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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겐 이 관계가, 일종의 진통제였던 것 같다. 별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현실에서 눈 돌릴 수 있게 해주는 관계라고 할까. 공부 막 시작하려고 책 폈는데 친구들이 나오라는 얘기하면

 

‘그래. 오늘까지만 애들 만나서 놀고, 내일부터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나갈 수 있듯, 그런 느낌으로 나가 P양과 데이트를 즐겼던 것 같다.

 

P양 역시 외로움을 느끼던 상황에서, 일주일에 5일을 만날 수 있으며 언제든 연락이 닿는 남친이 생겼으니 좋았을 것이다. 그래서 PC방에서 게임하는 데이트가 주를 이뤄도 불만을 품지 않았고, 식사를 편의점 도시락으로 해결해도 그땐 그저 좋았을 수 있다.

 

 

 

그런 소비적인 연애의 종말을 난 200일 정도로 본다. 첫 3개월, 그러니까 한 100일까지는 그냥 얼굴만 봐도 즐거운데다 연애를 하고 있다는 설렘에 들떠 아무 고민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을 더 만나 200일 정도 되면, 만나서 매번 하는 것도 똑같으며 한정적인데다, 둘 중 한 쪽만 계속 이해하고 참는 걸 도맡아 하는 것에 대한 피로를 느끼며 불만이 생기기 시작한다.

 

관계의 불협화음이 생기기 시작하니, 그 연애는 더 이상 ‘도피처’로서의 기능을 못하게 된다. 도피한 쪽의 입장에선 답답한 생활을 잊고 싶어 접어두고는 연애로 눈을 돌렸던 건데, 연인이 자꾸 현실을 마주보게 하려들거나 이제 더는 ‘우쭈쭈쭈’ 대신 ‘진지한 미래 고민’같은 걸 꺼내니 연애에서도 도피할 생각을 하게 된다.

 

때문에 이런 커플들의 경우 사귄 지 200일 이후 급격하게 관계가 멀어지거나, 연애로부터도 도피하려는 쪽이 친구나 취미나 또 다른 이성 등의 ‘다른 도피처’를 만들며 갈등이 깊어지곤 한다. 그런 상대를 마주하고 있는 쪽에서는 ‘연애는 요 정도면 합격, 이제 다른 부분에서도 합격할 것’을 바라는 건데, 사실 그게 상대로서는 ‘다른 부분’을 다 접어두고 연애에만 매달리고 있어서 가능했던 것인 까닭에 둘 다를 잘할 자신이나 능력이 없을 수도 있다.

 

P양의 경우를 보자. 상대는 공부를 하고 있는 것 같던데, 공부하는 사람이 일주일에 5일을 데이트 하며 한 시간에도 몇 번씩 연락을 주고받는다면 대체 공부는 언제 할 수 있겠는가. 내가 놀랐던 건 P양이 상대에게 ‘15분 이상 톡을 하기 힘든 상황이면 꼭 말해줄 것’을 요구했다는 부분인데, 이게 무슨 보고자와 감시자의 관계도 아닌데 이런 규칙까지 정했다는 게 좀 당황스럽다. 데이트 역시 상대가 P양 쪽으로 와서 법 먹고, 커피 마시고, 대화하다 들어가는 걸로 굳어졌다는 것도 안타깝고 말이다.

 

 

여하튼 위와 같은 이유로 이런 연애는 1년이 되기 전에 끝나기 마련인데, 헤어지자는 얘기가 몇 번 나오고 서로를 차단하는 일까지 이어져도 계속 매달릴 정도의 미련력(응?)을 가지고 있을 경우 좀 더 길어지기도 한다. 그 기간이 평균 6개월 정도 되는데, 그때는 좀 더 자극적이고 강한 걸로 서로를 공격하기 위해 동물욕이나 숫자욕, 심지어 가족욕이 등장하기도 한다.

 

밖에서 보면 이건 연애라기보다는 서로를 학대하는 것에 가까우며 애정 대신 악만 가득 들어찬 관계지만, 그것도 또 그것 나름의 정이 드는 까닭에

 

‘이렇게 서로의 막장까지 확인하고도 계속 연락하는 우리가, 진짜 사랑. 진짜 인연.’

 

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래버리면 각자 알아서 살다가도 다시 혼자가 된 날 상대에게 연락하곤 하는데, 대부분 ‘이제 나도 몰라. 될 대로 되라’의 심정으로 나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구정물을 들이키고 만 기분이 되기도 한다.

 

P양의 ‘끝내느냐, 마느냐’란 질문에, 난 끝내는 게 맞다는 대답을 해주고 싶다. 이젠 P양이 무슨 얘기를 하든 상대는 잔소리나 시비 거는 것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데, 그런 상황에서는 조율이 불가능하며 늘 얘기하는 ‘존중과 책임감’도 그 관계에선 찾아볼 수 없다.

 

그냥 저렇게 짧게 대답해도 될 걸 구구절절 써둔 건, 이번 연애를 오답노트 삼아 다음 연애에서는 같은 실수를 하지 말길 바라는 내 바람이며, 혹 이후에도 헤어지지 못해 계속 이어가거나 ‘악연이든 뭐든 이런 게 인연’이라는 생각에 몇 년을 허송세월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라고 생각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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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ㄷㄷ2017.12.12 19:5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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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우와 무한님 홈피 수년동안 애독하면서 첨으로 1등을 해봅니다! ㅎㅎ

ㄷㄷㄷ2017.12.12 19:5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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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사람이 주5일 데이트에 통화까지 한다는 부분을 보니 합격은 이미 글렀으며 오히려 불합격의 이유로 P양 핑계댈거라는데 제 젊음(?)을 겁니다. 굳이 이런 상대를 만나야 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네요.

n2017.12.12 19:5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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待ちました\(//∇//)\

미진2017.12.12 19:5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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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oZ2017.12.12 20:1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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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권?

AtoZ2017.12.13 20:5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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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내쪽으로 찾아오게 하고, 15분 이상 얘길 못할 것 같으면 톡을 달라는 것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허송세월 하던 상대가 번쩍 "난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사람에게 어떻게든 붙잡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정리 대상이 되는 사람은 아니었는지, 본인의 행동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두 사람에게 똑같이 아름답고 그리운 기억으로 남는 연애는 어떤 연애일까요..
어떤 시간이 그리움으로 남는 것은 적어도 함께한 시간 속에서의 상대와 나의 모습을 떠올렸을 때, 두 사람 사이에 아름답고 절실한 무언가가 있을 때인 것 같습니다. 그걸 얼마나 지켜왔는가,

진성2017.12.12 20:2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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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오링2017.12.12 20:2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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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양뿐 아니라 그를 위해서도 이 연애는 끝내는게 맞습니다

릴리2017.12.13 13:3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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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존중과 신뢰가 깨졌다면 다시 쌓기 정말 힘들죠.. 서로 사랑해서 붙잡고있는 관계가 아니라 모질게 끊어내지못해 잡고있는 사이라면 빨리정리하시는게 서로를위해 나눴던 시간에 대한 예의인거같아요 더이상 망가지기전에요..
선택은본인이 하는거 겠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만 놓아주세요

꼬마2017.12.12 21:0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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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미래에 상관없이, 현실과는 별개로 그냥 좋아서 즐겁게 만나는 연애가 지속되기도 하는데(생각보다 길게요) 그러기 위해서는 어쨌든 자신들만의 삶은 멀쩡히 살아내고 있어야 합니다~ 연애는 좋자고 하는 거지 상처 받자고 하는 게 아니라는 거, 꼭 기억했으면 좋겠네요~

2017.12.12 23:4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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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하늘2017.12.13 02:2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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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상 누구 한사람이 시험 등 중요한 걸 준비할땐 서로 엄청난 배려와 이해가 필요합니다. 다른 한쪽이 배려해주고 이해해주고, 시험 준비하는사람이 그 고마움을 항상 알아주고 표현해야죠. 특히 결과가 좋든 안좋든 그걸 누군가의 책임으로 넘기지 말아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ㅠ 배려해주는 쪽은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라는 보상심리가 생기기 쉽고, 시험 준비하는 사람은 시험이라는 좋은 핑계로 다른 한편을 막 대하기 쉬우니까요.

오늘2017.12.13 08:0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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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후 제가 보냈던 편지들과
‘F’가 적힌 성적표를 보냈던 구남친이 떠오르네요...ㅎㅎ;

AtoZ2017.12.13 09:2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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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참 별 사람이 다 있군요......

군밤2017.12.13 13:4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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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별별 사람이 있네요 성적표 ㅋㅋㅋ ..

오늘2017.12.13 23:4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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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여기서 숨은 포인트는
‘착불’ 택배였다는 겁니다 ㅋㅋㅋ

꾸준맨2017.12.14 20:1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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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구질구질하다

피안2017.12.13 09:3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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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점점 더 답답해지는 사연이네요
부디 잘 접으시고 새로운 인연 만나시길

2017.12.13 19:4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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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모습들은 어찌나 이리 닮아있을까요.
무한님의 글을 조언삼아 사연자님이 좋은 방향으로 결정을 잘 하시길 빌어요.
연애라는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만남을 좋은 방향, 즉 서로 윈윈할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데, 그 반대 방향의 길로 가고 있다면 아무리 좋아해도 놓을줄 아는 것이 현명함이지 않을까요. 서로가 서로를 꽃길로 데리고 가야지 놓을 수 없다고 한쪽을 -그게 사연자님이든, 상대방이든- 진창으로 끌고갈순 없잖아요...

용감한벌레2017.12.14 09:3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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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사연과 비슷하네요..
정이..든다는게 참 무섭다는 말을 참 실감합니다.
이 안에 갇혀있다보니, 객관적인 판단력도 흐려지고, 이 관계를 이어가야 할지 말아야할지에 대한 고민만 늘어납니다.
사랑...이라고 거창하게 까지 말을 할수있을까도 싶고요.
같이 있어서 행복하고, 의지할수잇고,서로를 배려하는 관계...라고 생각이 들다가도,,
나이가 있어서그런지, 한쪽이 불안정한 상태를 견디기가 힘이 듭니다.
상대는 또 상대나름대로 너무 힘들다고 하니, 힘들다고 말도 못하고 참게되죠..
결정을 한다는것자체가.참 힘드네요..

도롱2017.12.14 13:1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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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성적표를 보냈다던 윗 댓글분 구남친도 그렇고 참 별별사람들이 있군요..
오늘도 잘봤습니다 감기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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