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외선 촬영과 야생동물 관찰은 내 오랜 꿈이었다. 내 꿈 중에는 참치 낚시, 성층권 촬영, 생명 연장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가지고 있는 장비에다 몇 가지만 추가해 간단히 할 수 있는 게 바로 ‘적외선 촬영’과 ‘야생동물 관찰’이었다.
야생동물 관찰은 이전에 발행한 ‘너구리 관찰기’에서 한 번 이야기 한 적 있다. 그땐 무식하게 랜턴을 켜놓고는 먹이 그릇을 마련해 두었는데, 너구리도 바보가 아닌 까닭에 환한 그곳으로 오질 않았다.
그래서 시도했던 것이, 리모컨을 사용한 장거리 촬영이었다. 이건 숲에서 새들을 찍어가며 시험해봤는데, 장애물이 있는 지역에서는 리모컨 가용거리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어 실패했다. 게다가 멀리서 망원경으로 지켜보며 그 ‘찰나’를 잡아 버튼을 누르는 게 쉽지 않았다. 하아, 장거리 촬영 되는 리모컨 비싼 돈 주고 두 개나 샀는데….
직접 지켜보며 결정적인 순간 리모컨을 눌러야 하는, 그런 원시적인 방법은 접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도전한 것이, 카메라에 감지장치를 단 후 그 장치가 셔터를 제어하게 하는 것이었다.
카메라와 플래시가 동조되어 있는 까닭에, 뭔가가 지나가기만 하면 셔터가 눌리며 플래시가 터지도록 만들었다. PIR센서와 아두이노를 이용했는데, 난 문돌이인데다 자꾸 막혀 능력자님의 도움을 받았다. 아무튼 그렇게 어찌어찌 만들기는 했는데,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장비들이 쓰러지고 난리도 아니라서 결국 포기했다. 그걸 다 들고 나가서 설치하는 것도 쉬운 일은 결코 아니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역시 이건, 그냥 기성장비 사서 해야 하나보다….’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고프로나 짭프로를 사용해 적외선 촬영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진 SJ4000의 필터를 뜯고는 IR LED 라이트만 비춰주면, 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알아서 녹화가 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간단하다니.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을 수 없잖은가. 난 바로 SJ4000을 뜯기 시작했다.
배터리 커버를 열고, 전면 플라스틱 판을 떼어내면 된다. 기기마다 좀 다를 수 있는데, 자신의 기기를 분해하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기기명+렌즈교체’라고 검색하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측의 상태에서 렌즈를 돌려 빼면 되는데, 제작 시 뭔가를 녹여 붙여 둔 까닭에 쉽게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난 남들이 다 못 여는 뚜껑을 힘으로 열 수 있는 것에 자부심을 가진 까닭에 부들부들 떨어가며 손으로 돌려 뺐는데, 자신이 없다면 기구를 사용하길 권한다. 깨알 자랑을 하자면 ‘이건 사람이 열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판정을 받은 꿀병도 난 연 적이 있다. 글 한참 써야하는데 이거 또 어깨에 힘 들어가서 큰일이네.
렌즈를 돌려 빼고 나면, 아랫부분에 저렇게 필터가 장착되어 있는 것이 보일 것이다. 저 필터만 떼어낸다면, 반 이상 작업이 끝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간단하지 않은가?
그냥은 절대 안 떼어지니, 드라이기로 충분히 가열하자. 팁을 하나 적자면, 저걸 손으로 잡은 채 드라이기의 뜨거운 바람을 견딜 필요 없다. 앞부분을 잡은 후, 드라이기 옆으로 필터 부분만 갖다 대 접착제를 녹이면 된다. 이거 나만 몰랐나? 상남자인 난, 손이 익는 것 같은 고통도 참아가며 렌즈를 드라이기 정면에 대곤 필터 접착제를 녹이는데 집중했다.
접착제가 녹은 필터는 커터칼을 사용해 떼어내면 된다.
‘칼로 떼어내면 된다’는 말은 참 쉬운데, 절대 쉽게 안 떨어진다. 조각난 필터(유리) 파편은 사방으로 튀며, 떼어내 지진 않고 그냥 부스러진다. 아마 이때
‘역시 난 안 되는 건가…. 내가 이걸 왜 시작한 거지?’
하는 생각이 들 텐데, 이미 필터도 망가뜨려 후진도 불가능하니, 될 때까지 직진할 수밖에 없다. 철사장 연습한다는 생각으로 드라이기에 렌즈 잡은 손을 갖다 대 열심히 녹이며, 간절한 마음으로 떼어내 보자.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도와준다고 하지 않는가. 방망이 깎던 노인처럼 필터를 깎아내 보자.
실패했다고 너무 긴장할 것 없다. 안 되면 렌즈를 또 사면 되지 않는가. 물론 직구한 까닭에 한 3주 기다려야 한다는 문제가 생기긴 하지만, 우리에겐 깃털같이 많은 날들이 있다. 실패한 부품은 엄마나 아내나 여자친구가 볼 수 없도록 감춰두고, 새 렌즈를 받아 새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보자.(내 경우 직진 끝에 성공하긴 했지만, 혹시 모르는데다 적외선 촬영만 할 건 아니라서 예비렌즈를 구입해 둔 것이다.)
그렇게 고생 끝에 성공했다면, 이제 나가서 촬영하면 된다.
“잠깐만요. 저건 렌즈 필터 제거 말고도 뭐가 주렁주렁 많은데요?”
IR LED라이트 48구 두 개, 그리고 오토바이 배터리를 세제통에 담아 만든 파워뱅크(전원), 삼각대 정도가 추가되었을 뿐이다. IR LED라이트가 12V를 요구하니, 12V 전원만 공급가능하다면 뭘 쓰든 무방하다.
난 나무판에 IR LED라이트를 붙인 후, 짭프로는 야구모자 마운트에 결합해 나무판에 물렸다. 각도는 삼각대 볼헤드로 조정하면 되며, 나무판의 폭은 저것보다 좁고 좀 더 긴 게 좋다. 나도 대략 가로 6cm, 세로 35cm 정도로 다시 만들 생각이다. 저 상태로는 짭프로의 화각이 넓어 라이트와 간섭이 생긴다.
파워뱅크는, 예전에 천체망원경을 쓰느라 만들어 둔 것을 사용했다. 천체망원경이 대개 12V 전원으로 구동되니, 천문동호회에 가서 눈팅을 잠깐 하면 12V 파워뱅크를 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캠핑 하는 분들도 12V를 많이 쓰던데, 거긴 너무 ‘본격 대용량’을 위주로 만드는 까닭에 일이 커질 수 있다.
적외선 카메라로 개조한 짭프로의 촬영 모습. IR LED 라이트가, 고르게 비추지 못하고 중앙에 살짝 뭉쳐서 쏴주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중앙부 하이라이트가 다 날아가는데, 더 깊게 들어가 라이트 디퓨저 같은 것까지 만들자면 삶이 더 힘들어 질 수 있으니, 이쯤에서 만족하자.
기다리다 보면 요렇게, 야생동물이 찾아온다. 말 안 해도 알겠지만, 도시의 대표적 야생동물이라 할 수 있는 길냥이다. 저 길이 사실 너구리 가족들이 다니던 길이었는데, 기다리던 너구리는 안 오고 길냥이가 찾아왔다. 참치를 놔둬서 너구리가 안 오고 고양이가 왔나?
그냥 먹이그릇으로 직진해도 되는데,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2번 카메라를 보고 있는 모습이다.
이번엔 1번 카메라 쪽으로 와서 카메라를 살핀다.
안전을 확인한 후 먹이를 먹는 모습. 난 저 뒤에서 너구리가 내려와서 얼굴을 이쪽으로 두곤 먹을 줄 알았는데, 길냥이는 옆으로 훅 들어와선 엉덩이만 보여주며 먹이를 먹었다. 흰 고양이로 오해할 수 있는데, 우리 동네 서열 3위인 노란색 고양이다.
아, 요즘 서열 1위였던 얼룩이가 안 보이고 검은고양이가 얼룩이 구역을 돌아다니고 있던데,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좀 알아봐야겠다. 낚시 다니느라 녀석들 관찰을 제대로 못했다.
먹다가도, 작은 소리에 놀라 다시 경계하는 모습.
다 먹고는 기지개를 켜는 모습.
1번 카메라로 다가와 냄새를 맡고 있다.
2번 카메라로 바라본 녀석의 모습.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카메라를 한 네 대 정도 설치하면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녀석은 저렇게, 1번 카메라의 냄새를 몇 번 맡고는 떠났다.
참치 한 캔을 혼자 다 먹기는 많았는지, 저만큼을 남겼다.
촬영의 애로사항이라면, 너무 가까이 있으면 동물들이 경계하며 다가오지 않고, 그렇다고 또 너무 멀리 있으면 사람들이 지나가다 장비를 만지거나 집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밤이라 요즘 같은 땐 너무 추우며, 여름엔 또 모기에 뜯길 수 있다. 뭐 이것에 대해선 방법을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하고, 여하튼 민가가 있는 동네라서 너구리들이 안 오는 건가 싶어서, 난 ‘갈 때마다 너구리를 목격했던’ 파주의 어느 산을 찾아갔다.
산 속에 설치한 모습. 구성은 저 위에서 말한 것과 동일하다. 특이사항이라면 진짜 너무너무 무섭다는 것. 누가 같이 있어도 무서우며, 혼자라면 바람소리에도 심장이 얼어붙을 수 있다. 이게 촬영을 위해 플래시를 터트리고 사진을 찍으니 그냥 저 장소가 환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달빛 말고는 아무 빛도 없는 장소라 생각하면 되겠다.
실제로 스마트폰 플래시를 비추면, 저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 곳이다. 앞뒤양옆에서 뭐가 언제 튀어나올지 알 수 없으며, 먹이 냄새 때문에 야생동물이 불쑥 튀어나올 수 있다. 그러면 아직 장비를 세팅 못한 나도 난감하고, 야생동물도 난감해질 수 있는 상황.
“그렇게 위험하고 무서운데 왜 가시는 거예요?”
그래서 요즘 안 가고 있다. 너구리 겨울잠 자는 시즌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장비를 설치할 때나 걷으러 갈 때 야생동물과 묘하게 타이밍이 겹쳐 멧돼지나 고라니 같은 게 “형이 왜 거기서 나와?” 할까봐 솔직히 무섭다. 통발 던져두듯 밝을 때 설치해두고, 다음 날 가서 걷어올 수 있는 방법이 없나 고민해 봐야겠다.
설치 직후의 모습. 제발 너구리야 와라, 와라….
그림자 뭐야? 너구리야? 여기 산이라서 너구리 아니면 멧돼지 아니면 족제비 아니면 고라니 같은 건데? 뭐지?
길냥이네…. 일산 호수공원만 해도 거기 족제비 살던데,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녀석도 무서웠는지, 언제라도 도망가려는 듯 불편한 자세로 먹이를 먹는 모습.
그러다 바람 소리에 놀랐는지, 동그래진 눈으로 1번 카메라를 보고 있다.
‘이거 뭐지? 왜 누가 쳐다보고 있는 것 같지?’ 하며 2번 카메라를 보는 녀석.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얼마 먹지도 않고는 후다닥 도망가고 있다.
뭘 보고 놀란 건지 2번 카메라로 확인해봤는데,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 놀란 건 2번 카메라를 보고 놀란 게 아닌데, 뭘 본 걸까….
이후의 영상을 다 확인해도 카메라에 잡힌 건 없었다. 배터리가 조금만 더 오래갔다면 경계심을 푼 뭔가가 나타났을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외장 배터리를 달지 않은 짭프로는 80분을 기점으로 멈춰버렸다.
좀 더 긴 촬영을 위해 외장 배터리와 대용량 메모리, 삼각대를 어제 주문했다. 오늘 도착하면 확인해 본 후 며칠 뒤에 다시 나갈 건데, 아 잠깐만, 그럼 외장배터리 연결 가능한 케이스도 또 따로 주문해야 하네? 지금 주문해도 3주 뒤에나 올 텐데….
아무튼 오늘 준비한 얘기는 여기까지다. 너구리나 족제비까지 찍은 후 기쁜 마음에 달려와 올리려고 했는데, 녀석들을 보기 힘든 까닭에 사진과 영상들이 하드에서 계속 묵혀질 것 같아 일단 이렇게 올려둔다. 언제라도 고양이를 제외한 다른 야생동물이 영상에 잡힐 경우 바로 소식을 전하기로 하며, 자 다들 그럼 불금 보내시길!
▼공감과 좋아요, 댓글은 야생동물을 부른다고 합니다.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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