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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생활 매뉴얼, 보충대 마스터 전략

by 무한 2009. 3. 3.
언젠가 군생활에 대한 매뉴얼을 쓰리라 생각했다. 아직도 가끔 다시 입대하는 꿈을 꾸면 하루 종일 식은땀을 흘리는 예비군의 입장에서 이 글을 써 보려 한다. 예비군훈련받으러 갈 때에도 입안엔 모래알이 씹히는 것 같은데, 진짜로 2년여간의 군생활을 시작하는 그 '장정'들의 기분이야 어떻겠는가. 똥줄이 타면서도 빨리 쇠뿔도 단김에 빼고 싶은데 두고 가야 하는 것들이 눈에 밟히고, 편지 써줄 애들은 있나 고민이 되다가도, 아, 어머니 아버지. 깊은 한숨과 가기전에 신나게 놀기라도 해야할텐데 나이트를 갈까, 아니면 그냥 전국을 배낭여행하며 돌아볼까 하지만, 춥다. 제길, 짬밥은 먹을만할까. 선배가 총 사가야 한다고 하던데, 여자친구는 기다릴까.

체념과 다짐 그리도 다시 후회와 설렘과 두려움과 떨림과 결의와 추락하는 기분이 일분에도 수십번씩 교차하는 혼돈의 상태를 쉽게 정의 할 수는 없다. 그런 상황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이 메뉴얼을 쓴다. 3월에 입대하는 친척동생, 그리고 필자의 블로그 초장기때 부터 설레는 리플을 달아주신 fancyydk님에게 '군생활, 이 메뉴얼만 3번 정독하면 에이급됩니다.' 라는 메세지를 남기며 시작한다.

(이번 편은 입영과 동시에 3박 4일간 머무르게 되는 '보충대' 이야기입니다.)


1. 입대당일, 시간은 여유를 두고 도착한다.

당일날은 차가 무지하게 밀린다. 한 두명 입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가는 것이 좋다. 자칫 늦으면 밥을 못 먹고 들어갈 수도 있으며, 가족이나 친구와 인사를 나누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고 자칫 늦어서 초긴장상태가 될 수도 있다. 물론, 혼자 입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딱 맞춰서 도착하는 것 보다 10분 정도는 일찍 도착할 생각으로 가는 것이 좋다는 데 동의할 거라 생각한다. (필자의 부대에는 입영날을 착각해 하루 지나서 입대한 동기도 있었지만, 군생활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 그래도 일찍 들어가는것이 낫다)

일찍 도착해서 주변에서 밥을 먹는 것도 괜찮다. 306보충대의 경우, 부대찌개로 유명한 곳이므로 맛이나 보고 입대하는 것도 괜찮다. 물론 맛은 없다. 의정부 부대찌개가 맛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고 입대 전 마지막 식사니 밥을 어디로 삼키고 있는지도 의식을 못할 가능성이 크다. 연신 담배만 피우는 장정들도 많이 보게 될 것이다. 그래도 앞으로 100일가량 '사제 밥'을 맛 볼 기회가 없을테니 먹고 들어가는 것을 권장한다.

식사가 끝나면 연병장에 모여 누가 뭐라고 떠드는데 아무 소리도 안 들릴 것이다. 불안과 초조, 그리고 두려움과 자포자기한 얼굴들의 빡빡머리들이 꾸역꾸역 모여있다가 어느 강당으로 들어가라는 안내와 함께 들어가게 될 것이다. 손흔들며 굿바이-

자, 이제 시작이다. 700여일에 가까운 군생활.

아차, 입대 전 꼭 가지고 들어가야 할 준비물을 설명 안해줬다.

준비물 - 시계(손목시계-싸고 안망가지는 것.방수기본), 로션(여행용 작은 사이즈), 안경착용자의 경우 여벌의 안경(안경닦는 것 포함), 가족이나 친구들 사진, 약간의 현금, 여건이 된다면 우표와 핸드크림(겨울군번 필수)


2. 하루는 혼수상태.

검은 모자에 '구대장' 이라고 쓰인 사람들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좀 전 연병장에서 다정스러운 연설을 하던 군인과 달리 반말이 나올 것이다. 앞으로 자대가서 후임을 받기 전까지는 존대를 듣기 힘들다. 이때부터 적응이 시작되는 거다. 그 '구대장'들이 무섭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마치 '디멘터' 처럼 눈을 마주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얘들은 훈련소에서 만나게 될 '훈육'과 '조교'에 비하면 천사다.

이때, 담배나 핸드폰등을 검사하는데 걸리면 지옥이라도 데리고 갈 것 처럼 겁을 주지만 다 뒤지거나 하진 않는다. 소란을 방지하는 차원에서도 다 내는 것을 권장한다. 단, 자신이 애연가이며 '얼차려'를 각오하고서라도 담배를 피워야 겠다면 깊이 '키핑' 해 두어도 큰 무리는 없다. 필자의 고참은 이때 핸드폰을 숨겨 자대까지 가지고 온 사람도 있었다. (물론 있어봤자 무용지물이다.)

뭐라고 하는지도 모를 '분류'가 끝나면 벌써 어딘가로 이끌려 갈 것이다. 앞으로 3박 4일간 생활하게 될 곳. 내무실 풍경에 놀랄지도 모른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잠 자고 생활하냐고 말이다. 자대에 가면 더 좋은 시설을 갖춘 '신막사'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단, 필자처럼 '구막사'로 가게 된다면 책임 못진다. 참고로 필자가 알기론 우리나라엔 '구막사'가 훨씬 많다. (구막사 주변엔 뱀, 개구리, 개, 사슴벌레 여러 동물들이 함께 산다)

식사시간이 있을 것이다. 무조건 많이 먹어둬라. 훈련소나 자대의 밥은 개인적으로 보충대보다 나은편이었다. 보충대는 이상하게 밥이 맛이 없다.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대량으로 하다보니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많이 먹어둬라. 배고픔이 찾아오더라도 프링글스나 집어 먹으며 TV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안드로메다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불침번을 정해서 서게 될 것인데, 별로 걱정할 건 없다. 그냥 자다 일어나서 한시간이나 한시간 반정도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니 말이다. 푹 자게 될 것이다. (여기 저기서 훌쩍 거리는 소리가 들릴 수도 있다.) 입대했다는 사실을 아직 실감하지도 못하면서 '사제 꿈' 을 꿀 수도 있다. 아, 위에서 담배를 감춰 온 애연가들은 이때가 절호의 기회다. 걸려도 책임은 못 지지만 담배피우기는 이때가 딱 좋다고 생각한다.


3. 드디어 군생활 하루가 지나고

기상나팔. 눈을 떴는데 집이 아니다. 아. 군대구나. 내가 이제 군인이 된 거구나. 이런 실감을 할 겨를도 없이 밖에 나가서 아침점호를 하게 될 것이다. 별로 어려운 것은 없다. 소리지르고 복무신조, 병영생활행동강령 등을 외우는 것과 애국가제창, 인원파악등으로 끝났던 것 같다.

이날 아마 신체검사를 받을 것이다. 힘들거나 못견딜만한 건 전혀 없다. 심리적인 압박감과 담배를 못 피우는 금단현상 때문에 며칠 밤 샌 느낌으로 먹먹할 뿐이지 아무 훈련도 받지 않는다. 받는다고 해봤자 이동시 대열 맞추는 것과 다,나,까 의 언어습관 정도.

군대 강사 - "좋아하는 게임 있습니까?"
장정 - "스포요"
군대 강사 - "요라고 하면 안됩니다."
장정 - "네?"

이런 무개념만 보이지 않는다면, 특별히 얼차려를 받거나 문제될 것은 없다. 특히 "네?" 하며 되 묻는 것은 이등병이 되어서도 자주 튀어나오는 습관이다. 군대에서는 "잘 못 들었습니다." 로 순화된다. 이렇게 순화된 언어습관은 예비군 1년차 훈련을 받기 전까지는 잘 안고쳐 지기도 한다.

아무튼, 벌써(?) 군생활 하루를 했으니 긴장이 풀어진 녀석들은 군대 오기 전 이야기를 늘어 놓기 시작할 것이다. 이때부터 군인들의 거짓말(?)은 싹트기 시작한다. 아무도 자기가 누군 줄 모르니 누가 확인 할 방법있겠나. 그냥 사회에 있을 때 한 번 안 놀다 온 애들이 없고, 대단하지 않은 녀석들이 없다. 일부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 다는 듯 영혼을 팔아버린 듯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다.


4. 사복을 벗고, 군복으로

2일차인지 3일차에 군복을 받게 된다. 여기서 받은 군복을 2년 내내 입는다고 보면 된다. 특히나 A급(외출,외박,부대행사,휴가 때 입고 신는 의류)같은 경우는 잘 골라 놓아야 한다. 자대에 가면 고참들이 주기도 하고 옷도 맞는 것으로 준다는 얘기는 뻥이다. 물론 보급 잘 나오고 아주 좋은 자대를 가면 새 군복을 받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자대에서 물려받는 옷은 말 그대로, 훈련복, 작업복 이다. 더군다나 자신과 비슷한 사이즈를 입는 고참이 없을 경우는 역시 보충대에서 받은 군복을 2년 내내 입어야 한다.

군복을 고를 때에는 자기 사이즈보다 조금 큰 것 / 적당한 것 / 타이트 한 것 이렇게 고르길 추천한다.

앞의 두개는 동복이고, 타이트한 것은 하복이다. 군대는 이상하게 여름과 겨울밖에 없는 곳이라는 의견이 많으므로 발가락을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의 추위에서 견디려면 무조건 껴 입어야 한다. 그러므로 겨울에 입을, 또 훈련시 편한, B급 동복은 좀 헐렁헐렁 한 것으로 고르고, 휴가나 외박때 입을 A급은 자신의 정 사이즈로 고르면 된다. 그리고 하복의 경우 조금 타이트 한 것을 골라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병사들의 경우 대부분 A급의 군복은 상병 꺾이고(상병 절반이 지나가고) 구입하기도 한다. 특히 앞부분에 지퍼가 달린 간부복을 사서 입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사병 군복은 앞 부분이 단추다)


5. 공포의 화장실과 종교행사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으나, 필자가 보충대에서 니코틴부족과 심리적 압박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엔 306보충대의 화장실은 최악이없다. 좌변기라는 시설이 있기는 했지만, 그 변기는 천지창조 직후부터 막힌 듯 보였고, 한 변기에 3인분이 넘는 아나콘다들이 들어있었던 것을 목격하고 토할뻔 했다. 극도의 긴장과 불안 상태라 변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변비약을 보충대에서 줬는지 훈련소에서 줬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며칠간 묵힌 아나콘다들은 아기코끼리의 배설물과 비슷하다. 그것을 이겨내고 그 위에 볼 일을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필자는 보충대에서 3일간 미션을 해결하지 못했다. 지금도 필자에게 그 상황이 재연된다면 차라리 휴지와 삽을 들고 산으로 올라가겠다.

종교행사는 개인적으로 참 마음이 편해지는 시간이었다. 사회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소중한 초코파이를 만날 수 있었다. 아! 초코파이! 이것을 빼 놓고 군대를 논하지 말라. 장정과 훈련병, 그리고 100일 휴가 전의 이등병에겐 초코파이가 영혼을 달래주는 음식이다.



이렇게 3박 4일간의 일정을 마치는 동안, 컴퓨터 추첨을 통해 배정된 훈련소로 가게 된다. 어디가 편하고 어디가 힘들다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오고가지만, 아직까지 훈련소에서 편했다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 누구든 자기가 머문 시기의 훈련소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하는 법이다.

사회에서는 불쌍해 보였던 이등병이 그렇게 높고 고귀한 존재인지 실감도 못할 시기다. 사실, 그곳에서 악다구니 쓰며 군기잡으려는 이등병들은 훈련소를 마치고 자대로 가기전 잠시 대기하고 있는 병사다. 그 녀석들도 아직 일병의 달콤한 갈굼을 못 받아 본 녀석들이란 얘기다. 쫄거 없다. 보충대에서의 3박 4일을 꿈처럼 잊게 해 줄 훈련소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자, 이제 버스에 몸을 싣고 배정받은 훈련소로 떠나는가?

'진짜군인'이 될 시간이다.

훈련소 이야기는 - '군생활 매뉴얼, 훈련소 심층분석' 으로 찾아뵙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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