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사빠 남자가 여자를 좋아할 때 벌어지는 일들
몇 달 전, 집 근처에서 한 종교인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난 이사 할 집에 번호키 설치를 위해 들렀다가, 설치기사가 약속을 지연시키는 바람에 밖에서 서성이고 있던 중이었다. 낯선 동네를 배회하며 심심해하던 차에 그 종교인이 말을 걸어오기에 꽤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야기를 하던 중, 내가 올해에는 성당과 절에도 가보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자 종교인은 펄쩍 뛰며 그래선 안 된다고 했다. 난 갑자기 심각해지는 종교인의 모습이 흥미로워 짓궂은 질문들도 했다. 마리아가 처녀잉태를 했으니 부계족보는 효력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나, 신이 유한자냐 무한자냐에 대한 질문을 했다. 종교인은 다음에 또 이어서 이야기 하자고 했고 난 알았다고 했다. 종교인은 자리를 뜨며 내 전화번호를 물었다. 앞서 '다음에 또 이어서 이야기 하자'고 승낙한 것이 있기에 난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그 때부터였다. 종교인은 쉴새 없이 전화를 걸어왔다. 교회에 나갈 생각이 없다고 명확하게 밝혔지만 종교인은 교회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며 연락을 해 왔다. 물론 훼이크였다. 처음 이야기를 나눌 때 본인도 나와 같은 동네에 산다며 어디에 사냐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난 그 말에 낚여 우리 집 동호수를 알려줬었다. 종교인은 이사한 우리 집에 이사선물을 들고 찾아오기도 했으며, 지나가다 들렀다며 과일 등을 건네기도 했다. 자연스러운 선물인 척 했지만, 종교인은 주말이 되면 같이 교회에 나가자고 말하며 그게 밑밥임을 증명했다.
재미도, 감동도 없는 이 이야기를 길게 적은 까닭은 금방 사랑에 빠지는 남성대원들이 벌이는 일이 저 이야기 속에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떤 일을 벌이며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함께 살펴보자.
기사 작위를 받은 적도 없으면서 금사빠 남성대원들은 자꾸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려 한다. 호감 가는 상대(이것에 대한 문제는 세 번째 소제목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자)가 별자리에 관심을 보이면 금사빠 대원들은 그 날 저녁 집에서 천체망원경을 주문하거나 별자리 서적을 주문한다. 상대가 지나가는 말로 '심심하다' 따위의 말을 하면, 금사빠 대원들은 그것이 모두 자신의 책임인 양 죄책감을 느끼며 어떻게든 상대를 심심함으로부터 구해내려 노력한다.
위와 같은 모습이 적당할 때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찬 밤바람에 상대가 추울까 염려되어 겉옷을 벗어주는 행위는 자상함에 더 가까우니 말이다. 하지만 금사빠 대원들은 바람이 별로 차지 않은데도 기어코 겉옷을 벗어 상대에게 입히려 한다. 몇몇 대원은 겉옷을 벗어 주는 것도 모자라 속옷까지 벗어주려 하는 경우도 있다.(비유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한 금사빠 남성대원의 일주일간 행적을 잠시 들여다보자.
저것 외에도 그 대원은 영화 얘기가 나오자 당장 예매하겠다며 상대 앞에서 폰을 꺼내 영화를 고르도록 하기도 했고, 남해에 가본 적 없다는 상대의 말에 당장이라도 떠날 준비가 된 사람처럼 언제 시간 되냐고 묻기도 했다.
상대가 지독한 외로움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면, 금사빠 대원의 저런 모습에 감동할 수 있다. 상대 역시 금사빠라면 "그럼 모레 월차를 낼 테니까, 그날 우리 남해가요."라며 화답할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여자사람은 그렇지 않다. 밤낮 가리지 않고 폭풍처럼 들이대는 금사빠 대원에게 부담을 느낄 뿐이다. 바쁜 일이 생겨 답장을 못 보내자 혼자 몇 시간 내내 카톡을 보내는 남자에게, 여자는 무서움까지도 느낄 수 있다.
난 금사빠 대원들에게 기사 작위를 받고 난 후에(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예루살렘의 성 요한 구호기사단'이라는 곳은 귀족이 아니라도 가입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고 한다. 외국인도 받아주는지의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기사도 정신을 구현하길 권하고 싶다. 최초 한국에 '기사도 정신'을 번역한 사람은, 번역시 잠깐 졸았던 게 아닐지 추측해 본다. 때문에 그 부근에 있던 '하인 정신'을 '기사도 정신'에 섞어 서술하였고, 기사 작위를 받은 적 없는 사람들은 그 해석을 근거로 '기사도 정신'을 구현하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농담이고. 상대를 마음대로 둘시네아 공주로 설정한 뒤, 그녀를 위해 까닭 없는 고행을 하는 돈키호테의 전철을 밟지는 말잔 얘기다.
2008년의 일로 기억하는데, 지인 중 한 명이 펀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는 경제 위기설이 나돌고 있었기에 펀드를 시작하긴 알맞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인은 책과 강의를 통해 확실한 투자방법을 공부했다며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펀드를 시작했다. 그는
라고 말했다. 이후 그 지인이 한강을 여러 번 찾았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는 길게 적지 않겠다. 무작정 자신의 마음이 이끈다고 해서 일을 벌이면 지인과 같은 결과를 맞을 수 있다. 몇몇 대원들은
라고 이야기 하는데, 불꽃놀이 하고 싶다고 한밤중에 아파트 단지 내에서 폭죽을 터트리는 건 민폐 아닌가. 그러한 행동의 책임을 본인이 다 질 수 있다면 마음 가는 대로 해도 좋다. 들이대는 것은 자유니 말이다. 단,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들이대 놓고, 그 책임을 상대에게 묻진 말길 바란다. 마음 가는 대로 펀드를 시작한 지인은 스스로를 탓하며 한강을 찾았을 뿐이지만, 연애에서 마음 가는 대로 들이댔던 대원들은 상대를 탓한다.
잘 될 것 같은 말랑말랑한 관계도, 금사빠 대원들은 스스로 걷어차 버린다. 주말에 만나기로 했으면 그때까지 좀 기다리는 여유도 필요한데, 그새를 못 참고 "지금 잠깐 볼 수 있어?"라고 묻는 대원들이 수두룩하다. 감정이 마음에서 자랄 시간도 필요한 법인데, 상대에게 그런 시간도 주지 않은 채 "날 어떻게 생각해?"라고 성급하게 물어 관계를 망치는 경우도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한 번에 너무 많은 진도를 나가려다가 관계를 엎지르는 경우다. 이에 해당하는 대원들은 상대에게 끊임없이 확인받으려 한다. 그들의 연애는 멀리서 보면 '단계별 퀘스트 공략'처럼 보인다. 커피를 마셨으니 영화, 영화를 봤으니 놀이공원, 놀이공원에 갔으니 고백, 뭐 이런 단계를 밟는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엔 별 관심이 없는 듯, 오로지 '다음 만남과 빼야 할 진도'에만 집착한다. 금사빠 선배 대원 중엔 "시간 돼요? 언제 끝나요? 오늘 뭐해요? 만날래요?"만 묻다가 스러져간 대원이 많다는 걸 잊지 말자.
무분별한 사냥과 포획으로 야생동물을 멸종시키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금사빠 대원들은 무분별한 고백과 들이댐으로 아는 여자를 멸종시킨다. 그렇게 주변의 아는 여자를 다 멸종시킨 금사빠 대원은, 새로 이성을 알게 될 경우 그 이성을 향한 총력전을 펼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넘치는 에너지가 상대에게 고스란히 부담으로 환원되며, 새로운 이성 역시 자취를 감추게 된다.
헤어디자이너의 농담이, 헬스클럽 데스크 직원의 웃음이, 동료 여직원의 다정한 말이, 여자 후배의 연락이, 모두 연애를 할 목적을 가진 건 아니라는 걸 명심하길 바란다. 떨어뜨린 물건을 어느 여자사람이 주워주면, 이제야 인연을 만났다며 조만간 고백할 계획을 세우는 것이 금사빠 대원들의 특징이다. 물건을 주워준 것에 보답한다며 커피 마시자고 조르고, 번호를 묻고, 저녁에 잠깐 보자고 하고, 날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것. 일주일 내로 고백을 하겠다며 불태우는 그대의 열의가 아는 여자를 멸종시킨다.
이렇게만 적어 두면 비슷한 고민의 사연을 보낸 L씨가 오해할 것 같은데, L씨의 경우는 '아는 여자 멸종' 보다는 '과한 기사도 정신' 쪽이 그 원인에 가깝다. 여자 쪽에서 먼저 아는 맛집이 있다며 함께 식사 하자고 청하고, 자신의 추억들을 꺼내며 L씨와 맞춰보고, 집에 초대해 함께 빙수를 만들어 먹기도 했던 관계. 하지만 L씨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줄 기사가 되려 했고, 상대는 그런 L씨에게 부담을 느꼈다. 상대가 조금 거리를 두려고 하자 L씨는 갑자기 왜 그러냐며 상대에게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불평을 했고, 상대는 더욱 거리를 두기로 마음먹은 것이다.(모닝콜 하지 말라고 매뉴얼을 통해 지겹도록 얘기했는데 기어코 모닝콜을 하고는, 모닝콜의 고마움을 상대가 모르는 것 같다며 불평하는 대원들. 그냥 참 슬프다.)
이성이 조금만 친절하게 대하면 바로 연애로 이으려는 태도를 내려놓길 권한다. 연애엔 분명 몰입이 필요하지만, 과한 몰입은 부작용을 낳는다. 시험을 보고 난 후 아직 발표일이 되지도 않았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점수 확인 페이지에 들어가 '혹시나' 하며 확인하는 것처럼, 위에서 말한 '만나기 전에 망치기'를 저지르고 마는 것이다. 여성대원들을 위한 매뉴얼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식물이 빨리 자라길 바라며 물을 과하게 줬다간 뿌리가 썪고 만다. 화분에 싹이 났다고 해서 그 화분에 물을 퍼 붓는 일은 그만 두길 바란다.
서두에 소개한 '종교인 이야기'에서처럼 훼이크를 쓰는 대원들도 있다. 열심히 들이대다가 상대가 부담을 느껴 거리를 두려 하면,
라고 말하는 대원들. 그게 더 부담스럽다. 게다가 그런 얘기를 하는 대원들의 대부분은, 훼이크를 써서 그 위기를 모면해 놓고는 훗날 다시 "정말 난 안되는 거야?"라는 물음으로 관계의 종말을 향해 달려간다. 그렇게 주변의 이성들을 모두 멸종시킨 까닭에, 그는 다시 외로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마음이 가장 잔잔할 순간을 기억해 두길 바란다. 난 개인적으로 등나무 그늘에 앉아, 등나무 잎사귀 사이로 내려오는 빛망울을 손바닥으로 받았던 어느 오후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마음이 요란할 때면 그 순간을 떠올리는데, 그럼 머지않아 마음이 다시 잔잔해진다. 그대에게 금사빠 특유의 추격본능과 조급증이 찾아올 때면, 가장 평화로웠던 순간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독여 보길 권한다.
▲ 같은 아파트에 살고 출근시간 비슷해 자주 마주치는 걸 운명이라 우기시는 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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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집 근처에서 한 종교인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난 이사 할 집에 번호키 설치를 위해 들렀다가, 설치기사가 약속을 지연시키는 바람에 밖에서 서성이고 있던 중이었다. 낯선 동네를 배회하며 심심해하던 차에 그 종교인이 말을 걸어오기에 꽤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야기를 하던 중, 내가 올해에는 성당과 절에도 가보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자 종교인은 펄쩍 뛰며 그래선 안 된다고 했다. 난 갑자기 심각해지는 종교인의 모습이 흥미로워 짓궂은 질문들도 했다. 마리아가 처녀잉태를 했으니 부계족보는 효력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나, 신이 유한자냐 무한자냐에 대한 질문을 했다. 종교인은 다음에 또 이어서 이야기 하자고 했고 난 알았다고 했다. 종교인은 자리를 뜨며 내 전화번호를 물었다. 앞서 '다음에 또 이어서 이야기 하자'고 승낙한 것이 있기에 난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그 때부터였다. 종교인은 쉴새 없이 전화를 걸어왔다. 교회에 나갈 생각이 없다고 명확하게 밝혔지만 종교인은 교회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며 연락을 해 왔다. 물론 훼이크였다. 처음 이야기를 나눌 때 본인도 나와 같은 동네에 산다며 어디에 사냐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난 그 말에 낚여 우리 집 동호수를 알려줬었다. 종교인은 이사한 우리 집에 이사선물을 들고 찾아오기도 했으며, 지나가다 들렀다며 과일 등을 건네기도 했다. 자연스러운 선물인 척 했지만, 종교인은 주말이 되면 같이 교회에 나가자고 말하며 그게 밑밥임을 증명했다.
재미도, 감동도 없는 이 이야기를 길게 적은 까닭은 금방 사랑에 빠지는 남성대원들이 벌이는 일이 저 이야기 속에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떤 일을 벌이며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함께 살펴보자.
1. 기사도 정신.
기사 작위를 받은 적도 없으면서 금사빠 남성대원들은 자꾸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려 한다. 호감 가는 상대(이것에 대한 문제는 세 번째 소제목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자)가 별자리에 관심을 보이면 금사빠 대원들은 그 날 저녁 집에서 천체망원경을 주문하거나 별자리 서적을 주문한다. 상대가 지나가는 말로 '심심하다' 따위의 말을 하면, 금사빠 대원들은 그것이 모두 자신의 책임인 양 죄책감을 느끼며 어떻게든 상대를 심심함으로부터 구해내려 노력한다.
위와 같은 모습이 적당할 때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찬 밤바람에 상대가 추울까 염려되어 겉옷을 벗어주는 행위는 자상함에 더 가까우니 말이다. 하지만 금사빠 대원들은 바람이 별로 차지 않은데도 기어코 겉옷을 벗어 상대에게 입히려 한다. 몇몇 대원은 겉옷을 벗어 주는 것도 모자라 속옷까지 벗어주려 하는 경우도 있다.(비유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한 금사빠 남성대원의 일주일간 행적을 잠시 들여다보자.
1일 - 만나게 되어 영광이라며 카톡으로 상대를 찬양함.
2일 - 상대가 세계지리를 잘 모른다고 말한 것을 기억해 지구본을 사서 선물함.
3일 - 자신이 아는 맛집을 상대에게 소개하고자 저녁 약속을 잡음.
4일 - 근방에 있는 한적한 공원을 소개해 주겠다며 만나자고 함.
5일 - 공원에서 상대가 체리를 먹고 싶다고 한 것을 기억해 체리를 사서 찾아감.
6일 - 어제 상대가 좀 부담스럽다고 한 것에 대해 A4 세 장짜리 반성문을 써서 제출함.
7일 - 지나가다 엑세서리 파는 곳이 있어 엑세서리를 샀다며 만나자고 함.
2일 - 상대가 세계지리를 잘 모른다고 말한 것을 기억해 지구본을 사서 선물함.
3일 - 자신이 아는 맛집을 상대에게 소개하고자 저녁 약속을 잡음.
4일 - 근방에 있는 한적한 공원을 소개해 주겠다며 만나자고 함.
5일 - 공원에서 상대가 체리를 먹고 싶다고 한 것을 기억해 체리를 사서 찾아감.
6일 - 어제 상대가 좀 부담스럽다고 한 것에 대해 A4 세 장짜리 반성문을 써서 제출함.
7일 - 지나가다 엑세서리 파는 곳이 있어 엑세서리를 샀다며 만나자고 함.
저것 외에도 그 대원은 영화 얘기가 나오자 당장 예매하겠다며 상대 앞에서 폰을 꺼내 영화를 고르도록 하기도 했고, 남해에 가본 적 없다는 상대의 말에 당장이라도 떠날 준비가 된 사람처럼 언제 시간 되냐고 묻기도 했다.
상대가 지독한 외로움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면, 금사빠 대원의 저런 모습에 감동할 수 있다. 상대 역시 금사빠라면 "그럼 모레 월차를 낼 테니까, 그날 우리 남해가요."라며 화답할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여자사람은 그렇지 않다. 밤낮 가리지 않고 폭풍처럼 들이대는 금사빠 대원에게 부담을 느낄 뿐이다. 바쁜 일이 생겨 답장을 못 보내자 혼자 몇 시간 내내 카톡을 보내는 남자에게, 여자는 무서움까지도 느낄 수 있다.
난 금사빠 대원들에게 기사 작위를 받고 난 후에(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예루살렘의 성 요한 구호기사단'이라는 곳은 귀족이 아니라도 가입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고 한다. 외국인도 받아주는지의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기사도 정신을 구현하길 권하고 싶다. 최초 한국에 '기사도 정신'을 번역한 사람은, 번역시 잠깐 졸았던 게 아닐지 추측해 본다. 때문에 그 부근에 있던 '하인 정신'을 '기사도 정신'에 섞어 서술하였고, 기사 작위를 받은 적 없는 사람들은 그 해석을 근거로 '기사도 정신'을 구현하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농담이고. 상대를 마음대로 둘시네아 공주로 설정한 뒤, 그녀를 위해 까닭 없는 고행을 하는 돈키호테의 전철을 밟지는 말잔 얘기다.
2. 만나기 전에 망치기.
2008년의 일로 기억하는데, 지인 중 한 명이 펀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는 경제 위기설이 나돌고 있었기에 펀드를 시작하긴 알맞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인은 책과 강의를 통해 확실한 투자방법을 공부했다며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펀드를 시작했다. 그는
"기다릴 수 없어. 하이리스크 하이 리턴이야. 내가 공부한 걸 적용해 봐야지."
라고 말했다. 이후 그 지인이 한강을 여러 번 찾았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는 길게 적지 않겠다. 무작정 자신의 마음이 이끈다고 해서 일을 벌이면 지인과 같은 결과를 맞을 수 있다. 몇몇 대원들은
"그렇게 따지고 계산해서 하는 게 연애 인가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솔직하게 심정을 전하면 안 되는 건가요?
밀고 당기고, 뭐 그런 거 싫어요. 전 그런 거 없이 연애 할래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솔직하게 심정을 전하면 안 되는 건가요?
밀고 당기고, 뭐 그런 거 싫어요. 전 그런 거 없이 연애 할래요."
라고 이야기 하는데, 불꽃놀이 하고 싶다고 한밤중에 아파트 단지 내에서 폭죽을 터트리는 건 민폐 아닌가. 그러한 행동의 책임을 본인이 다 질 수 있다면 마음 가는 대로 해도 좋다. 들이대는 것은 자유니 말이다. 단,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들이대 놓고, 그 책임을 상대에게 묻진 말길 바란다. 마음 가는 대로 펀드를 시작한 지인은 스스로를 탓하며 한강을 찾았을 뿐이지만, 연애에서 마음 가는 대로 들이댔던 대원들은 상대를 탓한다.
"(연락이 닿질 않자)우리가 어떤 사인지 혼란스럽네. 뭐가 뭔지 모르겠다."
"부담이 될 줄 알면서도 그런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난, 마음이 편했을까?"
"난 그냥 커피 한 잔 마시자고 한 것뿐이야. 이게 문제가 되나? 내가 뭘 잘못했지?"
"부담이 될 줄 알면서도 그런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난, 마음이 편했을까?"
"난 그냥 커피 한 잔 마시자고 한 것뿐이야. 이게 문제가 되나? 내가 뭘 잘못했지?"
잘 될 것 같은 말랑말랑한 관계도, 금사빠 대원들은 스스로 걷어차 버린다. 주말에 만나기로 했으면 그때까지 좀 기다리는 여유도 필요한데, 그새를 못 참고 "지금 잠깐 볼 수 있어?"라고 묻는 대원들이 수두룩하다. 감정이 마음에서 자랄 시간도 필요한 법인데, 상대에게 그런 시간도 주지 않은 채 "날 어떻게 생각해?"라고 성급하게 물어 관계를 망치는 경우도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한 번에 너무 많은 진도를 나가려다가 관계를 엎지르는 경우다. 이에 해당하는 대원들은 상대에게 끊임없이 확인받으려 한다. 그들의 연애는 멀리서 보면 '단계별 퀘스트 공략'처럼 보인다. 커피를 마셨으니 영화, 영화를 봤으니 놀이공원, 놀이공원에 갔으니 고백, 뭐 이런 단계를 밟는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엔 별 관심이 없는 듯, 오로지 '다음 만남과 빼야 할 진도'에만 집착한다. 금사빠 선배 대원 중엔 "시간 돼요? 언제 끝나요? 오늘 뭐해요? 만날래요?"만 묻다가 스러져간 대원이 많다는 걸 잊지 말자.
3. 아는 여자란 없는 것인가.
무분별한 사냥과 포획으로 야생동물을 멸종시키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금사빠 대원들은 무분별한 고백과 들이댐으로 아는 여자를 멸종시킨다. 그렇게 주변의 아는 여자를 다 멸종시킨 금사빠 대원은, 새로 이성을 알게 될 경우 그 이성을 향한 총력전을 펼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넘치는 에너지가 상대에게 고스란히 부담으로 환원되며, 새로운 이성 역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제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살갑게 대한 것은 그녀가 먼저이며
친하게 지낼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든 것도 그녀인데,
왜 갑자기 쌀쌀맞게 변했는가에 대한 겁니다."
살갑게 대한 것은 그녀가 먼저이며
친하게 지낼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든 것도 그녀인데,
왜 갑자기 쌀쌀맞게 변했는가에 대한 겁니다."
헤어디자이너의 농담이, 헬스클럽 데스크 직원의 웃음이, 동료 여직원의 다정한 말이, 여자 후배의 연락이, 모두 연애를 할 목적을 가진 건 아니라는 걸 명심하길 바란다. 떨어뜨린 물건을 어느 여자사람이 주워주면, 이제야 인연을 만났다며 조만간 고백할 계획을 세우는 것이 금사빠 대원들의 특징이다. 물건을 주워준 것에 보답한다며 커피 마시자고 조르고, 번호를 묻고, 저녁에 잠깐 보자고 하고, 날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것. 일주일 내로 고백을 하겠다며 불태우는 그대의 열의가 아는 여자를 멸종시킨다.
이렇게만 적어 두면 비슷한 고민의 사연을 보낸 L씨가 오해할 것 같은데, L씨의 경우는 '아는 여자 멸종' 보다는 '과한 기사도 정신' 쪽이 그 원인에 가깝다. 여자 쪽에서 먼저 아는 맛집이 있다며 함께 식사 하자고 청하고, 자신의 추억들을 꺼내며 L씨와 맞춰보고, 집에 초대해 함께 빙수를 만들어 먹기도 했던 관계. 하지만 L씨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줄 기사가 되려 했고, 상대는 그런 L씨에게 부담을 느꼈다. 상대가 조금 거리를 두려고 하자 L씨는 갑자기 왜 그러냐며 상대에게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불평을 했고, 상대는 더욱 거리를 두기로 마음먹은 것이다.(모닝콜 하지 말라고 매뉴얼을 통해 지겹도록 얘기했는데 기어코 모닝콜을 하고는, 모닝콜의 고마움을 상대가 모르는 것 같다며 불평하는 대원들. 그냥 참 슬프다.)
이성이 조금만 친절하게 대하면 바로 연애로 이으려는 태도를 내려놓길 권한다. 연애엔 분명 몰입이 필요하지만, 과한 몰입은 부작용을 낳는다. 시험을 보고 난 후 아직 발표일이 되지도 않았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점수 확인 페이지에 들어가 '혹시나' 하며 확인하는 것처럼, 위에서 말한 '만나기 전에 망치기'를 저지르고 마는 것이다. 여성대원들을 위한 매뉴얼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식물이 빨리 자라길 바라며 물을 과하게 줬다간 뿌리가 썪고 만다. 화분에 싹이 났다고 해서 그 화분에 물을 퍼 붓는 일은 그만 두길 바란다.
서두에 소개한 '종교인 이야기'에서처럼 훼이크를 쓰는 대원들도 있다. 열심히 들이대다가 상대가 부담을 느껴 거리를 두려 하면,
"연애하길 바라고 이러는 거 아니야.
그냥 네가 좋고, 너에게 해주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 그러는 거야.
부담은 갖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냥 그것만으로도 난 만족해."
그냥 네가 좋고, 너에게 해주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 그러는 거야.
부담은 갖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냥 그것만으로도 난 만족해."
라고 말하는 대원들. 그게 더 부담스럽다. 게다가 그런 얘기를 하는 대원들의 대부분은, 훼이크를 써서 그 위기를 모면해 놓고는 훗날 다시 "정말 난 안되는 거야?"라는 물음으로 관계의 종말을 향해 달려간다. 그렇게 주변의 이성들을 모두 멸종시킨 까닭에, 그는 다시 외로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마음이 가장 잔잔할 순간을 기억해 두길 바란다. 난 개인적으로 등나무 그늘에 앉아, 등나무 잎사귀 사이로 내려오는 빛망울을 손바닥으로 받았던 어느 오후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마음이 요란할 때면 그 순간을 떠올리는데, 그럼 머지않아 마음이 다시 잔잔해진다. 그대에게 금사빠 특유의 추격본능과 조급증이 찾아올 때면, 가장 평화로웠던 순간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독여 보길 권한다.
▲ 같은 아파트에 살고 출근시간 비슷해 자주 마주치는 걸 운명이라 우기시는 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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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돈 뺏긴 동생을 위한 형의 복수
새벽 5시, 여자에게 "나야..."라는 전화를 받다
컴팩트 디카를 산 사람들이 DSLR로 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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