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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 나이를 먹을수록 연애가 쉬워지거나 연애를 잘 하게 되는 거라면, 경로당 아웃사이더 최씨 할아버지 같은 분이 핀잔을 받을 일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최씨 할아버지는 아웃사이더를 극복해보고자 휴대용 트로트 플레이어를 크게 틀곤 같은 경로당 분들이 있는 평상 끄트머리에 걸터앉았는데, 할머니들은

 

“아유 시끄러워. 그것 좀 꺼요!”

 

라는 이야기를 할 뿐이었습니다. 갑작스런 할머니의 공격에 놀라 일단 벌떡 일어난 최씨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모자에 쓰인 글귀 ‘무재해’가, ‘무안해’로 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요는, 이렇듯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또는 ‘결혼’이라는 퀘스트까지 깨본 적 있다고 해서 다음 연애부터는 발로 해도 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청록파 중 한 사람인 박목월 시인이 한 말로 기억합니다.

 

“난 평생 시를 써왔으니 이제 시 한 편쯤은 그냥 쉽게도 좀 써질 듯한데, 여전히 그 시 한 편을 쓰는 일이 어렵다.”

 

짧은 시 한 편을 쓰는 일도 저렇다는데, 연애에도 분명 시집 한 권을 엮을 정도의 고민과 노력은 들여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누님께서는 제게 사랑이 무어냐, 사랑은 어디까지냐, 서로를 그대로 완전히 사랑할 수 있어야 사랑이냐, 서로에게 끊임없이 노력해주는 게 사랑이냐, 등의 질문들을 하셨습니다. 상대는 지금 이 관계에 올인 하는데 누님께서는 그런 미칠 정도의 애착이 생기진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이 관계를 놓치면 사랑이 사랑이라는 걸 모르고 돌려보낸 일이 될 것 같기에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건, ‘여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매일 밤 마른안주를 앞에 놓고 맥주잔을 부딪치며 이야기를 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언젠가 TV를 보니 어떤 사람은 또 ‘2박 3일 여행 같은 건 여행이 아니다. 현지에서 살아보는 게 진정한 여행이다.’ 라는 이야기를 하던데, 잠깐 들른 사람은 잠깐 들른 대로, 오래 있어본 사람은 오래 있어본 대로 또 각자 느끼는 게 다 다른 것 아니겠습니까? 여행이라는 게, 누가 ‘이러이러해야 여행이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해서 그걸 따라한다고 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안 한다고 즐기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누님께 ‘여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듯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보다, 현 상황에서 누님이 알아두시면 최소한 여행지에서 곤란한 상황에 빠지는 걸 방지할 수 있는 뭐 그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딱 두 가지라서, 기억하기도 쉬우실 겁니다.

 

첫째, 상대가 막차인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돌싱인 대원들의 경우 대개 또 그렇게 산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일을 반복할 순 없으니 어떻게든 이별만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때문에 그러느라 아닌 걸 알면서도 계속 스스로 합리화를 하거나 어떻게든 이어가보려 노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 갓 한 달 만났으면서, 이 사람이 확실한 사람이면 이번엔 진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올인 하겠다고 다짐하는 경우도 많고 말입니다.

 

누님 역시 아직 상대와 만난 기간이 석 달도 채 안 되지 않습니까? 이 시기에 ‘이 사람이라면 평생 가도 좋을 사람이냐, 아니면 헤어져야 하냐, 사랑이란 게 대체 뭐냐, 어떻게 판단해야 하냐’하는 고민을 하는 건 사실 많이 이른 일입니다. 사람은 좀 겪어 봐야 아는 건데, 지금 막 이르게 판단한 후 ‘올인이냐, 이별이냐’를 결정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말입니다.

 

둘째, 이전 사람과 반대된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전 사람이 계산기 같은 사람이었는데 새로운 사람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퍼주기부터 한다고 ‘이제야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난 것’은 아닙니다. 이타적인 건 이타적인 대로 또 문제가 될 수 있으며, 아직 서로 화내고 짜증내고 심술부리는 모습도 못 봤는데 일단 올인 부터 한다는 사람은 나중에 전세금 빼듯이 싹 빼서 나갈 가능성이 높으니 말입니다.

 

이제 겨우 두 달 만나고선 상대에 대해 ‘내게 변함없이 잘해주고 맞춰주며 극진하게 대함’이라는 종합평가를 내려선 곤란합니다. 여름엔 모든 나무가 푸른 법 아니겠습니까? 이후 가을 오고 또 겨울이 와봐야, 무엇이 변함없이 푸른지를 알 수 있는 법이고 말입니다. 지금 당장 평생 이 사람과 함께할 것인지를 결정하지 않는다고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니, 좀 더 겪어 본다 생각하며 만나보셨으면 합니다. 괜찮은 사람 같으면 이쯤에서 얼른 올인 하겠다며 조급해 하지 마시고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고, 내 안부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고,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일단은 좀 만나보셨으면 합니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 그 문제를 둘이서도 풀어보고 안 되면 도움도 청하고 하며 하면 되는 거지, 지금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두려 하거나 문제가 없을 거라는 공증 같은 걸 받아두려 하면 답이 나오지 않아 계속 고민에만 시달릴 수 있습니다.

 

다만 제가 걱정되는 것 하나는, 상대가 아무리 누님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려 든다 해도, 그걸 좀 두고 보았을 때 결국 상대가 바라는 게

 

-내가 이렇게 조건 없이 널 위해 모든 걸 다 하니, 너도 날 위해 모든 걸 다 해라.

 

라면 분명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맹목적인 헌신을 앞세워 다가온 사람들이 주로 저런 요구를 하며 이후엔 뭔가 꿍꿍이가 있었던 것 같은 ‘과분한 요구’들을 하곤 하는데, 혹 그런 경우에 속하는 건 아닌지 꼭 잘 보셨으면 합니다. 자 그럼, 걱정은 절반 정도 내려놓고 좀 더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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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더위 역대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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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2017.07.19 18:2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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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순위권이라니

아민이2017.07.19 18:3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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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 화이팅 +_+

Ace2017.07.19 18:3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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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Ace2017.07.19 18:4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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핡 오늘 날씨 진짜 덥네요!

예전에 육각 렌치 하나도 잘 골라야 하는데, 결혼 할 사람은 육각 렌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 아니겠냐고 말씀하셨던 거 생각나요.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자기 기분 좋을 땐 착하고 좋은 거고, 그 사람의 진짜 밑바닥은 싸우고 갈등이 있을 때 비로소 나오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자꾸 좋은 조건을 찾는 건 조건이, 환경이 윤택하면 아무래도 바닥 보일 일이 적기 때문인 것 같구요.

그러니 누님(?)도 상대의 밑바닥을 봤다고 느껴질 때까지 상대를 잘 들여다보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생은 그리 짧지 않고, 초조함은 잘못된 결정의 벗이 될 때가 많다는 걸 이미 알고 계실 테니까요. 이른 걱정은 접어두고, 조급한 결정도 잠시 미뤄두고, 그저 현재를 오롯이 누리시길. 화이팅!

달비2017.07.19 18:4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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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를 가지고 편하게 만나보세요가 답인가봐요~~
초반에 너무 레이스하면 밑천 떨어져서 게임못해요 누님

플라썸2017.07.19 19:1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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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친보고싶네요♡
감사합니다

G.T.S2017.07.19 19:3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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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끈합니다 더위가.
곧 중복이니 몸보신하시고 건강 유의하세요.

blueee2017.07.19 19:5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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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저녁 되세요 무한님!

혈이2017.07.19 21:0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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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더운데 몸보신 하시고 수분도 잊어버리지 마시고 보충 자주 하시길~
오늘도 매뉴얼 감사합니다.

먹고 마시고 사랑하라2017.07.20 08:0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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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겨울이 와야 푸르른지 안다는 말, 지금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말 너무 감동적이에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

구름2017.07.20 09:1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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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인 헌신을 앞세워 다가온 사람들이 주로 저런 요구를 하며 이후엔 뭔가 꿍꿍이가 있었던 것 같은 ‘과분한 요구’들을 하곤 하는데...하~ㅜ 이런분 계셨거든요.
정곡을 찌르는 명언이군요 ㅜㅜ

밀크티2017.07.20 09:2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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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걱정도 되네요
너무 호의만 퍼주는 상대에게 꿍꿍이가 없는지도 주의하라는 말씀에 꽂혀서
상대의 호의에 보답 안 하고 꿍꿍이가 있나 없나만 팔짱 끼고 보다가
조금이라도 서운해 하는 모습 나오면 "역시!" 하고 무릎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어서...
일단 생각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마음 편히 만나보셨으면 좋겠네용

ㅋㅋㅋ2017.07.20 13:1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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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제대로 안읽어보신거같습니다...
무조건 헌신이 문제가 아니라
그 뒤에 남자분이 추가로 요구하는 자세가 문제라고 하셨죠 ㅡㅡ;

거북이 등짝2017.07.20 10:4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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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올인 할지 안 할지 빨리 결정해야해!! 하는 주의인지라 많이 찔리면서 읽었네요 ㅎㅎ
정말 연애란 너무 힘든거 같아요...
하지만 설레고 좋은것!! 사연자분 좋은분과 알콩달콩 하시길 바래용

고향만두2017.07.20 11:1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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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주옥같은 말들입니다~

피안2017.07.20 13:2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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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일은 이러니 저러니 말하기 쉬워도
막상 내일이 되면 참 어렵다는 거죠
부디 좋은 사랑 하시길

RushHour2017.07.20 15:2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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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글이 역대급이네요. 거진 작년부터 봤던 매뉴얼 중 최고의 글 같습니다!
초장에 시작하는 가벼운 위트부터 상대에 대한 배려, 그리고 질문에 대한 형식적이 답이 아닌 밑바닥에 깔려있는 심리와 포인트를 읽어내고, 거기서 모두에게 공감이 가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살 가득한 조언까지. 오늘 정말 최고에요 무한님!

사막에 사는선인장2017.07.20 18:5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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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무한님 ^^~나중에 쓰신다는 경로당 로맨스가 기대되네요^^~

김과장2017.07.21 00:2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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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비유에서 무릎을 탁 쳤네요.
이번 글 정말 좋습니다.
두가지 조언 중 첫번째는 나이 들어서 연애할 때, 두번째는 연애경험이 많지 않을 때 좀 더 빠지기 쉬운 함정이지만 위험하기는 똑같다는>_<

새우튀김2017.07.21 02:2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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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더워요 미쳤어

메일보낸누님2017.07.21 11:5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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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님, 매일 들여다보다가 이렇게 상담글 써주심에 막 감동이...
심지어 제가 누님이었군요 ㅎㅎ
이왕이면 누나라고 불러주세요~^^

제가 메일 보냈던 시점을 생각해보면, 한두달 지난 기간이죠? ^^
지금, 여전히 행복하고... 무한님에게 메일보내면서 마음도 많이 털어내서
안정되고 즐거운 연애를 하고 있답니다.
확신, 그런게 필요했던 건... 아무래도 부모님의 우려가 너무 커서... 저두 마음에 일종의 강박감이 있어서였죠.^^
게다가 마구마구 두근거리고 설레질 않던 시점이라 이게 호감인지 연애감정인지 모르겠다 싶었구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걸 다 떠나서, 아주 소탈하고 수수하고 편안한 데이트와 일상을 이어가고 있어요. 심지어 설렘옵션도 장착되었구요^^

마음의 오롯한 올인이면서도 서로 아웅다웅 다투기도하고, 제게 많이 주고싶어하면서도, 아무것도 요구하지않는 사람이라, 저는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으로 주면서... 서로 밸런스 맞춘 연애를 하고있어요.

메일 드릴땐, 제가 너무 불안하고 두려워서 굉장히 생각이 많았어요. 사랑이란게 더이상 제 인생엔 없을 줄 알았거든요...

이렇게 좋은 글들로 채워줘서 너무 고마워요. 복사붙여넣기로 잘 챙겨넣었어요. ^^
분별있게 사랑하는 것... 그게 제 화두였는데, 하루하루 천천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머니까 더 차분히 여유롭게...

사랑은, 할때마다 어렵지만
할때마다 참 행복한 일입니다.


더운 여름, 모두 더 많이 시원하고 행복하세요~~!!!!!

혈이2017.07.21 15:4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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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 연애 하세요~ :)

슬램덩크2017.08.11 18:1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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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역시 무한님. 클라스는 어디안가네요. 일에 치여서 정말 너무너무 오랜만에 들어왔어요. 하나하나씩 글 읽고있는데 본가에 온것처럼 마음이 편안하고 힐링이되네요 감사합니다. 저는 7년 연애중인데 (무한님 글보고 도움얻어 연애 시작할 수 있었다능!★) 한창 좋았다가 요즘다시 삐걱거리네요.-_-;; 무튼 오늘도 글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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