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7일, 그러니까 오늘 새벽의 일이다.
Jason Mraz의 <I'm Yours>가(벨소리) 계속 울려대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담배를 세 가치 정도 피우고 물을 안 마신 목소리로 "여부세여어"라고 대답하니 여자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나야..."
'응?'
이건 분명 들어본 적 없는 여자 목소리. 처음 보는 전화번호다.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아."
"누구세요?"
"아...."
"......"
"아... 죄송합니다."
여자는 급하게 전화를 끊었고, 난 상대가 무안할까봐 별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다. 새벽에 걸려온 '잘 못 건 전화'는 거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모두 피곤하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다시 나에게 힘을 주는 극세사 이불속으로 파고들어 눈을 감는데 또 전화벨이 울렸다. 같은 번호였다.
"여보세요."
사실 이 쯤에서 한 소리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잘 못 걸었으면 다시 실수하질 말아야지, 새벽에 전화를 해서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근데 의외의 물음이 들려왔다.
"무한씨 폰 맞죠?"
"누구세요?"
"나야 박소현(가명)"
"박..소현이요?"
"그래. 근데 자기 왜 아닌척 해?"
"예? 자기요?"
천지창조 이후로 내가 알게 된 이성들의 이름을 떠올려봤지만, 박소현이란 이름은 없었다. 마치 여자친구처럼 서스럼없이 '자기'라고 불러대는 이 여인은 누구지?
"근데, 저 아세요?"
"잠깐만, 나 혼란스러워."
'앜ㅋㅋㅋ 내가 더 혼란스러웤ㅋㅋㅋ'
"무한 맞지?"
"맞긴 한데, 저랑 아는 사이세요?"
"그렇게 말하지 마. 자기가 날 보호해 줬잖아."
'앜ㅋㅋㅋ 이건 뭔 소리얔ㅋㅋㅋㅋ'
"무슨 보호요?"
"나 혼란스러워. 왜 아닌 척해?"
"지금 제가 더 혼란스러워요."
"나 이사가려고 준비까지 다 해놨는데. 갑자기 왜이래?"
"무슨 이사요?"
"모르는 것 처럼 말하지마."
조금 전 까지, "발은 꼭 닦고 주무세요." 라며 명쾌한 클로징 멘트를 준비하고 있던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뭔가 심각한 일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 여러 가설이 떠올랐다.
1번과 2번의 확률이 크다고 생각해 '원래의 대상'을 찾고자 했다.
"근데 제 핸드폰 번호를 어떻게 아셨나요?"
"이삿짐 정리하다가 나왔어."
"그 번호를 어떻게 아신건데요?"
"몰라. 예전 무한홈피 있을때 보고 적었나봐."
7년 전 홈페이지를 운영했을 때, 그 때는 '다모임'등의 사이트가 유행하며 '친구찾기'에 열을 올리던 시기였고, 대부분 그 나이에는 '반창회'나 '동창회'를 한다며 어른이 된 티를 내고 싶어하니 홈페이지를 보고 연락할 수 있게 전화번호를 공개했었다. 신발에 전화번호 스티커 붙여놓은 사진을 웃으라며 올려두기도 하고 말이다. 아무튼 '원래의 대상'을 찾아야 했다.
"저랑 전화하거나, 만나거나, 메일을 주고받거나 한 적도 없는데 뭘 보호했죠?"
"4년 전부터 날 보호해 줬잖아."
'앜ㅋㅋㅋ 4년 전이랰ㅋㅋㅋㅋ'
"저기요..."
"응?"
"4년 전엔 제가 군대에 있었는데요."
"......"
이것으로 완벽히 상황정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화장실에서 쵸코파이를 몰래 먹으며 누구를 보호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클로징멘트를 날리려고 하는 순간, 다시 여자가 입을 열었다.
"그럼 자기가 날 보호한게 아니라는 거야? 상관없어. 날 보호해 준 게 A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할게."
"저기요, A를 찾아서 이야기를 하셔야죠. 그걸 왜 저한테 얘기하려고 하세요?"
"자기가 아니라니까. 이게 마지막 통화가 될 거야. 들어줘."
아직 오해가 안 풀렸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상대는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뭔가 심각한 얘기를 하려고 한다. 여기서, 핸드폰의 녹음기능을 찾아 눌렀다.
"잠깐만요. 저랑 연락하신 적도 없는데, 제가 보호를 했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내 얘기 들어봐. 그냥 미친 여자가 전화했다고 생각하고 들어봐."
"다른 사람이랑 저랑 헷갈리신 것 같다니까요."
"그래. 내가 헷갈렸을 수도 있을 거야."
'앜ㅋㅋㅋ 그렇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앜ㅋㅋㅋ'
"있을 거야가 아니라, 헷갈리셨다면 제대로 다른 사람한테 전화를 거셔야죠. 지금 새벽 다섯시잖아요."
"내가 말 했잖아. 새벽에 미친 여자가 전화했다고 생각하고 들어봐. 날 보호해 주던 사람이 있었는데, 난 자기야가 날 보호해 준 것 처럼 생각한 것 같다고."
"근데 보호해 줬다는 뜻이 뭐예요?"
"그러니까 나한테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와주고, 지켜주고 그랬다고. 근데 나 모른다며? 모른다면서 왜 자꾸 물어봐?"
"모르니까 물어보죠. 알면 뭐하러 물어봐요. 도와주고 지켜준 사람이랑 직접 만난 거예요?"
"아냐. 왜 자꾸 헛소리를 해."
"헛소리가 아니라, 직접 만난 적 없으면 어떻게 보호를 해줘요?"
"아, 잠깐만. 그럼 그 사람인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나 만난 사람 있어. 전화통화도 한 사람 있어."
"그럼 그 사람이네요. 근데 왜 이 번호로 전화를 하셨어요?"
"내가 왜 이 번호로 전화를 했지?"
'앜ㅋㅋㅋ 이게 뭐얔ㅋㅋㅋㅋ'
"이제 A를 찾았으니까, A한테 전화를 하세요. 지금 말고 아침에 해 보세요."
"근데, A가 나를 보호해 준거야?"
"그건 제가 모르죠. 그 사람한테 물어봐야죠."
"A한테 전화를 했는데, 그 사람도 자기랑 똑같은 말을 하면 뭐지? 내가 자폐증 같은 거라고 생각해야 되는 건가?"
이 이후의 상황은 너무 안드로메다의 대화 같아서 간단히 요약하자면, 결국 이 여성분이 자신을 보호해 줬다는 사람은 '허상'이었다는 것 까지 도달한다. 이사에 대한 문제도 이사를 오라고 한 사람이 없으니 가지 말라는 이야기로 결론이 났으며, 여성분은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지?' 라는 말만 되풀이 한다. 얼른 일자리를 구해서 일상생활을 시작하고 친구들을 만나며, 즐겁게 살라는 클로징멘트를 날리며 전화를 끊으려는데 갑자기 여자가 흐느낀다.
"이제 어쩌지?"
"예?"
"돈이 하나도 없어."
"그럼 일을 해야죠."
"근데 나 부탁 하나만 해도 돼?"
"아뇨."
'차가운 농촌남자에게 무슨 부탁을ㅋㅋㅋ'
"......"
분명 돈 얘기 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탁'이라며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내 부탁도 하나 들어달라고 한 뒤, "돈 얘긴 마세요."라고 말하기로 했다. 역시, 예상대로 흘러갔다.
"내가 정말 신용하나는 확실하거든."
"네."
"이사를 가려고 짐도 다 싸놨는데 살 수가 없잖아. 나 돈 좀 빌려줘. 꼭 갚을게. 나 회사를 안 다니잖아."
"저도 회사 안 다녀요."
"......"
"일자리 구하면 바로 갚을게."
"갚고 안 갚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요. 저, 돈이 없어요."
"......"
"......"
"그럼 나한테 부탁하려던 건 뭐야?"
"돈 빌려달라는 얘기만은 하지 말아달라는 거요."
"......"
갑자기 여자가 울먹이기 시작했고, 시계가 없어졌다고 했다. 그걸 팔아서 생활을 할 생각이었는데 도둑맞았다는 얘기였다. 뜬금없지만, 그렇게라도 마무리를 하지 않으면 더 할 얘기가 없을거라는 생각에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았다. 아까 대화를 하며 A에게 전화를 하지 말라는 쪽으로 결론이 났으나, 갑자기 여자가 A에게 전화하겠다는 얘기를 했다.
"이제 어쩔 수 없이 A에게 전화를 해야 해. A에게 돈을 빌려야 겠어."
"네."
"......"
내가 말릴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난 여자가 서울에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내곤, 그 집을 팔거나, 전세라면 전세금을 돌려받거나, 월세라면 보증금을 돌려받고 집 값이 더 싼 곳으로 이사를 해서 당장 일자리를 구하기 전 까진 그 돈으로 생활하라고 말을 해줬다.
"시계까지 없어지고...아주 죽어라 죽어라 하는 구나..."
"전 팔 수 있는 것도 없어요."
"......"
이후, 핸드폰비 낼 돈도 없다는 여자의 말에, 이 통화도 길게 하지 말고 얼른 끊으라는 말을 했고 그렇게 새벽 5시에 걸려온 전화는 마침표를 찍었다.
▲ 처음으로 녹음을 해 봤는데, 다시 듣는 것이 은근히 재미있다.
다른 사람들이 잘 믿지 않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보며, 이건 필연적으로 작가가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집 밖에 나가질 않아도 스스로 에피소드가 찾아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가출 여고생을 집에 데리고 있다가 부모님이 와서 찾아갔으며, 그 여고생은 다시 돌아오길 바라고 있을 거라는 삼십대 남성의 메일에, 납치하듯 데리고 오는 것 보다 그녀가 잘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답장을 했다가, 췌장이 쫄깃해지는 협박 메일을 받기도 하고, 내가 자신을 도청하고 있다고 욕을 해 대는 이상한 방명록 글이나 닉을 바꿔가며 어떻게든 상처를 주려고 노력하는 이상한 사람들. 시간이 지나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된다.
심각하다고 생각하거나, 지금 전력을 다해 걱정을 하는 문제가 있으면 늘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길 추천한다. 그건 수 많은 페이지 중 어느 한 페이지에 불과하니까.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에피소드'가 될 것이다. 몇 년 전, J군(24세, 군복무중)이 임시번호판을 단 아버지의 '무쏘 스포츠'를 타고 드리프트를 보여주겠다며 제방도로에서 급커브를 틀다 하천으로 굴러 그 날로 차를 폐차했지만 아직 잘 살고 있는 것 처럼 말이다.
▲ 세상이 죽어라 죽어라 해도 안 죽으면 그만입니다. 쫄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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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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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세요?"
"아...."
"......"
"아...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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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사실 이 쯤에서 한 소리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잘 못 걸었으면 다시 실수하질 말아야지, 새벽에 전화를 해서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근데 의외의 물음이 들려왔다.
"무한씨 폰 맞죠?"
"누구세요?"
"나야 박소현(가명)"
"박..소현이요?"
"그래. 근데 자기 왜 아닌척 해?"
"예? 자기요?"
천지창조 이후로 내가 알게 된 이성들의 이름을 떠올려봤지만, 박소현이란 이름은 없었다. 마치 여자친구처럼 서스럼없이 '자기'라고 불러대는 이 여인은 누구지?
"근데, 저 아세요?"
"잠깐만, 나 혼란스러워."
'앜ㅋㅋㅋ 내가 더 혼란스러웤ㅋㅋㅋ'
"무한 맞지?"
"맞긴 한데, 저랑 아는 사이세요?"
"그렇게 말하지 마. 자기가 날 보호해 줬잖아."
'앜ㅋㅋㅋ 이건 뭔 소리얔ㅋㅋㅋㅋ'
"무슨 보호요?"
"나 혼란스러워. 왜 아닌 척해?"
"지금 제가 더 혼란스러워요."
"나 이사가려고 준비까지 다 해놨는데. 갑자기 왜이래?"
"무슨 이사요?"
"모르는 것 처럼 말하지마."
조금 전 까지, "발은 꼭 닦고 주무세요." 라며 명쾌한 클로징 멘트를 준비하고 있던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뭔가 심각한 일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 여러 가설이 떠올랐다.
1. 누군가 이 여자와 사귀었고, 자신을 '무한'이라고 소개했다. 여러가지 약속들을 한 후 그 남자는 떠났고, 여자는 '무한'을 찾게 되었다.
2. 자신을 나타내지 않는 선행을 하던 이가 있었는데, 그가 이 여자에게 선행들을 베풀었고, 여자는 그 사람을 '무한'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3. 블로그의 글을 보며 자기에게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 전에도 블로그의 글을 통해 자기에게 신호를 보냈던 게 아니냐는 사람이 있었으므로, 비슷한 부류.
4. 약을 안 먹었거나, 약을 먹었거나.
2. 자신을 나타내지 않는 선행을 하던 이가 있었는데, 그가 이 여자에게 선행들을 베풀었고, 여자는 그 사람을 '무한'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3. 블로그의 글을 보며 자기에게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 전에도 블로그의 글을 통해 자기에게 신호를 보냈던 게 아니냐는 사람이 있었으므로, 비슷한 부류.
4. 약을 안 먹었거나, 약을 먹었거나.
1번과 2번의 확률이 크다고 생각해 '원래의 대상'을 찾고자 했다.
"근데 제 핸드폰 번호를 어떻게 아셨나요?"
"이삿짐 정리하다가 나왔어."
"그 번호를 어떻게 아신건데요?"
"몰라. 예전 무한홈피 있을때 보고 적었나봐."
7년 전 홈페이지를 운영했을 때, 그 때는 '다모임'등의 사이트가 유행하며 '친구찾기'에 열을 올리던 시기였고, 대부분 그 나이에는 '반창회'나 '동창회'를 한다며 어른이 된 티를 내고 싶어하니 홈페이지를 보고 연락할 수 있게 전화번호를 공개했었다. 신발에 전화번호 스티커 붙여놓은 사진을 웃으라며 올려두기도 하고 말이다. 아무튼 '원래의 대상'을 찾아야 했다.
"저랑 전화하거나, 만나거나, 메일을 주고받거나 한 적도 없는데 뭘 보호했죠?"
"4년 전부터 날 보호해 줬잖아."
'앜ㅋㅋㅋ 4년 전이랰ㅋㅋㅋㅋ'
"저기요..."
"응?"
"4년 전엔 제가 군대에 있었는데요."
"......"
이것으로 완벽히 상황정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화장실에서 쵸코파이를 몰래 먹으며 누구를 보호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클로징멘트를 날리려고 하는 순간, 다시 여자가 입을 열었다.
"그럼 자기가 날 보호한게 아니라는 거야? 상관없어. 날 보호해 준 게 A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할게."
"저기요, A를 찾아서 이야기를 하셔야죠. 그걸 왜 저한테 얘기하려고 하세요?"
"자기가 아니라니까. 이게 마지막 통화가 될 거야. 들어줘."
아직 오해가 안 풀렸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상대는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뭔가 심각한 얘기를 하려고 한다. 여기서, 핸드폰의 녹음기능을 찾아 눌렀다.
"잠깐만요. 저랑 연락하신 적도 없는데, 제가 보호를 했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내 얘기 들어봐. 그냥 미친 여자가 전화했다고 생각하고 들어봐."
"다른 사람이랑 저랑 헷갈리신 것 같다니까요."
"그래. 내가 헷갈렸을 수도 있을 거야."
'앜ㅋㅋㅋ 그렇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앜ㅋㅋㅋ'
"있을 거야가 아니라, 헷갈리셨다면 제대로 다른 사람한테 전화를 거셔야죠. 지금 새벽 다섯시잖아요."
"내가 말 했잖아. 새벽에 미친 여자가 전화했다고 생각하고 들어봐. 날 보호해 주던 사람이 있었는데, 난 자기야가 날 보호해 준 것 처럼 생각한 것 같다고."
"근데 보호해 줬다는 뜻이 뭐예요?"
"그러니까 나한테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와주고, 지켜주고 그랬다고. 근데 나 모른다며? 모른다면서 왜 자꾸 물어봐?"
"모르니까 물어보죠. 알면 뭐하러 물어봐요. 도와주고 지켜준 사람이랑 직접 만난 거예요?"
"아냐. 왜 자꾸 헛소리를 해."
"헛소리가 아니라, 직접 만난 적 없으면 어떻게 보호를 해줘요?"
"아, 잠깐만. 그럼 그 사람인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나 만난 사람 있어. 전화통화도 한 사람 있어."
"그럼 그 사람이네요. 근데 왜 이 번호로 전화를 하셨어요?"
"내가 왜 이 번호로 전화를 했지?"
'앜ㅋㅋㅋ 이게 뭐얔ㅋㅋㅋㅋ'
"이제 A를 찾았으니까, A한테 전화를 하세요. 지금 말고 아침에 해 보세요."
"근데, A가 나를 보호해 준거야?"
"그건 제가 모르죠. 그 사람한테 물어봐야죠."
"A한테 전화를 했는데, 그 사람도 자기랑 똑같은 말을 하면 뭐지? 내가 자폐증 같은 거라고 생각해야 되는 건가?"
이 이후의 상황은 너무 안드로메다의 대화 같아서 간단히 요약하자면, 결국 이 여성분이 자신을 보호해 줬다는 사람은 '허상'이었다는 것 까지 도달한다. 이사에 대한 문제도 이사를 오라고 한 사람이 없으니 가지 말라는 이야기로 결론이 났으며, 여성분은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지?' 라는 말만 되풀이 한다. 얼른 일자리를 구해서 일상생활을 시작하고 친구들을 만나며, 즐겁게 살라는 클로징멘트를 날리며 전화를 끊으려는데 갑자기 여자가 흐느낀다.
"이제 어쩌지?"
"예?"
"돈이 하나도 없어."
"그럼 일을 해야죠."
"근데 나 부탁 하나만 해도 돼?"
"아뇨."
'차가운 농촌남자에게 무슨 부탁을ㅋㅋㅋ'
"......"
분명 돈 얘기 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탁'이라며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내 부탁도 하나 들어달라고 한 뒤, "돈 얘긴 마세요."라고 말하기로 했다. 역시, 예상대로 흘러갔다.
"내가 정말 신용하나는 확실하거든."
"네."
"이사를 가려고 짐도 다 싸놨는데 살 수가 없잖아. 나 돈 좀 빌려줘. 꼭 갚을게. 나 회사를 안 다니잖아."
"저도 회사 안 다녀요."
"......"
"일자리 구하면 바로 갚을게."
"갚고 안 갚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요. 저, 돈이 없어요."
"......"
"......"
"그럼 나한테 부탁하려던 건 뭐야?"
"돈 빌려달라는 얘기만은 하지 말아달라는 거요."
"......"
갑자기 여자가 울먹이기 시작했고, 시계가 없어졌다고 했다. 그걸 팔아서 생활을 할 생각이었는데 도둑맞았다는 얘기였다. 뜬금없지만, 그렇게라도 마무리를 하지 않으면 더 할 얘기가 없을거라는 생각에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았다. 아까 대화를 하며 A에게 전화를 하지 말라는 쪽으로 결론이 났으나, 갑자기 여자가 A에게 전화하겠다는 얘기를 했다.
"이제 어쩔 수 없이 A에게 전화를 해야 해. A에게 돈을 빌려야 겠어."
"네."
"......"
내가 말릴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난 여자가 서울에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내곤, 그 집을 팔거나, 전세라면 전세금을 돌려받거나, 월세라면 보증금을 돌려받고 집 값이 더 싼 곳으로 이사를 해서 당장 일자리를 구하기 전 까진 그 돈으로 생활하라고 말을 해줬다.
"시계까지 없어지고...아주 죽어라 죽어라 하는 구나..."
"전 팔 수 있는 것도 없어요."
"......"
이후, 핸드폰비 낼 돈도 없다는 여자의 말에, 이 통화도 길게 하지 말고 얼른 끊으라는 말을 했고 그렇게 새벽 5시에 걸려온 전화는 마침표를 찍었다.
▲ 처음으로 녹음을 해 봤는데, 다시 듣는 것이 은근히 재미있다.
다른 사람들이 잘 믿지 않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보며, 이건 필연적으로 작가가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집 밖에 나가질 않아도 스스로 에피소드가 찾아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가출 여고생을 집에 데리고 있다가 부모님이 와서 찾아갔으며, 그 여고생은 다시 돌아오길 바라고 있을 거라는 삼십대 남성의 메일에, 납치하듯 데리고 오는 것 보다 그녀가 잘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답장을 했다가, 췌장이 쫄깃해지는 협박 메일을 받기도 하고, 내가 자신을 도청하고 있다고 욕을 해 대는 이상한 방명록 글이나 닉을 바꿔가며 어떻게든 상처를 주려고 노력하는 이상한 사람들. 시간이 지나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된다.
심각하다고 생각하거나, 지금 전력을 다해 걱정을 하는 문제가 있으면 늘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길 추천한다. 그건 수 많은 페이지 중 어느 한 페이지에 불과하니까.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에피소드'가 될 것이다. 몇 년 전, J군(24세, 군복무중)이 임시번호판을 단 아버지의 '무쏘 스포츠'를 타고 드리프트를 보여주겠다며 제방도로에서 급커브를 틀다 하천으로 굴러 그 날로 차를 폐차했지만 아직 잘 살고 있는 것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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