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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경험할 마지막 지름신

by 무한 2009. 10. 29.
이틀간 이어진 두개의 발행글 [컴팩트 디카를 산 사람들이 DSLR로 가는 이유]와 [DSLR사용자가 겪게되는 웃지 못할 증상들] 두 편에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주셨다. 그 중 커플부대원이라면 공감이 갈만한 댓글이 있으니 바로 이거였다.

저 같은 경우에는 DSLR을 들고다니다가,
여자친구랑 북적한 거리를 놀러다닐 때
여자친구보단 카메라를 먼저 보호하게 되서
하이엔드 똑딱이로 갈아탔습니다. ㅋㅋ

- [쵸글] 님이 남겨주신 댓글 중

어디 이것 뿐이겠는가, 사진관련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연 중 아내가 셀카 찍는다고 남편의 DSLR를 만지다가 떨어뜨려 렌즈와 바디가 박살났다는 글, 남편은 차마 아내에게 화를 낼 순 없어 방에 들어가 침대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는 이야기, 여자친구에게 "이십만원 짜리야" 라고 했지만 사실 앞에 백단위 숫자가 빠져있는 이야기 등 많은 사연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 열정의 순간과 설렘의 시간도 지나고, 취미생활이든 예술생활이든 사진에 대한 권태가 시작되었을 때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1. 권태의 시작, 단렌즈 3개와 필카(로모,토이 포함)

그녀의 올나간 스타킹이 신경쓰이고, 그의 비듬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처럼, 사진생활에 찾아온 권태기. 이 시기에 흔히 말하는 '사진을 접는다' 라는 표현을 많이 쓰게 된다. 쉽게 말해, 스스로 '사진엔 재능없음'이라는 성적표를 받아 든다거나, 이렇게 몸과 마음, 그리고 돈을 바쳐 사진을 찍지만 별로 얻어지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다. 일부는 '역시 사진은 돈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이라고 푸념을 하거나, 순수 리사이즈냐 포토샵을 한 거냐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뭐, 사진에서 멀어지는 경우는 제각각이라, 다 열거하진 않겠다.

전형적인 '예술가 타입'을 자랑하는 사람들은 찾아온 권태를 이기기 위해, 혹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사진을 찍기 위해 공부를 한다. 그 유명한 바바라 런던의 <사진학 강의>를 읽거나,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필드가이드 세트>, 혹은 브라이언 피터슨의 <창조적으로 이미지를 보는 법>과 후속 시리즈 들을 읽기도 한다. 웹을 통한 검색등으로 지식을 넓히던 중 이러한 글을 보게 된다.

"줌렌즈는 악마의 작품입니다. 단렌즈로 사진을 찍으세요"

그리하여 보통 35mm, 50mm, 85mm로 대표되는 단렌즈 세개를 구입하거나, 50mm를 제외하고 200mm를 포함시긴 구성으로 자신의 렌즈군을 세팅한다. 잘 활용하는 사람은 별 무리 없이 찍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렌즈를 다 구성하고 나서야 깨닫는다.

'아.. 뺐다 꼈다 하는게 엄청 귀찮은 일이구나...'

비슷한 경우로 AF(자동초점)대신 MF(수동초점)렌즈를 구입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격이 저렴한 이유도 있지만 대다수 "우와, MF로 찍으신 거에요? 고수네요. 대단해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때문인 경우가 많다. 남들과 다르게 MF로 사진 한 장 한 장 생각하며 담아내겠다는 다짐은 친구들의 사진을 찍어주면서 무참히 깨지게 된다.

"야, 도대체 언제 찍는거야? 나 안찍을래"

"아.. 잠깐만, 거의 다 됐어, 기다려봐, 하나, 둘 셋-"


초점을 맞추는데 1박 2일이 걸리는 것에 피사체(친구)는 짜증을 낼 것이고, 다섯장을 채 못 찍고 후회가 쓰나미 처럼 밀려올 수도 있다. AF렌즈도 하나 필요하다는 후회의 지름신 말이다.

남들이 다 DSLR을 가지고 있으니, 자신은 좀 다르게 '정통'으로 사진을 하겠다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우리 가게는 기계를 안 쓰고 아직도 맷돌을 써요. 그게 우리집 맛의 비밀이죠' 이런 장인정신을 차용증도 없이 빌려와 필카를 구입한다. FM2등 필카시절의 명기를 찾거나, 색감이 특이한 로모, 싸고 귀여운 토이카메라를 찾기도 한다.




Prometheus,

프로메테우스의 간은
낮에는 독수리에게 파먹히고
밤에는 재생되었기 때문에
이 형벌은 영원히 지속되었습니다.

무한의 네쇼날동네그래픽 중 하나


지금 막 필카를 사려하거나 로모를 알아보거나 토이카메라를 주문하려고 준비중인 사람들을 위해 몇 가지만 조언을 해 주자면 아래와 같다. 개인적인 조언이니, 지금 찾아온 지름신과 대결을 할 때만 쓰고, 자신의 가치관은 자신이 찾아서 가지길 바란다.

1. 카메라를 바꾼다고 실력이 늘진 않는다.
2. 필름의 감수성을 위해 기변을 하지만, 별 변화가 없는 경우가 많다.
3. 똑딱이나 DSLR처럼 필카도 곧, 가방에서 겨울잠을 자게 된다.
4. 나 자신은 내가 생각하는 것 만큼 부지런하지 못하다. (MF렌즈사용, 필름인화 등)
5. 나는 접었다.



물론, 지름신을 막는건 불가능하다. 나도 아직까지 '로모'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으며, 올 겨울 붕어빵이 많이 팔리면 내년 봄에는 로모를 하나 구입할지도 모르겠다. (FM10을 사용할때 공동구매로 사 놓은 필름들이 냉장고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다. 이건 뭐, 먹을 수도 없고...)


2. 외마디 비명 "서브디카가 필요해"

서드파티 대신 순정 렌즈를 구입한 것도, 디지털 대신 필름카메라를 구입한 것도, 권태라는 질병을 치료해 주지 못한다. 이젠 더이상 출사를 나가지 않거나, 언제나 카메라와 함께 하겠다는 마음이 식은 원인이 '카메라가 너무 크고 무겁기 때문' 이라고 생각한다. 더 지를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어져 나오는 외마디 비명,

"작고 가벼워 휴대하기 편한 서브디카가 필요해."

서브디카라는게 따로 있냐고 물어보실 분도 계시겠지만, 크고 무거운 DSLR말고 작고 가벼운 컴팩트 카메라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똑딱이에서 하이엔드를 거쳐 DSLR로 왔으면서 왜 서브디카가 필요한지 의문을 갖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냥 저 상황에서는 당장 서브디카가 필요하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고 이해하는 것이 편하다.

이 현상은 디카를 사용하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님이 밝혀졌다. 누구나 다 꿈에 그리던 부품들을 사모아 '슈퍼컴퓨터'라고 해도 좋을만큼의 데스크탑을 구성한 사람들 역시,

'이건 전기가 너무 많이 먹고, 간단한 문서 작업을 할 때에는 필요가 없어. 고성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작업을 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서브컴퓨터를 하나 마련해야겠다'

이렇게 노트북을 지르거나 넷북을 지른다. 컴퓨터 뿐만이 아니라 자동차도 해당이 된다.

'가까운 거리를 갈때면 내 풀튜닝 카를 모는 것은 기름값 낭비지. 게다가 이 차를 타고 가기 거북한 곳들도 있으니 경차나 오토바이가 하나 있어야겠다'

이런 이유로 경기도 일산에 사는 최모씨(36세, 카센타)는 그의 풀 튜닝된 투숙하니(투스카니)를 놔두고 출퇴근이나 장거리 이동에는 마티즈를 끌고 다닌다. (마티즈는 결혼자금으로 모으던 적금을 깨고 구입했다. 최씨는 아직도 솔로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오늘의 증거로 걸어두어
누구나 볼 수 있게 한다면

무지개,
너는 역할을 다했다

슬픔도
기쁨도
아픔도

아무 것도 없이 쨍해서
매미 울음소리가 백지처럼 들리던날

올려다본 하늘이
살짝,
윙크했다.


무한의 네쇼날동네그래픽 중 하나



그나마 DSLR과 서브디카 두 가지만 사면 증세는 심각하지 않다. 정말 심각한 사람들의 경우는 DSLR만 고급기와 보급기 두개, 서브디카도 고화소와 저화소 두개, 필카와 로모, 토이카메라 까지 여러대의 카메라를 사서 모으는 사람들이 있다. 제각각 구입시에는 타당한 이유들이 찾아와 구입한 것이다.

'작품사진 말고 가벼운 사진을 위해서 서브디카가 필요해. 게다가 필카의 감성을 디카가 따라가지 못하니 필카도 하나 있어야 하고, 여자애들을 즉석으로 찍어줄 수 있는 폴라로이드도 필요해. 이건 정말 다 좋아할거야. 음, 그리고 토이카메라도 나쁘지 않지. 싸잖아. 인위적인 효과가 아닌 카메라가 만들어 내는 특이한 색감의 로모도 있어야 할거야'

그렇게 카메라로는 '부자', 경제적으로는 '거지'가 되간다. 카드값을 견디지 못하고 '사진 접습니다'와 같은 제목으로 중고장터에 물건을 내 놓기도 하고, 어느정도 경제적으로 선방이 가능한 경우 몇몇 기기들만 처분하기도 한다. 카메라는 여러대인데 모두 집에서 먼지만 먹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팔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주는데 익숙한 사람들은, 동호회에서 만난 초보자나, 주변에서 막 사진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기기를 나눠주기도 한다.


3. 최종변론

사실 이 글은, 나를 위한 작은 '마음의 재판'을 하기 위해 적게 되었다. 바로 지금의 내 모습 -메모리카드는 아직도 책상 위에서 떠돌고, 카메라는 메모리카드를 뺄 때의 모습으로 아무렇게나 올려져 있다. 게다가 서랍에는 선물로 받은 니콘의 필카 두대가 있고, 부끄럽지만 폴라로이드도 있다. 소품을 찍을때 필요했던 그레이카드는 책장에서 책으로 위장한 채 꽂힌지 오래고,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구입했던 무선리모콘은 어디다 놨는지 모르는- 말이다. 

댓글을 통해 이야기 해 주신, 나와 별 다를 것 없이 사진생활을 즐기고(?) 계신 분들이 있기에 이 글을 통해 내 무죄를 선고하려 한다. 얼마 전 발행했던 하드디스크 인식불가 사연을 쓰고, 나는 그 안에 있는 소설들과 사진을 살리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썼다. 겨우 복구 프로램을 구해 아홉시간만에(별 짓을 다했다) 파일만 옮겨올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한참이나 하드에 있는 사진들을 보았다.

무엇을 계기로 사진을 시작했든, 혹은 사진을 한장이라도 더 찍기 위해 무엇을 구입했든,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시간을 사진으로 기록해 둔 것은 소중한 일이다. 남들에게 내보여 자랑하려는 의도로 찍은 사진이든, 카메라를 산 기쁨에 아무거나 찍어 놓은 사진이든, 시간이 지나고 보면 모두 정겹다.

"앞서 말한 이유들 때문에 사진을 시작하지 말란 얘기 아니었나요?"

아니다. 앞서 말한 이유가 있지만, 사진을 시작하라는 얘기였다. 어린시절, 까부는 개구쟁이, 흙장난을 하는 모습, 유치원 소풍에서 심통이 난 모습, 비오는 날 흠뻑 젖어 엄마가 장화를 벗기는 모습, 자전거를 타며 브이를 그리는 모습, 독립문 아래에서 내리는 눈을 보며 한껏 신난 모습, 손가락으로 하늘을 찔러대며 춤을 추는 모습, 사진이 아니라면 기억할 수 없는 과거의 시간들이다.

이제 막 사진을 시작한 사람이 있다면, 아래의 책을 추천한다.

● 구입한 카메라의 매뉴얼 (3번 정독)
● 사진학강의 (바바라 런던)
● 사진 어떻게 찍을 것인가? (유경선)
● 내셔널 지오그래픽 포토그래피 필드 가이드 세트 (로버트 카푸토 외)
● 포토 라이브러리 시리즈 - 창조적으로 이미지를 보는 법 외 (브라이언 피터슨)


더불어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들]이라는 다큐를 보는 것도 흥미로우리라 생각한다. 난 사실 네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전화번호 뒷자리도, 미국 네셔널 지오그래픽 본사와 같은 5463으로 맞췄지만, 이 다큐를 보면서 내가 생각한 사진작가와 실제 사진작가의 차이는 크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여행' 다니며 사진 찍는게 아니라 '목숨' 걸고 사진을 찍는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마지막으로, [달수이야기]라는 제목을 붙인 예전의 '무한의 내쇼날동네그래픽' 시리즈 중 하나를 첨부하며 이야기를 마치고자 한다. 자, 이제는 카메라의 먼지를 털고 세상구경을 시켜 줄 시간이다.




달수는 어렸을 적에 심한 홍역을 앓아
고개를 수시로 끄덕이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끌어 모을 수 있는 모든 돈을 끌어 모아
분명 저곳은 몇년 사이에 수십배로 땅값이 뛴다는 곳에
집을 짓고, 최고급 시설과 지인을 총동원한 인테리어

우린 이제 부자다 달수야
공사를 하며 잘 곳이 없어
현장 옆에 텐트를 치고
비가 미친듯이 쏟아 붓던 장마도 견뎠으니
집이 완성되는 날
달수를 끌어 안고 뽀뽀라도 해주고 싶었던
달수의 주인,

이제 내 집이 생겼다
아니, 우리집이지.
저 호화로운 저택에 들어가
너랑 나랑 몇년 지내기만 해도
우리는 평생 써도 다 못쓸 돈을 만진다
달수야

며칠 후 땅주인이라는 사람이 나타났고,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이 땅은 내 돈주고 내가 사서
그 위에 내 모든걸 바쳐서 집도 지었는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도장도 다 찍고 서류도 다 받고
다 했어 다

달수야 무슨 말좀 해봐라
저 새끼가 뭐라고 하는거야
여기가 왜 저새끼 땅이야
내 꺼야 내꺼
너도 알잖아 달수야

달수야

그렇게 해서 달수는 우리가 잠시 맡게 되었다
언제 찾아간다는 기약은 없었지만,
사정을 잘 알기에 약속을 받아둘 생각도 없었다

달수의 주인이 떠나고,
우리는 동네 떠돌이 개들과 섞이지 않게
달수에게 목줄을 해 묶어 두었다
동네에 사람이 없다보니
밭일을 나갔다 들어와 보면 집에 묶여있던 개도 없어지는
무소유의 동네였다

달수는 무슨생각을 하는지
굵은 쇠줄을 목에 감고는
끄덕 끄덕

다 알겠다고
끄덕 끄덕 하고 있었다.

무한의 네쇼날동네그래픽 중 하나



<못다한말>

아이에게 아빠의 카메라를 선물해 주자구요 ^^
(아.. 엄마는 소외되는 건가..엄마 미안...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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