관부 행정병 복무,
1년 후 원통의 12사단 (을지부대) 52연대 2대대의 소총소대로 자원


























<국방일보 '추억의 내무반' 대통령 특별 기고문 전문>

어려운 일 잘하는 사람이 군생활 잘하는 사람

국방일보 ‘추억의 내무반’이 100회를 맞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100번째 필자로 기고하게 돼 매우 기쁩니다. 아울러 지금도 국토방위에 여념이 없는 국군 장병 여러분의 노고에 치하와 격려를 보냅니다.

이제 완연한 가을입니다. 청와대 주변에도 낙엽이 수북이 쌓였습니다. 가을 낙엽은 보기에는 멋지지만 장병들에게는 떨어지는 즉시 치워야 할 ‘애물단지’입니다. 낙엽과 한바탕 씨름을 하고 나면 곧 눈과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제가 근무하던 부대도 눈이 참 많이 내리는 곳이었습니다. 눈을 보기 힘들었던 김해와 부산에서만 살다가 입대한 저는 하얗고 소담스럽게 내리는 눈이 마냥 신기하고 좋아 보였습니다. 부대에 첫눈이 내렸을 때 무심코 “와, 눈 한번 멋지게 내린다”고 말했다가 선임병에게 눈물이 찔끔 나도록 혼쭐났습니다. 눈을 치우는 일이 그렇게 고달픈 일인 줄 눈이 온 다음에야 알게 됐습니다. 지금도 그때 눈 치우던 생각을 하면 정신이 다 아찔해집니다.

저는 병사 출신입니다. 일반 병사 출신이 대통령이 된 것은 제가 처음입니다. 1968년 3월에 군번 ‘51053545’를 받고 입대해 71년에 상병으로 만기 전역했습니다. 지금도 병장을 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당시에 베트남 참전 장병들이 많아 병장 정원이 크게 줄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원주 1군사령부 부관부에서 군생활을 시작했는데 신병 시절을 힘겹게 했던 것은 시도 때도 없는 ‘사역집합’이었습니다. 사역이라는 것이 일과가 없는 시간에 집중되다 보니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의 휴식을 고스란히 빼앗기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래도 군기가 바짝 든 신병이었기에 '사역병 집합' 구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제일 먼저 뛰어나갔습니다.

당시 제일 편한 사역은 연병장에서 클로버를 뽑는 것이었습니다. 잔디밭에 앉아 클로버를 뽑는 일은 단순하고 쉽기도 했지만 슬글슬금 요령을 피울 수도 있는 꽤 괜찮은 사역이었습니다.

군생활을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유난히 센 군기와 잦은 기합이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부관부가 당시에는 담뱃값 정도 챙길 수 있는 자리라 그랬던 것 같습니다. 1년을 그렇게 지내다가 전방 차출이 있다는 소식에 즉각 지원했고, 곧 12사단으로 옮겨 갔습니다. 지원할 때에는 호기롭게 했습니다만 막상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사방이 가파른 산으로 둘러싸여 하늘이 손바닥만하게 보이는 그야말로 첩첩산중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하던 그 원통이었습니다.

군사령부 부관부에서 고생한 탓에 이번에는 일반 보병중대로 배속되기를 바라며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대대 CP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휴가 가는 선배들이 “중대에서는 근무 중에 졸면 목을 베어간다”고 어찌나 겁을 주던지 결국 저는 대대장 당번병으로 주저앉게 됐습니다. 그리고 건봉산 대대 상황실에서 몇 달 동안 생활했습니다.

비록 철책 근무를 서는 보직은 아니었지만 휴일도 없이 밤을 꼬박 새우고 낮에는 새우잠을 자야 하는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더 힘들었던 것은 매일 물을 길어 올리는 일이었습니다. 나중에 전방 철책중대로 가서 중대 본부에서 근무하다가 마침내 소대에까지 내려가 철책근무하고 GP근무도 하다가 전역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방이든, 후방이든 쉬운 곳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이겨내지 못할 만큼의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합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할 때 보람도 얻고 군생활에 재미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이른바 적극적 사고라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자원하는 사람이야말로 군생활을 가장 잘하는 사람입니다.

군대 동기 중에 엄창호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항상 어려운 일, 궂은일을 도맡아 앞장섰던 친구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국군의 날 행사에 차출되면 몇 개월 동안 여름 땡볕에 고생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그 친구는 누구나 꺼릴 만한 제병지휘본부 차출을 자원했습니다. 국군의 날 행사에 참석해 사열하면서 그 친구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 모르지만 언제나 남을 편안하게 해주는 좋은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남자들은 셋만 모여도 밤을 새워 군생활의 무용담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힘들었지만 자랑스러운 경험이라고 여기기 때문일 겁니다.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군에서 어려움을 견디며 환경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야전삽 하나와 곡괭이 하나를 주고 벙커를 지어내라고 하면 전쟁 때 쳐놓았던 유자망을 철사 삼아 통나무를 엮어 귀틀집 같은 벙커를 지어냈습니다.

전역 후 제가 사법시험에 도전하고 또 어려움 속에서도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군에서 단련된 ‘하면 된다’는 강한 정신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집니다. 리더십을 키우고 협력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대통령이 된 지금도 군에서 터득한 이러한 교훈은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국군은 나라를 지탱해 주는 기둥이자 대들보와 같은 존재입니다. 지난 국군의 날 행사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우리 군의 위용을 보면서 말할 수 없이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국가안보뿐 아니라 국민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그 존재감은 더욱 커져 보입니다. 지난 태풍 피해 복구에도 우리 장병들의 활약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힘들지만 조국을 위한 여러분의 헌신은 무엇보다 값지고 영광된 일입니다. 우리 국민은 한없는 믿음과 애정을 갖고 우리 군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군생활에 무운을 기원합니다.

2003년 11월 7일

노무현 대통령


아침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이유를 알 수 없는 패배감이 들었다. 이 감정을 글로 옮길까 하다가,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말' 때문에, 또 '글' 때문에 괴로워 하셨다는 생각이 들어, 정치적인 이야기나 사상, 이념, 이런 걸 다 떠나 한 사람 '노무현'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았다.




다 내려 놓으시고, 이제는 좋은 곳에서 편안히 쉬시길 빈다.


신고
이전 댓글 더보기

호주2009.05.26 17:11 신고

수정/삭제 답글달기

육여사 돌아가셨을때 많이 마음 아프고 슬퍼한이후로, 가까운 친지나 지인이 세상을 떠났을때도 이렇진 않았는데....가슴이 아프고 억울하고 답답함에 눈물마저 마르고 이제는 육신의 통증으로 느껴지네요. 노. 무. 현. 너무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그의 생각과 소신은 우리와 우리네 수준하곤 맞지않는 이상이라고 생각했는데...다시 볼수 있을까요 그분같은 사람...털어 버리려해도 지워지질 않네요...그래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아파하고 기억하니 가시는길 외롭진 않으시겠네요. 당장이라도 한국으로 가고 싶지만....죄송하고 사랑합니다 안식하소서...

두견이2009.05.26 17:14 신고

수정/삭제 답글달기

슬피우는 새 두견새가 되어
내사랑 그대를 위로하리라

방굴이2009.05.26 17:42 신고

수정/삭제 답글달기

하늘 나라의 대통령이 되시길~~~~^^

고무신꿀2009.05.26 21:13 신고

수정/삭제 답글달기

노무현 아저씨를 예전에 알았어요, 대통령 되기 전에.. 그때 이게 맘에 안 든다, 정치인은 거짓말을 많이 한다, 이런 이야기 앞에 다 대고 이야기해도 화내거나 찌푸리는 기색없이, 허허 웃으면서 맞습니다, 이런건 고쳐야지- 그러던 분이셨는데... 그냥 믿기지가 않아서, 아직도 분향소를 찾지도 않고 계속 부정하게 되네요.. 내 마음에 꼭 드는 대통령이기보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대통령이었어요- 이야기하면, 곰곰이 생각해보고 고치거나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한바탕 말싸움을 벌여도 괜찮을 것 같은, 그런 대통령. 그런 대통령이 또 어디에 있을까... 아직도 믿고 싶지가 않네요. 너무너무 보고싶어요 이제 진짜 편하게 쉬셨으면 좋겠습니다.

불량 감자2009.05.26 21:46 신고

수정/삭제 답글달기

삼가 고인에 명복을 빔니다 노대통령님 군생활 저희 동네서 했습니다...참고로 인제원통에서 대통령님들이 많이 오셨었네요 전두환 대통령 백담사에서 은거 생활하고 김대중 대통령 군의원인지 먼지 오래되서 기억은 안나지만 그리고노무현 대통령님 군생활 하시고....원통이라는 뜻은 으뜸으로 통한다 라는 뜻임니다...

9사백마2009.05.26 22:34 신고

수정/삭제 답글달기

흐음,,,전 여기 보스가 얘기해주어 알았습니다.'한국 대통령이..' 이러고선,,
대학때도 줄기차게 데모하러 다녔던 저로서는(아마 제가 마지막 세대가 아닐런지 생각해봅니다) 참 맘이 아프더군요. 처음, 이 나라가 생긴이래 처음, 서민!출신 이셨을텐데,,,ㅜㅜ 덕분에 자기들 기득권잃을까 염려하는 들개들에게 많이 뜯기시기도 하셨죠,,ㅠㅠ
언젠가 장병들앞에서 정말 군생활 밑바닥을 해보지 않으면 모를 말도 하시더군요.. 아마 내무반 사열인가 할때, '나 온다고 이거 정리하고 이러느라 힘들었죠? 저도 군생활 할때 누가 온다그러면 그렇게 싫었습니다...' 그러시더군요.(요샌 아줌마들 떼거지로 군 식당가서 깔끔하네 어쩌네 하던데..그런 글보면서 쟤들은 얼마나 빡셌을까 싶던데...)

흠,,
저 마지막 사진 밑에, 현 대통령께옵서 개머리판을 뺨에 대고 조준하는 사진 하나 올려주시지...ㅋㅋ

올빼미2009.05.27 04:21 신고

수정/삭제 답글달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제까지 대통령중 가장 양심있는 분이셨습니다
전,노 오래전 대통령을 한번보세요
청와대에 금고까지 두고 돈을 모은분들에 비하면
세발의 피도 아닙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소탈하게 대통령까지 하신분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넘 사느게 쓸쓸하네요
남은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재차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신영희2009.05.27 08:19 신고

수정/삭제 답글달기

무한히 존경하는 아버지를 잃은 기분..
아니 내 아들의 청사진을 잃은 기분...
그렇지만, 살아서 욕되느니 죽어서 전설이 되셨네요..
단군이래 가장 멋진 대한 남아였습니다.^^
나는 당신이 있어 대한 민국의 남아가 좋아졌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토오히로부미2009.05.27 10:06 신고

수정/삭제 답글달기

대통령도 현역군대를 갔다왔구나..신기..

유성2009.05.27 10:26 신고

수정/삭제 답글달기

조금 뻔뻔해 지지 그러셨어요 ..
사진볼떄 마다 눈물이 납니다.
처음엔 그저 멍해서 이게 정말 슬픈건지 실감이 나지 않다가
시간이 조금씩 흐를때마다 슬픔이 조금씩 더 쌓이는 느낌입니다.
못 헤어날것 같습니다. 언제까지나 기억하겠습니다.

2009.05.27 11:56

수정/삭제 답글달기

비밀댓글입니다

작은날개2009.05.29 09:38 신고

수정/삭제 답글달기

저는 그분을 끝까지 믿었습니다.
그러면 뭐합니까...겉으로 드러내놓고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한이네요...스스로 너무 부끄럽습니다.
누군가 썼던 글이 생각납니다.
미네르바 부엉이...봉화산 부엉이...
부엉...부엉...부엉이는 쥐를 잡아먹는다...
역사가 심판할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이렇게 첫글을 남기게 될줄은 몰랐는데..
무한님 글 너무 재밌어요^^

백당시기2009.06.02 21:19 신고

수정/삭제 답글달기

말과 글과 행동에서 직접 경험한 표시가 반드시 나게 되어있다.
노대통령의 글은 너무나 사실적이다.
내가 느꼈던 것과 똑같다.

군대생활뿐만이 아닐 것이다.
여러 부분에서 국민들이 느끼는 것과 동일하게 느끼고 사고하고 행동하였다.
지금 노대통령의 부재가 너무나 가슴아프다.

나의 영원한 대통령 노무현.
충성! 노무현, 나의 경례를 그에게 바친다.

편히 가시라.
이제 흐르는 바람과 함께 대자연에서 영원하시라.
안녕 나의 대장, 나의 대통령.

돌고래2009.10.16 16:01 신고

수정/삭제 답글달기

이상하게도 저분과 관련된 사진이나 글만 보면 눈이 시큰해지네요.
전 투표도 안했고,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고,
정치등에 관여하지 않는 삶을 산다는 신조가 있어서
남들보다 무디고, 칭찬도, 욕도 할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말 할 처지는 아닙니다만
정말 아까운 사람이 갔어요. 많이 아깝습니다.

란군ㅡ_ㅡ;2009.10.29 12:06 신고

수정/삭제 답글달기

다시 봐도 가슴 아프네요..
뭔가 무거운 걸 가슴에 올려놓은거 마냥..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의 마음이 되버렸습니다.
아마, 잠시 잊었나봅니다.
그가 더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언제 들어도 믿을 수 없는 그 사실 말이죠.
후.. 어제 재보선 때문에 그런가.. 맘이 더 무거워요..

우왕2010.02.09 21:23 신고

수정/삭제 답글달기

에휴 이 글보니까 눈물이 나네요. 젋은시절 저렇게 해맑으셨던 분이 말년에 맘고생 하셨을 생각하니까 안타까워요... 노무현대통령 잊지못할거에요. 고생하셨습니다. 항상 노무현대통령 사진볼 때마다 부채의식 드는건 어쩔 수 없겠죠,,죄송합니다. 편히쉬세요. 다음생에는 더 행복하고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에 태어나시면 좋겠어요.

태즈매니언2011.01.05 00:29 신고

수정/삭제 답글달기

이런 글이 있었군요.

제게 '첫사랑'만큼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는 그분의 발자취를 이렇게 접하니 반갑기도 하고 이런 분을 떠나보냈다는 사실이 애통하네요.

엄마미소2012.04.15 00:41 신고

수정/삭제 답글달기

총선 뚜껑 열고 나서 문득 이 글을 다시 보니
우리는 지난 3년 간 무엇을 했나 싶습니다.

지난 주에는 우리 역사를 다룬 책들을 몇 가지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이들 교육용 두 가지, 비교적 일반인 용으로 나왔던 것 한 가지..
읽다보니 하나같이 현대사가 뭉텅뭉텅 빠져있습니다.
그나마 한 책은 제목이 좀 나와있었지만, 책 자체가 너무 압축되어 나온 바람에 내용이 빈약했습니다.

아쉬운대로 그거나마 읽었는데,
우리 현대사를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놈의 나라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야 바뀌는구나. 국민들이 독립전쟁을 해야 하고, 시민들이 잘못된 대통령을 끌어내려야 하고...'

다시 생각해 보니, 싸워야 (그제서야) 바뀌는 건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굳이 '이놈의 나라는' 이라고 생각한 까닭은
반쯤은 '익숙한 + 관심있는 게 내 주변이니까'
그리고 나머지 반쯤이 식민사관 탓이리라 생각하며..

어쨌든 거리로 나가야 하나보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 모니터 뒤에 있습니다.
지난 3년 간 나는 정말 무얼 했지- 하며.
씁쓸한 밤입니다.

자신감~2013.03.21 22:03 신고

수정/삭제 답글달기

가슴이 아픕니다..

아하2015.03.13 10:48 신고

수정/삭제 답글달기

노무현 대통령에 목소리가 그리운 40대 중반 아저씨가
대통령을 그리며....
그를 추모 합니다.
댓글은 무료로(응?), 별도의 가입이나 로그인 필요 없이 남기실 수 있습니다.
사연은 공지(클릭)를 읽으신 후 신청서에 적어 메일로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