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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과여행/순한맛매운맛리뷰

이터널스, 감독은 계획이 다 있겠지? 있을까? 있어야 해.

by 무한 2022. 1. 25.

본 리뷰는, 영화 하나를 봐도 한 마음에 호불호가 둘 다 생겨버리는 어느 기구한 다중적 아재의 감상평입니다. 꼭 한 쪽을 택해서 써 내려가는 리뷰 대신, 순한맛 버전과 매운맛 버전을 모두 다루고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순한맛]

 

이제 마블도 '단순 히어로물'이 아닌, '서사'가 포함된 대서사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간 그저 정형화된 히어로의 액션과 뻔한 권선징악 스토리에만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은 답답해 하지만, 감독의 깊은 의도를 아는 사람들은 이게 느린 호흡으로 그려가는 큰 그림의 스케치라는 걸 간파한다. 큰 그릇을 만들려면 그만큼 더 많은 시간이 걸리듯, 다음 편, 그리고 그다음 편의 이야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그제야 드러나는 큰 그릇의 윤곽을 보며 '미약한 시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자책할지도 모르겠다.

 

이터널스가 제시한 우주관은, 행성을 그저 작은 구슬 정도로 여길 만큼 광대하다. 그 구슬 속 먼지 정도 되는 '아이언맨'이나 '캡틴아메리카' 따위는 이제 비벼볼 수도 없는 존재가 되었으며, '비전' 또는 '캡틴마블' 정도 되어야 이터널스 우주선 한 귀퉁이에서 청소 정도 담당할 수 있을 정도다. 그 외 인물들은 '드루이그'의 마인드 컨트롤 선에서 깔끔하게 정리된다. 

 

신화 속 인물들, 그리고 역사 속 인물들이 사실 '이터널스'였다는 설정은 충격과 공포를 불러오기 충분하다. 극 중 '테나'가 '아테나'를 이야기한다는 건 세 살 아이도 알 수 있고, '파스토스'가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라는 것 역시 금방 눈치챌 수 있다. 당시 신으로 여겨졌던 그들은, 사실 신화 이후에도 계속 인류와 함께하며 위기의 순간마다 인류를 수호했다.

 

이쯤 되면,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불가능한 승리로 여겨지는 임진왜란 이순신 장군의 전투들. 이순신 장군과 이터널스의 이카리스가 같은 이(李)씨 성을 가졌다는 건 그저 우연인 걸까? 아무도 이카리스가 어디 이씨 인지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따져 올라가다 보면 이카리스 역시 덕수 이씨라는 게 밝혀지지 않을까? 어쩌면 이순신 장군은 한국을 수호하기 위해 이카리스가 잠시 활약했던…. 그건,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여하튼 앞으로 감독이 펼쳐나갈 이터널스의 우주관을 생각하면, 너무 까마득해 겁이 다 날 지경이다. 덕수 이씨의 이야기가 언젠간 등장하길 기대해보며, 이터널스 후속편을 난 기다린다. 

 


[매운맛]

 

뛰어난 작품을 만든 감독에게 상과 상금을 주는 것처럼, 드럽게 재미없는 작품을 만든 감독에게는 벌과 벌금을 부여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그리고 만약 그런 방식의 상벌이 부여된다면, 이번 이터널스를 만든 감독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정도가 적당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건 마치 BTS의 신곡을, 세계적인 클래식음악가에게 부탁해 만들어, 정장을 입고 콘서트장에 앉아 미동 없이 음악만을 감상하게 만들어버린 것과 비슷하다. 이럴 거라면 차라리 <타짜>의 최동훈 감독에게 메가폰을 맡기는 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안젤리나 졸리가 첫 장면에 등장해 "길가메시요? 내가 아는 이터널스 중 최고였어요." 한다거나, 이카리스의 귀가 한 쪽 없는 걸로 나오거나, 세르시가 "아수라발발타." 같은 걸 하며 데비안츠와 지구의 운명을 건 고스톱을 치는 게 더 재미있지 않았겠나 싶다. 그렇게만 만들었어도 지금보다 두 배는 더 재미있었을 게 분명하니, 영화가 어떤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다.

 

지구와 사실 별 관련 없는 분들이, 지구에 와서 지구를 지키는데, 역시 지구랑은 관련 없는-자기들끼리는 아는- 분이 지구를 부화기 정도로 삼으려는 걸, 앞서 말했던 지구와 사실 별 관련 없는 분들이 막는다는 내용이다. 그 지구와 별 관련 없는 분들이 알고 보면 인류사의 중요한 순간에 잠깐잠깐 등장해 도왔다는 얘기가 길게 나오는데, 납득에 실패한 까닭에 관객은 억지라 느낄 수밖에 없다. 원작이 있는 영화라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이런 식의 스토리라면 각 대륙에서 자신들의 대륙을 수천 년간 지켜온 불멸의 존재들이 사실은 '이터널스'였다고 하는 게 설득력 있을 것 같다. 그래야 인류와도 수없이 얽힌 관계가 있으니, 지구를 지킨다는 게 납득이 될 것 같다. 

 

이건 사실 내가 'OTT 도장깨기' 시리즈를 연재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처음으로 고른 영화인데, 어린 시절 <세계문학전집>을 독파하겠다며 '제1권'을 집어들었을 때의 트라우마가 떠오른다. 모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 제1권은 괴테의 <파우스트>였다. 덕분에 난 시작과 동시에 세계문학과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었고, 서로가 서로 없이도 잘 지낼 수 있는 것 같아 오랜 기간 보질 않았다. 그러다 보니 첫 마음은 희석되고, 나중에 만나도 처음 모습은 아니었기에 서먹서먹하게 되고 말았다. 이터널스 때문에, OTT 도장깨기 시리즈도 그렇게 되고 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된다. 물론 그것보다 더 큰 걱정은, 쿠키영상에서 이터널스 2편을 제작하는 게 기정사실인 것처럼 얘기하던데, 진짜 2편이 나와서 2편도 억지로 다 봐야 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거다. 1편은 세 번 끊어가면서 꾸역꾸역 봤는데, 2편은 얼마나 끊어가면서 봐야 할지, 벌써 걱정이 된다.


 

영화 본 얘기 말고 얼른 내가 보낸 연애사연이나 다루라고 하시는 분도 있을지 모르지만,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를 계속 섭취하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체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이렇게 아재의 입장에서 감상평을 적어두는 걸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같이 감상을 나누고픈 영화가 있으면-넷플리스와 디즈니 플러스에 있는 것 중에서- 댓글로 살짝 적어주셔도 좋다는 말씀을 드리며, 오늘은 여기까지! 기분 좋은 화요일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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