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군생활 매뉴얼, 보충대 마스터 전략 에서 예고한 것 처럼, 오늘은 훈련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필자의 매뉴얼은 육군을 대상으로 하며, 육군 중 현역병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을 밝힌다. 해군이나 공군, 해병대의 매뉴얼도 작성해 볼 생각은 있지만, 매뉴얼 작성하자고 군대를 몇 번씩 가는 건 생각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 든다. 각설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1. 보충대는 장난이었다.
보충대에서 각각 배정받은 버스를 타고가며, 많은 생각을 할 것이다. 훈련소란 어떤 곳일까, 보충대도 정말 견디기 힘들었는데, 훈련소는 더 힘들지 않을까하는 생각.
잠깐, 더 힘들지 않을까?
(이쯤에서 예비군들의 반응 : 피식)
보충대에 있던 '구대장' 이라는 존재에 대해, 필자는 '디멘터' 라고 이야기를 했다. 마치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표정도 없고, 모자 밑에 가려진 눈도 볼 수 없으며, 그들이 말을 시키면 뭔가 온 몸의 기운이 쫙 빠지며 금방 쓰러질 것 처럼 다리가 풀리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훈련소에서 만나게 될 '훈육'과 '조교'는 뭐에 비유 할 수 있을까. 보충대에서 정신도 못차리며 방황하는 와중에 판타지처럼 다가왔던 '구대장'이 '디멘터'였으니, 훈련소 훈육은 '프레디'에, 조교는 '제이슨'에 비교할 수 있겠다. 판타지가 아니라 슬슬 피부로 다가온다는 말이다. 뭐, 말로 해서는 백 번 이야기해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그들과 30분만 함께 해 본다면?
2. 훈련소 도착, 딱 맞는 학습목표와 학습방법.
"눈깔 굴리는 소리 들린다. 엎드려"
필자는 훈련소 입소하자마자 들었던 이 문장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눈깔 굴리는 소리? 그런 소리도 들을 수 있던가? 2년간 군생활을 하며 연구해 봤지만 아직까지 밝혀내지 못한 미스테리. 하지만 훈련소 교관은 그런 것도 듣는다.
아, 대충 훈련소의 조직도를 말해주자면, 훈련소에는 앞으로 가이들이 훈련을 받게 될 중대 말고도 다른 중대들이 있다. 이미 사람이 차 있으면, 그들은 가이들의 고참이 되는거다. (같은 달에 입대했으면 동기가 될 수도 있다.) 일명 '한달고참' 제일 무섭고, 짜증나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가까워 지지 않는 관계다. 왜 그런지는 자대에 가 보면 알 수 있다. 교육대장은 별로 알 필요가 없고, 일단 기억해야 할 대빵은 중대장. 뭐, 생각해보니, 중대장도 그닥 알 필요는 없다. 소대장, 이 사람은 '교관'으로 활동한다. 여러가지 훈련이 있는데, 그 중 나눠서 시키는 것이 교관이라는 거다. 훈육과 조교의 윗 사람이니 체감 영향력을 볼드모트 급이다. 그 아래가 훈육, 구대장 한 부대(12명)보다 파워가 세다. 구대장이 질럿이라면, 훈육은 다크템플러다. 험한말 스킬과 얼차려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 그 바로 아래가 조교, 드라군 급이다. 가끔 컨트롤이 안되는 것 처럼 이상한 실수 스킬도 보유하고 있다. 종종 훈육에게 혼나는 모습도 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훈련병이 무시할 것은 아니다. 훈련병은 프로브다.
강당에 도착하자 마자 사람이 나뉠 것이다. 키 얼마 이상, 몸무게 얼마 이상, 고혈압 저쪽, 기타 신체이상자 이쪽, 빨리 빨리 안 움직이나, 엎드려, 일어서, 누가 손 털어, 엎드려, 일어서, 야, 넌 왜 저쪽으로 안가, 넌 구십키로 안되도 저쪽으로 가, 엎드려, 여러분 지금 나랑 장난 합니까, 일어서, 누가 또 손 터는거야, 엎드려......OTL
아직 입대를 하지 않은 가이들이 이 부분만 보고도 눈에서 땀을 흘리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필자가 군에 가기 전에 '난 부당한 대우나, 인권을 무시하는 처사가 있으면 바로 대응할 거야' 라고 생각했다. 훈련소 입소식, 두번 째 엎드렸을 때 그 생각을 버렸다. 물론, '군대라고 해도, 스무살 넘은 사람들한테 반말이야 하겠어' 라는 생각은 보충대에서 버리고 왔다.
훈련소야 말로, 신해철이 놀랐다는 모 학원의 광고카피처럼 '학습목표와 학습방법'에 대해선 기가막히게 가르쳐 준다. 아니,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군인'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회사의 광고카피처럼 '전통과 노하우'를 가진 교관, 훈육, 조교 들이 머릿속에서 사회를 지워 줄 것이다. '군대가 정말 힘들구나' 따위의 잡념도 잊게 해 줄 것이다. 불면증에 시달렸던 가이들은 달콤한 잠이 무언지 알게 될 것이고, '그래도 내가 이런 사람인데' 라는 자만이 있었던 사람은 몇번 훈련병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3. 스피드, 사운드, 센스 (3S)
이것만 기억해라. 이것이 훈련병으로 '삽질'을 방지해 줄 조언이다. 이 세가지는 자대에 가서 일병을 달기까지 유효하니, 다른건 다 잊고, 이 세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다음의 예문을 통해 각각 어떤 상황에서 사용되는지 알아보자.
ㄱ. 스피드
"훈련병들은 소대 밖에 위치한 청소도구함에서 대빗자루를 꺼내 구대 문 앞으로 모입니다."
이 방송이 떨어지면, 불평의 소리가 가득할 것이지만 일단 튀어 나가라. 군대에는 날이 잘 선 빗자루만 있는게 아니다. 더군다나 인원수에 맞게 빗자루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을 수 있듯, 일찍 나가는 사람이 좋은 빗자루를 가질 수 있다. 당신이 제일 좋은 빗자루로 구대 앞 눈을 쓸 고 있을 때, 늦게 나와 빗자루가 없는 사람들은 실외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둘의 차이점은, 경험해 보면 알겠지만 크다. 그리고 선착순 등에서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교관이나 훈육의 눈에 띄어 가끔 달콤한 휴식을 맛볼 수 있다.
ㄴ. 사운드
"알겠습니까?"
"네.."
이것과
"알겠습니까?"
"네!"
이 둘의 차이점을 이해 할 수 있다면, 어느 자동차 회사의 광고카피처럼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 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목소리가 작으면 일단 의욕결핍으로 분류되며 얼차려를 부를 것이다. 자대에서도 이등병 시절, 이 '사운드'는 중요하다. 자신의 짬이 어느정도 차기전까지는 무조건 크게 대답하라. 그게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될 것이다.
ㄷ. 센스
애드센스가 아니다. 평소에 '눈치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가이라면, 군생활이 힘들 것은 뻔하다. 훈련간 '방탄모'를 벗으면 안되지만, 암묵적으로 '비공인 휴식'을 취하며 잠시 방탄모를 벗을 때가 있다. 하지만, 교관이 몇 몇 가이들 때문에 이미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상태에서 방탄모를 벗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과반 이상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고 하지 않는가. 대세를 따르는 것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팁> 자대에 가면 담당구역 청소시간에 고참이 아직 배정받은 곳의 청소를 다 못 끝내서 낙엽을 쓸고 있거나, 눈을 쓸고 있거나, 돌을 줍고 있거나, 풀을 뽑고 있거나, 배수로를 파고 있거나, 오물장에서 쓰레기를 태우고 있거나, 무거운 것들을 나르고 있는 경우가 있다. 당신은 이미 담당구역을 모두 청소해서 시간이 남는 상태다. 무조건 도와라. 고참이 괜찮다고 해도 일단 도와라. 눈을 쓸고 있으면 눈 담을 것이라도 가져오든가, 쓰레기를 태우고 있으면 태울 쓰레기를 한 곳에 모아주는 일을 해라. 도와준답시고 옆에서 멀쩡히 지켜보고 있기만 하면, 군생활엔 스릴이 넘칠 것이다.
4. 입소식과 제식훈련
다시, 훈련소 이야기로 돌아와서, 입소식이 무슨 조회시간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이미 멋쟁이. 가장 힘든 훈련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1위 입소식,제식, 2위 사격(PRI), 3위 행군, 이렇게 꼽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입소식은 상상을 초월한다. 뭐 달리거나 기거나 하는 일이 아니라 편할거라고 생각했다면, 과거 경찰에 불려가 모진 고문을 당한 사람들은 달리거나 기거나 해서 힘들었냐고 필자는 반문을 하고 싶다.
차렷자세. 가이들은 앞으로 '차렷'이 뭔지 확실하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차렷자세'로 5분만 서 있어도 등에서 땀이 흐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차렷과 열중쉬어의 교집합이 되는 오른발, 당신의 인생에서 오른발을 가장 땅에 오래 붙이고 있던 날로 기억될 것이다.
몸이 힘든 거야 다 하는 거니까, 맞춰서 한다고 해도, 가장 많이 실수 하는 것이 '국기에 대한 경례에서의 경례구호'를 붙이는 것이다. 보통 일반적인 경례에는 경례구호를 붙이지만, 국기에 대한 경례에는 경례구호를 붙이지 않는다. 그까짓게 뭐 어려운 일인가, 그정도도 구별 못하는 바보가 아니다, 라고 당신은 이야기 할 지도 모른다. 후후. 일단 입소해서 그 자리에 서 보시라. 당신의 몸을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 국기에 대한 경례에 당신은 마치 유체 이탈 되고, 다른 영이 빙의라도 된듯 경례구호를 붙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당신 몸으로 돌아왔을 때, 단상에서 손가락으로 당신을 가리키고 있는 교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훈련병들 역시 교관이 손가락으로 당신을 가르키는데 손가락만 보지는 않는다. 정확히, 당신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필자의 추천은, 교육대장에게 하는 경례든, 국기에 대한 경례든 사단장에게 하는 경레든, 무조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추천한다. 너무 티가 날 것 같거나 이미 찍힌 상태라면 입모양만 따라하는 립싱크를 권한다. 잘해야 겠다는 의욕은 당신에게 빙의를 불러 올 것이고, 당신은 백지영의 노래대로 총맞은 것 같은 느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덧> 필자는 다섯 번 다시 한 팔벌려 높이 뛰기 때 '서른' 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건 필자의 의지와 상관 없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 사건에 대해서 필자는, 당시 훈련장에서 훈련하다가 죽었다는 귀신이 출몰하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귀신이 잠시 빙의가 되어 저주스런 '서른' 이라는 구호를 외치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름 머리를 써서 앞선 네번의 경우 '하나' 라는 첫 구호부터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립씽크 중이었는데, '서른'을 외친건, 분명 초자연적인 현상이다.
5. 바느질, 그리고 팬티에 번호적기
평소 바느질을 해 본 경험이 없는 가이들이라면, 군대에서 충분히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군대에서는 대부분 이름표를 붙이거나 무언가 자기물건을 표시하는 것을 '바느질'로 해결한다. 아, 입대 할 때 필수 물건에 '골무' 정도를 추가하는 것도 괘찮겠다. 매우 활용도가 높은 아이템이다. 강인함의 상징인 군인이 바느질을 하는 것은 잘 상상되지 않겠지만, 훈련소에서 그리고 자대에서 바느질은 필수요소다. 서툰 바느질로 삐뚤빼뚤하게 박아 놓은 번호, 당신이 '몇 번 훈련병!' 이 되는 과정이다.
매직으로 번호를 적어 넣는 것 역시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당신은 보급받은 활동화(운동화)에 훈련병 번호를 적어 넣고, 전투화에, 활동복(체육복)에, 런닝에, 팬티에, 양말에, 번호를 적어 넣게 될 것이다. 사회에서 보자면 이보다 웃긴 일도 없지만, 거기서는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다 같은 색의 팬티, 양말 등을 보급 받는 까닭에 번호를 써 놓지 않은 보급품들은 건조장(빨래 말리는 곳)에서 눈 깜짝할 사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보급품은 다시 주지 않는다.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큼지막하게 써 놓는 것을 권장한다.
<덧> 아는 사람중 지금 휴가를 나온 군인이 있다면 그들의 속옷이나 양말을 한 번 보길 바란다. 매직으로 소속과 이름이 크게 적혀있을 것이다. 하나 더 이야기 하자면, 상병 이상급 되는 군인은 종종 다른 사람의 이름이 적힌 것을 입거나 신고 있을 것이다. 왜 그런지는 곰곰히 생각해 보길 바란다.
훈련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하나의 포스팅으로 할 경우 스크롤의 압박이 너무 심해지는 까닭에 두 편이나 세 편 정도로 나눠서 포스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지인의 입대가 보름 정도밖에 남지 않았으니 그 기간 이전에 훈련소 이야기와 자대 이야기까지 모두 매뉴얼을 만들어 놓을 예정이다.
필자의 매뉴얼을 보며, 막연히 군대에 대한 불안감만 밀려올 수도 있다. 필자는 행복하고 좋은 추억 보다는 힘든 상황, 그리고 어려운 일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그것에 대한 대처방안들을 메뉴얼로 구상해 보고 싶었다. 또한, 군대란 것이 하나의 통일된 기준을 가지고 작성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장소와 때에 따라 천차만별인 까닭에, 모자란 부분들은 많은 예비역 분들께서 리플로 트랙백을 주시리라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몇사단 훈련소, 이러이러합니다' 정도의 추억이나, 나름의 노하우를 알려주시면 가이들은 그 리플까지 피드백하며 '준비된 군인'이 되길 바란다.
그럼 '군생활 매뉴얼, 훈련소 심층분석' 2부에서 다시 보길 기원하며,
Good luck!
1. 보충대는 장난이었다.
보충대에서 각각 배정받은 버스를 타고가며, 많은 생각을 할 것이다. 훈련소란 어떤 곳일까, 보충대도 정말 견디기 힘들었는데, 훈련소는 더 힘들지 않을까하는 생각.
잠깐, 더 힘들지 않을까?
(이쯤에서 예비군들의 반응 : 피식)
보충대에 있던 '구대장' 이라는 존재에 대해, 필자는 '디멘터' 라고 이야기를 했다. 마치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표정도 없고, 모자 밑에 가려진 눈도 볼 수 없으며, 그들이 말을 시키면 뭔가 온 몸의 기운이 쫙 빠지며 금방 쓰러질 것 처럼 다리가 풀리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훈련소에서 만나게 될 '훈육'과 '조교'는 뭐에 비유 할 수 있을까. 보충대에서 정신도 못차리며 방황하는 와중에 판타지처럼 다가왔던 '구대장'이 '디멘터'였으니, 훈련소 훈육은 '프레디'에, 조교는 '제이슨'에 비교할 수 있겠다. 판타지가 아니라 슬슬 피부로 다가온다는 말이다. 뭐, 말로 해서는 백 번 이야기해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그들과 30분만 함께 해 본다면?
2. 훈련소 도착, 딱 맞는 학습목표와 학습방법.
"눈깔 굴리는 소리 들린다. 엎드려"
필자는 훈련소 입소하자마자 들었던 이 문장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눈깔 굴리는 소리? 그런 소리도 들을 수 있던가? 2년간 군생활을 하며 연구해 봤지만 아직까지 밝혀내지 못한 미스테리. 하지만 훈련소 교관은 그런 것도 듣는다.
아, 대충 훈련소의 조직도를 말해주자면, 훈련소에는 앞으로 가이들이 훈련을 받게 될 중대 말고도 다른 중대들이 있다. 이미 사람이 차 있으면, 그들은 가이들의 고참이 되는거다. (같은 달에 입대했으면 동기가 될 수도 있다.) 일명 '한달고참' 제일 무섭고, 짜증나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가까워 지지 않는 관계다. 왜 그런지는 자대에 가 보면 알 수 있다. 교육대장은 별로 알 필요가 없고, 일단 기억해야 할 대빵은 중대장. 뭐, 생각해보니, 중대장도 그닥 알 필요는 없다. 소대장, 이 사람은 '교관'으로 활동한다. 여러가지 훈련이 있는데, 그 중 나눠서 시키는 것이 교관이라는 거다. 훈육과 조교의 윗 사람이니 체감 영향력을 볼드모트 급이다. 그 아래가 훈육, 구대장 한 부대(12명)보다 파워가 세다. 구대장이 질럿이라면, 훈육은 다크템플러다. 험한말 스킬과 얼차려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 그 바로 아래가 조교, 드라군 급이다. 가끔 컨트롤이 안되는 것 처럼 이상한 실수 스킬도 보유하고 있다. 종종 훈육에게 혼나는 모습도 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훈련병이 무시할 것은 아니다. 훈련병은 프로브다.
강당에 도착하자 마자 사람이 나뉠 것이다. 키 얼마 이상, 몸무게 얼마 이상, 고혈압 저쪽, 기타 신체이상자 이쪽, 빨리 빨리 안 움직이나, 엎드려, 일어서, 누가 손 털어, 엎드려, 일어서, 야, 넌 왜 저쪽으로 안가, 넌 구십키로 안되도 저쪽으로 가, 엎드려, 여러분 지금 나랑 장난 합니까, 일어서, 누가 또 손 터는거야, 엎드려......OTL
아직 입대를 하지 않은 가이들이 이 부분만 보고도 눈에서 땀을 흘리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필자가 군에 가기 전에 '난 부당한 대우나, 인권을 무시하는 처사가 있으면 바로 대응할 거야' 라고 생각했다. 훈련소 입소식, 두번 째 엎드렸을 때 그 생각을 버렸다. 물론, '군대라고 해도, 스무살 넘은 사람들한테 반말이야 하겠어' 라는 생각은 보충대에서 버리고 왔다.
훈련소야 말로, 신해철이 놀랐다는 모 학원의 광고카피처럼 '학습목표와 학습방법'에 대해선 기가막히게 가르쳐 준다. 아니,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군인'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회사의 광고카피처럼 '전통과 노하우'를 가진 교관, 훈육, 조교 들이 머릿속에서 사회를 지워 줄 것이다. '군대가 정말 힘들구나' 따위의 잡념도 잊게 해 줄 것이다. 불면증에 시달렸던 가이들은 달콤한 잠이 무언지 알게 될 것이고, '그래도 내가 이런 사람인데' 라는 자만이 있었던 사람은 몇번 훈련병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3. 스피드, 사운드, 센스 (3S)
이것만 기억해라. 이것이 훈련병으로 '삽질'을 방지해 줄 조언이다. 이 세가지는 자대에 가서 일병을 달기까지 유효하니, 다른건 다 잊고, 이 세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다음의 예문을 통해 각각 어떤 상황에서 사용되는지 알아보자.
ㄱ. 스피드
"훈련병들은 소대 밖에 위치한 청소도구함에서 대빗자루를 꺼내 구대 문 앞으로 모입니다."
이 방송이 떨어지면, 불평의 소리가 가득할 것이지만 일단 튀어 나가라. 군대에는 날이 잘 선 빗자루만 있는게 아니다. 더군다나 인원수에 맞게 빗자루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을 수 있듯, 일찍 나가는 사람이 좋은 빗자루를 가질 수 있다. 당신이 제일 좋은 빗자루로 구대 앞 눈을 쓸 고 있을 때, 늦게 나와 빗자루가 없는 사람들은 실외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둘의 차이점은, 경험해 보면 알겠지만 크다. 그리고 선착순 등에서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교관이나 훈육의 눈에 띄어 가끔 달콤한 휴식을 맛볼 수 있다.
ㄴ. 사운드
"알겠습니까?"
"네.."
이것과
"알겠습니까?"
"네!"
이 둘의 차이점을 이해 할 수 있다면, 어느 자동차 회사의 광고카피처럼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 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목소리가 작으면 일단 의욕결핍으로 분류되며 얼차려를 부를 것이다. 자대에서도 이등병 시절, 이 '사운드'는 중요하다. 자신의 짬이 어느정도 차기전까지는 무조건 크게 대답하라. 그게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될 것이다.
ㄷ. 센스
애드센스가 아니다. 평소에 '눈치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가이라면, 군생활이 힘들 것은 뻔하다. 훈련간 '방탄모'를 벗으면 안되지만, 암묵적으로 '비공인 휴식'을 취하며 잠시 방탄모를 벗을 때가 있다. 하지만, 교관이 몇 몇 가이들 때문에 이미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상태에서 방탄모를 벗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과반 이상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고 하지 않는가. 대세를 따르는 것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팁> 자대에 가면 담당구역 청소시간에 고참이 아직 배정받은 곳의 청소를 다 못 끝내서 낙엽을 쓸고 있거나, 눈을 쓸고 있거나, 돌을 줍고 있거나, 풀을 뽑고 있거나, 배수로를 파고 있거나, 오물장에서 쓰레기를 태우고 있거나, 무거운 것들을 나르고 있는 경우가 있다. 당신은 이미 담당구역을 모두 청소해서 시간이 남는 상태다. 무조건 도와라. 고참이 괜찮다고 해도 일단 도와라. 눈을 쓸고 있으면 눈 담을 것이라도 가져오든가, 쓰레기를 태우고 있으면 태울 쓰레기를 한 곳에 모아주는 일을 해라. 도와준답시고 옆에서 멀쩡히 지켜보고 있기만 하면, 군생활엔 스릴이 넘칠 것이다.
4. 입소식과 제식훈련
다시, 훈련소 이야기로 돌아와서, 입소식이 무슨 조회시간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이미 멋쟁이. 가장 힘든 훈련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1위 입소식,제식, 2위 사격(PRI), 3위 행군, 이렇게 꼽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입소식은 상상을 초월한다. 뭐 달리거나 기거나 하는 일이 아니라 편할거라고 생각했다면, 과거 경찰에 불려가 모진 고문을 당한 사람들은 달리거나 기거나 해서 힘들었냐고 필자는 반문을 하고 싶다.
차렷자세. 가이들은 앞으로 '차렷'이 뭔지 확실하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차렷자세'로 5분만 서 있어도 등에서 땀이 흐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차렷과 열중쉬어의 교집합이 되는 오른발, 당신의 인생에서 오른발을 가장 땅에 오래 붙이고 있던 날로 기억될 것이다.
몸이 힘든 거야 다 하는 거니까, 맞춰서 한다고 해도, 가장 많이 실수 하는 것이 '국기에 대한 경례에서의 경례구호'를 붙이는 것이다. 보통 일반적인 경례에는 경례구호를 붙이지만, 국기에 대한 경례에는 경례구호를 붙이지 않는다. 그까짓게 뭐 어려운 일인가, 그정도도 구별 못하는 바보가 아니다, 라고 당신은 이야기 할 지도 모른다. 후후. 일단 입소해서 그 자리에 서 보시라. 당신의 몸을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 국기에 대한 경례에 당신은 마치 유체 이탈 되고, 다른 영이 빙의라도 된듯 경례구호를 붙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당신 몸으로 돌아왔을 때, 단상에서 손가락으로 당신을 가리키고 있는 교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훈련병들 역시 교관이 손가락으로 당신을 가르키는데 손가락만 보지는 않는다. 정확히, 당신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필자의 추천은, 교육대장에게 하는 경례든, 국기에 대한 경례든 사단장에게 하는 경레든, 무조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추천한다. 너무 티가 날 것 같거나 이미 찍힌 상태라면 입모양만 따라하는 립싱크를 권한다. 잘해야 겠다는 의욕은 당신에게 빙의를 불러 올 것이고, 당신은 백지영의 노래대로 총맞은 것 같은 느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덧> 필자는 다섯 번 다시 한 팔벌려 높이 뛰기 때 '서른' 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건 필자의 의지와 상관 없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 사건에 대해서 필자는, 당시 훈련장에서 훈련하다가 죽었다는 귀신이 출몰하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귀신이 잠시 빙의가 되어 저주스런 '서른' 이라는 구호를 외치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름 머리를 써서 앞선 네번의 경우 '하나' 라는 첫 구호부터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립씽크 중이었는데, '서른'을 외친건, 분명 초자연적인 현상이다.
5. 바느질, 그리고 팬티에 번호적기
평소 바느질을 해 본 경험이 없는 가이들이라면, 군대에서 충분히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군대에서는 대부분 이름표를 붙이거나 무언가 자기물건을 표시하는 것을 '바느질'로 해결한다. 아, 입대 할 때 필수 물건에 '골무' 정도를 추가하는 것도 괘찮겠다. 매우 활용도가 높은 아이템이다. 강인함의 상징인 군인이 바느질을 하는 것은 잘 상상되지 않겠지만, 훈련소에서 그리고 자대에서 바느질은 필수요소다. 서툰 바느질로 삐뚤빼뚤하게 박아 놓은 번호, 당신이 '몇 번 훈련병!' 이 되는 과정이다.
매직으로 번호를 적어 넣는 것 역시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당신은 보급받은 활동화(운동화)에 훈련병 번호를 적어 넣고, 전투화에, 활동복(체육복)에, 런닝에, 팬티에, 양말에, 번호를 적어 넣게 될 것이다. 사회에서 보자면 이보다 웃긴 일도 없지만, 거기서는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다 같은 색의 팬티, 양말 등을 보급 받는 까닭에 번호를 써 놓지 않은 보급품들은 건조장(빨래 말리는 곳)에서 눈 깜짝할 사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보급품은 다시 주지 않는다.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큼지막하게 써 놓는 것을 권장한다.
<덧> 아는 사람중 지금 휴가를 나온 군인이 있다면 그들의 속옷이나 양말을 한 번 보길 바란다. 매직으로 소속과 이름이 크게 적혀있을 것이다. 하나 더 이야기 하자면, 상병 이상급 되는 군인은 종종 다른 사람의 이름이 적힌 것을 입거나 신고 있을 것이다. 왜 그런지는 곰곰히 생각해 보길 바란다.
훈련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하나의 포스팅으로 할 경우 스크롤의 압박이 너무 심해지는 까닭에 두 편이나 세 편 정도로 나눠서 포스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지인의 입대가 보름 정도밖에 남지 않았으니 그 기간 이전에 훈련소 이야기와 자대 이야기까지 모두 매뉴얼을 만들어 놓을 예정이다.
필자의 매뉴얼을 보며, 막연히 군대에 대한 불안감만 밀려올 수도 있다. 필자는 행복하고 좋은 추억 보다는 힘든 상황, 그리고 어려운 일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그것에 대한 대처방안들을 메뉴얼로 구상해 보고 싶었다. 또한, 군대란 것이 하나의 통일된 기준을 가지고 작성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장소와 때에 따라 천차만별인 까닭에, 모자란 부분들은 많은 예비역 분들께서 리플로 트랙백을 주시리라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몇사단 훈련소, 이러이러합니다' 정도의 추억이나, 나름의 노하우를 알려주시면 가이들은 그 리플까지 피드백하며 '준비된 군인'이 되길 바란다.
그럼 '군생활 매뉴얼, 훈련소 심층분석' 2부에서 다시 보길 기원하며,
Good l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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