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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2)

늘 짧은 연애만 반복하게 되는 세 가지 이유

by 무한 2011. 1. 21.
월요일부터 이어진 몽롱한 기운은 목요일을 기점으로 소멸되었고 이제, 정신이 어느 때보다 맑아지는 후라이데이가 되었다. 뭐, 이렇게 맑아진 정신은 일요일 저녁 개그콘서트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또 다시 '신호 없음'으로 돌아서겠지만, 그것을 아쉬워하지 말고 이 블링블링한 기운을 충실히 즐겨보자.

이 블링블링한 후라이데이에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이야기는 '짧은 연애'만 반복하게 된다는 대원들의 안타까운 사연이다.

"블링블링 하다면서 왜 우울한 사연을 살펴보나요?"


그건, 당신의 블링블링함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왜 블링블링함이 끝나고 난 뒤 매번 구정물로 목을 축인 듯한 불쾌함이 찾아오는지 알지 못한다면, 당신의 연애는 늘 앞의 몇 장만 쓰다 던져둔 노트처럼 될 수 있다. 이젠 더 이상 후회라는 이름의 노트를 책장에 꽂지 않도록, 진득하게 앉아 차곡차곡 써 내려가는 연애에 대해 알아보자.  


1. 상대에게 맞추기만 하면 긴 연애를 할 수 있을까?


상대에게 헌신하고, 마찰이 생기면 양보했으며, 싸움을 피하려 갖은 수를 다 썼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별했다는 대원들의 사연이 있었다. 우선, 언제 들어도 흥겨운 곡 비비의 <하늘땅 별땅> 첫 소절을 잠시 들여다보자.

니가 마른 여잘 좋아한다 해서 힘든 다이어트 참아왔는데
니가 긴 생머리를 좋아 한다고 해서 여태껏 길러왔는데
니가 남자 많은 여잔 싫다 해서 누가 말 붙여도 외면했는데
니가 잘 노는 여잘 싫어한다고 해서 그좋은 나이트도 안가

- 비비, <하늘땅 별땅> 중에서


이렇게 잘해보려 했던 화자는 왜 결국 노래의 끝에선 "내 펑크펑크난 가슴 쇼크쇼크야."(응?)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까. 이 부분에 대한 해답을 난 내가 사랑하는 작가 이상의 <권태>라는 수필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최 서방의 조카를 깨워가지고, 장기를 한 판 벌이기로 한다. 최 서방의 조카와 열 번 두면 열 번 내가 이긴다. 최 서방의 조카로서는, 그러니까 나와 장기 둔다는 것 그것부터가 권태다. 밤낮 두어야 마찬가질 바에는 안 두는 것이 차라리 낫지. -그러나 안 두면 또 무엇을 하나? 둘 밖에 없다.
지는 것도 권태거늘. 이기는 것이 어찌 권태 아닐 수 있으랴? 열 번 두어서 열 번 내리 이기는 장난이란 열 번 지는 이상으로 싱거운 장난이다. 나는 참 싱거워서 견딜 수 없다.

- 이상, <권태> 중에서


연애만 시작하면 자신을 '파격할인'하는 대원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특히 상대에게 헌신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대원들이 주로 벌이는 일인데, 예전 매뉴얼에서 "호의가 계속 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라는 영화 <부당거래>의 명대사를 소개한 적 있듯 당신의 맹목적인 헌신과 일방적인 희생은 연애를 망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게다가 연애 초기에 생성된 당신의 '이미지'는 연애하는 동안 바꾸기 어렵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2. 어느 커플이든 '조율'이 필요하다
 

피아노나 기타를 치다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 맞춰 놓았던 음과 미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하고 나중엔 전혀 다른 음을 내지 않는가. 사랑도 이처럼 변한다. 중요한 건 '변하지 않는 사랑'이 아니라, '조율할 수 있는 사랑'이다.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을 경우 이 '조율'이 힘들다. 상대의 변하는 모습에 실망을 하거나 갈등을 상대의 한계로 규정하며 사랑을 포기한다. 

"우린, 아닌가 보다."


늘 '괜찮은 사람'을 찾지만, 정말 '괜찮은 사람'을 만나서는 '안 괜찮은 부분'을 찾는 일에 몰두한다. '내 탓'보다는 '네 탓'이 많아진다. 포기는 쉽다. 그렇게 또 한 사람, 지나친다. 

연애란 끊임없이 서로 조율해 나가는 과정인데, 조율 자체를 '실망'이나 '한계'로 생각한다면 결국 연애는 괴로운 일이 되어 버린다. 그러다보면 '첫 마음'을 가진 '다른 사람'을 찾게 되고, 몇 달간 그 '첫 마음'속에서 행복을 느끼다 머지않아 다시 실망 하고 한계를 느낀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 연애 이야기를 듣곤 '친구 남친'과 '자기 남친'을 비교하며 사연을 보내는 커플부대원들이 있는데, 친구가 말하는 자기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물 위에 떠 있는 백조'를 묘사한 것과 같다. 쉴새없이 발길질을 하고 있는 물 아래의 모습은 쏙 빠져있단 얘기다. 언제나 당신보다 한 발 높은 곳에 있는 '엄마 친구 딸'의 이야기처럼, '친구 남친'의 이야기에도 많은 에누리가 붙어 있고, 어두운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3. 공부하지 않으면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연애의 시작은 누구에게나 즐겁다. 그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이런 노래도 나오지 않았는가. 

나는 날아 날아올라 
그대와 함께 있을 때면 alright 연애하는 기분이란
나는 날아 날아올라
그대와 함께 있을 때면 alright 정말 좋은 것 같아 

- 김현철, <연애> 중에서
 

하지만 언제까지 날아오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땅에 발붙이고 쉴 시간이 곧 필요하단 얘기다. 날고 있을 때 발붙일 곳을 미리 찾아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둠이 밀려오고 날갯죽지(응?)가 아파올 때, 당신은 갈팡질팡하다 위험한 곳에 아무렇게나 착륙하게 될 수 있다. 

날아오르는 기분이 드는 것은 도파민세로토닌 덕분이다. 신경전달 물질인 도파민은 뇌에 흥분을 전달시키고, 세로토닌은 당신 눈에 '콩깍지'를 씌운다. 아, 물론 당신의 사랑을 무슨 약품 이름 같은 저런 단어들로 매도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그냥 저건 사랑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해두자. 

아무튼 그 둘의 분비가 왕성할 때, 두 사람은 훗날 둘이 발붙일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이건 뭐 공사계획서를 작성하고 콘크리트 부어가며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행동으로 자연히 만들어 지는 것이다. 둘 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고,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이런 과정들이 둘의 '기반'을 만든단 얘기다. 

동거까지 했는데 이렇게 헤어질 줄은 몰랐다는 사연을 보낸 대원이 있었다. 그 대원에게 "혹시 상대 부모님의 성함을 아시나요?"라고 물었을 때, 그 대원은 "갑자기 부모님 성함은 왜요? 몰라요. 제가 그 사람 부모님하고 연애했나요? 그 사람하고 했지."라는 대답을 했다. 

그 대원의 말대로, 상대 부모님의 성함을 몰라도 연애 하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 공부를 하든 안 하든 시험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분명 공부를 많이 한 수험생이다. 이제껏 마음이 시키는 대로 놀아만 놓곤, 이제 와서 왜 점수가 좋지 않냐고 묻는다면, 해 줄 말이 없다. 그 사람과 당신을 이어주는 인연의 끈이 몇 가닥이나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 


싸울 수 있다. 싸우다 보면 헤어지자고 말할 수 있다. 헤어지자고 말했다가 정말 헤어질 수도 있다. 마치 꼬꼬마시절 부모님을 미워하거나, 내 인생 내가 책임지겠다며 집을 나가기도 하는 것처럼 연애를 하면서도 사랑하는 상대를 아프게 할 수 있고, 스스로 연애가 힘들 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다고 우리 엄마를 남의 엄마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당신이 사랑하는 그 사람과도 당장 사이가 좋지 않다고 '남'이 되진 않도록 만들자. 그렇게 만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이 먼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상대에 대해 '단순변심'이나 '제품상의 하자'를 핑계로 아무 때나 반품할 수 있는 인연으로 생각하지 말고, 당신에 맞게 다듬고 또 당신이 상대에 맞게 적응해 가는 노력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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