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편이 나온지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간다. 그 사이 나는 블로그 계정을 옮겼고 이런 저런 이전작업을 하며, 군생활 매뉴얼에는 손을 못 대고 있었다. 더군다나 외부에 걸어 놓은 링크가 모두 깨져서 이제는 클릭해도 들어올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검색을 통해 들어오시고, 또 댓글을 남겨주셨다. 어여쁜 소녀 구독자라면 좀 설레이겠지만, 아쉽게도 대부분은 4월 중에 입대하는 가이들. 그리고 역사의 산 증인(?) 90년대 군번 예비역들. 뭐, 관심을 가지고 군생활 매뉴얼을 찾아 주시니 감사하기는 매한가지다.
1탄 마지막 글에 '94군번 25사 71연대' 님이 군시절 이야기를 써 주셨다. 읽으며 나역시 듣는 것 만으로도 손발이 오그라 들었던 그 댓글을 소개하자면,
94군번(전라도 광주)님이 짬이 딸리던(계급이 낮던)시절에, 병장들에게 바라는 점을 이야기 해 보는 시간이 마련됨. 다른 일이등병들은 눈치를 채고 가만이 있었지만, 당시 순진한 꽃띠, 94군번님은 고참들에 대한 불만사항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 버림. 소대는 뒤집어 졌고, 이영국 병장(경상도)이 불러냄,
이영국병장 - "이런 개xxxxxxxxx"
94군번님 - "......"
이영국병장 - "너 나랑 다이다이 깔래?"
94군번님 - (다이다이가 무슨 말인지 모르고 있다) "......"
이영국병장 - "야! 이 xx 나하고 다이다이 깔꺼냐고?"
94군번님 - (도대체 다이다이가 뭘까 고민하고 있음) "......"
이영국병장 - "야! 이 ......"
94군번님 - (뜻을 모르고, 긍정적으로 대답하기로 함) "네. 알겠습니다."
......OTL (※ 다이다이는 일대일로 싸우자, 는 뜻이다)
아직 입대를 하지 않은 가이들이나, 군대와는 별 관계가 없는 여성분들의 경우 위의 상황이 이해가 안 될 수 있으나, 직장의 사장님과의 대화라고 생각해 봐도 좋고, 학생이라면, 학교 선배중 가장 무서운 사람과의 대치상황이라고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우선, 군생활 매뉴얼을 아직 못보신 분들을 위한 전편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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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매뉴얼을 작성하며 가장 힘이되는 것은 댓글이다. 나혼자 허공에 대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 무언가 같이 이야기 하며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갈수록 군생활 매뉴얼은 댓글이 적어진다. 왜? 열혈독자들이 매뉴얼을 보곤 군대에 입대해 버리니까. 이번 글은 댓글이 주렁주렁 달리길 기원하는 농부의 마음으로 적어보도록 하겠다.
1. 막나오는 군대용어
자, 이제 막 휴가를 나온 군인이라고 해보자. 부대 위병소(정문)를 통과하면서 부터 얼굴에는 홍조가 돌며 혈액순환이 원활해지고, 심하게 삐었던 왼쪽 발목까지 아무렇지 않게 뛰어갈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앞으로 4박 5일간은 고참도 안보고, 사복도 입을 수 있다. 밤 10시에 잠자리에 눕지 않아도 좋다. 술도 한 잔 할 수 있고, PC방도 갈 수 있다. TV에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바로 사 먹을 수도 있다. 집에서 끓인 라면도 먹을 수 있다. (응?)
아무튼 이렇게 막 터져버릴 것 같은 가슴을 가지고 집으로 향할 것이다. 집으로 향하는 곳에 누구나 들른다는 그, 슈퍼 혹은 편의점. 흡연자라면, 군에서 피던 면세담배는 접어두고 사제 담배를 하나 구입할 것이다. 나역시 의정부 터미널에 들러 평소에 피지도 않던 양담배를 하나 구입하러 들어갔다.
나 - "말보로 레드 하나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군대 용어가 입에 익어 뒤를 '까'로 끝내고 있다.)
점원 - (당황한듯) "말보로 레드요? @#!%!@#$$@%"
나 - "잘 못들었습니다?"
("네?" 라고 되물어보질 못하고 있다 ...OTL)
점원 - (더 당황한듯) "저희는 국산담배만 취급해요"
마치 외국인이 되어버린 듯한 심정. 군기가 바짝 들어있는 이등병의 경우, '~안되겠습니까?' 와 '잘 못들었습니다?'는 이미 생활화가 되어있다. 나는 첫 날 친구들과 삼겹살을 먹으러 가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결국 군대용어를 쓰고 말았다.
"여기 마늘 좀 더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친구들은 박수까지 쳐 가며 웃어댔고, 역시 이등병이라는 인증을 해 주었다. 그래도 그나마 이건 양호한 편이다. 첫 휴가, 동네에 도착해서 너무 기쁜 마음에 동네 어른을 본 내 친구는 그 아저씨에게 거수경례를 해 버렸다. 사람이 '안녕하세요'를 100일 넘게 못 쓰게 되면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쓰기 힘들어 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 뿐만이 아니다. 어느새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머니에 손을 못 넣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길을 걸으며 앞 사람과 발을 맞추고 있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동기 두명과 함께 휴가를 나왔다면, 어느 새 앞에 두명이 가고 뒤 따라 한명이 걸어가는 (군대에서는 2명씩 끊어 뒤로 서는 경우가 많다) 모습을 연출하고 있을 것이다.
행정병이라서 전화 받을 때 "여보세요?" 대신 "통신보안?"을 했다는 이야기나, 아버지의 부름에 "이병 xxx" 이렇게 관등성명을 댔다는 이야기도 많다. 축하한다. 군인이 된 것이다.
2. 군인들과의 신경전
일반인들(민간인들)은 '어? 군바리네' 혹은 신경도 안 쓸 군인들이지만, 휴가를 나와 사회에서 만나는 군이들끼리의 신경전은 대단하다. 전설로만 남아 있는 해병대와 특공대의 기싸움 이야기는 뒤로 하더라도, 일반 육국끼리의 신경전도 보통이 아니다.
횡단보도에 서게되면, 맞은편의 군인과 기싸움이 벌어진다. 우선 상대의 계급장을 보고, 자신보다 아래면 가볍게 주머니에 손을 넣어 주는 식의 대응을 하며, 괜히 모자를 벗어 부채질을 하거나, 잘 입고 있던 군복의 단추나 지퍼를 약간 풀어주기도 한다. 최대한 껄렁하게 보여 상대를 제압하자는 초 유치한 발상이다. 이등병이라면, 그런 모습에도 긴장한다. 이등병은 휴가를 나와도 긴장해야 한다는, 슬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으려고 하면, 이미 테이블에 앉아 있는 개구리(당일 전역자, 혹은 말년휴가자)들이 있거나 상.병장들이 떠들썩하게 들어 차 있는 식당은 피하게 된다. 근처에 군부대가 있어서 이런 상황을 목격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유심히 보길 바란다. 대부분 계급장이 높은 사람들은 즐거워 하는 반면, 일.이등병들은 긴장한 상태로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군장점에 들러 계급장을 바꿔 다는 경우도 있다. 내 친구의 경우 이등병 마크를 떼고, 상병 계급장을 달았다. 어딜가나 불쌍해 보이는 짝대기 하나가 싫었던 친구는 휴가를 나오자 마자 상병을 달고, 이런 저런 마크들을 추가로 구입해 달고 다녔다. 낙하산을 타 본 사람만 다는 공수마크를 달고, 모자도 훨씬 멋지다는 수색대 모자로 바꿔썼다. 군대에선 불가능한 일이지만, 사회에서는 돈 만원이면 가능하다. 덕분에 그 친구에게 이등병 휴가 사진은 없다. 상병사진만 여러장이다.
물론, 위와 같은 일을 권장하지는 않는다. 재미삼아 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만약 헌병대에 걸리게 되면, 그 뒷일은 책임질 수 없다. 아마, 사회에서 주민등록증을 위조해 사용하다 경찰에게 걸린 것 이상으로 손 쓸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조심히 예상해 본다. 부대로 연락이 취해져 복귀 후 대대장, 중대장, 소대장과의 면담은 물론이고 소대내에서 '개념제로'로 찍혀서 스릴있는 군생활이 될 것이다.
최대한 마찰은 피하고, 푹 쉬며, 즐겁게 보내는 것이 바람직하며 자신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사회에 나와봤자 첫 휴가는 4박 5일인데, 그 기간동안 멋져 보여야 얼마나 멋져 보이겠는가. 무사히 집까지 도착해 뜨거운 물에 씻고, 못 보던 사람들 만나고, 편안하게 푹 쉬고, 가족과 따뜻한 밥 먹고, 그게 휴가를 제대로 보내는 것 아닐까?
3. 미리 전하는 위로
휴가를 나오는 길,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집에 오고 있는 가이라면, 분명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집이 있는 동네가 가까워 질 수록 혼자 히죽히죽 웃게 되는 일. 혹시나 전철이나 버스에서 이유없이 웃고 있는 이등병을 본다면, 그는 백이면 백 첫 휴가를 나온 군인이다.
첫 휴가를 나온 군인이 집에 다다를 때면 모든 것이 반갑다. 미용실도 반갑고, PC방도 반갑고, 고깃집도 반갑고, 버스 정류장도 반갑고, 커피자판기까지도 반갑다.
"다음 역은 정발산, 정발산 역입니다."
이 멘트에 얼마나 설레였는지 모른다. 고교시절 친구들과 자주 앉아있던 편의점 실외의자, 활보하며 다니던 거리들, 주말이면 괜히 들렀던 라페스타, 가로수가 반갑고, 아파트들이 반갑다. 그럴때면 혼자 히죽히죽 웃고 있는 것이다. 마치 나를 오랫동안 기다린 동네에 도착한 듯 모두가 나를 반겨줄 것 같은 기분. 설레임과 기쁨과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은 행복을 느끼며 집에 다다른다.
하지만,
어머니의 반가운 환영을 뒤로 하면 그닥 반겨주는 사람이 없다. 방학시즌에 휴가를 나오면 모르겠지만, 친구들이 대부분 시험기간이라 전화조차 안되면, '아.. 밤에 보면 되지, 뭐' 따위로 위로하며 포근한 침대에도 누워보고 컴퓨터를 켜서 인터넷도 해 보고 하겠지만, 시험기간인 친구들은 밤에도 만나기 쉽지 않다.
'휴가 나와서 기쁜건... 나... 혼자였어.'
이런 기분을 느끼는 가이들이 있다면, 심심한 위로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응? 이건 아닌가?) 아무튼 원래 그런거다. 그런 외로움을 극도로 견딜 수 없어 하는 부류라면, 대부분의 친구들이 한가한 시즌, 그러니까 방학기간에 맞춰서 나오길 바란다. '휴가 나가면 술 한번 진탕 마셔봐야지.' 라고 작정한 가이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시험기간의 친구들은 그렇게 자비롭지가 않다.
"휴가 나오면 보자~"
"휴가 나오면 꼭 연락해!"
이런 부류의 말은, 그냥 인사치례며 예의상 하는 이야기 정도로 생각해 두길 바란다. '이거, 군인이랑 만나서 술 마시면 내가 쏴야 되는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속이 좁은 친구도 있을 테니, 그대를 기다리고 기다리던 가족들과 오랜만의 외식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거라 생각한다. 위액을 다 토할때 까지 마신다고 해서 행복하거나, 휴가 기간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4. 뭘 해도 후회한다.
4박 5일, 4.5초. 휴가를 방금 나온 것 같은데 벌써 복귀다. 거짓말 같은가? 후후, 나와보면 안다. 짧은 기간에 엄청 농축된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압박감이 시간을 더 빨리 가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쉽겠지만, 복귀다.
휴가 마지막 날, 분명 후회가 찾아올 것이다.
'아, 차라리 술을 마시지 말고, 사람을 더 만날 걸'
'가족들과 시간을 더 보낼걸'
'보려고 했던 만화를 찾아 보거나, 자격증 공부할거 알아봐 둘걸'
'밤새서 한 번 미친듯이 놀아볼껄'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집에서 푹 쉴껄'
하지만 가이들. 뭘 해도 후회한다.
집에서 완벽하게 재충전된 상태가 될 때 까지 휴식을 취했다면,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못한 것을 후회 할 것이고, 친구들과 어울려 진탕 놀기만 했다면, 잠이나 푹 자둘껄 하는 후회가 찾아올 것이다. 후회는 아무리 빨리해도 늦다. 어차피 부대에 다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4박 5일을 꽉 채워 보람있게 보내다가 들어가는 군인은 없다.
부대 복귀. 잔치는 끝났다.
주섬주섬 군복을 입고, 며칠 새 낯설어진 전투화를 신고, 부모님께 인사하고, 다시 대문밖을 나설 때, 그때부터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마인드와 정확히 일치할 수 있을 것이다. 무거운 발걸음, 내 것 같았던 동네를 놔두고 부대로 돌아가는 그 기분. 혹자는 재입대보다 무서운 것은 휴가복귀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이 40이 넘어도 휴가 복귀 하는 꿈을 꾼다는 백모씨(41세, 무직)의 말대로라면, 20여년간 일한 직장을 그만두고 돌아서 나올 때의 기분이 아마 그와 가장 가깝지 않나 생각해 본다.
분명 무언가 빼먹은 느낌이 들 것이다. 뭐 하나 놔두고 온 기분. 그것이 군번줄이 아니기를 빈다. 아, 그리고 가끔 사회에서 입던 속옷을 그대로 입고 들어오는 무개념 가이들이 있는데, 좀 더 스릴있는 군생활을 원하는 거라면, 굳이 말리진 않겠다. 그리고 핸드폰! 가지고 들어와도 쓸 수 없으니, 그냥 조용히 단념하고 부대에서는 공중전화를 사용하길 권한다. 괜히 핸드폰을 가지고 들어왔다가 걸리는 날은, 가이의 소대에서 가장 높은 고참이 그 책임을 물고 하루 종일 연병장을 돌고 있을 수도 있다. 이등병 교육 미흡으로 말이다. 그 날 비까지 와 준다면, 당신은 생에 가장 달콤한 시간들을 보내게 될 것이다. 축하축하. 군생활 2년이 아주 달콤해질 것이다.
부대가 얼마 남지 않은 길, 괜히 담배도 몇대씩 피워 보고, 애꿎은 군화로 땅만 차 보고, 겨우 마음먹고 부대로 걸어 가는 길, 근무를 서고 있는 고참들이 주먹을 들어 머리까지 올린 뒤 위 아래로 흔들 것이다. '빨리빨리'라는 뜻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표정. 이때부터는 절대 말을 아끼기 바란다. 사회의 습관이 그대로 남아 휴가증을 보자는 위병조장(근무서는 고참중 왕고)의 말에 "네?" 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최대한 말을 아끼고 '모르겠습니다.' 또는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따위의 말만 되풀이 해도 좋다. 그렇다고 고참들이 담배하나 피우자며 사회의 얘기를 묻고 싶어 하는데 '됐습니다.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따위의 말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자, 이제 다시 아름다운 군생활의 시작이다.
그럼 다음 편에서 다시 보길 바라며.
아차! 휴가나가면 하루에 한통화는 꼭 전화를 하게 되어 있으며, 집 도착시, 그리고 집에서 부대로 출발할 시등 부대에서 정한 기간에 전화를 하게 되어 있다. 이 전화를 안 하면 영창에 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부대에서 사고사례나 병사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영창까지 안 보내지만, 악랄한 중대장의 경우, 복귀 후 며칠 후 당신은 영장에 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꼭 영창이 아니더라도 당신 위의 고참은 연락이 안되는 것에 의해 당신의 휴가기간동안 간부들에게 갈굼을 당할 것이다. 휴가 나가 있는 후임 때문에 갈굼을 당해야 하는 고참의 기분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분명 재미나게 놀고 있을 녀석이 전화를 안해서, 내가 대신혼난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는 복귀를 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꼭!!! 부대에 잊지 말고 꼬박꼬박 전화하기 바란다!! 꼭!!
<덧> 휴가시 겪으셨던 예비역님들의 경험담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다음 글에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분명 하실 말씀들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덧2> 아래의 숫자버튼을 누르시면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굿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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