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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천오백자연애상담

소개팅 후 그와 깨알같이 연락하고 자주 만났는데, 끝났어요.

by 무한 2018. 8. 16.

C양의 사연과 엄청난 양의 카톡대화를 다 읽고 난 후, 내가 적은 한 줄 소감은

 

-웃으며 리액션을 할 수 있는 지점에서도 지지 않으려 맞짱을 뜬 게, 문제.

 

였다. 지지 않고 드립을 다 받아내려 하니 실수도 많아지고, 그냥 서로 놀리고 웃는 것에 초점을 두다 보니 처음엔 뭐 그러려니 하다가도 나중엔 둘 다 기분 나빠지고 만 거라 할까.

 

재치있고 쿨한 게 나쁜 건 아니지만, 너무 막 재치만 자랑하려 하다간 모든 걸 장난식으로 대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으며, 분명 상처받았는데 그것도 당시엔 개그로 승화했다가 나중에

 

“아 근데 나 뭐 하나 말해도 돼요? 전에 오빠가 말한 A와 B와 C는 좀 기분 나빴어요. 그때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 한 건지….”

 

라는 식으로 액체질소를 끼얹으면 둘의 관계는 급격히 얼어붙을 수 있다.

 

소개팅 후 그와 깨알같이 연락하고 자주 만났는데, 끝났어요.

 

 

그다음으로 내 눈에 띈 것은

 

-시트콤처럼 시작했다가 점점 다큐화 되어가는, 문제.

 

였다. 둘의 대화 초반 C양은 ‘재치있는 전문직 여성’이었는데, 말 편하게 하며 꽤 친해진 대화 후반엔 ‘짝사랑하며 불만이 많아진 대학교 여자후배’의 느낌이 강해졌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괜히 심술부리듯 뭐 하나 꼬투리 잡거나,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어선 날 선 말을 해버리는, 그런 캐릭터로 변하고 만 것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 지금까지 대화를 나눈 게 90분 축구 경기라면, 60분까진 흥미진진했지만, 나머지 30분은 전과 비교해 확연하게 지겨워졌으며, 특히 마지막 5분은 강제퇴장을 원하는 사람처럼 드리블 대신 백태클을 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건 '의식적으로' 남자들과 아재개그도 잘 주고받고, 상대가 폭투를 해도 잘 마무리 해주는 여성대원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문제이기도 한데, 그녀들은 ‘그럴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갭이 너무 크게 차이나곤 한다. 어제는 같이 웃으며 하던 말에 오늘은 갑자기 정색하거나, 아니면 자기도 같이 놀리며 놀았으면서 갑자기 태세전환을 해 상처받았다는 얘기를 하는 거랄까.

 

그래 버리면, 상대는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이 이쪽의 가식인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심인 건지 혼란스러워 입을 닫게 될 수 있다. 만약 내가 소개팅남이자 썸남인데, 몇 번 만날 때마다 내가 차 몰고 가는 게 편하니 그쪽으로 데리러 가겠다고 웃으며 말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음 근데, 내가 데리러 가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진 마요. 내가 데리러 가는 게 억울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이렇게 데리러 가는 게 당연한 걸로 굳어질까봐 하는 소리예요. 아무튼 오늘은 7시까지 가면 되죠?”

 

라고 한다면 뭐 어떻게 받기도 곤란하며 뭘 어쩌라는 건지 당황스러워지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베푸는 다른 호의에 대해서도 받기가 꺼림칙해질 것이고 말이다. C양과 상대 사이에서도 대략 이런 식의 문제가 발생한 거라 보면 되겠다.

 

 

C양이 내 여동생이라면, 난

 

“그게 아니지. 네가 거기서 그럴 필요가 없는 거잖아. 쟤도 엄청 바쁜 애인데다가 회사에서 기분 엉망인 일 생겼는데도 너 만나러 왔지? 만나러 와서 티 안내고 즐겁게 데이트 했지? 거기다가 카톡할 때에도 완전 충실하게 대답하고, 졸린 눈 부비면서까지 너랑 연락했지? 여기서 더 뭘 어떻게 더 해. 이 정도면 그린라이트가 확실하니 그냥 가면 되는 건데, 넌 더 확실한 신호가 안 보인다며 자꾸 멈춰 섰잖아. 돌다리 그렇게 두드리고만 있으면 손에 피 나.

 

그리고 너 보다 보면, 가끔씩 너만 알아듣는 소리를 해. 선문답 같은 거 말이야. 그러지 말고 구체적으로 그냥 딱 말하면 되는데, 넌 혼자 추상적인 단어들로 빙빙 돌려. 그러니까 상대가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하는 건데, 넌 그럼 또 그냥 ‘아녜요. 그냥 한 소리예요. 신경 쓰지 마세요. ㅎㅎㅎ’하고 말잖아. 진짜 대화를 할 거면, 네가 한 말에 대해 상대가 못 알아들을 경우 알아듣게 설명을 다시 해줘야 하는 거지, 일부러 이심전심만 노리며 선문답 해선 안 돼. 자꾸 그러면 나중에 ‘오빤 제게 가을이에요.’같은 얘기하는 병 돼.

 

끝으로 하나 더. 아쉬울 때 끊을 줄도 알아야 해. 대화하는 게 재미있다고 해서, 막 애 잠도 안 재워가면서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해가면서 대화하면 안 돼. 그럼 나중에, 너랑 대화하는 것만 떠올려도 걔는 진 빠질 수 있어. 한 번 대화를 시작하면 기본 2시간은 그냥 무조건 잡혀있어야 할 것 같으니 부담되거나, 아니면 반대로 네가 매번 긴 대화를 했는데 이틀 전부터 짧은 대화가 늘어났다며 상대가 변한 걸로 오해해 갈구려 들 수도 있고 말이야. 그러니까 과하지 않게 대화하고, 물리적인 대화 시간만이 아닌 큰 틀에서 상대가 너를 향해 있다는 걸 보도록 하자고. 알았지?”

 

라는 이야기를 해줬을 것 같다.


 

C양이 일단 두 사람이 이렇게 끝났다고 하니 난 ‘끝났다면 이게 가장 큰 원인이 되었을 듯’이라 생각하며 이유를 찾아내긴 했는데, 사실 난 이게 정말 끝난 관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C양이 보낸 메시지가 좀 비꼬듯 말하는 것이었기에 상대도 받기가 껄끄러웠을 거고, 이후 C양도 연락을 안 하니 상대도 연락을 안 하는 그런 시간이 며칠 이어진 것이지, 일순간에 연락 두절로 이별할 만한 관계는 분명 아닌 것 같다. 뒷얘기가 어떻게 되었나 나도 궁금하니, C양이 이후의 이야기를 메일로 좀 보내줬으면 좋겠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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