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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남친과의 3년 연애, 제가 이별통보를 했습니다.

by 무한 2018. 8. 8.

Y양의 결정적인 문제는

 

-말은 안 하고, 참으며 혼자 오랜 시간 고민해 결론을 냄. 그러고는 그걸 상대에게 전하고, 상대가 왜 그래야 하냐는 식으로 물으면, 답이 이것밖에 없는데 더 어떻게 하자는 거냐고 반응함.

 

이라고 할 수 있겠다. Y양의 사연을 읽는 내내 난

 

‘왜 이 커플은 중요한 문제에 대해 대화를 안 하지?’

‘남자가 자기 생각을 꺼내면, 여자는 그냥 듣고 판단만 하네?’

‘이렇게 사귀면, 좋을 때나 좋지, 고난이 찾아오면 바로 끝이잖아?’

 

라는 생각을 했으며, 쉽게 갈 수도 있는 길을 왜 이렇게 멀리, 돌아서, 어렵게 가야 하는 건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사귄 지 얼마 안 된 까닭에 눈치 보느라 할 말 못 할 뭐 그런 사이도 아니고, 둘은 3년 넘게 사귀지 않았는가.

 

이것과 더불어 Y양 사연에서 보이는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오늘은 그것 중 가장 굵직한 것 두 가지와 Y양의 질문인 ‘이별은 잘한 결정인가?’에 대한 대답을 해볼까 한다. 출발해보자.

 

남친과의 3년 연애, 제가 이별통보를 했습니다.

 

 

1. 울며 기도하는 것보다, 카톡 하나 보내는 게 낫다.

 

오래전 내가 예로 들었던 이야기 중, ‘침몰하는 배에 탄 목사님’이란 이야기가 있다. 기독교 잡지에선가 봤던 픽션인데, 침몰하는 배에 탄 목사님이 자신을 구해달란 기도를 했지만, 결국 구조를 받지 못하고 천국에 가선 신과 대화하는 얘기다.

 

배가 침몰하기 전 구명정이 있었는데 목사님은 타지 않았고, 구조선이 왔지만 타지 않았으며, 끝으로 헬기가 왔지만 목사님은 타지 않았다. 자신이 온 마음을 다해 기도를 했으니, 그 기도를 들은 신이 자신을 구해준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목사님은 죽고 말았고, 사후 신에게 따지자 신은 ‘난 너를 구하려 세 번이나 사람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했다.

 

신앙의 힘으로 이별을 극복해 내려는 Y양에게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Y양의 경우 상대와 ‘제대로 된 조율’을 한 번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도 Y양이 연락을 하면 상대는 귀 기울여 들어줄 것이 분명한데, 이런 와중에도 Y양은 속에 오백 마디의 말을 쌓아둔 채 그저 울며 기도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의 힘으로, 그것도 Y양이 그냥 엄지손가락 몇 번 움직여 카톡만 보내도 해결될 간단한 일을, 굳이 응답이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신의 도움까지 받아 극복하려 해야 하는 걸까?

 

“헤어지기 전 서로 잠시 시간을 가지기로 했을 때, 오빠는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저는 오빠가 다르게 말해줬으면 했는데…. 그땐 거의 헤어지는 분위기라서, 제 속마음은 말하지 않고 그냥 오빠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어요.”

 

내가 가장 답답함을 느끼는 게 바로 그 지점이다. 각자가 가진 다른 생각을 꺼내 맞춰보지 못할 거라면, 그런 연애는 ‘다름’을 경험하는 순간 조율해 볼 기회도 갖지 못한 채 그냥 체념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 아닌가. 상대가 ‘난 요즘 이런 생각이 들어’라는 이야기를 하면 이쪽도 ‘그것에 대한 내 생각은 이래’라는 이야기를 해서 환기도 시키고 서로가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야 하는데, Y양은 그냥 상대가 ‘나와는 다른 생각’을 말하는 것 자체로 상처를 받으며 입을 닫고 만다.

 

Y양의 그런 태도는 헤어진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헤어진 지금도 Y양은 자신이 속으로 생각하는 오백 마디의 이야기 중 단 하나의 이야기도 상대에게 전달하지 않았으며, 당장 상대에게 해주고 싶은 뭔가에 대해서도 그저 속으로 생각만 할 뿐이다. 그러면서 상대를 위해 울며 기도하는 것으로 스스로도 달래고 이별도 견디는 중이라고 하는데, 난 그런 기도를 몇 년간 반복하는 것보다 상대에게 카톡 하나 보내는 게 ‘현실적인 답을 구할 수 있는 일’이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2. 이십 대 중반에 모든 답을 다 구하려는 건 바보짓이다.

 

이것도 어찌 보면 위에서 말한 ‘말 안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Y양은 자신의 일에 대해 너무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일단 답부터 구한 뒤 뭐가 더 될지 안 될지를 생각한다. 더불어 그런 고민을 연인과 공유하진 않고 Y양 스스로 판단해 결론을 내려 하며, 내린 결론이 부정적일 경우 혼자 속을 태우다 조율해 볼 의지도 남지 않았을 즈음 상대에게 그 결론만 말하고 만다.

 

이렇게 가정하고 생각해보자. 내가 Y양의 친구이며, Y양에게 이번 주 주말에 남해로 낚시 여행을 가자고 했고 Y양도 그러자고 했다. 난 A에게 텐트를 빌리고, B에게 승합차를 빌리며, C에게 여분의 낚싯대를 빌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내 계획은 모두 틀어졌고, 난 이대로면 Y양과 함께 낚시 여행을 갈 수 없다고 생각해 ‘가지 말자’는 결론만 Y양에게 전달했다. Y양은 “왜? 뭐 때문에?”라고 물었지만, 난 “아무튼 못 가게 됐어. 가지 말자.”라고 대답한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Y양도 몇 번 더 묻다가, “알았어. 가지 말자.”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저렇게 하는 연애는 필연적으로 망할 수밖에 없다. 소통도 없이 혼자 다 결정해 버리는 까닭에 문제를 함께 살펴보며 답을 찾아볼 수도 없는데, 어찌 먼 길을 함께 갈 수 있겠는가. 지속 가능한 연애를 하려면 ‘내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상대의 계획’도 들어봐야 하며, 문제가 생길 때마다 서로 공유하며 함께 답을 찾아봐야 한다. 내가 혼자 끙끙 앓다가 낚시 여행을 안 가기로 하는 것 대신 Y양에게 터놓고 말했다면, Y양의 지인에게 저 모든 게 다 있는 까닭에 너무 쉽게 해결될 수도 있으며, 아니면 Y양의 친척 중 남해에 펜션을 하는 친척이 있어 거기서 일사천리로 다 해결될 수도 있고, 또는 낚시 여행 같은 건 원래 중요하지 않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중요했으니 다른 대안을 찾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Y양은 자신의 계획이 틀어질수록 위축되었고, 그러다 보니 평소보다 훨씬 위축된 채 작고 좁은 생각으로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또, 문제를 공유하며 함께 답을 구하는 것도 구하는 것이지만, 그것과 동시에 Y양 스스로도 이제 겨우 이십 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시점에 모든 것에 대한 답을 다 구하려 하진 말았으면 한다. 금수저가 아닌 이상 이십 대 중반이면 사회에 이제 막 발을 디디거나 디디려고 준비 중이며, 1~2년 후에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인 게 당연한 건데, 그걸 자기 삶의 한계라 생각하거나 3, 4, 5년 후에도 그 상황이 바뀌지 않을 거란 생각에 갇힌 채 답을 구하려 들면 갑갑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답답함에 대해 연인에게 말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다른 구실로 화나 짜증을 내거나,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는 것 같으니 이 연애도 이제 끝이라 생각하면 다음 순서는 ‘진짜 이별’밖에 없을 것이고 말이다. Y양이 이런 함정에 빠진 채 너무 성급히 혼자 결론을 낸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3. 이별이 잘한 결정인지에 대해 답하기 어려운 이유.

 

내게 사연을 보낼 때는, 최대한 필터링 없이 되도록 모든 이야기를 다 적어서 보내는 게 좋다. 또, 신청서에 적어 내려간 이야기와 실제 둘의 카톡대화는 놀라울 정도로 다른 경우가 많으니, 혼자 다 판단한 후 결론만 적어서 사연을 보내기보다는 날 것 그대로를 전부 다 보내는 게 보다 구체적인 답을 구해보는데 도움이 된다.

 

역시나 자꾸 같은 얘기를 하게 되는데, Y양은 내게 보내는 사연조차 습관적으로 ‘결론’을 낸 뒤 보냈다. Y양이 적어서 보낸 내용만을 근거로 말하자면, 이 이별은 서로 맞춰볼 기회도 없이 그냥 안 맞는 부분을 참고 견디다 헤어진 것이니 만나서 조율해 볼 필요가 있다고 대답할 수 있겠다.

 

하지만 Y양이 진짜 걱정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내게 다 말하기보단 그냥 혼란스러움에 대한 토로한 것이 대부분이고, 상대에 대해서도 Y양이 좋게 기억하는 것만 대략 정리해서 말한 까닭에 난 사실 상대라는 사람에 대해 현재 그저 막연한 이미지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상대가 ‘다시 만나서 조율해 볼 만한 사람’인지를 말하기 어려우며, 이별 후 느끼는 감정들 말고 연애할 때 어땠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없기에 ‘재회해볼 필요가 있는 관계’인지에 대해서도 확실하게는 말하기가 어렵다.

 

또, 연애 중 Y양이 보인 태도를 보면 어느 땐 연애를 부담스러워하거나 보통의 경우에 비해 연애에 할애하는 부분이 적은 모습이 보이는데, 그게

 

-사실 상대를 딱 그만큼만 좋아하는 것이라서?

-원래 연애에 그 정도만 할애하는 타입이어서?

-점점 당연해지는 것도 많아지고 권태를 느껴서?

-혼자 결론 짓다 보니 마음이 점점 작아져서?

-먼 미래까지 진지하게 생각하며 만나던 건 아니어서?

 

중 어느 이유 때문인지를 내가 파악하기도 솔직히 어렵다. Y양이 ‘이런 것도 같고, 저런 것도 같아서….’라며 혼란스러움만을 토로했기 때문인데, 이것에 대해서도 Y양이 진짜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줘야 나도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거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3년 쯤 사귀었으면 이제 뭐 서로에 대해 알 거 다 알며, 말하지 않아도 대략 다 이해하고, 한두 번 이야기한 게 아닌 까닭에 여전히 안 되는 건 그냥 계속 안 되는 거란 생각들을 하게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착각이며, 6년 차에도, 9년 차에도, 12년 차에도 새로 알게 되는 부분과 달라지는 지점들, 그리고 여전히 말을 하지 않으면 달리 생각하거나 오해할 수 있는 부분들은 존재한다. 그러니 겨우 3년 만나고선 모든 한계까지를 다 알게 된 것처럼 착각하거나 관계라는 게 절대 바뀌지 않는 활자 인쇄라 생각하진 말고, 계속해서 닦고 조이고 기름치며 관리해야 함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연애, 좀 더 편하고 쉽게 해도 된다. 연인과 낯선 동네로 여행을 갔는데 장트러블이 생기면, 연인에게 말을 해 화장실을 같이 찾아도 되고, 휴지가 없으면 휴지 좀 사다 달라고 해도 되며,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5분 후 다시 배가 아프면 다시 배가 아프다고 말해도 된다. 그래도 되며 그래줄 수 있는 게 연인이고 연애인 거지, 그런 얘기도 못 하며 눈치 보고 알아서 걱정하거나 혼자 다 해결해야 한다면 그건 또 다른 가면을 쓰고 상대를 만나야 하는 ‘일’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이 사람과 다시 만나든 다른 사람과 새로 만나든, 가장 친한 친구보다 한 뼘은 더 친한 사이로 만나며 연애해 보길 바란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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