앓게되면 괴로운 연애의 병, 연애조급증
연애조급증, 이거 정말 무서운 병이다. 이번 매뉴얼을 작성하기 위해 부킹대학 남아공 연구소에 관련자료를 요청했을 때, 남아공 연구소측 사람들도 '연애조급증'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이런 말을 했다.
"Vuvuzela?"
부부젤라는 부부젤라고, 아무튼 심각한 문제는 솔로부대원이나 커플부대원 모두 이 '연애조급증'을 앓게 되면 연애와는 '굿바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또 너무 겁먹은 얼굴로 글을 읽을 필요는 없다. 남들은 이 '연애조급증'을 당신의 이상한 소유욕과 피해의식 그리고 집착등이 만들어 낸다고 얘기하겠지만, 난 그냥 당신이 남들보다 좀 더 연애에 대해 열정적일 뿐이라고 말하겠다.
"맞아. 이건 내가 조급해 하는 게 아니라 열정적이라 그런 거지."
워워워, 열정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고는 말 안했다. 지금도 열정적으로 합리화 하고 있지 않은가. 서두가 길어지면 또,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 빨리 좀 말해주세요. 저 답답한 거 제일 싫어하거든요?" 라는 대원들이 있을테니 오늘은 바로 출발해 보자.
뭔가 하나 제대로 공부해야 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 마음을 먹고 지금까지 잘하고 있다면 별 문제될 것이 없지만, 대부분 나처럼 "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그 끝은 미약하리라(응?)"의 결과를 가진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스물 두 살 때 쯤으로 기억하는데, 영어를 마스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영어실력이 시애틀공고(응?) 재학생과 비슷한 수준이었기에 "영화를 자막없이 보자"는 슬로건 아래 스파르타식 영어학습에 들어갔다. 우선 단어장을 샀다. 열심히 외웠지만 별로 느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 문법공부를 시작했다. 끊고 수식, 따위로 독해엔 도움이 되었지만 자막없이 영활 보기엔 무리인 수준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 어쩌구 하는 책도 보고, 한 권으로 영어 어쩌구 하는 책도 보고, CNN도 보고, 팝송도 듣고, 그러다가 군대를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위의 영어학습방법 중 크게 잘못된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시애틀공고 수준의 영어를 벗어나지 못했던 이유는, 한 일주일 공부해 놓고 브래드 피트와 전화통화 하며 "졸리 입술은 썰면 반근" 따위의 농담을 할 수준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게 안 되니까 방법을 탓하며 계속 다른 학습법을 찾았던 것이다.
조급증을 앓고 있는 솔로부대원은 위와 비슷한 루트로 '연애'에 접근한다. 상대에게 통할만한 고백의 방법을 찾거나 당장 나를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할만한 방법을 찾는다. 그게 통하지 않으면 새로운 방법을 찾아 나선다. 지구력과 여유의 문제임을 깨닫지 못하고 방법만을 찾다보니 심지어 '이 사람은 아닌가'하는 생각으로 좋아하는 대상을 바꾸기도 한다. 오래전 매뉴얼에서 이야기 했던 '동호회 집적남'을 기억하는가? 뉴페이스가 나타날 때 마다 구애를 했던 그 남자 말이다. 그는 A가 튕기자 B에게 구애했고, B가 망설이자 C에게 고백했다.
연애는 열정만으로 되는 게 아니란 얘기다. 몇몇 대원들은 "그렇게 해서 커플이 되거나 결혼한 사람들도 있다."는 얘기를 하겠지만, 커플이 되었다거나 결혼을 했다는 것은 결코 '증명'이 될 수 없다. 그건 '과정'일 뿐이다. 지구력과 여유가 없는 열정은 거대한 문제를 만들어 낸다. 자, 그럼 조급증을 앓다가 결국 이별한 어느 커플부대원의 이야기를 보자.
J군(29세, 서울 가리봉동)이 연애를 시작한 건, 7주 전이었다. 당시 J군은 같은 직장에 다니던 여자 동료에게 "너무 부담스러워."라는 말을 듣고도 퀵서비스로 장미를 보내며 구애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열정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데도 이루어지지 않음에 괴로워 하면서 말이다. 이미, 집 앞에서 기다리기, 새벽에 술 마시고 전화하기, 놀이동산 가자고 조르기라는 부담 3종 세트를 들이댄 후 였지만, '인연이라면 분명 만나게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포기하지 않았다.
잠깐, 모기가 발바닥을 물어서 너무 간지럽다.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아, 그렇게 괴로움을 느끼던 J군은 "이제 저를 힘들게 하는 그녀를 용서해주고 싶습니다. 정말 사랑하니까, 놓아주어야 겠죠."라는 글을 '노멀로그 응급실'에 올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뭘 용서해? 뭥미?' 라는 생각으로 지나쳤지만, 테레사 수녀에 버금가는 모성애를 가진 H양(25세, 전주 중화산동)은 J군의 글에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댓글을 달았다. 그게 둘을 타오르게 만든 '스파크'였다.
오랜 솔로생활을 가졌던 두 사람은 말 그대로 미친듯이 타올랐다. 연애를 시작한 지 한 달도 안되어 나온 J군의 핸드폰 요금청구서에는 32만원이 찍혀 있었다. 주말마다 J군은 전주로 향했고, 그동안 여자친구가 생기면 하려고 마음먹었던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갔다. 커다란 인형을 사주고, 회사로 선물을 보내고, 적금을 깨서 커플링을 했다. H양 역시 이제 드디어 천생연분을 만났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에게 헌신적인 J군을 보며 공주가 된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이렇게 이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으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사귄지 4주차가 되어갈 때 쯤 일이 발생한다. H양의 회사에서 주말을 이용해 1박 2일 야유회를 가게 된 것이다. 전화통화를 하며 J군은 목소리에 실망을 덕지덕지 발랐다. 주말밖에 볼 수 없는 사이인데 아프다는 핑계로 빠지거나 집안에 일이 있다고 하면 안되냐는 말도 했다. H양도 야유회를 가기 보다는 J군을 만나고 싶었지만, 아무도 빠지지 않는 상황에 입사한 지 1년도 되지 않는 자신이 빠지겠다는 말을 하기가 무리였다.
사정을 들은 J군은 어쩔 수 없이 잘 다녀 오라는 얘기로 대화를 마무리 했지만, 기대하고 있던 주말이 무너졌다는 것에 화가 치밀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H양이 자신을 더 사랑했다면 어떻게든 그 회식 자리에 가지 않을거라는 생각만 했다. 여기서 잠시 우리끼리 얘기를 좀 하자면, J군은 지금 자신의 열정과 애정을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상황을 보면, H양이 정상적인 궤도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지만 조급증을 앓고 있는 J군은 H양에 대해 '나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라고 생각한단 얘기다.
야유회에 간 H양은 엉망이 되었다. 야유회에서 무슨 일이 있어서가 아니고, 쉼 없이 전화와 문자를 해대는 J군 때문이었다. 대략 30분 간격으로 전화나 문자가 왔고, 여직원들과 펜션을 함께 꾸미느라 전화를 못 받았던 시간에는 엄청난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저녁에 삼겹살 파티를 할 때에는 "얼마나 재미있길래 답문도 없는건지....."라는 J군의 문자도 받아야 했다. 야유회에서 돌아올 때 까지 H양은 J군의 '취조'같은 연락을 받아야 했다.
이 일이 있은 후, J군은 더 심한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주말에 만나서는 과한 스킨십을 했고, 거절하는 H양에게 "사랑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이잖아."라는 이야기를 했다. 서울로 가는 차를 놓칠까봐 이제 가봐야 하지 않냐고 묻는 H양에게 "왜? 내가 빨리 갔으면 좋겠어?" 따위의 이야기도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서울로 돌아온 J군은 H양에게 서로 숨기는 것이 없도록, 사용하는 메일의 비밀번호를 서로 교환하자는 얘기를 꺼냈다. J군은 "난 너에게 비밀 같은 거 없어."라며 먼저 자신의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결혼 얘기도 꺼냈다. 신혼여행이나 가족계획 등의 얘기를 하고, 너무 이른 거 아니냐고 묻는 H양에게 "나랑 그냥 연애만 하려고 만나는 거야?" 라는 이야기를 했다.
"오빠 미안해. 난 오빠한테 부족한 사람인가봐. 미안해. 우리 헤어지자."
마지막 까지도 J군을 배려한 H양의 이별선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멘트를 들을 J군은 "너도 다른 여자들과 똑같아."라는 말과 "네가 진짜 날 좋아해서 사귀었던 건지도 의심이 된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불쌍한 사람. 이게 그 7주 간의 얘기다.
그럼, 그런 J군은 행복했을까? 발바닥이 간지러우니 잠시 긁고, 아래에서 더 살펴보자.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하루에 30개씩 오던 문자가 여전히 계속 와도 31개 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가진 기준은 저 하늘 높은 곳에 있으니, 늘 그것보다 부족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럼 상대가 31개의 문자를 보내주면 만족할까? 아니다. 32개 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32개를 보내면? 33개 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받고 있는 사랑이 얼마나 큰 지는 모르고 늘, 부족하다, 고 생각한다.
달리기로 치자면 전력질주다. 둘이 함께 트랙을 돌아야 하는데, 상대의 상황은 생각하지도 않고 저만치 앞서 달리게 된다. 걸음이 느린 상대에게 왜 빨리 안오냐고 다그친다. 무리를 해가며 열심히 달리는 자신을 예로 들어 설명하며, 사랑하면 이렇게 달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 쫓아오는 사람도 없고, 누구와 경쟁을 하는 것도 아닌데 서두른다. 빨리와. 빨리. 빨리.
이쪽의 재촉에 상대가 넘어졌다. 무릎이 까져 울먹거리는 표정을 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쪽의 마음은 답답하다. 빨리와. 빨리. 빨리. 상대는 이제 울음을 터트리기 일보 직전이다. 답답한 이쪽에서는 소리친다.
"마음이 변한거야? 같이 뛰기로 했잖아. 네가 그렇게 앉아 있기만 하면 내가 얼마나 답답한 지 알아? 나도 지금 힘들어. 하지만 사랑하니까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거야."
잊었을까봐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쫓아오는 사람도 없고, 누구와 경쟁 하는 것도 아니다. 넘어져 있는 상대에게 다가와 손 잡아 일으켜 주지 못하는 이유, 그 이유는 딱 하나다. 사랑한다면 열심히 뛰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제 매뉴얼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지금까지 이야기 한 이 '연애조급증'의 증상은 연애경험이 없는 대원들에게서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연애를 시작하면 세상이 달라 질 거라고 생각한다든지, 아니면 연애가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자신을 구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상황. 연애를 해본 적이 없기에 머릿속에는 거대한 환상이 만들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연애의 사춘기' 얘기를 꺼낸 것도, 위의 이야기를 머리로 안다고 해서 '연애조급증'을 거치지 않고 넘어가긴 힘들기 때문이다.
수두처럼 한 번 경험하고 나면 어느정도 내성이 생기는 일이지만, 진짜 문제는 '연애조급증'을 경험하고 나서도 내성이 생기지 않는 대원들이다. 그들은 '저번 사랑은 가짜였어. 이번 사랑이 진짜일거야.'라며 다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커다란 '연애'라는 환상에 새로운 사람을 맞추기 시작한다. 이번 상대가 지쳐도 그건 '진짜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무서운 일이다.
사실 J군의 사연을 소개한 것은 이처럼 내성이 생기지 않은 대원들을 위해서였다. 그들에겐 자신의 모습, 혹은 자신이 벌이는 행동과 최대한 가까운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에 실패한 이유를 어떻게든 '상대'에게 찾아내기 때문이다. 자신이 전화통화를 하며 실망을 덕지덕지 발랐다는 얘기 따위는 쏙 접고, 상대가 변했다고만 이야기 한다. "빨리와. 빨리. 빨리."를 외친 것은 누구인가? 넘어져 있는 상대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진 못하고, 윽박지르기만 한 것은 누구인가?
위와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으면서, "이런 거 필요없고, 연애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겁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연애가 영어였으면 집주소를 쓰는 것도 힘들어 할 정도면서, 노력과 지구력 없이 열정만 들이미는 사람 말이다.
누구나 연애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흔들리며 피어나는 꽃 처럼 연애도 흔들릴 때가 있고 말이다. 중요한 건, 그 흔들림의 순간에 내 '기대'라는 기준으로 상대를 재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오히려 상대의 기준에 나를 맞추는 일에 가깝다. 내 모난 부분을 다듬어가는 과정이지, 상대에게 망치와 정을 들이대는 게 아니란 얘기다. 자, 이제 '내가 원하는 것'을 내려놓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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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조급증, 이거 정말 무서운 병이다. 이번 매뉴얼을 작성하기 위해 부킹대학 남아공 연구소에 관련자료를 요청했을 때, 남아공 연구소측 사람들도 '연애조급증'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이런 말을 했다.
"Vuvuzela?"
부부젤라는 부부젤라고, 아무튼 심각한 문제는 솔로부대원이나 커플부대원 모두 이 '연애조급증'을 앓게 되면 연애와는 '굿바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또 너무 겁먹은 얼굴로 글을 읽을 필요는 없다. 남들은 이 '연애조급증'을 당신의 이상한 소유욕과 피해의식 그리고 집착등이 만들어 낸다고 얘기하겠지만, 난 그냥 당신이 남들보다 좀 더 연애에 대해 열정적일 뿐이라고 말하겠다.
"맞아. 이건 내가 조급해 하는 게 아니라 열정적이라 그런 거지."
워워워, 열정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고는 말 안했다. 지금도 열정적으로 합리화 하고 있지 않은가. 서두가 길어지면 또,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 빨리 좀 말해주세요. 저 답답한 거 제일 싫어하거든요?" 라는 대원들이 있을테니 오늘은 바로 출발해 보자.
1. 당신의 열정은 왜 문제되는가?
뭔가 하나 제대로 공부해야 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 마음을 먹고 지금까지 잘하고 있다면 별 문제될 것이 없지만, 대부분 나처럼 "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그 끝은 미약하리라(응?)"의 결과를 가진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스물 두 살 때 쯤으로 기억하는데, 영어를 마스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영어실력이 시애틀공고(응?) 재학생과 비슷한 수준이었기에 "영화를 자막없이 보자"는 슬로건 아래 스파르타식 영어학습에 들어갔다. 우선 단어장을 샀다. 열심히 외웠지만 별로 느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 문법공부를 시작했다. 끊고 수식, 따위로 독해엔 도움이 되었지만 자막없이 영활 보기엔 무리인 수준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 어쩌구 하는 책도 보고, 한 권으로 영어 어쩌구 하는 책도 보고, CNN도 보고, 팝송도 듣고, 그러다가 군대를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위의 영어학습방법 중 크게 잘못된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시애틀공고 수준의 영어를 벗어나지 못했던 이유는, 한 일주일 공부해 놓고 브래드 피트와 전화통화 하며 "졸리 입술은 썰면 반근" 따위의 농담을 할 수준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게 안 되니까 방법을 탓하며 계속 다른 학습법을 찾았던 것이다.
조급증을 앓고 있는 솔로부대원은 위와 비슷한 루트로 '연애'에 접근한다. 상대에게 통할만한 고백의 방법을 찾거나 당장 나를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할만한 방법을 찾는다. 그게 통하지 않으면 새로운 방법을 찾아 나선다. 지구력과 여유의 문제임을 깨닫지 못하고 방법만을 찾다보니 심지어 '이 사람은 아닌가'하는 생각으로 좋아하는 대상을 바꾸기도 한다. 오래전 매뉴얼에서 이야기 했던 '동호회 집적남'을 기억하는가? 뉴페이스가 나타날 때 마다 구애를 했던 그 남자 말이다. 그는 A가 튕기자 B에게 구애했고, B가 망설이자 C에게 고백했다.
연애는 열정만으로 되는 게 아니란 얘기다. 몇몇 대원들은 "그렇게 해서 커플이 되거나 결혼한 사람들도 있다."는 얘기를 하겠지만, 커플이 되었다거나 결혼을 했다는 것은 결코 '증명'이 될 수 없다. 그건 '과정'일 뿐이다. 지구력과 여유가 없는 열정은 거대한 문제를 만들어 낸다. 자, 그럼 조급증을 앓다가 결국 이별한 어느 커플부대원의 이야기를 보자.
2. 기대와 실망, 그리고 망상
J군(29세, 서울 가리봉동)이 연애를 시작한 건, 7주 전이었다. 당시 J군은 같은 직장에 다니던 여자 동료에게 "너무 부담스러워."라는 말을 듣고도 퀵서비스로 장미를 보내며 구애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열정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데도 이루어지지 않음에 괴로워 하면서 말이다. 이미, 집 앞에서 기다리기, 새벽에 술 마시고 전화하기, 놀이동산 가자고 조르기라는 부담 3종 세트를 들이댄 후 였지만, '인연이라면 분명 만나게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포기하지 않았다.
잠깐, 모기가 발바닥을 물어서 너무 간지럽다.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아, 그렇게 괴로움을 느끼던 J군은 "이제 저를 힘들게 하는 그녀를 용서해주고 싶습니다. 정말 사랑하니까, 놓아주어야 겠죠."라는 글을 '노멀로그 응급실'에 올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뭘 용서해? 뭥미?' 라는 생각으로 지나쳤지만, 테레사 수녀에 버금가는 모성애를 가진 H양(25세, 전주 중화산동)은 J군의 글에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댓글을 달았다. 그게 둘을 타오르게 만든 '스파크'였다.
오랜 솔로생활을 가졌던 두 사람은 말 그대로 미친듯이 타올랐다. 연애를 시작한 지 한 달도 안되어 나온 J군의 핸드폰 요금청구서에는 32만원이 찍혀 있었다. 주말마다 J군은 전주로 향했고, 그동안 여자친구가 생기면 하려고 마음먹었던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갔다. 커다란 인형을 사주고, 회사로 선물을 보내고, 적금을 깨서 커플링을 했다. H양 역시 이제 드디어 천생연분을 만났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에게 헌신적인 J군을 보며 공주가 된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이렇게 이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으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사귄지 4주차가 되어갈 때 쯤 일이 발생한다. H양의 회사에서 주말을 이용해 1박 2일 야유회를 가게 된 것이다. 전화통화를 하며 J군은 목소리에 실망을 덕지덕지 발랐다. 주말밖에 볼 수 없는 사이인데 아프다는 핑계로 빠지거나 집안에 일이 있다고 하면 안되냐는 말도 했다. H양도 야유회를 가기 보다는 J군을 만나고 싶었지만, 아무도 빠지지 않는 상황에 입사한 지 1년도 되지 않는 자신이 빠지겠다는 말을 하기가 무리였다.
사정을 들은 J군은 어쩔 수 없이 잘 다녀 오라는 얘기로 대화를 마무리 했지만, 기대하고 있던 주말이 무너졌다는 것에 화가 치밀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H양이 자신을 더 사랑했다면 어떻게든 그 회식 자리에 가지 않을거라는 생각만 했다. 여기서 잠시 우리끼리 얘기를 좀 하자면, J군은 지금 자신의 열정과 애정을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상황을 보면, H양이 정상적인 궤도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지만 조급증을 앓고 있는 J군은 H양에 대해 '나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라고 생각한단 얘기다.
야유회에 간 H양은 엉망이 되었다. 야유회에서 무슨 일이 있어서가 아니고, 쉼 없이 전화와 문자를 해대는 J군 때문이었다. 대략 30분 간격으로 전화나 문자가 왔고, 여직원들과 펜션을 함께 꾸미느라 전화를 못 받았던 시간에는 엄청난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저녁에 삼겹살 파티를 할 때에는 "얼마나 재미있길래 답문도 없는건지....."라는 J군의 문자도 받아야 했다. 야유회에서 돌아올 때 까지 H양은 J군의 '취조'같은 연락을 받아야 했다.
이 일이 있은 후, J군은 더 심한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주말에 만나서는 과한 스킨십을 했고, 거절하는 H양에게 "사랑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이잖아."라는 이야기를 했다. 서울로 가는 차를 놓칠까봐 이제 가봐야 하지 않냐고 묻는 H양에게 "왜? 내가 빨리 갔으면 좋겠어?" 따위의 이야기도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서울로 돌아온 J군은 H양에게 서로 숨기는 것이 없도록, 사용하는 메일의 비밀번호를 서로 교환하자는 얘기를 꺼냈다. J군은 "난 너에게 비밀 같은 거 없어."라며 먼저 자신의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결혼 얘기도 꺼냈다. 신혼여행이나 가족계획 등의 얘기를 하고, 너무 이른 거 아니냐고 묻는 H양에게 "나랑 그냥 연애만 하려고 만나는 거야?" 라는 이야기를 했다.
"오빠 미안해. 난 오빠한테 부족한 사람인가봐. 미안해. 우리 헤어지자."
마지막 까지도 J군을 배려한 H양의 이별선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멘트를 들을 J군은 "너도 다른 여자들과 똑같아."라는 말과 "네가 진짜 날 좋아해서 사귀었던 건지도 의심이 된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불쌍한 사람. 이게 그 7주 간의 얘기다.
그럼, 그런 J군은 행복했을까? 발바닥이 간지러우니 잠시 긁고, 아래에서 더 살펴보자.
3. 빨리와. 빨리. 빨리.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하루에 30개씩 오던 문자가 여전히 계속 와도 31개 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가진 기준은 저 하늘 높은 곳에 있으니, 늘 그것보다 부족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럼 상대가 31개의 문자를 보내주면 만족할까? 아니다. 32개 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32개를 보내면? 33개 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받고 있는 사랑이 얼마나 큰 지는 모르고 늘, 부족하다, 고 생각한다.
달리기로 치자면 전력질주다. 둘이 함께 트랙을 돌아야 하는데, 상대의 상황은 생각하지도 않고 저만치 앞서 달리게 된다. 걸음이 느린 상대에게 왜 빨리 안오냐고 다그친다. 무리를 해가며 열심히 달리는 자신을 예로 들어 설명하며, 사랑하면 이렇게 달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 쫓아오는 사람도 없고, 누구와 경쟁을 하는 것도 아닌데 서두른다. 빨리와. 빨리. 빨리.
이쪽의 재촉에 상대가 넘어졌다. 무릎이 까져 울먹거리는 표정을 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쪽의 마음은 답답하다. 빨리와. 빨리. 빨리. 상대는 이제 울음을 터트리기 일보 직전이다. 답답한 이쪽에서는 소리친다.
"마음이 변한거야? 같이 뛰기로 했잖아. 네가 그렇게 앉아 있기만 하면 내가 얼마나 답답한 지 알아? 나도 지금 힘들어. 하지만 사랑하니까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거야."
잊었을까봐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쫓아오는 사람도 없고, 누구와 경쟁 하는 것도 아니다. 넘어져 있는 상대에게 다가와 손 잡아 일으켜 주지 못하는 이유, 그 이유는 딱 하나다. 사랑한다면 열심히 뛰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제 매뉴얼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지금까지 이야기 한 이 '연애조급증'의 증상은 연애경험이 없는 대원들에게서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연애를 시작하면 세상이 달라 질 거라고 생각한다든지, 아니면 연애가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자신을 구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상황. 연애를 해본 적이 없기에 머릿속에는 거대한 환상이 만들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연애의 사춘기' 얘기를 꺼낸 것도, 위의 이야기를 머리로 안다고 해서 '연애조급증'을 거치지 않고 넘어가긴 힘들기 때문이다.
수두처럼 한 번 경험하고 나면 어느정도 내성이 생기는 일이지만, 진짜 문제는 '연애조급증'을 경험하고 나서도 내성이 생기지 않는 대원들이다. 그들은 '저번 사랑은 가짜였어. 이번 사랑이 진짜일거야.'라며 다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커다란 '연애'라는 환상에 새로운 사람을 맞추기 시작한다. 이번 상대가 지쳐도 그건 '진짜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무서운 일이다.
사실 J군의 사연을 소개한 것은 이처럼 내성이 생기지 않은 대원들을 위해서였다. 그들에겐 자신의 모습, 혹은 자신이 벌이는 행동과 최대한 가까운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에 실패한 이유를 어떻게든 '상대'에게 찾아내기 때문이다. 자신이 전화통화를 하며 실망을 덕지덕지 발랐다는 얘기 따위는 쏙 접고, 상대가 변했다고만 이야기 한다. "빨리와. 빨리. 빨리."를 외친 것은 누구인가? 넘어져 있는 상대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진 못하고, 윽박지르기만 한 것은 누구인가?
위와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으면서, "이런 거 필요없고, 연애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겁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연애가 영어였으면 집주소를 쓰는 것도 힘들어 할 정도면서, 노력과 지구력 없이 열정만 들이미는 사람 말이다.
누구나 연애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흔들리며 피어나는 꽃 처럼 연애도 흔들릴 때가 있고 말이다. 중요한 건, 그 흔들림의 순간에 내 '기대'라는 기준으로 상대를 재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오히려 상대의 기준에 나를 맞추는 일에 가깝다. 내 모난 부분을 다듬어가는 과정이지, 상대에게 망치와 정을 들이대는 게 아니란 얘기다. 자, 이제 '내가 원하는 것'을 내려놓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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