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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옛 연애 이야기로 괴롭히고 구속하는 남친, 어떡해?

by 무한 2013. 12. 5.
옛 연애 이야기로 괴롭히고 구속하는 남친, 어떡해?
난 L양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서로 잘 맞지 않는 것, 그러니까 서로가 다르다는 점은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빠와 저는 참 다르지만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친이 조금 더 선을 넘어 L양의 뺨을 때리면, 그때는 "폭력을 사용해 감정을 해소하는 '나와 다른 모습'을 보았습니다." 따위의 이야기를 할 생각인가?

L양이 한 이야기가 적용되려면, 첫째, 상대가 사람다워야 한다. 여자친구에게 "걔랑 잤냐?"라며 비아냥거리고 "싸 보인다."라고 말하는 남자는 사람으로 안 보는 게 맞다. 둘째, 목적지가 같아야 한다. 함께 차를 타고 같은 곳을 가는데, 가는 도중 추위를 느끼는 정도가 다르기에 히터를 틀지 말지 정도의 갈등이 있는 건 괜찮다. 하지만 서로 가려는 목적지가 다르면 필연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당장 즐겁기에 하하호호 하며 갈지 모르지만, 갈림길이 나왔을 때

"어? 나 거기로 가는 거 아닌데?"


하는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L양의 남자친구는 결혼하면 L양의 고양이는 분양해 버리고, 자기 직장 근처로 직장을 옮기라고 하지 않는가. 또 현재 그가 L양을 대하는 태도로 봐서는 혹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결혼 직후 L양을 파출부 취급할 것으로 보이는데, L양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1. 다들 반대할 땐 돌다리도 두드려 보자.


모두가 'NO'라고 말할 때 혼자 'YES'한다고 해서, 그게 다 용기 있는 행동은 아니다. L양의 모든 지인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할 때엔 분명 뭔가 문제가 있는 거다. 사실 L양도 스스로 느끼고 있다. 하지만 '착한여자 콤플렉스'의 절정을 달리고 있는 까닭에, 안타깝게도 이 시궁창 같은 연애를 무슨 순교의 한 과정쯤으로 여기고 있다.

우리끼리니까 빙빙 돌지 말고 바로 가자. 스킨십을 하고 난 후에

"전 남자친구는 어떻게 했어? 걔는 잘 했어?"


라고 묻는 남자는 정상이 아니다.

"오빠 예전 여자친구가 바람이 나서 헤어졌대요.
그래서 오빠가 '다른 남자'와 관련된 부분에 유독 이상한 태도를 보이긴 했어요."



그런 얘기를 하며 남자친구를 이해하려 들다가는 L양도 정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것 때문에 제가 헤어지려고도 했었거든요.
그런데 헤어지자고 한 날 오빠가 전화해서 절 계속 달래줬어요.
예전 상처 때문에 자기에게 그런 모습이 생긴 것 같다고,
저더러 고쳐달라고 하더라고요.
전 오빠를 좋아하는 만큼 노력하겠다고 마음먹고 다시 사귀게 되었어요."



미안하지만 이미 살짝 좀 벗어난 듯 보인다. 미안하다는 사과도 아니고 고치겠다는 다짐도 아닌, 그저 말 한 마디 해서 갚은 천 냥 빚. 그렇게 위기를 넘길 수 있다는 걸 깨달은 남자는 앞으로도 계속 그런 식으로 나오게 된다는 걸 꼭 기억해 두길 바란다.


2. 이게 다 구남친 때문이다.


L양은 완전히 쪼그라들어있다. 이번 연애 이전에 한 '5년의 연애' 때문이다. L양의 구남친은 고소득 고학벌의 남자였고, 딱 L양과 차이나는 만큼 철저하게 L양을 무시했다.

"집안도 학벌도 별로인 여자를 내가 사귀어주고 있다."


사귈 때 구남친이 지인들에게 자랑스럽게 한 얘기다. L양과 구남친은 고만고만하던 꼬꼬마시절에 만났다. 그때는 순수하던 시절이라 서로 재고 따지지 않으면서도 잘 사귀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남친이 달라졌다. 자꾸 L양과 자신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는 말을 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내가 너와 사귀어주고 있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그렇게 '갑-을'관계가 되고 난 이후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다. 그와 연애를 하며 L양은 '나는 못난 사람,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전 남자친구와 연애를 끝내고 제게 남은 건, 
'나 같은 사람이 결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에게 끊임없이 
'너와 결혼하는 건 엄청 손해 보는 일이지만 감수하겠다'
라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이쯤에서 공개해야 할 것 같은 대반전은, L양이 남자들에게 대시를 받는 외모를 지니고 있으며 연봉도 이십대 후반의 평균 이상이라는 점이다. (혹 이 부분을 공개한 것이 문제가 된다면 부분삭제 하겠습니다. 각색을 요구하신 부분이 아니라서 공개합니다. 연봉은 신청서에 적힌 내용이며, 외모는 성형 하라는 이야기를 하는 현남친 때문에 -객관적인 판단을 부탁한다며-동봉해주신 사진 세 장과 '타 이성의 대시' 부분을 참고하였습니다.) 

세뇌가 무섭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위력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전 연애의 망령이 여전히 L양에게 붙어 괴롭히고 있다. 현남친에게

"오빠한테 방해될 것 같으면 내가 블라블라."


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만 봐도, L양이 남자를 사귀는 게 아니라 모시려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말로는 취업준비 한다면서 게임 캐릭터 레벨만 올리고 있는 최모씨(34세, 무직)를, L양이 남자친구를 대하듯 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가? "오빠 자기소개서 쓰는데 방해 되니까 내가 자꾸 귀찮게 하지 않을게."라며 납작 엎드려서 대하면, 나중엔 "너 때문에 지금 오타 하나 났다. 아 짜증나. 왜 갑자기 톡 보내고 난리야?"하는 반응만 돌아올 뿐이다. 그런 남자에게 "야, 너는 카톡 보낼 때 예고하고 보내냐? 너 좀 모자라냐?"라고 말은 못 하고, 그저 "미안해. 이따 오빠가 한가할 때 연락해줘."하고 있으면 진짜, 하아….


3. 이걸 가지고 고민하는 시간이 아깝다.


현남친 문제는 사실 고민할 가치도 없는 일이다. 난 어제 소고기 먹었는데, 소고기 먹고 이런 고민을 함께 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소고기가 내게 주고 있을 에너지가 아깝다. 이럴려고 먹은 소고기가 아닌데.

현남친은 어느 동호회에나 한 명쯤 있기 마련인 '찝쩍남'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대놓고 자기 패를 다 보여주는'초보 찝쩍남'은 아니다. 동호회 생활을 하루 이틀 한 게 아니라면, 레벨업한 찝쩍남은 이제 사람들에게 지탄받지 않는 나름의 찝쩍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마련한 두더지 굴 같은 레퍼토리는 다들 비슷비슷하다, 그 레퍼토리를 보자.

ⓐ소개팅에서의 퇴짜 등을 핑계로 자신이 '인기 없는 남자'인 것 같다는 얘기를 함. 
->남자는 여자가 그 말에 대해 "그렇지 않은데…."라고 답하길 기다림.
ⓑ왜 연애를 안 하냐고 묻거나, 소개팅을 시켜주겠다는 말을 꺼냄.
->실제로는 그럴 생각이 없으면서 지속적으로 저 이야기를 하며 떠봄.
ⓒ장난과 칭찬이 섞인 말들을 늘어놓으며 여자를 휘두름.
->"잘 웃는다, 배울 게 많다, 알면 알수록 신비롭다, 같이 있으면 기분이 좋다." 등.
ⓓ여자가 어디까지 허용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스킨십을 하거나 애칭을 씀.
->그게 전부 '좋은 감정'때문이라고 말은 하지만 확실한 관계정립은 하지 않음.
ⓔ여자에게도 마음이 생겨 관계정립을 요구하면 '비밀연애'를 제안함.
->핑계는 가지가지. 여자가 부정하지 못하도록 '조심스레, 천천히'를 강조함.



자기 마음이 어떤지는 절대 먼저 얘기하지 않으면서, 스킨십을 시도해가며(손잡기, 깨물기, 어깨동무하기, 껴안기, 뽀뽀하기 등) 반응을 살핀다거나, "나는 어떤 사람인 것 같냐. 나는 남자로 어떠냐?"는 식의 질문으로 떠본다거나, "내가 이거이거하면 내 소원 들어줘. 내가 오늘 이거 다 하면 뽀뽀해줘."등의 장난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는 말들을 하는 남자. 그런 남자를 '오빠가 날 웃게 해주고 편하게 해 주니까.'라며 정신줄 놓고 앉아서 박수만 치다간, 얼마 지나지 않아

"자, 공연 다 끝났으니까 돌아가세요.
다음 공연 시작해야 하니까 방청석에 계속 앉아있지 마시고 그만 가세요."



라는 얘기를 듣게 될 수 있다. 갑자기 다가와서 폭풍연락하며 떠보다가 "내가 이거 하면 나 뽀뽀해줘."라고 말하는 남자에겐

"지금 이거, 캡처했습니다.
한 번 더 이러시면 게시판에 올리겠습니다."



라고 대답해 주길 바란다. 두더지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밝은 곳'이니 말이다.


L양은 종교란에 불교라고 적어주셨는데, 그렇다면 지금 남자친구와 다툰 건 부처님의 은혜다. 지금 당장 감사의 108배라도 해야 할 정도로 은혜로운 일이다. 이번 기회에 완벽하게 정리하길 바란다. 물론 그게 쉽진 않을 것이다. 대개 이런 경우 '구남친의 역습'이 시작되니 말이다. 그간의 데이터를 보면, 역습은 아마

"잘 헤어진 것 같다. 애당초 넌 이럴 생각이었나 보네."
"비밀연애하길 잘했지. 공개연해 했으면 나만 당할 뻔 했네."
"역시 넌 그냥 싼 여자였네. 원하던 대로 남자들 만나서 잘 지내봐."



등의 말로 시작될 것이다. 거기에 반응하면 반응할수록 그는 올무처럼 조여 올 테니, 단 한 마디도 대꾸하지 말고 차단과 스팸등록을 활용해 대처하길 권한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L양은 과거의 기억 때문인지 사람들과 멀어지거나 연이 끊기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그래서 뭐 하나 버리지 못하고 일단 간직하며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이끌어 하려는 것 같은데, 그러다보면 고물을 집에 쌓아두고 사는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온- 할머니처럼 될 수 있다. 버릴 건 버리고, 정리할 건 정리하자. 방금 내가 낸 비뚤어진 발자국이 못내 아쉬워 다음 발을 못 내딛고 있으면, 계속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과감히 다음 발을 내딛자. 아직 살아보지 않은 행복한 날들이, L양의 앞에 깃털처럼 많이 남아 있다.



"제가 더 노력하고 조심하는 걸로는 안 되나요?" 여기서 더? 무슨 목줄 같은 거 하고 만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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