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못 푸는 문제 2탄, 쫄깃하고 찰진 해설

남자는 못 푸는 문제 2탄, 쫄깃하고 찰진 해설
지난 글 [남자는 못 푸는 문제 1탄, 피부에 와닿는 해설]을 발행하고 난 뒤, 한 남성대원이 계속해서 자기 얘기를 다뤄 달라고 사연을 보내고 있다. 그 대원의 사연부터 처리하고 출발해 보자.

"며칠 전에 여자친구가, 자기 친구 커플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 커플이 얼마 전 태국에 다녀왔다면서,
우리도 돈 모아서 중국이나 동남아에 다녀오자고,
가면 무슨 쇼핑하는 곳이 있는데 거기가 한국보다 싸고 어쩌고저쩌고.
전에도 그 친구 커플 얘기를 한 적이 있거든요,
친구 남친이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얘기였었는데,
아무튼 듣다보니 비교당하는 것 같아서 뭐라고 좀 했더니,
그 이후로 이틀 째 연락이 없습니다.
오늘까지 전화 안 받으면 찾아갈까 생각 중인데,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우선, 여자친구가 '친구 커플'의 얘기를 꺼낸다고 놀라거나 당황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여자가 그런 얘기를 하는 건, 남자들이 "학진이가 당구 1000 친다며?"라거나 "오대산 가봤어? 거기 진짜 괜찮던데." 따위의 이야기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냥 '그렇다더라' 정도의 의미가 8할을 차지하는 것이다.

저걸 남자의 '문제해결 프로세서'를 발동시켜 재해석하니 문제가 생긴다. '누가 어떻다더라'라는 단순한 정보전달의 말을, '나도 저래야 한다는 얘긴가?'라며 받아들이면 자연히 반발심이 고개를 든다. 사연에 나오는 "아무튼 듣다보니 비교당하는 것 같아서 뭐라고 좀 했더니"라는 부분을 보면, 카더라 통신을 배포하다가 남자친구에게 철퇴를 맞아 패닉상태에 빠졌을 여자친구의 눈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여자친구가 전달하고 진짜 이야기는 '우리도 여행 가자'라는 것이었음을 신속히 파악하길 권한다. 그걸 모른 채 찾아가서 "진짜 미안해. 좀 나와 봐."라는 이야기를 하거나, "왜 화났는지 말을 해줘. 그리고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한 거야? 논리적으로 생각해봐."라며 따져봐야 소용없다. 그대가 한 '잘못'은 "우리도 곧 여행가자, 응?"라는 여자친구의 말에 "너 된장녀냐? 그리고 비교하는 거 내가 기분 나쁘다고 했지?"라고 답한 것이다. 이정도 힌트를 줬으면 답을 맞출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자 그럼, 2탄 출발해 보자.

남자와 여자가 100일이 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남자와 여자 모두 만족스러웠고 즐겁게 헤어졌다.
103일째 되던 날 만나 데이트를 하고 역시 즐거웠다.

우선, 100일과 103일에 아무 차이가 없다는 것에 주목하자. 의미부여에 뛰어난 소질을 가진 여자의 경우, 그녀에게 100일은 남자들의 크리스마스와 같다. 산타클로스도 올 것 같고, 루돌프도 올 것 같고, 눈도 좀 내릴 것 같은, 마음이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된단 얘기다. 

그런 날엔 '즐거움'이 필요한 게 아니라, '서프라이즈' 또는 '어메이징' 또는 '언빌리버블'이 필요하다. 그게 부족할 때 여자는 '세일한다는 백화점에 들어가보니 가격표에 별 차이가 없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기분'이 되고 만다. 그냥저냥 무리 없이 괜찮기만 할 뿐, 지름신이 강림하기엔 부족할 때의 기분 말이다.

"'만족'이 그대의 생일 날 친구들이 생일축하 인사를 해 줄 때에 느낄 수 있는 거라면, '행복'은 친구들이 모여 케이크를 앞에 두고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하면 보다 이해가 쉬울 거라 생각한다.

누군가 "연애는 함께 하는 건데 왜 남자만 그런 걸 준비해야 하는 거냐!"라고 말한다면 그냥 아빠미소를 지어주는 것 말고는 대답할 말이 별로 없다. 나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힘차게 주장하지만, 내 100일엔 추워서 잘 펴지지도 않는 손가락으로 촛불 n개에 불을 붙였다. 난 내가 촛불이벤트를 받았다면, 공쥬님(여자친구)를 위해 촛불에 불을 붙이며 느꼈을 그 기쁨과 마음 가득 차오르는 뿌듯함을 경험할 수 없었으리라 생각하는데, 그대의 생각은 어떤가?

하나 더, 100일이라 하면 연애 초기로 이제 막 새 스마트폰을 샀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 때인데, 101일과 102일의 공백이 있다는 것이 좀 의아하다. 새 스마트폰을 이틀간 손에서 놓고 있을 사람을 없을 텐데 말이다.

데이트를 하는 중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여자가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자고 하여 커피를 마셨다.
그 후 9시쯤 헤어졌다.

 

103일에 한 저 데이트를 근거로, 앞선 100일에도 비슷한 데이트가 있었다는 걸 추측해 볼 수 있다. "데이트를 하는 중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라는 부분에서, 우리는 남자가 가진 데이트 계획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몇 시에 만날까? 세 시? 응. 거기서 봐."라며 약속을 잡고, 약속한 시간에 여자친구를 만난 이후엔 그냥 멀뚱멀뚱 있는 거다. 그러다가

"어디 갈까?"
"뭐 먹을까?"
"영화 볼래?"

따위의 '질문남 3단 콤보'를 구사한다. 수많은 커플 상품과 맛집 리뷰들, 갈만한 곳을 깨알같이 적어 놓은 블로거들의 게시물이 괜히 있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늘 '평소실력'으로 연애시험을 치른다. 예습과 복습을 하지 않았기에 점수는 당연히 형편없다.

"여자가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자고 하여 커피를 마셨다."라는 부분에선 남자의 수동적인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만약 이게 '저녁식사를 하려고 하다가 메뉴로 인한 문제가 생겼고, 그래서 여자가 그냥 커피나 마시자고 한 것'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다리가 아파 죽겠는데, 남자친구는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계속 거리에 세워두는 것에 짜증이 나 그냥 가까운 데 아무데나 들어가자고 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후 9시쯤 헤어졌다.'라는 부분을 통해, 우리는 헤어지기 전까지 둘 사이에 찬바람이 거세게 불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론, 하나부터 열까지 다 코치를 해야 하는 데이트에 여자가 짜증이 나 집에 들어가겠다고 했는데, 거기에 남자친구가 "왜? 일찍 들어가서 쉬려고?"라는 물음 따위를 던져 더 짜증이 났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집에 와서 남자가 여자에게 잘 들어갔냐고 문자를 했다.
여자가 남자에게 그렇다고 했다.

'나도 잘 도착했어.'라는 문자가 아니라 '잘 들어갔어?'라는 문자라는 것에서 일단 불편한 문제가 하나 보인다. 언젠가 한 여성대원이,

"남자친구가 지하철을 함께 타기에, 전 당연히 절 데려다 주는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종로 3가 지나는데 갑자기 남자친구가 잘 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무슨 얘긴가 했더니, 자기는 다음 역에서 내린대요.
뭔가 기분이 상한건가 싶어 왜냐고 물었더니,
거기가 딱 저희 집과 자기 집의 절반이라고 ㅋㅋㅋㅋㅋㅋ
그냥 아까 집에 가 버리던가 하지, 이건 뭐 일 보다가 그냥 바지 올린 기분이더라고요."

라는 사연을 보낸 적이 있다. 어린 애도 아닌데 혼자 집에 왜 못가냐고 하는 대원들이 있을 수 있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도록 하자.

여기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여자가 남자에게 그렇다고 했다." 라는 것으로 대화가 종료되었다는 것이다. 다음 이야기를 좀 더 보자.

그 후 여자가 잠을 자겠다고 하기에 남자가 알았다고 했다.

지난 글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여자의 말을 '요점 전달'로만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대략 위의 이야기를 대화로 옮기면 아래와 같다.

남자 - 집에 잘 들어갔어?
여자 - 응
(여자가 삐진 상황이라 단답을 함. 이후 한동안 대화 없음.
여자 본인도 이유를 알기 힘든 화가 난 까닭에
남자에게 서운해 하고 섭섭해 하다가, 문자를 보냄.)
여자 - 나 잘게.
남자 - 응

저 "나 잘게."는 헛스윙을 유도하기 위한 전력투구가 아니라, 남자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빈볼이다. 야구를 보다보면 투수가 타자에게 빈볼을 던졌을 경우, 타자는 화를 내며 투수를 향해 달려가거나 황당하다는 제스처를 취한다. 그런데 윗글의 남자친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응."이라고 대답한 것이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친구네 집에 놀러갔는데 친구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컴퓨터만 하고 있다. 딱히 할 일도 없고 뻘줌하기도 해서 그대는 친구에게 "나 그만 갈게."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친구는 "응."이라고 대답한다. '다음부터 다시는 여기 놀러 안 올 거야.'라고 다짐하게 되는 그 기분, 그게 바로 저 상황에 있는 여자의 기분이다.

2일 후 여자에게서 헤어지자는 통보가 왔다.
왜 여자는 헤어지자고 했을까?

여자를 외롭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2일간 둘은 만나지 않았으며, 별다른 연락도 하지 않은 상황. 남자친구에게 방목당한 여성대원들의 사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패턴이다.

가끔 "매일 만나거나, 매일 연락하지 않더라도 연인을 늘 생각하며 서로 신뢰한다면, 문제없는 것 아닌가요?"라고 묻는 남성대원들이 있다. 그 대원들에겐 난 내가 몇 어렸을 적 키웠던 병아리 '해피'이의 얘기를 좀 해주고 싶다. 난 수학여행에 가서도 해피를 생각할 정도로 녀석을 좋아했다. 하지만 수학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었던 까닭에 해피는 죽고 말았다. 다리와 목을 길게 쭉 뻗고 딱딱하게 굳은 채로 말이다. 생각과 신뢰만으론 외로움을 상쇄하기 어렵다는 것을 잊지 말길 권한다.


혹시 칡넝쿨이나 등나무가 어떻게 나무를 죽이는지 알고 있는가? 처음 녀석들이 나무를 감아 올라갈 때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도 칡이나 등나무는 덩굴식물이니, 저렇게 자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녀석들이 나무를 모두 감싸 올라간 뒤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칡넝쿨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등나무는 시계방향으로 나무를 감싸 올라간 뒤, 무성한 잎을 펼친다. 그럼 햇빛을 받지 못한 나무들은 모두 말라 죽게 된다.

'갈등'이라는 말이, 칡넝쿨을 뜻하는 '칡 갈(葛)'자와 '등나무 등(藤)'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길 바란다. 서로 반대방향으로 나무를 타고 오르는 까닭에 둘은 만날 수 없으며, 나무를 다 오르고 난 뒤에는 자신들이 지지하고 올랐던 나무를 죽게 만든다.

"아 진짜 여자들은 왜 저런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라는 말을 하는 건 쉽다. 문제가 어렵다고 백지를 제출해서야 되겠는가. 자격증 하나 따려고 해도 한두 달은 공부를 해야 하는 법인데, 연애만 아무 노력 없이 너무 쉽게 하려고 하지 말자. 어떻게 뭐가 다른지 천천히 살펴보고, 그 차이점 까지도 웃으며 포용할 수 있는 큰마음을 만들어 가보자. 너그럽게 감싸 주고 받아 줄 줄 아는 남자, 그런 남자야 말로 여자가 평생을 머물고 싶은 보금자리니 말이다.



▲ 남자에 대해 풀지 못한 문제가 있는 여성대원들은 normalog@naver.com 으로 사연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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