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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들, 뷔페에 가면 최소한 배불리는 먹는다.

by 무한 2012. 8. 5.
도둑들
CF를 찍은 적 있는 배우 네 명 이상이 출연하는 영화는 뷔페다. 뷔페에선 전체적인 구성이 별로라 하더라도, 좋아하는 메뉴 하나를 공략해 최소한 배는 부르게 먹을 수 있다. 영화 <도둑들>에는 일곱 명의 주연배우가 나오는데 일곱 명 모두가 CF를 찍은 적 있다. 일단 배우에서 1차 보장을 받는다.

그 보장이 못 미더울 때면 감독을 보면 된다. CF 경험이 있는 배우 여러 명을 데리고 삼각김밥밖에 못 만드는 감독들도 있으니 감독의 과거 작품을 본다. <도둑들>의 최동훈 감독 필모그래피에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가 보인다. <전우치>때 한 번 뒤통수를 맞은 적 있어서 살짝 망설여지긴 하지만, 이럴 땐 일단 믿고 보는 거다.


1. 재미있었다.


번안곡 중에는 원곡이 더 나은 게 있는 반면, 번안곡이 더욱 나은 것도 있다. 개인적으로 박효신의 '눈의 꽃'이나 포지션의 'I love you'같은 노래는 원곡보다 번안곡이 더욱 좋다. 영화 <도둑들>은 '번안곡'같은 영화다. 외국 범죄물에서 한 번씩 봤던 것 같은 장면들을 하나 둘 모아 한국식으로 풀이해 놓았다. 

"그럼, 한국식으로 해석해 놓은 <도둑들>이 더 좋았다는 건가요?"


라고 묻는다면, "재미있었다."라고 답하겠다. 일본의 <후뢰시맨>에 익숙해져 있다가, 한국의 <벡터맨>을 본 느낌이라고 할까. '아, 이제 한국에서도 이런 게 나오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금고를 털기 전까지는 '오호~' 하면서 볼 수 있고, 금고를 터는 장면에선 '으응?', 금고를 턴 이후로는 '흐음…'하면서 볼 수 있다. 극장에서 보고 돈 아깝지 않은 한국영화는 2010년 <부당거래>가 마지막이었는데, 올해 <도둑들>을 보면서 다시 갱신하게 되었다.(물론, 두 영화의 '아깝지 않음'의 기준은 다르다.)

그간 한국의 범죄물이 스타킹을 뒤집어쓰고 은행을 털거나, 조폭들 간의 세력다툼이었던 것에 비하면 많은 발전을 했다고 생각한다. 어느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한국 영화를 헐리우드 영화와 비교하지 말아 달라고 볼멘소리를 하던데, 이젠 그런 핑계를 대기 힘들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도둑들>로 포석을 놓으면 다음 수는 더 앞서 두어야 할 테니, 그런 의미에서 <도둑들>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2. 아쉬운 점은?


영화를 보며 아쉬웠던 점 몇 가지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 잠파노(김수현)라는 캐릭터는 낭비인 것 같다.


무겁지도 않고, 웃기지도 않고, 그렇다고 발랄하지도 않고 참 애매하다. 차라리 잠파노(김수현)가 예니콜(전지현)을 짝사랑 하는데, 마카오박(김윤석)과 예니콜의 관계를 오해해 사건을 뒤틀리게 만드는 역할을 부여했으면 어떨까 싶다. 아니면 작전에서 보다 중요한 임무를 맡고 싶어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반발심에 결정적인 순간 일을 그르치는 역할로. 또, 김수현의 외모 때문에 그가 도둑이라는 것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지니,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는 뒷이야기가 짧게라도 들어갔으면 좋았을 것 같다.

- 씹던껌(김혜숙)과 첸(임달화)의 썸씽은 초반부터.


둘의 로맨스가 너무 갑작스럽다. 처음 홍콩에서 만나게 되는 순간에 서로 눈빛을 교환하게 되는 장면을 하나쯤 넣어 줬어도 괜찮을 것 같다. 씹던껌이 한국에선 외로움을 토로하는 장면, 홍콩에 가서 첸을 마주하는 장면, 팹시(김혜수)에게 첸에 대한 감정을 잠깐 비추는 장면들이 들어갔으면 보다 자연스러웠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 도둑질 부분이 너무 허술하다.


현관문도 번호키로 여는 시대에 뚱뚱한 외장형 다이얼 금고가 나와서 깜짝 놀랐다. 좀 더 머리를 굴려 '보석은 알아서 제 발로 나오고, 그걸 훔치는 상황'을 만들었으면 어떨까 싶다. 금고를 포기할 수 없었다면 예니콜이 아슬아슬하게 보안을 통과하는 장면(영화 <엔트랩먼트>에서 캐서린 제타존스가 보여준 연기에서 한 발 정도 더 나아가서)이라도 넣는 것이 괜찮았을 것 같다. 가장 아슬아슬해야 할 상황에 반상회가 벌어지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면 자연히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 마카오박(김윤석)의 긴 와이어씬


난 뽀빠이(이정재)가 이 와이어씬을 했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극의 흐름상 뽀빠이는 줄타는 역할이 아니니 어울리질 않는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죽는 거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예니콜이 훔친 가짜 다이아로 뽀빠이는 웨이홍과 거래를 하러 간 거다. 그러다가 일이 성사될 것 같지 않으니 도망치는데, 그 과정에서 뽀빠이의 와이어씬이 나오게 된다. 뽀빠이는 줄 타는 역할이 아닌 줄잡이 역할이니, 도망치는 중에 총에 맞는다. 한 탕 한 뒤 멋지게 살아보고 싶어 모두를 속였던 뽀빠이. 하지만 결과는…. 뭐 이런 식으로.


3. 이렇게 만들면 어땠을까?


캐릭터에 힘을 실을 생각이라면, "왜 다시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는가?""그들에게 도둑질은 무엇인가?"에 대한 부분을 앞 쪽에 미리 깔아 놓는 게 좋을 것 같다. "자, 이 사람들이 도둑이고, 앞으로 훔칩니다."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은 도둑질을 할 겁니다. 왜 그럴까요?"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동네 약국만 가도 다양한 증상과 사연을 가지고 약국을 찾은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것처럼 '도둑질'이라고 해도 '도둑질을 하는 이유'는 다 다를 테니, 그것부터 출발한다. 개인적으로 욕심이 나는 캐릭터는 '도둑질이 재미있어서(사이코패스형)' 도둑질을 하는 캐릭터와 '배운 게 도둑질 밖에 없어서(생계형)' 도둑질을 하는 캐릭터다. 목적은 같지만 동기가 다른 두 사람이 만나면 트러블이 일어나리라 생각한다. 인원이 많으니, '철학이 있는 도둑'이 한 명쯤 무게를 잡고 있어도 좋다. 

잠파노가 도둑질에 입문하는 것으로 시점을 잡는다. 홍콩이 꼭 들어가야 한다면 첸의 조직을 보다 크게 설정한다. 너무 크게 잡아 놓은 웨이홍은 현실감이 떨어지니 삭제한다.

"나만 믿어." VS "아무도 믿지 마."
"조연부터 시작해." VS "조연은 커도 조연이다. 주인공으로 시작해라."
"안 훔치면 상 주냐?" VS "호랑이 아가리엔 손 넣지 마라."
"폼 나잖아." VS "폼 잡다 죽을래, 길게 살래?"



대략 위와 같은 긴장을 계속 유지해간다. 너무 긴장을 계속하면 쥐가 날 수 있으니, 그 때는 코믹과 유머로 방심을 유도한다. 캐릭터들을 그대로 활용한다면, 씹던껌과 첸의 로맨스를 빼고 대신 씹던껌이 잠파노를 챙기는 쪽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잠파노는 예니콜을 짝사랑하고, 뽀빠이는 예니콜에게 자신만을 믿으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뽀빠이는 동시에 팹시와 다른 계획을 짠다. 그걸 예니콜이 엿듣고 마카오박과 새 계획을 짜려 하고, 그 모습을 본 잠파노가 자신만의 계획을 짠다.

다양한 결말을 생각할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씹던껌이 잠파노를 보호하다가 대신 죽고, 뽀빠이는 가짜 다이아를 거래하려다가 죽는 거다. 마카오박은 현금을 훔쳐 달아나는데, 팹시는 잠파노와 예니콜의 말에 속에 마카오박이 현금과 다이아를 둘 다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게 된다. 그렇게 팹시를 따돌리고 잠파노와 예니콜은 떠난다. 떠나는 도중에 잠파노가 잠든 사이, 예니콜이 다이아를 훔쳐 달아난다. '누나가 너랑 좀 놀아준 것에 대한 보답이야.' 정도의 느낌으로 사라진다. "나만 믿어.""아무도 믿지 마."라는 말 사이에서 갈등하던 잠파노. 그는 과연 다이아를 잃은 걸까?


난 도둑들을 A열에서 봤다. 내가 보려던 시간대에 다른 좌석들이 다 꽉 찼는데, 매표소의 직원이

"9관은 화면이 낮으세요. 그래서 A열도 괜찮으세요."


라며 나를 높이는 건지 화면과 A열을 높이는 건지 모를 말을 해서 덜컥, A열에 앉게 되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그 직원에게

"목이 아주 뻣뻣하니 오십견 온 것 같은 느낌, 아주 좋네요.
앞으로도 A열 많이 권장해 주세요."



라고 말하려다가 참았다. 전에 한 번

"사이드 좌석도 많이들 보세요."


라는 말에 속아 눈이 넙치처럼 될 뻔 한 적 있는데, 또 속고 말았다.

여하튼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몰입해서 본 영화가 <도둑들>이다. 사실 이렇게 배우들이 뷔페식으로 나올 때는 배우들의 가십과 맞물리는 대사가 많을수록 재미있다.(<오션스 트웰브>에서 조지클루니가 "내가 50살로 보여?"라고 묻는 장면, 혹은 <소림축구>에서 임자총이 주성치에게 "그럼 신문이랑 잡지에 난 형의 수많은 스캔들은 다 뭐야?"라고 묻는 장면 등) 안타깝게도 <도둑들>에 그런 깨알 같은 재미는 없었지만, 정마담 김혜수와 엽기녀 전지현, 4885(추격자) 김윤석, 태양은 없다의 이정재 등 굵직한 캐릭터들을 다시 만나는 듯한 재미가 있는 영화였다.




▲ 다음 영화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 입니다.(비긴즈, 다크 나이트 포함) 추천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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