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과 공포의 이야기들을 하게 될 것 같으니 경어로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안정감 있는 연애를 하고 싶다면, 우선 자신의 생활이 안정되어야 합니다. 아래의 세 가지 지점을 먼저 돌아보시길 권합니다.
- 자기 삶을 책임지고 있는가?
- 스스로에게 80점 이상 줄 수 있는 하루하루를 보내는가?
- 하고 싶거나 되고 싶은 것들을 위해 노력하는가?
저 세 가지 질문 중 둘 이상에 ‘아니요’라는 대답을 하는 상황이라면, 옆에 티타늄으로 만들어진 남친을 갖다 놔도 안정감을 느낄 순 없습니다. 그건 마치 한 다리로만 서 있는 것과 같기에, 그 힘듦을 누가 나눠 감당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남에게 일단 기대려 드는 까닭에 상대 입장에선 버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가 느낄 부담은, 집 없는 친구가
“오늘 만날래? 근데 나 오늘 너희 집에서 좀 자도 되나?”
라고 묻는 것과 같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한두 번이야 재워줄 수 있겠지만, 상대가 만나자고 할 때마다 저런 이야기를 덧붙인다면, 결국 이쪽에서도 상대를 피하고 싶어지지 않겠습니까? 남친이 K양을 점점 함부로 대하며 상처 주는 말들로 밀어내려 하는 건, 바로 K양이 저 ‘집 없는 친구’의 모습만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 연애를 ‘도피처’와 ‘변명’으로 사용하는 모습.
빙빙 안 돌리고 곧장 질러가겠습니다. K양에게 급한 건 첫째도 취직, 둘째도 취직, 셋째도 취직입니다. 그것 외에는 당장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마시길 권합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취직 후에 하시고,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취직 후에 가시길 바랍니다.
“저도 알아요. 하지만 남친이 제게 ‘사랑 받고 있다는 느낌’을 느끼게 해줘야 저도 안정감을 느끼며 집중할 수 있거든요. 그게 안 되니까 자꾸 감정소모를 하게 되고 제가 해야 할 공부도 못 하고 있는 거라고요.”
저는 겨우 사연과 카톡대화를 읽었을 뿐인데도, K양의 그 억지 주장에 가슴이 답답하고 손발이 떨려왔습니다. 취업준비만 근 3년입니다. 둘 다 취준생일 때 만나 남친은 이미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K양은 그 상황을 두고 뭐라고 얘기하고 계십니까?
“남친은 졸업하자마자 그냥 아무 회사에 입사한 케이스고, 전 쌓아온 스펙이 있어서 이것저것 준비를 하다가 진로를 바꾸게 된 경우입니다. 지금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고요. 공부에는 정말 이런 감정소모가 큰 독인데….”
혹시 자신이 없지 않으십니까? 공부를 한다고 해서 잘 될 거란 보장이 확실한 것도 아니고, 공부해서 취업했는데도 이후 형편이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닐지 모른다는 불안이 있지 않으십니까? K양이 공부를 미루고 있는 걸 보면, 연애 때문에 감정소모를 하느라 공부를 못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나중에 핑곗거리를 만들기 위해 자꾸 ‘연애 탓’을 해나가고 있는 사람 같습니다.
두 사람이 또 화해하고 풀어져서 잘 지낼 때를 보시기 바랍니다. K양은 상대에게 로또 얘기, 회사 여직원 예쁘냐는 얘기, 프사 커플 사진으로 바꾸라는 얘기, 나한테 돈 쓰기 아깝냐는 얘기 등을 할 뿐입니다. 평소 저런 얘기를 하다가 K양이 또 ‘안정감’이 없어서 공부를 못하고 있다며 악을 쓸 때, 남친이 한 말도 보시기 바랍니다.
“안정감은 핑계고, 넌 그냥 공부에서 손 놓고 있는 거잖아.”
저런 대답을 들어 또 너무 상처가 되고 이 연애에는 마음을 기댈 수 없다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는데, 안타깝게도 남친의 저 말은 ‘사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응원, 격려, 위로는 널브러져 있는 사람의 몫이 아닙니다.
남친이 너무 차가우며 그의 말이 상처가 된다는 말을 하기 전에, K양이 남친에게 보여준 모습이 어땠는지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남친은 K양에게
“넌 하루 종일 인터넷 쇼핑하고, 또 커피숍 가서 커피나 마시고 있잖아. 그렇게 대충할 거면 눈을 낮춰서 다른 곳 취직하든지, 아니면 진짜 제대로 하든지 해.”
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고시생이나 취준생들에겐 그 시간이 힘겨운 게 맞습니다. 곳곳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또래에 비해 늦은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지뢰처럼 깔려 있고, 어쩌다 그 지뢰를 하나 밟으면 자신이 잉여인간 같다는 패배감에까지 젖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늘 응원과 격려와 위로만 받아야 하는 건 아닙니다. 고시생이나 취준생 중엔, 하루 24시간 중 공부에 집중하는 시간이 네 시간도 채 안 되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입니다. 또, 오히려 고시생이나 취준생이라는 형편 때문에 자신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 뒤, 보통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여유와 보상을 챙겨주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로 공부하는 시간이나 양은 얼마 안 되는데, 자신이 공부에 혹사당하고 있다고 여긴 나머지 ‘힐링’부터 찾아나서는 겁니다.
저런 밸런스가 잘 맞춰져 있는지 아니면 무너져 있는지를 어떻게 구분 하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주변의 평가가 가장 정확합니다.”
라는 대답을 드리고 싶습니다. 똑같은 고시생 연인을 둔 대원이라 해도, 그들의 상대에 대한 평가는
“상대는 정말 집중하고 노력했는데도, 고시 운이 없는지 합격에서는 멀어졌습니다.”
“연락할 때마다 당구장이나 술집이니, 시험에 합격할 리가 없었습니다.”
라는 것으로 갈리곤 합니다. 저는 K양이 후자에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두 시간도 집중하지 못한 채 “넌 왜 나한테 연락 안 해?”라고 물을 정도면, 심각한 겁니다. K양과 남친은 그 내용이 비록 다툼이긴 하지만 하루종일 카톡을 하던데, 고시생이나 취준생의 사연에서 이렇게까지 연락을 많이 하는 사연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카톡을 보며 제가
‘이 분은 대체 언제 공부하는 거지?’
라는 의문을 품었을 정도입니다. 둘의 카톡대화중 K양이 “그럼 매일 하루 종일 공부만 해야 하냐?”라는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나오던데, 하루 중 공부에 집중하는 시간이 과연 몇 시간이나 되는지 한 번 체크해 보시길 권합니다. 또, K양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힘든 건지, 아니면 실제로 공부하느라 그렇게 힘이 든 건지도 꼭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정말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사람이, 커플 아이템 없어서 불만, 여행 못가서 불만, 남친이 선물 안 사줘서 불만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미안하지만, 그런 건 뭔가를 해야 한다는 막연한 다급함만 가지고 있을 뿐, 실제로는 ‘이미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자유롭게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 그냥 즐기고 싶다’는 태도로 공짜 행복을 바라는 사람들이 보이는 모습일 뿐입니다.
3. 취업을 ‘나중 얘기’로만 두고 있으면, 계속 그럴 겁니다.
K양 남친의 입에서는 이제,
“넌 아직 정신 못 차렸어.”
“개답답.”
“뭐라도 하고 그런 소리를 해.”
라는 말들이 자연스레 나옵니다. K양은 제게
“남친은 제가 갖고 싶은 물건을 콕 찝어서 말해줘도, ‘왜 넌 항상 갖고 싶다는 요구만 하냐’고 합니다. 사달라고 할 때마다 자기가 다 사줘야 하냐고. 생일선물도 정말 엎드려 절 받기로 겨우 받아냈고…. 저는 기념일 날 선물도 준비하는데요.”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아주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자친구에 대해 ‘개답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머리핀 하나라도 사 주고 싶은 마음이 존재하겠습니까.
그에게 K양은 그저, ‘짐’으로 여겨질 뿐입니다. 눈을 낮춰 취직을 하라고 권해도 그건 싫다고 하고, 그럼 원하는 곳에 취업할 수 있도록 공부를 하라고 하니 ‘너 때문에 안정감이 없어서 공부가 안 된다’는 답만 돌아오자, 그는 결국 반쯤 포기하게 된 것 같습니다.
“내가 갑자기 연락 끊으면 그건 네 탓인 줄 알아.”
“내가 없어져 버리면 넌 편하겠지?”
“이렇게 마지못해 연락하느니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하나도 안 무섭습니다. K양이 저러는 건 이젠 거의 주별 행사처럼 벌어지는 푸닥거리라, 상대는 이제 그냥 땀 흘리는 모양의 이모티콘 하나 보내 놓고 침묵을 지키면, 다음 날 K양이 알아서
“네 대답은 뭔데? 무슨 말이라도 해야 될 거 아냐.”
라며 말을 걸어올 걸 알고 있습니다. 그는 K양이 이별통보를 하고 돌아서는 척 하다가도 다시 돌아올 것도 알고 있고, 다시 연락 안 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뒤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먼저 사과하며 말을 걸어올 걸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대꾸를 하면 K양이 계속 감정적으로 의존하며 탓하는 말만 늘어놓을 거라는 것도 알고, 연락과 리액션에 노력해봐야 어젯밤 꿈 꾼 얘기 같은 것만 계속 듣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연애를 지속하든 헤어지든,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취업’입니다. 취업을 ‘나중 얘기’로 둔 채 수천 마디의 말을 해봐야 아무 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K양은 계속해서 지금처럼 남친이 혹시 회사 여직원에게 마음을 두고 있어서 이쪽에게 소홀한 건 아닐까 하는 집착을 하거나 “내가 없어져 줄게.”라는 이야기만 하고 있을 거고, 남친은 “개답답.”이라는 대답만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K양은 말합니다.
“얘 이전에 사귀었던 남자들은 기념일은 물론이고 아무 날도 아닌 날마저 의미를 부여하며 선물도 사주고, 커플링도 먼저 맞추자고 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정반대의 사람과 연애를 하려니 너무 힘이 듭니다.”
캠퍼스 생활을 즐기며 룰루랄라 하던 시절과, 계란 한 판의 나이가 된 지금을 단순비교하면 곤란합니다. 어릴 땐 어리니까 이해받을 수 있는 것들이 있는 거고, 또 가능성을 그저 가능성으로만 두고 있어도 문제가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2년, 3년, 4년이 지나도록 아무 것도 이룬 게 없으면, 그게 그냥 그 사람의 한계처럼 보일 수 있는 법입니다.
다이어트를 한다는 사람이 매일 두 시간씩 걸어도 살이 안 빠지면 체질의 문제로 볼 수 있겠지만, 치맥 먹고 있으면서 “네가 응원을 해줘야 내가 열심을 낼 텐데, 아무 호응도 안 해주니까 다이어트 할 맛이 안나. 안정감이 없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말을 더 섞는 게 피곤하기만 할 뿐인 일로 보이지 않겠습니까?
“여자친구인 제가 울면서 얘길 하는데, 자기도 지쳤다며 한숨 쉬는 게 어이없더라고요.”
다시 말하지만, 그에게 K양은 여자친구라기보다는 ‘짐’에 가깝습니다. 그가 K양 덕분에, 또는 이 연애 덕분에 미소 지을 수 있는 순간이 일주일에 몇 번 되는지 세어 보시기 바랍니다. 감정싸움만 할 뿐 한 번도 웃지 않고 넘기는 주도 있을 정도입니다. 이 정도면 정말 심각한 겁니다.
“정말 내가 잘 되길 바라는 거라면, 잔소리만 할 게 아니라 커뮤니티 같은 곳에 가서 자료라도 찾아봐 줄 수 있는 거 아니야?”
단언컨대, 자료는 충분할 겁니다. 요즘 시대에 자료가 없어서 공부 못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공부를 진득하게 못 하는 이유는 ‘선택과 집중의 실패’ 때문이라는 걸 K양도 사실은 느끼고 있을 테니, 연애 탓 상대 탓을 하느라 올해도 그냥 넘기지 마시고, 꼭 ‘선택과 집중’에 성공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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