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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천오백자연애상담

2년 만에 온 구남친의 연락, 그와 다시 만나도 될까요?

by 무한 2017. 11. 14.

혜경씨는 만으로 아직 이십대인데, 마음은 이미 오십대쯤 되는 것 같네? 63년 토끼띠 느낌이야. 남편 때문에, 또 애들 때문에 속 많이 썩다가 이제는 포기와 체념과 내려놓음으로 해탈한 느낌이랄까.

 

눈물 젖은 빵과 눈칫밥을 먹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 그래. 관심과 애정과 보살핌의 영역에서 좌절과 실망을 여러 번 경험하고 나면, 스스로 기대를 축소하고, 궂은 일이 내 일이다 여기며, 보금자리에서 사랑받는 건 남들의 얘기고 난 그저 진자리와 마른자리 갈아 누워야 할 뿐이라고 생각해버리거든. 그래서 예상치 못한 호의를 경험하게 되더라도 그걸 만끽하지는 못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체험용 안마의자에 앉은 것처럼 얼른 일어설 생각부터하기도 하고 말이야.

 

“무한님은 그런 걸 어떻게 아시죠? 눈물 젖은 빵을 많이 먹어본 건가요?”

 

아니. 난 주로 소시지 빵이랑 피자빵을 많이 먹었지.

 

2년 만에 온 구남친의 연락, 그와 다시 만나도 될까요?

 

 

여하튼 그런 사람들은, 연애를 해도 ‘연애소년소녀가장’의 모습을 보일 때가 많아. 헌신과 양보를 기본으로 장착한 채, 어린 동생들 돌보는 마음으로 연인을 돌보듯 연애하는 거야. 관계의 뿌리가 뽑힐만한 잘못을 상대가 하지 않는다면, ‘이래도 좋다, 저래도 괜찮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의 느낌으로 연애를 꾸려 나가는 거지.

 

뭐 그렇게라도 이쪽이 좀 더 많이 상대를 위하고 이해하고 양해하더라도 잘 만날 수 있는 거라면, 아주 나쁜 건 아닐 거야. 그런데 대개, 그런 모습이 상대를 나태하게 만들며 이쪽의 입지는 점점 작아지게 만들곤 하거든. 이쪽이 꼭 훗날의 보상을 바라고 이해와 배려와 헌신을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쨌든 상대가 내 사람이니까 그렇게 베푸는 거고 그걸 상대도 아주 모르진 않을 거라 생각하잖아. 당장은 상대의 상황이 안 되어서든 형편이 어려워서든 내가 좀 궂은 일 도맡아 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상대도 사정이 나아졌을 때 같이 해줄 거란 믿음도 있는 거고 말이야.

 

그런데 그게, 현실에서는 마치 밥 먹고 나면 꼭 이쪽이 설거지 하는 것처럼 당연하게 굳어지곤 해. 그래 뭐 그동안 양보하고 배려한 게 얼만데 설거지 정도 못 하겠어 하며 말없이 설거지 한다 치더라도, 상대는 점점 더 태만해져서는 누워. 밥 먹고 누워 졸리니 또 잠까지 자. 이쪽은 밥 다 차려서 같이 먹곤 허리 아픈 거 참아가며 설거지하는데, 상대는 누워서 자는 거야.

 

 

이런 식으로 진행되다보니, 연애에선 자연히 섭섭하고, 속상하고, 바보가 된 기분이 드는 일이 많아지고 말아. 참고 또 참다가 한 번 얘기하면, 상대는

 

-삐쳤다고 삐친 티 내는 게 더 싫다.

-내가 잠깐 졸았다고 넌 그게 그렇게 불만인 거냐.

-나 피곤한 거 알고 이해하고 기다려줄 줄 알았는데 내가 착각한 거네.

-예전에 내가 너 데리러 갔을 때 30분 기다렸던 건 생각 안 하냐.

 

따위의 반응을 보일 뿐이니 참담한 기분까지 들어. 그냥 미안하다고 하며 음식물 쓰레기라도 버리고 오겠다며 “고기 먹어서 탄산 당기지? 오면서 콜라 사올까?”하면 풀어질 수 있는 건데도, 그렇게 싸우다 문 쾅 닫고 나가서는 잠수 타다가 “네 성격, 내 성격 다른 건데, 넌 네가 생각하는 답을 기준으로 나에게 틀렸다고 말하냐.” 라는 말 같지도 않은 얘기를 하면, 위장이 허는 기분이 들지. 그러다 상대가 찌질하게 카톡으로 이별통보하면, ‘나의 참 고달팠던 한 번의 연애가 또 이렇게 지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고 말이야.

 

 

저런 연애를 몇 번 하다보면, 두 가지 습관이 들곤 해. 하나는 점점 ‘마음을 주지 않는 연애’를 하게 되는 습관이고, 다른 하나는 ‘타협점을 찾지 않고 빠르게 포기하는 연애’를 하게 되는 습관이야. 상처 받거나 실망하기 싫으니까 아예 아무 기대 없이 시작하게 되고, 또 그러다 보니 마음이 붙지 않는 상대와 연애를 금방 놓아버리게 되는 거지.

 

더불어 ‘사과하는 구남친’을 경험하는 일도 생겨. 상대는 헤어지고 난 뒤에야 자신이 얼마나 큰 이해와 배려를 받았던 것인지를 깨닫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보며 그 사람과의 사이에선 자신이 궂은일까지 담당해야 한다는 걸 느끼기도 하고, 아니면 돌아봤을 때 자신이 참 좋은 사람에게 못할 짓 했다는 걸 뉘우치곤 연락하곤 해. 뭐 그 외에 더는 대안이 없어서 연락을 했다거나, 다 잃고 개털이 된 와중에 받아줄 곳이 이곳밖에 없어 오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야.

 

다행히 혜경씨 구남친의 연락엔 흑심이 포함되지 않은 것 같아. 그래서 난, 늦게나마 사과하며 다가오는 상대와 만나보길 권해주고 싶어. 다만, 지금 혜경씨의 고민은 구남친의 다가옴에 대해 ‘믿고 만나 봐도 될까’보다는 ‘믿고 올인 한 채 가장생활 시작해도 될까’에 더 가까운 것 같거든. 때문에 난 혜경씨가 자신도 즐겁고 대우받는, 그런 연애를 했으면 좋겠어.

 

재회한다고 해서 양보와 배려와 이해를 장착한 채 ‘착한 여친’의 역할극을 하려 하지 말고, 혜경씨도 분명 즐거운, 그런 연애를 해. 하고 싶은 거 말하고, 먹고 싶은 거 말하고, 가고 싶은 거 말해가면서 말이야. 그건 같이 하는 연애에서 내 의견을 일단 꺼내는 거지, 절대 이기적인 게 아니야. 또, 그렇게 표현해가면서 상대와 조율을 해야지, ‘상대 하고 싶은 거 아홉 번 들어주고 내가 하고 싶은 거 한 번 말하기’ 같은 걸 해버리면 “영화관 의자 불편해서 극장 가기 싫다.” 따위의 반응만 돌아올 수 있어.

 

만나고 겪어보며 상대와 조율도 안 되고 타협도 안 되면 그때 가서 또 방법을 찾거나 정리하면 되는 거니까, 엔딩이 어떨지를 미리 점쳐 괜찮을 것 같다면 올인 할 생각하지 말고, 지금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쳐다보며 무슨 얘기를 하나 들어본다는 생각으로 만나봐. 고개 돌려 귀를 기울였는데 허튼소리 하거나 안 부른 척 하면 우린 또 갈 길 가면 되는 거잖아. 누가 날 부른다고 해서 꼭 거기다 내 살림살이 다 내려놓고 평생 떠나지 않을 것처럼 말뚝부터 박을 필요 없는 거니까, 그게 일주일짜리 만남이든 일 년짜리 만남이든 일백 년짜리 만남이든 일단 만나 맛있는 거 먹으며 즐거운 시간 보내길 권할게. 같이 소시지빵이랑 피자빵도 사먹어가면서 말이야.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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