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새 글이 안 올라온다고 카톡으로, 메일로, 댓글로, 방명록으로 걱정을 해주시는 독자 분들이 많아 깜짝 놀랐다. 그 중 다수의 독자 분들이
"혹시 전에 대장내시경 한 일과 연관되어 글을 못 올리시는 건지…."
라며 걱정해 주셨는데, 내 대장은 아직까진 크고 아름다우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틀은 다른 글을 쓰느라 글을 올리지 못 했고, 어제는 조카 졸업식에 갔다가 친척모임까지 하게 되어 글을 올리지 못했다.
졸업식에서 조카 담임선생님이 전람회의 <졸업>을 배경으로 깔고 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영상으로 제작한 걸 틀어주었는데, 정작 학생들을 덤덤하고 나랑 공쥬님(여자친구)만 말없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되어 느낌이 좀 이상했다. 김동률의 '염소창법'이 자꾸 마음을 흔들어 눈물이 나오려는 걸 열심히 참고 있었는데,
"나중에 다시 중학교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선생님도 한 번 떠올려주라."
라는 선생님의 편지글귀에 목에 매운 깍두기가 걸린 느낌이 들며 울컥하고 말았다. 남의 졸업식 가서 울기나 하다니, 민폐다. 망할 감수성.
자 그럼 근황을 전하는 건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며칠간 다른 일 하느라 열었다 닫았다 하며 끝을 못 낸 사연을 마무리 짓도록 하자.
1. 결론부터 말하자면.
J양이 뭔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 '그를 믿고 결혼까지 생각해도 되는지', '이성에게 다정하게 대하는 태도는 잔소리하면 고쳐질지' 따위를 걱정하고 있을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 이대로라면 둘은 반드시 헤어진다. J양이 자신의 연애에 대해 말하길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제가 말을 기분이 좋지 않게 하고,
그런 말을 듣는 남자가 안됐다는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라고 했는데, 그게 두 사람 이별의 결정적인 원인이 될 것이다.
"나 쉬니까 아니꼬와?"
"나 싫으니?"
"내가 얼마나 노력중인지 자기는 하나도 몰라."
"다음부터는 내가 안 기다려야겠네. 자기 답장하기도 귀찮잖아."
난 J양을 <생활의 달인>에 제보하고 싶다. 저 정도면, '정 떨어지게 말하기의 달인'으로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레이션 - 달인을 만나기 위해 일산서구 탄현동으로 찾아갔다.
리포터 - 여기 정 떨어지게 말하기 달인이 있다는데 혹시 아세요?
주민1 - 글쎄…. 내가 여기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주민2 - 뭐가 떨어져요? 아뇨. 잘 몰라요.
주민3 - 이거 SBS죠? 민규야 엄마 티비 나왔다~
나레이션 - 그렇게 제작진은 동네를 돌아다니며 수소문 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J양 - 너는 아닌가보네.
나레이션 - 통화를 하며 걸어오는 한 여인.
나레이션 - 멀리서 봐도 먼지 나올 때까지 누군가를 털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리포터 - 저 혹시, 정 떨어지게 말하기의 달인? <생활의 달인>에서 나왔습니다.
J양 - 그래서 뭐요? 지금 그게 중요해요?
리포터 - 맞군요.
이거 아까 혼자 상상할 때에는 재미있었는데, 이렇게 글로 쓰고 보니 재미가 없는 것 같다. 여하튼 지금처럼 사사건건 싸우자고 덤벼들거나, J양이 한 부정적인 상상들을 상대에게 뒤집어씌운 후
"내가 누명 씌운다고 뭐라고 하지 말고,
아닌 거면 네가 누명 벗기 위해 노력을 하라고."
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하면 헤어질 수밖에 없다. 늘 피고의 입장에서 해야 하는 연애엔 천하장사도 결국 지치고 마는 법이니 말이다. J양은
"그래도 싸우면 다 풀고 다시 잘 지내요."
라고 말하는데, 늘 얘기하지만 그러는 동안 남친에게는 피로가 축척될 것이다. 금속판을 구부렸다 폈다 하면 결국 어느 순간 두 동강 나고 마는 것처럼, 둘의 연애도 그렇게 끝나게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2.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J양처럼 여초직장을 다니고 있으며 주변 동료가 대부분 유부녀들일 경우, 그들의 넘치는 조언에 중심을 잃고 휘둘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J양은 혹시
"'다나와'상품평 보다 보면 컴퓨터 못 산다."
라는 웹시대의 속담을 알고 있는가? '다나와'라는 곳은 컴퓨터 부품 빛 각종 물품을 파는 곳인데, 거기엔 세세한 상품평이 달려 있는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들러 의견을 참고한다. 그런데 거기엔 상품에 대한 악평도 가득한 까닭에, 들어가서 보다 보면 아무 것도 사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 하드 때문에 제 사진 다 날렸습니다. 저 회사 제품 절대 사지 마세요."
"고주파음이 계속 납니다. 화이트노이즈라고 하죠? 이 보드 최악입니다."
"PC방 사장입니다. 저희 PC방 저 제품으로 다 맞췄는데 2/3가 불량입니다."
"이거 말고 돈 좀 더 들여서라도 A제품으로 가세요. 이거 사면 후회합니다."
"A제품 가격만 비싸지 성능은 별 볼 일 없습니다. 불량률도 높고요."
물론 저 상품평 중엔 참고해야 할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어떤 사람이 그저 뽑기를 잘 못 해 벌어진 일을 제품 전체의 한계로 말한다든가, 아니면 그 사람이 평균 이상으로 예민한 까닭에 불편함을 느낀다든가, 또는 사용자 과실로 고장 내놓곤 그걸 제품 탓 한다든가, 그냥 경쟁사 제품을 더 선호하는 까닭에 이유 없이 깐다든가 하는 상품평도 있기에 잘 가려서 읽어야 한다. 그 필터링을 못 하면 어떤 제품에도 신뢰를 가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직장 동료, 선배 분들의 조언을 듣다 보니
'남자친구가 진짜 좋은 사람인가? 결혼할 만한 사람인가?'
에 대한 생각을 예전보다 더 진지하게 하게 되었습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이렇게 얘기해서 그 분들에겐 죄송하지만, 멍충이가 멍충해서 실패했다고 J양도 똑같이 실패하게 되는 건 아니잖은가. 어떤 사람은 실내포장마차 열었다가 투자한 돈 다 날리고 한강을 찾기도 하지만, 다른 어떤 사람은 그 브랜드의 프렌차이즈를 개설할 정도로 키워내기도 한다.
작년 쯤, 내 지인 중 하나가 결혼을 생각하며 모 사이트의 결혼과 관련된 게시판에서 활동했다. 처음엔 결혼 이후의 생활에 대한 조언을 구하려 눈팅을 시작한 건데, 몇 달 후 그 지인은 예비 시댁에 대한 까닭 없는 분노를 지닌 채 가드를 올리고 있었다. 가서 뭐 시키면 절대 하지 않을 거라든지, 굳이 먼저 나서서 '내 일'로 만들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남친이 자신의 집에 오면 '손님'이듯, 자신도 가서 '손님' 대접을 받을 거란 얘기도 했다.
여기다 자세한 이야기를 적었다간 '한 많은 분들'이 컨트롤 비트를 다운 받을 수 있으니, 그런 소모전이 발생하지 않게 생략하도록 하겠다. 단, 그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해서 나에게도 그 일이 분명 일어날 것인지, 그 사람들이 해서 후회하는 일을 내가 반대로 한다고 다 해결되는 것인지, 또 그들의 상상력이 덧붙여진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을 내가 필터링 없이 들은 채 추구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권해주고 싶다. 내가 존경하며 닮고 싶어 하는 사람의 노하우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지만, 그저 누군가의 불평에 겁먹어 일을 그르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는 말도 해주고 싶다.
3. 빈대 잡으려다….
J양도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
라는 속담을 들어봤으리라 생각한다. 지금 J양이 벌이고 있는 행동들이 저 속담과 꼭 맞아 떨어진다. J양은 남친의 폰을 검사해 그가 이성에게 여지를 남기는 타입이 아니라는 것도 확인했고, 또 다른 사건에서는 이성과 대화를 나눈 것이 업무와 관련된 '단체 톡'에서의 일이라는 것도 확인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렇게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J양은 여전히 남친을 의심하며 못 미더워 하는 중이다.
계속 지금처럼 부정적인 상상만을 하면, 남친이 모든 걸 다 확인시켜줘도 그를 믿지 못할 것이다. 음모론을 좇는 사람들에게 증거를 내밀어도
"그 증거가 조작된 것일 수도 있잖아."
라는 대답만이 돌아오듯, J양이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면 모든 게 그 안경알의 색깔로 보일 것이다.
J양은 자꾸 이걸 '가치관의 차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네가 좋은 사람이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 해주다가 결국 바람피울 것 같아."
라는 생각을 하는 건 가치관의 차이가 아니다. J양이 하는 건 '부정적인 상상'을 베이스로 그를 분 단위로 쪼개 검사하는 것일 뿐이다. 물론 J양의 과거연애까지 알고 있는 나는, 이게 '구남친으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걸 안다. 구남친이 J양과 사귀면서 다른 여자들에게 찝쩍댄 것, 연애 중 J양에 대한 뒷담화를 사람들에게 흘리고 다닌 것, 헤어지고 나니 친한 언니가 와선
"사실 네 구남친, 너랑 사귀면서 나랑 썸을 타고 있었다.
그가 너랑 사귄다는 거 알고 내가 바로 연락을 끊었다."
라고 말하는 것 등을 경험하고 나면, 누구라도 나중엔 솥뚜껑만 보고도 놀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남친을 검열하며 먼지 하나 안 나올 때까지 털려고 하면, 그가 지칠 수 있다. 카톡대화를 보면 이미 그는 어느 정도 지쳐
"네가 난 조건만 되면 바람필 것처럼 얘기하잖아.
(중략)
혼자 오해하고 막말하지는 말아줘."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대로라면 헤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특히 J양은 상대가 무슨 얘기를 하든 그걸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의 근거로 갖다 붙이는 몹쓸 버릇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이번 기회에 어떻게든 고칠 수 있길 바란다. 바로 위의 이야기에 이어 보자면, J양은
남친 - 혼자 오해하고 막말하지는 말아줘.
남친 - 이상한 소리 좀 어디서 듣고 오지 말고.
J양 - 내가 하는 말이 이상한 소리야?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라며 어떻게든 싸워서 이기려고 하고, 나아가 평소에도
J양 - 난 오늘 쉬는 날~
남친 - 좋겠네. 쉬는 날도 많고. 난 오늘도 일에 치여서….
J양 - 내가 쉬는 게 못 마땅해?
라는 식으로 대부분의 대화를 '시비조'로 엮어간다. 이거, 이러면 정말 답이 없다. J양이 또 말을 못 하는 게 아니라서
남친 - 그럼 나로서는 그렇게 하든가 할 수밖에 없잖아.
J양 - 하든가? 그럼 말든가도 있다는 거네?
남친 - 아니, 나는 너한테 계속 이렇게 질책을 당하다 보면….
J양 - 당한다고? 내가 피해주고 괴롭히는 사람이야? 나한테 당해?
남친 - 아니, 내가 질책을 받는다는 뜻이지. 괴롭힘이 아니라.
J양 - 그럼 듣는다는 표현을 썼어야지.
남친 - 그래. 듣는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 아무튼….
라며 남친 표현에 꼬투리를 잡아가는데, 이러면 나중엔 J양과 대화 자체를 하기 싫어질 수 있다. "네네 밥 먹어요~", "응 잘자용~", "그래 화이팅~" 정도의 대화만을 나누고 싶은 게 아니라면, 그의 얘기를 끊거나 표현에 꼬투리부터 잡지 말고, 일단 전부 듣는 연습부터 하도록 하자.
지금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독자 분들에게 "괜찮으신가요?", "무슨 일 있으세요?"하는 카톡과 메일이 오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이런 감사한 분들을 전부 모셔 등갈비를 대접하고 싶지만, 요즘 내 지갑에 IMF가 찾아온 까닭에….(응?) 한 분 한 분 다 메모장에 기록해 두고, 훗날 어떤 형태로든 보답해 드릴 생각이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매뉴얼을 발행하지 못 한 동안 또 많은 사연들이 도착했다. 그래서 내일부터는 다시 '밀린 사연 모음'의 형태로, 주중이나 주말 구분 없이 사연들을 소개할 생각이다. 자 그럼, 우리는 내일 사연모음에서 다시 만나는 걸로…. 불금이 하루 남은 목요일, 즐겁게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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