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같다는 회사, 정말 가족 같을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던 이전 발행글 [회사밥을 먹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에 올려주신 많은 분들의 댓글로 보아, '가족같은 회사'가 가지게 되는 문제는 대부분 10명 내외의 회사에서 일어난다. 특히 도시에 있기보다 외곽에 있는 곳에서 주로 발생하며, 그 중 참담한 사례는 이전 글에 익명댓글로 달아주신 분의 처절한 사회경험담으로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이다.
- 익명으로 달아주신 어느 독자의 댓글
20대 초반이 TV드라마에서나 보던 그런 직장, 즉,
"효리씨 오늘 일찍 왔네~"
"어랏, 실장님도 일찍 오셨네요!"
"자, 아침 안먹었지? 여기 샌드위치"
"어머, 벗긴도너츠네! 고마워요!"
"하하하"
이따위의 상상을 하고 있었다면, 그 꿈을 고이 간직한 채 자영업의 길로 들어서길 권장한다. 내가 일하는 직장에 대해서는 위의 링크한 글로 이미 어느정도 파악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아직 안 읽으셨다면, 먼저 읽고 이 글을 읽으시길 추천드린다.
가족같은 분위기의 내 직장, 첫 출근 날 일이다.
과장: 야, 니 워디사냐?
나 : ......네?
과장 : 집이 워디냐고.
나 : 아.. 일산입니다.
난......'가족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 줄 알게 되었다.
물론, 우리 회사는 타회사와는 달리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 그리고 사무실에서 일하시는 분과 디자인실에서 일하시는 분 등등 다양한 분들이 있기 때문에, 일반 회사와는 좀 차별화된 무언가가 있다. '차장'이란 직책보다 '그냥, 형이라고 해 임마' 로 형이 되버리신 차장님도 계시고, 학원에서 애들을 가르칠때는 '장선생님~' 이런 호칭과 아버지뻘 되시는 원장 선생님도 존대로 대화를 나눴는데, 우리회사는 입사 첫 날 부터 뭔가 군대의 냄새가 났다.
"정말 가족같은 분위기네요! 저도 그런 직장 다니고 싶네요."
이런 말이 하고 싶은 거라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 이제 차근 차근 내가 어떻게 '웹디자이너'에서 '잡부'로 전락해 가는지를 사건의 순서대로 살펴보자.
<얼떨결에 첫 배달>
나: 아..네.
과장 : 옆에 타
그날 이후 회사 포터의 조수석은 내 차지가 된다.
<전혀 의도 하지 않았던 도움>
나 : ......
팀장 : 무한씨, 좀 도와줘.
나 : 아..네.
조립실에서 나무인형을 오공본드로 붙이는게 내 일이 된다.
<수렵, 채집 생활의 시작>
나 : ......
주방아줌마 : 컴퓨터로 뭐 하는게 그렇게 바뻐?
나: 아..아니요.
주방아줌마 : 그럼 밭에가서 고추 대좀 세워
나 : .....네.
포토샵 작업을 하다가 밭일을 하러 나가는게 이제 익숙하다.
<행복한 청소부?>
나 : 네. 그렇죠. (이제 좀 길게 대답하기 시작한다)
고문 : 화장실도 그렇고, 딱 봐서 깨끗하면 그게 회사 이미지가 된단 말이야.
나 : 네. 깨끗한게 좋죠.
고문 : 알면 좀 치워
나 : 네? 아.. 네.
회사가 더러운건, 이상하게도 무조건 막내 책임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는, "그런 회사 뭐하러 다녀, 당장 때려쳐!" 라고 할지 모르지만, 인간적이다. 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욕하고 그런 일이 벌어지지도 않고, 정체성이 혼동되는 것 빼 놓고는 사람과 금방 친해진다. 겨울에 회사에서 김장을 하면 집에 한 통 싸주기도 하고, 내 차가 고장났다고 하면 전부 모여들어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손에 기름을 뭍히기도 한다. 그리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한 명도 빠짐없이 다 위로나 격려를 하고, 다들 넉넉하지 않은 가운데서도 도움을 주려 노력한다. 정말 가족같은회사 아닌가?
그렇다. 정이 들었다. 그래서 난 오늘도 출근한다.
<+>
이런 경우가 아닌, 정말 악덕 업체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지인의 경우, 단순 웹 업무라고 해서 들어갔는데, 월급도 밀리고, 밥도 알아서 사 먹으라고 하고, 일거리가 많은 날 야근을 해도 '니가 못 끝내서 남는 거잖아' 따위의 이야기나 하는 경우도 들었다. 실수 한 번 했다고 실장에게 '넌 덧셈 뺄셈도 못하냐? 내가 계산까지 다 해서 갖다 바칠까?' 라는 소리를 전 직원앞에서 들어야 했던 K양(32세, L모 대리점)의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출근하는 이유는, 지금 같은 시대에 나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으며, 나이가 어느정도 찬 경우, 계속되는 부당대우는 그 수위가 높아지더라도 먹고 살기 위해 집에서는 울음을 소주로 달래다 잠이 들고 다시 다음날 지옥같은 회사로 출근한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오늘도 출근해 삶의 현장에서 가슴팍에 스크래치 하나 새기고 계실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해보죠!' 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나는 작가지망생이라면서 왜 웹디자이너 일을 하고 있냐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글을 쓰는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
<추가>
'소림'님꼐서 올려주신 댓글을 혼자 보기 아까워 추가합니다.
저는 웹디자이너입니다.
구인란에 가족같은 회사, 석식 제공 이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으면 아예 이력서를 내지 않죠.
너무 가족같아 첫출근한 날 사장이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던 회사가 있었죠.
마지막엔 월급을 못받아서 달라고 했더니 우리 사이에 이렇게 까지 해야겠니. 하더군요.
▼추천이 많아지면, 작가라는 꿈에 한발짝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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