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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똑똑하고 예쁜 여친, 그런데 그는 왜 헤어지려 할까? 외 1편

by 무한 2015. 1. 21.

십 수 년간 낚시를 즐겨온 입장에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회나 매운탕이 먹고 싶을 경우 식당을 찾는 게 낫습니다. 물 때를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무작정 바다로 낚시를 떠나는 것에 대해서는 뭐 말 할 것도 없고, 치밀하게 다 계획해서 떠난 낚시라고 해도 겨우 손바닥만 한 고기를 몇 마리 잡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열 번 중 한 번 꼴로 놀랄 정도의 물고기를 잡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간 들어간 비용을 다 따져서 계산하면 그것 역시 분명 '마이너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뭐, 계산기를 두드리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먹을 목적이 아니라 그 '손맛'을 보고 싶어 낚시를 가는 거라고 할 경우, 이것 역시 경제적으로만 따지면 확실히 여러 차례 보장된 손맛을 볼 수 있는 '손맛터(낚은 고기를 놔주고 가는 낚시터)'를 찾는 게 나을 겁니다. 그곳에서는 낚싯대를 대여해주기도 하니, 낚싯대 구입에 따른 지출도 줄일 수 있을 것이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600만 낚시인들이 오늘도 낚시채널을 보고, 새로 나온 낚시 제품이 없나 잡지를 뒤적이며, 웹을 뒤져 이번 주말에 갈 포인트를 찾는 건, 낚시의 '모험적 기능' 때문일 것입니다.

 

[모험]

모험(冒險)은 일상과 동떨어진 상황에서,

어떤 목적을 위해 위험 속에서 많은 경험을 하는 행위를 말한다.

또는 그 체험 속에서 뜻하지 않는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위키백과 <모험>에 대한 설명 중에서.

 

낚시에서 그 '모험적 기능'을 제거하면, 그건 그냥 또 다른 노동처럼 느껴지고 말 것입니다.

 

 

1. 똑똑하고 예쁜 여친, 그런데 그는 왜 헤어지려 할까?

 

참 죄송한 말씀이지만, 제가 은주씨와 사귀고 있는 중이라고 가정해 보면, 저 역시 은주씨와의 이별을 심각하게 고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은주씨와의 연애가 너무 빡빡하기 때문입니다. 은주씨가 똑똑한 건 잘 알겠습니다. 남들이 다 부러워 할 스펙과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주씨는 그것에 만족하지 못 한 채 더 좋은 스펙과 직업을 좇고 있으니 말입니다. 은주씨가 남친의 일과를 거의 시간 단위로 쪼개 그가 게으름을 피우거나 성실하지 못 한 태도로 살고 있는 지점들을 지적한 것만 봐도,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과는 분명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남친의 연락을 근거로 그의 수면시간을 체크하고 그 외 밥 먹는 시간, 담배 피우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전부 계산한 뒤 '순수하게 공부하는 시간'을 구해 어디에서 시간의 누수가 일어나고 있나를 파악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습니다.

 

은주씨가 딱 떨어지는 계산으로 스스로를 담금질하며 살아왔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은주씨는, 남친을 보며 답답하게 생각합니다.

 

"그는 지금 이러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러이러합니다.

강제성이 부여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스스로를 더 매섭게 다 잡아야 할 텐데

그것도 안 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은주씨의 남친이라면, 저녁에 별을 보러 나갔다 오겠다는 얘기를 꺼냈다가 은주씨에게 아래와 같은 대답을 들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별자리가 궁금한 거면 요즘 어플로도 다 볼 수 있는 거잖아.

그리고 행성이나 성운, 성단이 궁금한 거면 웹에 고해상도 이미지도 있고.

나가서 90mm 망원경으로 봐 봐야 잘 보이지도 않아.

허블 우주 망원경으로 찍어 놓은 더 선명한 사진들 있는데, 뭐하러 나가서 봐?

나중에 글을 쓸 때 참고사진이 필요해서 나간다고?

그건 별자리 사진 저작권 구매해서 사용하는 게 경제적으로 더 나은 거지."

 

이성적으로 보자면 다 맞는 얘기고 딱히 반박하기 어려워 저 말대로 따라야 할 것 같은데, 그랬다간 제 가슴이 뛰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남자친구가 저의 불만사항을 피해버리는 것이 고민입니다.

그는 왜 가장 가까운 연인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걸까요?

자기 잘 되라고, 걱정돼서 하는 조언도 있고,

또 내게 조금 더 신경 써달라는 건데…."

 

음, 제가 아래와 같은 말을 한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은주씨 혹시 배우고 싶은 악기 있으십니까? 피아노요? 지금 피아노 배워서 뭐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차라리 그 시간에 외국어를 하나 더 공부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일어 잘 하십니까? 못 하신다면 오늘부터 일어를 공부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그러면 직업과 관련된 일본의 정보들도 더욱 손쉽게 보실 수 있으실 텐데요. 학원 다닐 시간이 없다고요? 혼자 공부할 수 있는 교재는 많이 나와 있습니다. 의지의 문제죠. 그리고 인생의 낭비라고 하는 SNS에선 오늘부로 다 탈퇴해 버리시고 그 시간에 일본어 공부를 하시길 권합니다.

더불어 고득점을 취득해 놓아서 나쁠 건 없으니 일본어 시험에도 응시한다는 계획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일본어 잘 한다고 해도 증명할 수 있는 서류가 없다면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으니 말입니다. 또, 무슨 자몽맥주가 마시고 싶다느니 하는 소리는 앞으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음주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렇게 술 마시는 시간에 공부를 하면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건 다 더 나은 은주씨가 되기 위한 효율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니, 이대로 따르시길 바랍니다.

 

은주씨가 신청서에서 제게 "그렇죠? 그렇잖아요? 제가 말하는 게 맞잖아요?"라고 말씀하시는 것들 대부분이, 상대에겐 저런 느낌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글쎄요, 이건 뭐가 옳고 뭐가 그르다기 보다는 상대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라 더 길게 적진 않겠습니다. 다만 제가 은주씨의 남친이라면, 전부 다 수치화 되어 답이 나와 있는 명확한 길을 그저 노동하듯 걸어가고 싶진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적어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럴 경우, 저는 은주씨와 여행을 가더라도 은주씨의 '효율적인 여행계획'에 따라 차를 몰거나 옆에 붙어 있어야 하는 기사나 도우미의 심정을 느낄 것 같습니다. 전 제주도에 갔으면 배낚시를 한 번 해보고 싶은데, 은주씨가 보기에 그게 비효율적이며 시간만 많이 잡아 먹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전 은주씨가 계획한 올레길을 같이 걷는 것 외엔 선택지가 없을 테니 말입니다.

 

"이런 남자, 제가 의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비이성적인 감정이,

아직도 그를 좋아하는 것 같길래 저는 노력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냥 남친 그대로의 한 사람으로서는 좋지 않으십니까? 그럼 헤어지는 게 맞습니다. 은주씨는 남친에 대해 '남편감으로 부족한 것만 같은 이 남자'라고 표현하기도 하셨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를 '답답한 남자'나 '한심한 남자'로 여기게 되고, 계속 은주씨는 자신의 이상향과 현실의 그를 비교하며 그에게 잔소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존중이 말소된 은주씨의 '잘 되라고 하는 말'을 남친은 듣고 싶지 않은 거고, 담배를 끊어라, 어느 모임에 나가라, 더 열심히 공부해라, 우린 결혼을 언제 해야 한다, 라는 은주시의 지시들을 들으며 그는 아이가 '극성 엄마'를 못 이겨 가출하듯 이 관계에서 나가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습니다. 때문에 이건 은주씨가 상대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과 만나지 않는 한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2. 소개팅남 말고 주선자가 마음에 든다는 S양.

 

그냥 '한 번 사귀어보지 뭐.'라며 연애를 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야 S양에게 소개팅이든 미팅이든 물밀듯이 들어오고 사귀다 헤어지면 '다음 소개팅'으로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기에 별 생각 없겠지만, 이 시기에 연애에 대한 태도가 이상하게 박혀버리면 훗날 정말 고생할 수 있다.

 

'나에게 관심을 보이고 잘해주니까'정도로 누군가와 사귀지 말고, 최소한 상대와 또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 연애하길 권한다. 그와의 연락이 즐겁고, 또 기다려져야 한다. S양이 신청서를 통해 물은 부분은 이 지점이 아니지만, 사연을 읽는 내내 내게

 

'이거, 나중에 골드미스 테크를 탈 기미가 보이는 사연인데?'

 

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기에 하는 얘기다.

 

사귀게 되었으니 친한 척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친해져야 한다. 연인이 되었으니 좋아하려 노력하는 게 아니라 정말 좋아야 한다. 남자친구와는 최소한 '나랑 친한 헤어디자이너'와의 관계 보다는 훨씬 더 가까워져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S양은 둥글둥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별로 드러내지 않은 채 의식적으로 노력을 하는 것 같아서 좀 걱정이다. 그런 태도로는 결국 S양은 만족스럽지 않은 연애를 하게 되며, 연애를 하는 와중에도 외로울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런 태도를 고집하면, 처음엔 호감을 보이며 달려들던 상대도 나중엔 S양이 그 연애에 의무적으로 임하고 있는 듯하다고 생각하며 물러설 것이다. 이정도만 얘기해도 S양이 잘 캐치할 것 같으니 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이미 S양이 소개팅남과 잠시 사귀고 헤어진 이후라 상황이 좋진 않다. 남자 측 주선자인 심남이도 '자신이 소개팅을 시켜 준 친구와 사귀었던 여자'와 만나는 게, 아무래도 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할 듯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길 권하고 싶지는 않다. S양은 다른 사람은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에게 반한 상황이며, 상대 역시 S양과 대화가 잘 통하고 코드가 맞는다는 걸 확인하며 연락을 해오지 않았는가. S양이 이전 연애를 햄버거 주문해서 받듯이 한 까닭에 문제가 살짝 복잡해졌지만, 주선자인 이 심남이와는 좀 더 만나고 대화를 하며 알아가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개팅 전력이 있어서 다리를 놔 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심남이에게 직구를 날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 어쩌죠?"

 

변화구로 가면 된다. 이전 대화가 TV프로그램 이야기였으니, 그걸로 더 이어가면 된다. "이번 주 그 프로그램 봤어요?"정도로 출발하면 좋을 것 같다. 단, 앞으로 심남이와 대화를 나눌 땐 '소개팅'이나 '연애'를 주제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쪽에서 시작된 인연이라고 계속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간 그저 '연애 상담메이트'가 될 수 있으니, 그쪽과 관련해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길 권한다.

 

"제 쪽 주선자가 그 심남이랑 아는 사이니,

그 주선자에게 말해서 셋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 볼까요?"

 

안 된다. 아무도 이 관계에 끌어들여선 안 된다. 이건 오로지 S양과 상대 두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하자. S양 쪽 주선자와 심남이는 '오빠 동생'사이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더더욱 그녀를 끌어들여서는 안 되니 조용히, 되도록 비밀리에 그와 연락을 하길 권한다.

 

더불어 S양은 현재 '다른 소개팅'이 들어왔다고 했는데, 그렇게 오는 버스 다 훑어보고 있다간 S양이 타야 할 버스를 놓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새로운 소개팅으로 소개팅남도 만나면서 심남이도 같이 만나보는 태도를 취했다가는, 두 관계를 모두 망칠 수 있다. 지금 마음이 끌리는 사람에게 집중하며 관계의 새싹을 키워보길 권한다.

 

 

오늘 사실 다른 제목의 매뉴얼을 발행하려고 했는데, 그 사연으로 매뉴얼 첫 부분을 작성해 놓곤 메일함을 보던 중 "끝나버렸네요. 제 사연 안 다뤄주셔도 될 것 같아요."라는 메일을 발견해 지우고 새로 쓰느라 힘이 다 빠져버렸다. 그래서 오늘은 위의 두 사연만 다뤄야 할 것 같다.

 

몇몇 독자 분들께서 조직검사 결과를 물어보셨는데, 결과가 오늘 나온다. 그건 그렇고. 위장에 좋다는 양배추를 일주일 째 먹고 있는데, 양배추를 먹을 때마다 월남쌈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찾아온다. 태어나서 한 번도 월남쌈 같은 걸 먹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왜 자꾸 파인애플과 각종 채소를 쌀종이에 싸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언젠가 지인이 월남쌈 먹고 싶다고 했을 때 '고기도 아니고 무슨 월남쌈을….'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월남쌈, 오늘 저녁은 너로 정했다! 다들 이번 주에 좋은 사람과 월남쌈 드시길. 두 번 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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