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예고한 대로 월남쌈을 먹으러 갔다가 기분이 팍 상했다. 둘이서 갔는데, 손톱만한 파인애플을 네 조각 주는 것이었다. 쌀종이가 열 장이 넘어가는데 파인애플을 더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니, 추가주문을 하라고 했다. 메뉴판엔 뭐 추가 천 원, 또 뭐 추가 천 원 등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소꿉장난처럼 나오는 최초 메뉴로 맛만 보고 싶은 게 아니라면 추가로 주문해서 더 먹으라는 거였다.
"추가할게요. 그런데 추가분도 이렇게 네 조각 나오면,
나가서 파인애플 한 통 사와도 되나요?"
라고 하자 꽤 많이 가져다주어 배불리는 먹었다. 애초에 몇 천 원 더 올린 가격을 받더라도 처음부터 쌀종이에 싸 먹을 만큼 주는 게 어떨까 싶다. 먹는 것까지 '옵션'을 두는 얄팍한 상술을 부리진 않았으면 좋겠다. 이러다간 나중에 짜장면을 먹으러 가도 단무지 두 개 줘 놓곤, "단무지 추가는 오백 원 입니다."할 것 같다.
아 그리고, 내시경 결과도 나왔다. 별로 좋은 결과는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아주 나쁜 것도 아니어서 다행이다. 담당 의사가 좀 더 초식동물처럼 살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그러겠다고 했다. 불금을 알리던 치맥, 그리고 일요일 점심이면 약속한 듯 만나던 런치세트와는 점점 멀어지게 될 것 같다. 아직 10권짜리 <소개팅 삼국지>도 쓰지 못 한 상황에서 요단강을 건널 순 없으니 말이다. 범의 허리에 곰의 어깨를 가진 그녀의 연애사를 조금씩 써나가야겠다.(응?)
내 근황 알림은 이쯤하고, 오늘자 매뉴얼 출발해 보자.
1. 여친이 이상한가요, 제가 이상한가요?
태수씨, 태수씨는 막 빨리 여자친구랑 서로에게 서로밖에 없는 사이가 되어 영혼이 묶인 듯한 상태로 지내고 싶지? 태수씨가 말을 하지 않아도 여자친구가 태수씨의 기분을 얼른 알아채, 어느 날은 온다는 말도 없이 조용히 와서는 태수씨를 토닥여 줄 수도 있는 그런 관계.
그런데 태수씨가 그러고 싶은 마음과 달리 태수씨의 여자친구는 그러지 않으니까 '이상한 사람'으로 보인다는 거잖아. 게다가 연애 외의 부분에서도 그녀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많으니, 이게 어쩌면 그녀가 소시오패스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까닭에 벌어진 일인 것 같다는 생각도 하는 거고. 그래서 태수씨는
"여자친구의 이런 태도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리고 저도 상황이 이렇다보니 계속 유치하고 비겁해지는 것 같은데,
성숙한 연애를 하기 위해서 저는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 걸까요?"
라고 내게 묻고 있지.
빠르고 간략하게 두 가지만 이야기 할게. 먼저, 태수씨는 '그녀'가 아니라 '연애'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나는 걱정되는 게, 그녀가 만약 태수씨가 가지고 있는 저 위의 '연애 판타지'를 충족시켜줄 경우, 태수씨는 그 관계에 급격히 흥미를 잃고 그녀에게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할 것 같다는 거야. 이건 태수씨의 역할극이거든. 그녀의 현재 사정이 어떤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아는 게 그녀를 알아가는 거잖아. 그런데 태수씨는 그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단순히 그녀와 만나서 밥 먹고 같이 노는 것 정도로 생각하며, 그렇게 만나다 보면 태수씨가 원하는 '서로에게 서로밖에 없는 관계'가 될 거라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아. 정말 그녀라는 한 사람에게 관심이 있는 거라면 그녀가 무언가에 대해 거절을 할 때 왜 거절하는 건지를 봐야 하는 거잖아. 그런데 태수씨에겐 '그녀'보다 '내 판타지'가 우선인 까닭에 그저 그 '거절'에 실망하며 그녀가 이 모든 걸 다 망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지.
그 다음으로는, 태수씨는 가면 쓰고 있으면서 그녀에게는 맨 얼굴을 보이라고 하는 것 같아. 이렇게 얘기하면 무슨 얘긴지 모를 수 있으니까, 그녀에게 '무장해제'를 요구하고 있는 거라고 정정할게. 어차피 태수씨는 그녀와 길고 진지하게 만나려고 했던 게 아니었잖아. 근데 태수씨는 속에 그런 검은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 그녀보고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이 연애에 푹 빠져 나를 사랑하라.'라는 이야기를 하는 건 잘못된 거지. 이건 내 패는 소매 속에 다 숨기고 있으면서 상대보고는 모든 패를 다 내보이라고 하는 거잖아. 외로움에 익사하기 직전이라 판단력을 상실한 여자가 아니라면, 태수씨의 그런 수를 여자는 본능적으로 알아챌 수 있어. 그리고 여자친구의 그런 태도를 바꿔서 무장해제 시키면 그 다음은 어쩔 건데? 태수씨는 아무 것도 증명하지 못 하고 보장하지 못 할 거면서, 그저 상대를 나에게 완전히 집중하게만 만들려곤 하지 마. 태수씨는 마음에 보호필름 붙이고 있으면서, 그녀에게만 내 지문이 묻는 걸 온전히 허락하라고 요구하진 말자고.
봐봐. 저러니까 여자친구 앞에서는 다 괜찮은 척 연기하지만, 속으로는 앙심을 품으며 지인에게 그녀에 대한 흉만 보게 되는 거잖아. 태수씨, 나는 공쥬님(여자친구)에게 인간적인 관심을 가지고 함께하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전에 이야기 한대로 내가 전화를 했을 때 공쥬님이 "왜?"라고 대답하는 것에 시무룩한 적도 있어. 꼭 용무가 있어서 전화하는 게 아닌데 공쥬님은 습관처럼 "어, 왜?"라고 할 떄가 있거든. 근데 그게 공쥬님이 악당이라서 그런 게 아니고, 또 나에게 마음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잖아. 우리는 서로 다 다른 사람들인데 상대가 나와 같지 않다고 해서 그걸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연애를 할 게 아니라 전부 수정 보완작업만 해야 할 거야. 아침 점심 저녁으로 상처 받고 싸우기만 할 거고 말이야. 상대의 행위에 대해 '내가 한 번 참아준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게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이해를 해봐. 물론 서로를 아프게 하는 지점에 대해선 도와달라고 말을 꺼내야겠지. 그게 조율이잖아.
"너는 진짜, 상대에 대한 생각 자체가 부족한 것 같다."
그저 참아주고 그냥 넘어가주고 하다가, 결국 저렇게 터트려 버리는 건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야. 서로 30cm 이내로 붙어서 대화도 할 수 있는 사이인데 왜 평소엔 말을 안 해? 뭐 먹을지, 어디 갈지, 몇 시에 만날지를 정하기 위해서만 대화를 사용하진 마. 나는 어떤지를 털어 놓고, 너는 어떤지에 대해서 물어봐. 그게 바로 서로의 영혼을 조금씩 더 탄탄하게 묶어가는 과정이니까.
2. 을이 되는 연애가 너무 힘들다는 남친.
L양이 너무 극단적입니다. L양은 화가 날 경우 분노조절, 또는 감정조절을 하지 않는 까닭에 상대에겐 그 모습이 마치 '재앙'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제 지인 중에도 L양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 지인이 있는데, 그 지인은 화가 날 경우 뒷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온전히 그 순간의 감정에만 충실하게 행동합니다. 편의상 여기서 그 지인을 A라고 하겠습니다.
A와 다른 지인들이 여행을 간 적 있습니다. A의 차를 타고 강원도를 거쳐 부산을 갔다가 일산으로 돌아오는 코스였습니다. 그런데 강원도에서 다른 지인과 마찰을 빚은 A는
"그냥 너희들끼리 놀아라. 난 갈란다."
라며 일산으로 올라와 버렸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숙소를 잡는 문제로 인해 갈등을 하다가 그렇게 일이 커진 거라고 들었는데, 여하튼 그 발단은 정말 사소하고 집단생활에서라면 '그러려니'하며 넘길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예컨대 네 명 중 세 명이 감자탕을 먹자고 하면 감자탕으로 메뉴가 결정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A는 그 중 유일하게 '족발'을 원하는 쪽이었고, 자신의 바람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니 A가 진상을 부렸던 것과 같습니다. A가 그렇게 가 버린 까닭에 나머지 셋은 그 여행을 망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A에게 들으니 그는 '순간 화가 나 어디 한 번 지들끼리 해 보라는 마음에 그런 것'이라고 하던데, 딱 그 순간엔 통쾌했을지 모르지만 그 순간 A와 다른 지인들의 우정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습니다.
진상. L양이 화를 낼 때의 모습을 딱 그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소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남들 다 그렇듯 여보, 봉봉, 사랑해 뭐 그러면서 잘 사귀는데, 남친의 말이나 행동이 L양을 자극하면, L양은 무자비한 폭격을 가하기 시작합니다. L양의 폭격이 무서운 진짜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맞서도 죽고, 피해도 죽는다는 겁니다.
L양은 '타협불가'를 미리 선언하고 폭격을 시작합니다. 때문에 상대는 열심히 얻어맞다가 비명 같은 하소연을 하는데, 그래도 L양은 무자비하게 계속 폭격을 가합니다. 언젠가 웹에서 봤던 만화가 떠오릅니다. 연애와는 관련이 없는 폭력 만화였는데, 정확하진 않지만 아래와 같은 대화가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악당 - 사실대로 말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희생자 - 네, 제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정말 고의로 그런 건 아닙니다.
악당 - 역시 네 놈 짓이었구나. 용서할 수 없다. 죽어줘야겠다.
화가 난 L양이 가지고 있는 결말은 딱 하나입니다. 이별. 최후의 일격을 날리듯 헤어지자는 말을 해, 낭떠러지에 매달린 남친의 손까지를 밟아야 L양은 직성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 일격을 간접적으로 날릴 때도 있습니다.
"그래, 그렇다는 거겠지. 그럼 헤어지든가."
따위의 이야기로, 이쪽에선 헤어져도 아쉬울 것 없다는 식으로 상대의 콧구멍을 쑤십니다. 콧구멍을 쑤신다는 의미가 뭔지 잘 모르시겠다면, 친구를 만났을 때 계속 그의 콧구멍에 손가락을 넣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처음엔 친구가 "하지 마. 왜 그래? 하지 말라고."라고 말하지만, 나중엔 화를 내며 이쪽의 팔을 꺾을 것입니다. 그럼 또 L양은
"지금 내 팔 꺾은 거지? 분명 꺾었어.
네가 내 팔 꺾었으니 난 네 팔을 부러뜨릴 거야."
라며 '이상한 복수'를 시작합니다. 역시나 그 결론은 '이별'로 둔 채 말입니다.
이 연애가 지속되어 온 건 남친의 기괴할 정도의 이타심, 그리고 정에 약하며 자신이 희생해서라도 불화를 잠재우려 하는 성격 덕분이었습니다. 남친이
"우리 관계는 내가 놓으면 언제든 끝날 관계인 것 같다."
"너는 갑, 나는 을인 이 연애가 힘들다."
라는 이야기를 한 것은, 결정적인 순간엔 늘 L양이 이별을 인질로 삼아 그를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위협할 뿐만 아니라 분에 못 이겨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하는 쪽도 L양이고 말입니다. 그간 L양이 화를 낼 때마다 했던 행동의 1/10이라도 남친이 했다면, L양은 진작 이 연애를 끝내고 그를 영영 차단했을 거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혹시 그가 L양을 먼저 자극한 게 잘못 아니냐고 제게 묻고 싶으십니까? L양은 상대가 콧노래만 불러도 그걸 혼자 오해해 '자극'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예민하며, 상대가 실수로라도 발을 밟으면 몽둥이로 때려가며 복수하는 '복수의 화신'이라는 말을, 저는 대답 대신 적어두도록 하겠습니다.
3. 윌슨~ 윌슨!
민정씨, 영화 <캐스트 어웨이>보셨습니까?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 어느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데, 거기에 '윌슨'이라는 배구공이 나옵니다. 무인도에 있던 주인공이 너무 외로운 나머지, 주워온 배구공에 얼굴을 그리고 그 배구공을 친구로 삼았던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 배구공인 '윌슨'은 당연히 대사 한 마디 없습니다만, 주인공은 윌슨에게 혼잣말을 하고, 또 윌슨에게 화를 내기도 하며, 윌슨을 껴안고 울기도 합니다. 윌슨은 사물인 배구공인지만, 주인공의 의미부여로 인해 그의 동료가 되었던 것입니다.
민정씨의 사연과 비슷한 이야기들이 사실 제겐 참 어렵습니다. 제가 보기엔 민정씨의 사연이 '윌슨'같은 남자친구에게 민정씨가 너무 많은 의미부여를 한 이야기처럼 보이는데, 이렇게 얘기했다간 당연히 민정씨로부터는
"의미부여라뇨. 잘 알지도 못 하면서…."
라는 대답만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봐도 아마 저 역시 그럴 것입니다. 누군가 저와 간디(애완견, 애프리푸들)의 관계를 참을 수 없이 가볍게 정리해서 이야기 하면, 전 당장
"사랑의 질량은 전무 무시한 채,
그저 저울에 달아 그 숫자를 말하듯 이야기하지 마세요."
라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 집 간디가 민정씨에겐 그냥 '남의 집 푸들'이듯이, 저 역시 민정씨의 연애와 민정씨의 남자친구에 대해선 제게 보이는 대로만 말씀드릴 수밖에 없다는 걸 좀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민정씨의 연애를 가볍게 생각한다거나, 폄하할 목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니 말입니다.
'연인'이라는 간판을 걸어두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나 현재 딱히 만날 사람도 없고, 외로움을 느끼는 와중에 누군가가 고백을 해오면, 그가 마음에 들든 안 들든 그냥 만나볼 수 있습니다. 당장 연애가 하고 싶기에 상대가 누구든 간에 이성이기만 하면 그냥 연애를 시작할 수도 있는 것이고 말입니다.
민정씨의 사연을 보면, 남자친구는 민정씨와 연애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가 과거의 상처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어쨌든 그는 민정씨에게 관심이 없었고, 민정씨의 마음을 얻으려는 의지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연애를 꺼렸음에도 불구하고 민정씨가 '삼고초려'를 하듯 그에게 교제를 요구했기에 그는 승낙을 했습니다.
승낙을 하기는 했는데, 그는 연애가 시작된 후에도 그냥 자신이 살던 그대로 계속 살았습니다. 민정씨는 이걸 "남친의 취향에 제가 다 맞췄습니다."라고 말하는데, 그건 민정씨의 의사가 반영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 외에 선택지가 있었습니까? 둘의 데이트 역시 민정씨가 그의 집에 찾아가 거기서 뭔가를 해먹거나, 그 부근에서 뭔가를 사 먹거나 하는 게 거의 전부이지 않았습니까?
때문에 전 이 사연이, '윌슨과의 연애'와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밀어내지 않았으며 민정씨가 모든 걸 양보했기에 유지된 연애일 뿐, 그에겐 희생, 양보, 배려, 존중, 애정 그 모든 것이 조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건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마치
여자 - 우리 오늘부터 사귀는 거다?
남자 - 어, 그래.
여자 - 우리 영화 보러 갈까?
남자 - 싫어.
여자 - 그럼 자기네 집에 가서 내가 요리해줄까?
남자 - 마음대로 해.
여자 - 말 좀 예쁘게 해. 마음대로 해가 뭐야.
남자 - 너 괜찮으면 그러라는 뜻이잖아. 자꾸 짜증나게 할래?
여자 - 미안해.
라는 대화를 나누는 커플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민정씨가 카톡으로 말 걸면 피곤할 테니 빨리 자라고 하고, 친구 만나야 하니 못 만난다고 하고, 그러다 자기 아쉬울 때만 민정씨의 열정을 당연한 듯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그렇게라도 사귀다가 왜 헤어지게 된 건지를 제게 물으신다면, 그건 민정씨가 '결혼'이야기를 꺼내며 남친의 부모님들과 접촉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답하겠습니다. 그가 결혼에 대한 얘기도 한 적 있기에 민정씨는 들떴던 것 같은데, 여기서 보기엔 그건 그가 '결혼하면 이렇게 살고 싶다'는 자신의 희망사항을 말한 것이지, 정말 진지하게 '민정씨와 결혼하면'이라는 가정 하에서 한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 더. 민정씨는 "사랑만으로 먹고 살 수 없다고 제 지인들은 말하는데…."라고 하셨는데, 만약 민정씨가 그와 결혼을 한다고 해도 이건 '사랑만으로 먹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민정씨가 자신의 사랑으로 그를 먹여 살리는 거지, 둘이 사랑을 먹고 사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민정씨는
"전 결혼은, 조건보다는, 정말 진심으로 아끼고 성실한 사람 만나서
서로 아끼고 위해주는 가족을 만들고 싶어요."
라고 하셨는데, 민정씨의 사연에서 '진심으로 아끼고'와 '성실한 사람', 또는 '아끼고 위해주는'이라는 부분을 찾아보실 수 있습니까? 전 민정씨에게 꼭 당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조건이 안 좋은 사람 = (조건이 아닌 사랑으로)아끼고 위해주는 사람"
이라고 생각하진 말라는 것입니다. 공부를 예로 들겠습니다. 민정씨는 '공부가 하고 싶었지만 집안 환경으로 인해 더 배우길 포기한 사람'과 '공부 할 생각이 없어서 더 배우질 않은 건데 집안 환경도 어려운 사람'이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남친을 대했던 민정씨의 태도를 보면, 후자를 전자라고 생각하며 계속 학자금 조로 그에게 베풀려 했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공짜로 그렇게 지원을 해주겠다는 걸 굳이 거절할 사람은 없으니, 그는 그냥 민정씨의 호의와 배려를 받았던 것이고 말입니다.
"전 굳이 남자가 조건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남자가 한 달에 백만 원도 못 번다해도, 전 그와 살 수 있어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만, 그 역도 참이라고 생각하며 '조건 안 좋은 남자와의 연애 =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진 않으셨으면 합니다. 조건이 좋든 안 좋든, 민정씨에게 애정이 없으며 민정씨를 존중하지도 않는 사람과는 연애나 결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가 핑계를 댄 '부모님의 반대'를 극복하는 방법을 물어오셨다가 이런 대답을 들어 당황하셨을 것 같은데, 정말 냉철하게 자신의 연애를 다시 한 번 돌아보셨으면 합니다. 민정씨 스스로 행복하다는 최면을 걸었던 게 아닌지, 민정씨가 아니라 민정씨의 여동생이 민정씨의 남친과 같은 남자를 만났으면 민정씨는 뭐라고 했을 것인지, 모성애와 보호본능을 다 접어두고 천천히 생각해 보시길 권합니다.
오늘은 본문에서 하얗게 불태운 까닭에 배웅글을 적을 힘이 없다. 하룻밤만 자면 불금이 찾아오니, 다들 목요일 잘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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