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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준비를 하며 만난 사람들. 점포정리만 20년 일산 양복매장 사장님.

by 무한 2018. 6. 27.

일산 외곽에는 ‘양복 할인매장’, ‘정장 상설매장’ 같은 이름을 단 매장이 몇 군데 있다.

 

-정장 1+1

-와이셔츠 9,000원

-넥타이 5,000원

 

같은 현수막을 걸고 장사하는 곳인데, 늘 ‘점포정리’, ‘확장이전’, ‘폐업세일’ 같은 문구도 함께 적혀있다.

 

어디라고 말하긴 좀 그렇고, 예전에 내가 살던 동네 외곽에도 그런 매장이 있다. 고등학생일 때부터 그 매장을 봐왔던 것 같은데, 이후 내가 대학생이 되고, 군대를 가고, 전역을 하고, 회사엘 가고, 그러다 결혼까지를 준비하는 순간에도 ‘점포정리’, ‘확장이전’, ‘폐업세일’ 등의 문구를 붙이고 있었다.

 

대체 어떤 곳이길래 폐업 컨셉을 잡고 20년 넘게 장사를 하는 건지 언제나 궁금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결혼식을 앞두고 양복을 보러 다니던 중 호기심에 이끌려 한 번 들어가 보게 되었다.

 

결혼준비를 하며 만난 사람들. 점포정리만 20년 일산 양복매장 사장님.

 

들어갔는데, 사람이 없었다. “저기요~. 사장님~”을 두어 번 외치고 나서야, 반백 스포츠 머리에 다부진 몸, 거기에 두꺼운 금목걸이를 한 사장님이 나타났다.

 

“응응. 뭐 찾아요? 뭐?”

 

먹잇감을 발견한 황소개구리의 눈빛이랄까. 그런 눈빛을 한 채, 사장님은 서걱서걱 소리가 날 정도로 손바닥을 비비며 다가왔다. 내가 “결혼식 끝나고 피로연 때 입을….”까지 말했을 때, 사장님은 뒤로 돌아선 거침없이 좌측으로 직진해 양복 한 벌을 꺼내왔다.

 

“이거야. 입어 봐.”

 

전설적인 명의인 화타를 만났다던 사람들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증세를 말하기도 전에 처방을 내려 병을 치료해 버리는 명의를 만난 듯, 난 내가 원하는 정장의 모양이나 색깔도 말하지 않았는데 사장님은 정장 한 벌을 골라온 것이다.

 

거기까진 뭔가 카리스마 있고 멋있었는데, 정장을 입어보니 상의의 팔 기장은 짧고 몸 부분 길이는 길었다. 가만히 있으면 그럭저럭 봐줄만 했지만 조금이라도 팔을 들면 팔꿈치까지 올라올 기세로 팔이 짧았다. 그러한 점을 지적하자 사장님은

 

“평소에 앞으로 나란히 하고 다녀?”

 

라며 말을 잇지 못하게 내 입을 막아버렸다.

 

 

당황한 내가 겨우 “앞으로 나란히는 안 하지만, 그 왜 피로연 식당에서 악수할 때 팔 기장이 짧으면….”이라고 하자, 사장님은

 

“악수 매일 해? 매일 하지 않잖아. 이게 길이가 맞는 거야. 누가 악수한다고 맨날 팔 그렇게 뻗고 사나? 내가 여기서 20년 째 장사해. 내가 골라주면 딱 맞아. 팔 살짝 들어봐. 아니 아니, 높이 말고 적당하게. 아니 더 밑으로 들어봐. 봐봐. 딱 맞지? 이게 딱 맞는 거야.”

 

누가 봐도 팔이 짧은 게 분명한데, 사장님은 자기 할 말만 속사포로 뱉어내고선

 

“와이셔츠도 해야지? 와이셔츠 봐봐.”

 

라며 와이셔츠 코너로 날 끌고 가려 했다. 난 재빨리 머리를 굴려, 기장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로 그 옷이 마음에 안 든다고 말했다. 남색 말고 회색 정장을 사고 싶단 핑계를 댄 것이다. 그러자 사장님은

 

“예복이라며? 아까 결혼식 때 입는 거라고 해서 내가 그거 가져온 거야. 그게 예복이야. 결혼식 때 누가 회색을 입어? 그걸로 예복 많이 사갔어. 지난주에도 결혼한다고 와서 내가 그거 골라줬더니 아주 마음에 든다고. 어? 그렇게 입는 거야.”

 

라며 답답하다는 듯 자신의 양복 상의 단추를 풀었다.

 

내가 누군가의 강권에 약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피로연 때 입을 양복을 아무렇게나 살 순 없다는 생각에 좀 더 강하게 다른 색 양복을 입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사장님은 못 이기는 척 하며, 다시 거침 없이 전진해선 회색 정장을 골라 내밀었다.

 

“이걸로 하고 싶다고 하면 줄 수 있어. 줄 수 있는데, 내가 정확해. 남색이야. 아무튼 입어 봐.”

 

회색 정장은, 다른 곳은 넉넉한데 품이 작았다. 몸통만 꽉 끼는 느낌. 불편함을 얘기하자, 사장님은 깊은 한숨을 쉬며 내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그러더니

 

“양복 잘 모르지? 어떤 게 딱 맞는 거냐. 단추를 잠갔을 때 주먹 하나가 들어가면 그게 딱 맞는 거야.”

 

하고는, 여유 공간이 없는 별로 없는 내 품 안으로 자신의 주먹을 집어넣으려 했다. 주먹을 넣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잠긴 앞 품을 확 잡아당기곤 주먹을 넣었다.

 

사장님 - 주먹 왔다 갔다 하지? 이게 딱 맞는 거야.

무한 – 근데 좀 불편해요.

사장님 – 평소에 단추를 풀어. 단추 다 잠그고 있는 사람이 어딨어. 나 봐봐.

 

그러면서 사장님은, 좀 전에 풀어 놓은 자신의 양복 상의를 나풀거렸다. 난

 

‘아…. 방금 전 사장님이 회색 양복을 가지러 가기 전 상의 단추를 푼 게, 바로 이 얘기를 하기 위한 큰 그림….’

 

하는 생각에 대략 정신이 멍해졌다. 좀 전까지 잠그고 있던 거 봤다고 말하기도 좀 그렇고 해서, 난 겨우 정신을 차린 채 ‘한 치수 큰 걸 입어보겠다’고 했다.

 

사장님 – 그걸로는 지금 없어.

무한 – 아….

사장님 – 이게 맞는 거라니까? 교회 다녀?

 

뜬금없이 튀어나온 교회 얘기에 난 다시 당황했다. 난 그 질문에 ‘모태신앙이지만 지금은 어떠어떠한 이유로 인해 권태신앙에 빠져있다’는 대답을 할까 하다가, 괜히 말이 길어질 것 같아서 그냥 “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사장님은

 

“목사님들한테 우리 가게가 인기가 많아. 왜? 하나 사면 하날 더 줘. 신도들이 자기 양복 맞출 때, 목사님 모시고 오면 자기 양복 하나에 목사님 양복 하나 해드릴 수 있잖아. 다른 데선 이 가격에 두 벌 못 사지. 그러니까 한 번 왔다간 교회 사람들이 우리 가게 홍보를 해주고, 목사님도 좋아하고 그러는 거야.”

 

정장 한 벌을 사면 한 벌 더 주는 것에 대한 얘기 같았다. 내 신앙심 같은 걸 자극하려 한 것 같은데, 별 소용이 없는 것 같으니 사장님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남색 하나 회색 하나 해. 한 벌 가격에 두 벌 가져가.”

 

그러면서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사장님은 두 정장을 포장할 봉투를 가지러 가려는 듯 보였다.

 

무한 – 아뇨. 딴 거 입어볼게요.

사장님 – 다른 거 뭐?

무한 – 저쪽에 있는 거요.

사장님 – 저건 겨울 거야.

무한 – 그럼 이쪽에 있는 거요.

사장님 – 이건 예복 아니야.

 

다른 핑계를 대야 했다. 난 아직 다른 양복점을 안 들려봤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좀 더 둘러보고 오겠다고 했다.

 

“….”

 

3년처럼 느껴지는 3초의 침묵. 사장님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 아흔일곱 가지의 대처법을 대입해 보는 듯 했는데, 마땅한 대처법을 찾지 못한 것 같았다.

 

“딴 데 가도 이런 거 못 구해. 여긴 질이 틀려(달라). 만져봐. 이런 걸 어떻게 한 벌 값에 두 벌을 구해. 못 구해. 보고 와. 다 보고 와도 되는데, 헛고생이야. 딴 데 이런 거 없어. 결국 다시 오게 될 거야. 못 구해.”

 

이미 난 두 벌 다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사장님의 말에 전혀 동요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냥 그대로 나가면 열심히 설명했던 사장님이 뒤에서 욕할 것 같아, 괜한 질문 같은 걸 하며 껄끄러움이나 좀 풀고 가려 했다.

 

무한 - 혹시 나중에 제가 이거 구입하면, 좀 줄이거나 늘이거나 할 수 있는 걸까요?

사장님 – 당연하지. 다 돼.

무한 – 여기서 해주시는 거예요?

사장님 – 세탁소에서 하지. 우린 파는 거고, 그건 세탁소에서 해야지. 어디 살아? 요 근처면 우리 꺼 해주는 데 있어.

무한 – 사는 데는 좀 멀어요. 아 그리고 궁금한 게 있는데요, 여기 제가 예전부터 지나가면서 계속 봐왔던 것 같은데, 오래 하셨죠?

사장님 – 이십 년 했다니까. 우리 껀 평생 A/S. 다 단골이야.

무한 – 근데 볼 때마다 막 점포정리, 폐업세일 뭐 그런 게 적혀 있어서요.

사장님 – 이사 갈 거야.

무한 – 아, 어디로요?

사장님 – 저기, 거기 어디냐, 더 큰 데로.

무한 – 언제 이전하세요?

사장님 – 여기가 나가야 가지.

무한 – 아, 여기가 안 나가서 계시는 거예요?

사장님 – 그렇지. 금방은 안 나가.

 

점포정리를 20년간 하고 있는 건, 세 들어 있는 건물에 다른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앞으로 새로운 세입자는 20년간 더 나타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여하튼 내게 꺼내줬던 양복을 다시 옷걸이에 걸고 있는 사장님을 뒤로한 채 난 매장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간 다른 매장에서, 난 팔도 몸도 꼭 맞는 정장을 찾을 수 있었다.(응?)

 

뜬금없이 이 양복점 사장님이 생각난 건, 어제 경험하고 온 새로운 우리 동네 미용실 원장님을 만났기 때문인 것 같다. 양복점 사장님에다 ‘말빨 +1, 능청 +2’ 정도를 하면 동네 미용실 원장님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얘기는 다음에 이어서 하는 걸로…. 그럼 다들 오늘 축구 잼나게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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