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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가재(화이트 클라키)와 함께 동네 산책하기.
카프카의 <변신>에서 나온 장면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책을 다시 읽어보았지만 그런 장면을 찾을 수 없다. 아마 <변신>을 읽었던 그 시기에 읽었던 다른 책이었거나, 잘못된 번역일 수 있다. 내가 기억하는 그 장면은 아래와 같다.

**씨가 집에 찾아왔다. 그는 가재와 함께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는 종종 가재를 실로 묶어 산책을 하곤 했다. 
그는 현관 계단 기둥에 가재를 묶어두고, 계단을 올라 내 방으로 왔다.

 

당시 그 책을 읽으며 '이건 또 무슨 발번역 인가?'하는 생각을 했던 것까지 기억난다. 가재와 산책을 하다니. 가재는 수생동물인데. 원문에는 외국에만 사는 동물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그걸 한글로 옮기다보니 마땅한 게 없어 가재로 옮겨 둔 것이라 생각했다. 한국에 '백작'이라는 호칭이 없다는 이유로 '몽테 크리스토 백작'을 '몽테 크리스토 대감'으로 번역하고, '영국 신사'를 '영국 선비'로 번역했던 일처럼 말이다.

여하튼 저 문장을 읽고 몇 해쯤 지났을 때, 난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읽다가 놀라운 문장을 발견하게 되었다.

1850년 제라르 드 네르발은 애완동물에 대한 기존 관념에 순응하지 않고,
파란 리본에 가재를 묶어 뤽상부르 공원을 돌아다녔다. 드 네르발은 물었다.
"왜 개는 괜찮은데 가재는 우스꽝스러운가?
또 다른 짐승을 골라 산책을 시킨다 한들 무슨 상관인가?
나는 가재를 좋아한다.
가재는 평화롭고 진지한 동물이다. 가재는 바다의 비밀을 알고, 짖지 않고,
개처럼 사람의 단자적 사생활을 갉아먹지 않는다.
괴테는 개를 싫어했지만, 그렇다고 괴테가 미쳤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 알랭 드 보통 <불안> 중에서

 

전에 읽었던 '가재 산책'이 발번역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난 지금. 난 직접 가재와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가재와 산책을 할 때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건 시간이다. 웹 어딘가에 나와있는,

"가재는 물속에서는 아가미 호흡을 하고,
물 밖에서는 폐호흡을 합니다."



따위의 말을 믿었다간 가재가 요단강을 건너고 만다. 가재는 아가미 호흡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고기와 달리 물 밖에서 꽤 긴 시간을 버틸 수 있는 건 가재에겐 적은 산소로도 버틸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가재의 갑각이 아가미에서의 수분증발을 어느 정도 막아주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오랜 시간을 버티는 건 아니다. 가재는 온도가 낮고 습한 곳에서는 한 시간 이상도 버틸 수 있지만, 온도가 높고 건조한 곳에서는 5~10분만 지나도 생명끈을 놓고 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난 날씨를 참고해 산책시간을 10분으로 잡았다.





화단에 가재를 내려놓자 나무 밑으로 들어가려 했다. 난 가재와의 산책에 들떠 휴대폰으로도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지인에게도 전송했다. 사진은 본 지인은,

"뭐야? 인삼이야?"

라는 답장을 보냈다. 사진 제목은 '인삼으로오해받은가재.jyp'가 되었다.





가재를 잔디밭으로 데려갔다. 녀석은 "뭐야? 이거 어항에 있는 수초랑 비슷한데?"라며 유심히 잔디를 관찰했다.





녀석이 잔디밭에 있는 돌 틈으로 들어가려다가 실패한 뒤 짜증을 내고 있다. 햇빛 때문에 눈이 부신지 집게발을 들어 집게그늘(응?)을 만들고 있다.





근처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길래 난 녀석을 놀이터로 데려갔다. 그네를 태워주고 싶었는데 녀석이 붙잡을 생각은 안 하고 자꾸 내려가려 하길래 그만 두었다. 대신 미끄럼틀을 태워주었다. 신나기보다는 불안했는지, 녀석은 집게발로 브레이크를 걸었다.





다시 화단으로 데려갔다. 녀석은 자라고 있는 잔디 싹을 집게발로 움켜쥐었다. 놀이터에 있던 꼬꼬마들이 쫓아와 자꾸 귀찮게 굴었다.

"아저씨 이거 뭐예요?"
"야~ 이거 봐봐. 살아 있어. 움직여."
"이거 어디서 팔아요? 얼마예요?"



"나보다 멀리 뛰는 사람한테 이거(가재) 줄게."라고 말한 뒤 보도블럭에서 놀이터까지 힘껏 뛰었다. 그러고는 선을 그어 그게 커트라인임을 꼬꼬마들에게 알려줬다. 꼬꼬마들은 그 선을 넘으려 애쓰느라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았다.





가재와 함께 벤치에 앉아 멀리뛰기를 하고 있는 꼬꼬마들을 잠시 지켜봤다. 폴짝폴짝 뛰고 있는 꼬꼬마들이 신기한지 가재도 말없이 꼼짝 않고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잠깐만. 꼼짝 않고?

녀석의 몸이 굳어가고 있었다. 어서 집으로 데려가 물에 넣어줘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한 컷. 저 사진을 남긴 채 가재는 세상을 뜨고 말았다는 건 훼이크고, 집에 돌아와 물에 적신 뒤 맞댐을 해 어항에 넣어줬다. 수고한 가재를 위해 저녁식사로 냉짱(냉동 장구벌레)을 주었다. 녀석은 냉짱을 집게발로 집어 먹다가 잠깐 멈춰 날 바라봤다.

"아까 찍은 사진, 잘 나왔어?"

라고 묻는 것 같았다. 난 잘 나왔다며 고개를 끄덕거려줬다. 녀석은 만족했는지 다시 냉짱을 집어 먹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새우가 허둥대며 가재를 넘어 다녔다. 그 모습이 꼭 "야 뭐야, 어디 갔다 왔는데? 말해줘. 나 궁금해서 잠 못 잔다."라며 재촉하는 듯 보였다. 

가재의 호흡방법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They breathe by extracting oxygen from water using their gills. Gills simply provide a large surface area for contact between blood and the water, so that oxygen can diffuse from water into the blood efficiently. To make the process more efficient, blood and water flow in opposite directions in structures like gills. It would take a lot of space and diagrams to explain this, but one good picture in a textbook will make it very clear. Just look in a general biology text under "countercurrent distribution". This may be a bit too much for young students, however. The main point is that an animal can extract oxygen from water just like air-breathing animals extract it from air. Unfortunately, I can't think of a good experiment to demonstrate this in a student lab. 

- ProfBill (http://www.newton.dep.anl.gov/askasci/bio99/bio99434.htm)



좋은 설명이다.(응?)

가재의 육지에서의 호흡방법은 게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갑각의 도움을 받아 수분증발을 막고, 입에서 뿜어내는 점액질 거품으로 산소를 흡수하며 동시에 수분손실도 막을 거라 예상된다. 가재도 게처럼 아가미에 건조방지 도움판을 갖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나저나 '가재와의 산책'에 대한 이야기는 블로그에만 적어야겠다. 오프라인에서 지인들에게 가재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한 적이 있었는데, 지인들은 내가 피겨스케이팅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 보이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먹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나마 우정을 생각해 잠시나마 가재 이야기를 들어줬던 한 친구는, 

"아무튼 너, 무슨 클라키니 하는 얘기까지 하는 걸 보니
꽤 전문적으로 가재를 키우는 것 같아. 그치?"


라고 말했다. 하긴. 나도 언젠가 귀뚜라미를 키운다는 친구에게 "왜 그래? 요즘 삶이 힘들어? 너 그러다 귀뚜라미 된다."라고 말한 적 있으니 그걸로 퉁 치도록 하자. 사월의 어느 날 가재와의 산책. 잠시나마 신났던 시간이었다. 



▲ 가재와 산책을 갔다 온다고 하자, 가재 담아 가라며 통을 내 주신 어머니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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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겸2012.04.22 16:4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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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이기도 하고 재미도 있는 산책이네요.ㅋ
가재 산책 이야기 블로그에 꼭 올려주세요!^^

만다2012.04.22 20:3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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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와의 산책. 넘 재밌네요.^^

정대중2012.04.23 11:4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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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재밌는 경험을 많이 하시는 듯^^

찹쌀2012.04.23 18:4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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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지인의 집에 하루 묵을 일이 있었는데
그분은 집에 새우와 가재를 키우고 계시더라구요.
제가 자야했던 방이 바로 그 수조가 있는 새우방....(내가붙인이름)
새우와 가재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던 그 분 모습은 참 신기했고
전 열심히 설명하는 그분뒤로 통통 튀며 유영하는 새우들을 보며 입맛만 다셨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군요. 새우는 번식력도 엄청나던데요?
밤새 수조에서 나는 소리때문에 잠을 설치면서
'식용이면 꽤 키울만 하겠다'라고 생각했더랬죠..

용융2012.04.25 11:3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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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키 너무 귀여워요!!!ㅋㅋㅋ
아이를 물리치는 방법도 다양하군요.ㅋㅋㅋ
잘봤습니다~

2012.04.29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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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댓글입니다

안녕하새요2012.05.04 10:3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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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에세이~ 넘 좋아요^^

란군ㅡ_ㅡ;2012.05.24 17:2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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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
무한님, 귀엽네요..
뭔가 과거 책에서 본 내용을 기억하고 똑같이 따라해본다는건..
뭔가 동심이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예요..
ㅋㅋㅋ
저희 집 고양이들이 밖을 무서워해서 산책을 못 시키는데..
조금씩 고쳐봐야겠어요.

2013.01.07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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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댓글입니다

2013.01.07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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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댓글입니다

가재2013.03.21 21: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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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불쌍해요

요정의 구두2013.04.25 20:4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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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님 참 귀엽다능 ㅎㅎ

요정의 구두2013.04.25 20:4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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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님 참 귀엽다능 ㅎㅎ

요정의 구두2013.04.25 20:4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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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님 참 귀엽다능 ㅎㅎ

jj2014.04.05 10:4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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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두 가재 키웠는데ㅋ두마리..
통을 열어놓구 회사다녀와보니 두마리가 감쪽같이 사라졌는데
어디로 갔을까요? 온집안을 다뒤져도 없었구..식구들도 아무도
손안댔다구하는데.. 아직도 미스테리..왜 무한님은 아실꺼같지?ㅋ

Malena2014.04.07 13:4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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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하하하핳할!!!!
우와... 진짜 산책이었군요... 하하하
무한님 정말 최고세요. ㅎㅎㅎㅎㅎ
저도 가재와 베타를 길렀었는데 산책시킬 생각은 꿈에도 못했었는데.
지금은 운명했습니다.... 미안하다 얘들아 흑
이름은 철수였죠.

빅캐슬 2015.02.27 16:2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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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키우고싶은마음에 여러글을 보다가 무한님의 포스팅을 보고 가재를 키워보겠다는
마음이 굳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블로그를 참 열심히 하고싶은사람으로써 무한님의 글솜씨나
사진등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많은 영향받고 갑니다.앞으로 자주놀러오겠습니다.제 블로그 지금은 미진하나
꼭 창대하게 꾸려나갈테니 꼭 기억해주십시오^^

빅캐슬 2015.02.27 16:2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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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키우고싶은마음에 여러글을 보다가 무한님의 포스팅을 보고 가재를 키워보겠다는
마음이 굳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블로그를 참 열심히 하고싶은사람으로써 무한님의 글솜씨나
사진등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많은 영향받고 갑니다.앞으로 자주놀러오겠습니다.제 블로그 지금은 미진하나
꼭 창대하게 꾸려나갈테니 꼭 기억해주십시오^^

찡찡2015.03.18 16:5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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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나갈때 물통을 가져가서 가재가 힘들어하는거 같으면 물에서 좀 쉬게 해주고, 힘을 내면 다시 산책하고.. 그러면 어떤가요? 사람도 산책하다 힘들면 벤치에서 좀 쉬었다 다시 가듯이요. 문득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애완가재 수명은 2~3년 정도라고 하네요. 믿을만한 정보인지. 음... 클라키가 어디서든 잘 있기를 바랍니다.

AtoZ2015.05.16 02:1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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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달팽이와 산책을 나갔던 기억, 온갖 곳에 올려놓고 반응을 기다리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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