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미생활과여행/여린마음해외여행

스위스 신혼여행. 취리히 공항에서 취리히 시내, 숙소까지.

by 무한 2018. 6. 15.

내겐, 대세를 따르면 되는 순간에도 굳이 어렵게 혼자 개척해나가려는 병이 있다. 결혼식만 놓고 보더라도, 그냥 청첩장은 종이와 모바일 둘 다 업체에 맡기고, 영상은 예식장에서 준비해준다고 하니 사진과 영상 넘기고, 축가는 남에게 부탁했다면 참 쉽고 간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한 땀 한 땀 내 손길로 만들겠다는 이상한 생각을 품었고, 그 결과 결혼을 앞두고 여러 감정들을 음미할 시간도 없이 영상제작 툴을 익히고, 포토샵과 일러 사이에서 헤매며, 결혼식 당일 새벽까지 주례를 대신할 스토리 영상을 제작해야 했다. 다행히 겨우 완료한 까닭에 결혼식을 망치진 않았지만, 웨딩촬영도 셀프로 하고, 축가도 부르고, 영상도 만들고, 청첩장도 제작하느라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결혼식이 끝나 있었다.

 

 

어찌 됐든 결혼식을 무사히 마쳤으니 다행이긴 한데, 다다음 날 출발해야 하는 신혼여행도 직접 계획해 떠나는 자유여행이었기에, 난 턱시도를 벗자마자 폭풍검색과 예약을 하며 신혼여행을 준비해야 했다. 신혼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 여행사에서 일하는 군대 동기 H군이

 

“형, 현지 열차편은 다 예약했지? 어디 걸로 끊었어?”

 

라고 물었는데, 그 질문에 내가

 

“지금 알아보는 중이야. 야 이거 근데 뭐야 모바일로는 예약이 안 돼. 그리고 더 싼 거 있는데 이건 현지인들만 끊을 수 있는 건가?”

 

라고 되묻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로 화답해주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결국 해낸다. 밥 먹다가 본 TV를 계속 보고 앉아 있던 일주일 전의 나와, 한 시간만 자고 일어나겠다면서 다섯 시간을 자버린 그제의 나, 그리고 내일 걱정은 내일 하겠다며 곱창을 먹으러 나가버린 어제의 내가 넘긴 바통을 들고, 두뇌 풀가동 하며 전력질주를 해 결승선을 통과한다. 그냥 쉬엄쉬엄 걸어왔어도 되는 길을 이런 식으로 가고 있다는 게 문제긴 한데, 여하튼 해냈다는 희열을 느끼며, 다시 또 나무 밑에서 ‘멋진 질주였어.’라고 스스로를 토닥이며 잠을 청한다. 바통만 넘기는 ‘과거의 나’들을 만날 수만 있다면 명치를 세게 한 대씩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은 그렇게 해낸 신혼여행 첫날 이야기를 풀어 놓을 생각인데, 취리히는 사실 스위스패스를 그 다음 날 쓰기 위해 그냥 하룻밤 자는 곳으로 정한 도시라 별로 할 말이 없다. 어차피 오후에 도착하는 것이었기에, ‘취리히-취리히 중앙역’까지만 이동한 후 리마트 강과 그로스 뮌스터 정도 봐주곤 저녁 먹고 다음 날 루체른으로 이동해 리기산에 갈 계획이었다. 그런 계획으로 출발한 신혼여행, 뭐가 어땠는지 사진으로 함께 보며 떠나보자.

 

 

 

공항에는 예정보다 한 시간 늦게 도착했다. 긴 여행이라 빠뜨리고 가는 것이 있으면 안 되었기에 자꾸 확인하다 보니 늦기도 했고, 이사 온 곳에서 공항에 가본 적이 없기에 검색해서 가다 보니 더 늦어지고 말았다. 3시간 전에 도착하려 했는데, 2시간 전에 도착했다. 2터미널이었고, 다행히 문제는 없었다.

 

공항 가는 길에 스마트 체크인인지 모바일 체크인인지를 했는데, 편하고 좋긴 했지만 어느 게이트에서 타는 건지 모바일 탑승권에 나와 있질 않았다. 안내해주시는 분에게 물어보려 다가가니, “하이~”라면서 날 맞아주셨다. 아직 한국 뜨지도 않았는데 벌써 외국인으로 오해받고 말았다.

 

 

 

비행기 탑승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기내식이 나왔다. 비행기 처음 타보는 것도 아니면서 왜 기내식 사진까지 찍었냐고 할지 모르겠는데, 내겐 기내식에 얽힌 슬픈 이야기가 있다. 처음 비행기를 탄 게 고등학생 때였는데, 그때만 해도 난 비행기를 타면 무조건 기내식을 주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제주도 가는 비행기에선 기내식을 안 준다고 했고, 기내식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던 나는 무척이나 상심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다음으로 탄 일본 가는 비행기, 필리핀 가는 비행기에서도 기내식을 주지 않았다. 기내식을 먹고 싶다는 집념에, 밥을 안 먹고 와서 너무 배가 고프다고 혹시 기내식 같은 거 없냐고도 물어봤지만, 승무원은 음료와 과자만 줄 뿐이었다. ‘왜 난 기내식을 먹을 수 없지? 열 살 때부터 꿈꿔온 로망인데….’하는 생각을 오랫동안 지니고 있었다. 그러다 몇 년 전 파리에 갈 때 처음으로 기내식을 먹었는데, 양념 된 소고기를 꼭꼭 씹으며 울컥했다. 기내식이라는 게 그냥 겨우 이런 건데 내가 이걸 먹으려 십수 년을 기다려왔다니….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긴데, 난 기내식을 한 끼에 두 번씩 먹곤 한다. 짜장면을 고르면 짬뽕이 먹고 싶어지는 심리, 그리고 메뉴 하나로는 별로 든든하지 않은 것 때문인데, 승무원에게

 

“저기 혹시, 이거 곱빼기도 있나요?”

 

정도로 드립을 치면,

 

“푸흡. 서비스 끝나고 남은 것 있으면 가져다드릴게요. ㅎㅎ”

 

하며 가져다준다.

 

그런데 이번 비행에서 기내식을 나눠줬던 승무원은 매우 고지식한 사람이었는지, 내 ‘곱빼기’드립에

 

“양은 다 똑같습니다.”

 

라는 대답을 해서 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12시간의 비행. 니코틴 껌 덕분에 금단현상 없이 갈 수 있었다. 12시간이 길긴 참 길다. 밥 배불리 먹고, 와인도 좀 마시고, 화장실 다녀와서는 잔 건지 안 잔 건지 모르게 졸고 난 후 이제 거의 다 왔나 하고 화면을 보니, 겨우 반 정도 왔을 뿐이었다.

 

 

 

다시 또 찾아온 기내식 시간. 비행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난 과일과 샐러드 안 줘도 되니 소고기 팩 하나 치킨 팩 하나 주면 좋을 것 같다.

 

 

 

첫 식사 때와는 다른 승무원이 기내식을 갖다 줬는데, 남으면 하나 더 준다고 하고선 이후 소식이 없었다. 다시 물어보기도 좀 그렇고 해서, 와인과 과자를 몇 번 입에 털어 넣고는 잠이 들었다.

 

 

 

그렇게 자다 눈 뜨니 취리히 공항. 어마무시하게 맑은 하늘을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그다지 맑지 않아 놀랐다. 좀 더 파란 하늘과 풍성한 구름은, 오히려 동남아 쪽에서 봤던 것 같다. 지금은 이렇게 여유롭게 말하고 있지만, 저때만 해도 ‘취리히 공항에서 취리히 중앙역 찾아가기’를 검색하느라 바쁜 상태였다.

 

파리에 갔을 때 쓰리심(유심)을 잘 썼기에 이번에도 그걸 사갔는데, 이번 여행에선 정말 더럽게 끊기고 버벅거리고 신호가 잡혔다 안 잡혔다 해서 애를 좀 먹었다. 신호를 잡느라 열일하는 폰이 뜨겁게 달아오를수록, 내 속은 타들어 갔다.

 

표 파는 곳을 찾아가 Zurich HB에 간다며 표를 사고, 기차에 탑승한 후, 취리히 중앙역에 내렸다. 타국인 까닭에 표를 사고 기차를 찾아서 타는 일이 어려울 거라 생각할 수 있는데, 숙소 위치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면 그걸 찾는 게 더 어려운 일이라 기차 타는 것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다.(응?) 덕분에 난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기 전까지 사진을 한 장도 찍지 못했지만.

 

 

 

숙소 도착. 이전 여행들을 통해 숙소는 무조건 역(여행의 기점이 되는 역)과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까운 곳에 잡긴 했는데, 가까워도 옆에서 어마무시한 공사가 진행 중이라면 잠을 잘 수가 없다. 이때 까지만 해도, 새벽 다섯 시부터 호텔 바로 앞에서 공사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취리히 거리 풍경. 취리히에서 가장 놀란 건, 그냥 다 무단횡단을 한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무단횡단을 하면, 달리던 차는 멈춰 선다. 우리나라였으면 동물욕이 나올 순간이었을 텐데, 어찌 그리 여유로운지 누군가 건너려 하면 운전자가 멈춰 서선 지나가라고 수신호를 하는 게 인상 깊었다.

 

 

 

리마트강 풍경. 강은 대개 깊고 그 속이 잘 보이지 않으며 푸르기만 하기 마련인데, 리마트 강은 계곡 하류 정도로 투명했다. 우리나라였으면 백로나 왜가리, 해오라기 정도가 저 멀리서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피라미 사냥을 하고 있을 텐데, 취리히에선 강 위로 백조가 두려움 없이 헤엄치고 있었다. 사람들이 강변에서 고기 구워 먹는 건 만국 공통인지, 어느 커플은 장식용으로나 쓰일 것처럼 보이는 불판에 고체연료를 사용해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배가 고파져선 식당을 검색했다. 독일계 스위스 음식점이라는 초익하우스켈러(zeughauskeller). 포털에는 ‘제우하우스케러’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어 있다. <뭉쳐야뜬다>라는 여행프로그램에서 이곳의 1미터짜리 소시지 메뉴가 소개된 적 있다고 한다.

 

 

 

꾼들은 메뉴판 받아 술부터 보는 법. 식당 이름을 내건 기념 맥주가 있다니 저건 마셔줘야 할 것 같고, 어느 블로거 이곳에서 ‘인생 맥주’를 발견했다고 한 쉬마이도 하나 시켜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병에 2만원 짜리 맥주라니. 분명 엄청 크고 좋고 아름답고 맛있을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메뉴판 사진 찍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열심히 찍었다. 정보를 좀 알아내려 검색하다 보면, 자기들 먹은 음식 사진만 올리고 아무 정보도 안 주는 사람들을 보며 답답했기 때문에…. 가격은 대략 1인 3만 원대.

 

 

 

안주를 시킬 예정이었기에 소시지 부분을 공략했다. 1미터 소시지가 대략 10만원, 절반인 50cm 소시지는 5만원. 50cm로 결정했다.

 

 

 

이미 메뉴를 고른 까닭에 자세히 읽지도 않았던 페이지. 다른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현지 사람들은 저 페이지에서 메뉴를 골라 주문하는 것 같았다.

 

 

 

테이블 세팅. 한국과 달리 자리에 앉으면 바로 주문 받으러 오는 것도 아니고, 또 손을 들어 주문하겠다는 의사를 밝혀도 한참이나 후에 주문을 받으러 오는 까닭에 좀 오래 기다렸다.

 

 

 

드디어 나온 메뉴. 소시지를 잘라 소스에 찍은 뒤 감자와 함께 먹으면 간이 딱 맞다. 배고플 때 먹은 거라 신발에 소스를 찍어 먹었어도 맛있게 느껴졌을 테니, 맛 이야기는 생략하자.

 

 

 

50cm 소시지의 위엄. 피순대에 고기를 가득 채워 만들어 삶은 뒤, 깜빡 잊고 하룻밤 두어 건조된 느낌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소시지만으로는 양이 많지 않은데, 살짝 짠 까닭에 감자와 함께 먹다 보면 금방 배가 불러온다. 아 잠깐만, 이건 맥주랑 같이 먹어서 더 배가 부른 걸 수 있겠다.

 

 

 

불쇼를 해주는 맥주를 하나 더 시켰다. 난 위에서 이야기 한 제일 비싼 맥주가 저 큰 잔에 불쇼를 해주는 맥주인 줄 알고 시켰던 건데, 그게 아니라 그냥 병 들고 와선 와인 줄 때처럼 라벨 보여주고 따라주는 흑맥주였다. 누군가는 그 흑맥주가 인생맥주라고 하던데, 난 솔직히 잘 모르겠다. 도수가 확실히 높다는 게 느껴지는 거 말고는 감동적인 부분이 없었다.

 

 

 

불쇼 후 저렇게 맥주를 부으며 마무리. 다른 테이블의 사람들도 재미있는지 불쇼를 넋 놓고 바라보던데, 난 다시 주문한다면 그냥 시원한 맥주를 주문할 것이다. 잔이 뜨거워서 마시기 어려울뿐더러, 불쇼 때문에 맥주에서 잘 데운 정종의 느낌이 나고 만다. 어쩐지 관광객 빼고는 저걸 주문하는 사람이 없더라….

 

 

 

저 잔과 함께 사진을 찍으면 얼굴이 작아 보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근데 다시 얘기하지만, 불쇼 직후엔 잔이 뜨거워서 만지기 어려우며, 무슨 씨앗 같은 걸 뿌려주는데 그거 걸러내며 마시느라 거침없이 목넘김 하는 게 어렵다. 그냥 눈 즐겁고, 잔 탐나는 맥주 정도로 정리하자.

 

 

 

배 채우고 나오니, 취리히에도 저녁이 찾아와 있었다.

 

 

 

조명의 힘을 크게 받은 그로스뮌스터 대성당. 사실 밝을 때 가서 보고 왔는데, 근처에 사람도 없고 그냥 휑해서 좀 당황했다. 관광지에 있어 관광객들이 그 앞에 늘 붐비는 성당의 느낌이 아니라, 그냥 거기 성당으로써 있는 동네 성당 느낌이다. 때문에 저기가 아닌 줄 알고 지도 검색을 다시 할 정도였다. 밝을 땐 그냥 그저 그랬는데, 밤이 되어 조명을 받으니 그 위엄이 느껴졌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선 그대로 기절.

 

 

 

유럽 호텔의 흔한 조식. 공사하는 소리 때문에 새벽 다섯 시에 깨선, 일찍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다. 원래 여행 다니면서는 조식 안 먹고 늦게까지 잔 뒤 나가서 아점을 사 먹곤 하는데, 스위스 물가에 놀라서 한 끼를 조식으로 대처했다. 일주일 치 먹을 빵을 저기서 조식 한 끼로 다 먹은 것 같다.

 

 

 

호텔 밖 풍경. 그냥 ‘아, 취리히는 이렇게 생긴 곳이구나.’ 하는 것 말고는 크게 인상 깊은 게 없었다. 기차역 안에서도, 심지어 플랫폼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있어 그게 좋긴 했다.

 

 

 

자 이제, 제대로 된 스위스의 첫 일정이라 할 수 있는 리기산으로 출발. 기차를 타고 루체른으로 간 뒤 코인라커에 짐을 넣어두고, 유람선과 산악열차를 타고 리기산에 갈 계획이다. 숙소를 떠나기 전 우리 캐리어를 두곤 한 컷. 이때만 해도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전혀 예측 못한 채, 드디어 내 상상 속 스위스에 가까운 곳에 간다며 그저 들떠있을 뿐이었는데….

 

(2)부에 계속.

 

카카오스토리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공감과 좋아요, 댓글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카카오뷰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과 연관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과 연관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