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해 보이는 가정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기 마련이다. 더 일하는 사람, 더 참는 사람, 더 이해하는 사람, 더 양보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으며, 그건 모두의 행복을 위한 누군가의 포기나 헌신이라 할 수 있겠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화목해 보이는 연애엔 반드시 희생이 있다. 난 가끔 자신들은 한 번도 싸운 적 없다며 자랑하는 커플들을 TV에서 보곤 하는데, 그런 걸 볼 때마다 둘 중 하나는 말하지 않고 혼자 삭히거나, 그냥 당연한 듯 생각하기로 하며 양보하거나, ‘연애-또는 결혼생활-를 하면서 싸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서운해하거나 불만을 갖지 않도록 노력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갈등과 다툼이 적은 건 그냥 다 잘 맞는 천생연분이라 저절로 그래지는 게 아니라, 그만큼 노력하고 있는 것일 테니 말이다.
완벽한 연애? 둘 중 하나가 연애에 대해
-연애란 이름 아래 모든 걸 이해하고 양보하고 희생하며, 갈등이나 다툼이 될 만한 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
이란 생각을 가진 채 맹목적으로 헌신하는 이타주의자라면 최대 6개월 정도 한쪽이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다 받아주는 연애를 경험할 수는 있겠지만, 백지장을 들고 10m 걸을 때와 10km 걸을 때가 다르듯 결국 지치게 되며, 그 ‘완벽한 연애’의 유효기간은 금방 다할 수 있다.
완벽해 보였던 L양 연애의 문제는, 바로 저 지점에 있다. L양은
“남친은 다정했으며, 세심했고, 어른스러웠습니다. 연애를 하면서 싸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제게 이야기 한 적도 있고요. 연애에 대해서도 항상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던 사람이었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여기서 보기에 그건 남친이 자신의 연애 판타지를 현실화하려던 노력에 가까워 보인다. ‘연애는 무조건 행복해야 하며, 작은 갈등이라도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한 그가 모든 걸 다 감당하기로 한 채 베풀고 헌신하는 연애를 하려던 것이며, ‘여자친구가 요구하는 것은 무조건 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기 삶도 팽개쳐둔 채 연애에 올인했던 것 같다.
더불어 남친이 그럴수록 L양은 남친에게 더욱 의존하게 되었고, 그간 남친이 다 맞춰주던 지점들에서 하나 둘 지쳐 하는 모습이 보이니 점점 불안해졌던 것 같다. 장거리라고 해도 예전엔 열 일 제쳐두고 만나러 내려오던 남자가, 이젠 자신도 일정이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며 이해해달라는 식으로 나오니, 거기에 서운하며 화가 나고 혹 변심한 건 아닐까 싶어 더욱 닦달하게 된 것이다.
한계에 다다른 남친은 L양에게
-난 앞으로 더 잘해줄 자신도, 시간도 없을 것 같다.
-너의 화내고 악쓰는 모습을 이젠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다.
-너에 대해선 ‘나 원래 그래’라는 식의 반응, 역시 힘들다.
-나도 놀고 있는 거 아니고, 우린 둘 다 힘든 건데….
-내가 못 해주고, 못 이해해준다고 하는데, 너도 더 이상은 여유가 없다.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완벽한 연애’라는 판타지를 잠시 접어두고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면,
-고시생인 남친이 L양을 대신해 알바를 나가주며, 한두 시간 걸리는 거리도 아닌 곳을 L양이 와달라고 하면 가야하는 것.
인 까닭에 물리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L양에겐 그래 주는 남친이 더 없을 정도로 좋은 사람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남친 부모님의 입장에서 보면 “네가 지금 그러고 있을 때냐?”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상황 아닐까? 남친이 제대로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정신 차리고 정리해야 할 최우선순위가, 바로 그 연애일 수 있고 말이다.
남친은 자신을 호출한 부모님께 그런 이야기를 들었고, 그래서 이제 연애 판타지에만 젖어 자기 삶도 돌보지 않는 기형적인 연애를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L양은 남친의 ‘배려 없는 이별통보’를 문제 삼아 그런 그가 붙잡아 볼 필요가 있는 사람인지를 궁금해하는데, 난 그건 둘째치고서라도 L양이 했다는 그 ‘완벽한 연애’는 정상적인 연애가 아니었다는 대답을 해주고 싶다.
이건 ‘그렇게까지 잘해주던 남자를 또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런 연애를 또 하면 반드시 비슷한 형태로 똑같은 이별을 하게 되는 것이니, ‘다시 날 안고 걸어가 줄 사람’ 말고 ‘같이 걸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 오래 함께 걸어도 지치지 않으며 같이 앉아 쉴 수 있는 연애를 했으면 한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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